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06
* * *
‘됐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어리석은 혼돈이 다음 외신을 부르지 못하도록. 손오공은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해 냈다.
저 멀리서 손오공과 싸우던 어리석은 혼돈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지만-.
‘우리 쪽이 더 빨랐다.’
녀석이 다음 외신을 부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도 녀석은 외신들을 불러 삼신과 자신을 잡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오공과 마주치고, 그 뒤에서는 유원이 창을 겨누었다.
계획이 틀어졌고, 당연히 상황에 따라 목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을 붙잡아 두는 사이 삼신을 잡는 것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보다는 한 마리를 확실하게 잡는 게 녀석의 성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리석은 혼돈은 손오공에게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오공과 유원을 자신이 붙잡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패착이었다.
‘창의 범위는…….’
화르르륵-.
창끝에 불꽃이 맺혔다.
이번 시동에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타르타로스’를 개방합니다.] [‘우라노스의 심장’이 ‘니르’를 다스립니다.]타르타로스.
분명, 지난 며칠 동안 문을 열고, 그 너머까지 넘어가는 것은 실패였다.
하지만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 전까지 유원이 열었던 문이 작은 틈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그보다 더 활짝 열려 있었으니까.
치지, 치지지지-.
타르타로스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창끝을 타고 유원의 손안에 모여들었다.
니르는 궁니르와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의 창이었다.
어둠 속성의 마력에 반응하는 창. 그렇기에 유원은 니르를 다루는 수단으로 타르타로스를 떠올렸다.
‘정말 타르타로스가 무한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바다라면…….’
츠츠, 츠츠츠-.
손이 썩어드는 게 느껴졌다.
부식.
어둠 속성의 마력이 지닌 성질이었다.
그리고 지금, 니르에 모여들기 시작한 마력은 유원이 버텨 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 한 방에 끝날 거다.’
* * *
쩌엉-!
포세이돈의 창끝과 절망의 손아귀가 충돌했다. 창끝에 모인 바다의 힘이 흩어지고, 포세이돈의 몸이 뒤로 죽 밀려 나갔다.
“덩치는 작은 놈이 힘은 세구나!”
포세이돈은 자신의 몸에 둘러진 마력이 순식간에 흐트러지는 걸 느꼈다.
[‘바다의 갑옷’이 흔들립니다.] [‘바다의 갑옷’을 회복합니다.]흔들렸던 갑옷이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포세이돈은 방어력만큼은 삼신 중 가장 뛰어났다.
좌절의 눈빛이 포세이돈을 꿰뚫었다.
움찔, 몸이 떨렸다. 녀석을 마주하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어디 다시 와 보거라!”
포세이돈은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다시금 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쭈아아악-.
절망이 포세이돈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뭣…….”
갑작스레 늘어나 몸 전체를 덮쳐오는 거대한 손아귀에 포세이돈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간의 경험이 본능적으로 손아귀를 막아 냈다.
쭈아아악-!
손아귀가 포세이돈의 몸에 둘러진 물의 갑옷을 찢어 냈다.
쩍, 소리가 나서 보니 창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괜히 나댔나?’
다른 것도 아니고 애초에 막아 내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라니.
“좀 도와…….”
“말 안 해도-.”
스으으-.
절망의 주위를 새까만 어둠이 감쌌다.
“그럴 셈이다.”
촤라라락-!
어둠 속에서 수천, 수만 개의 칼날이 쏟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무수한 칼날에도 절망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쫘아아악-!
거대한 손바닥이 칼날을 막아 내고 어둠을 갈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춰져 있던 하데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
하데스가 눈을 번뜩였다.
좌절과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하데스는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좌절의 손아귀가 하데스를 향해 뻗어지고.
후욱-.
하데스의 몸이 그 자리에서 흩어져 새까만 연기로 변했다.
연기가 꿈틀거리며 좌절의 몸을 옭아맸다.
“힘만 세지, 머리는 모자라군.”
파지지지-!
동시에 좌절의 머리 위에서 막대한 마력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바로 바로 지척까지 내려온 제우스가, 손에는 거대한 벼락을 쥐고 투창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 거리라면-.”
필요한 건 한 방이었다.
“피하고 싶어도 못 피할 거다.”
번쩍-!
벼락이 제우스의 손을 떠나고.
콰우우웅-!
황금의 기둥이 절망의 위로 솟아올랐다.
크캬아아아-!
처음으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공격이 먹혀들었다.
하지만 이 한 번으로 숨통을 끊을 작정이었던 제우스로서는 힘이 빠지는 반응이었다.
‘턱도 없나.’
비명을 지를 여력이 있다는 건, 숨통을 끊어 놓기에는 꽤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안 된다. 제우스는 서둘러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파지지짓-.
“자존심 상하는군.”
제우스의 손안에 모여든 전격이 그물처럼 퍼졌다.
창이 아닌, 그물의 형태.
쫘아아-.
흩어진 그물은 황금빛의 기둥에 짓눌린 절망의 몸을 옭아맸다.
“아이템 하나 때문에 포지션을 빼앗기다니 말이야.”
“이 창은 우리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유원은 이 싸움을 승리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제시했다.
니르.
오딘의 창, 궁니르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아이템.
오직 유원만이 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창은 이미 인드라와의 싸움에서 파괴력이 입증이 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걸 확실하게 맞춰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창을 적중시키고, 형님들과 손발을 맞추면서까지?”
처음 제우스는 의문을 가졌다.
당연했다.
그는 충분히 그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대단한 힘을 가졌던 인드라도, 결국 지금은 죽고 랭킹에서 사라졌다.”
그 말에 제우스는 바로 납득했다.
애초에 생각만 그렇게 했을 뿐, 우기려던 건 아니었다.
“일단 한 번 믿어 보지. 언제든 만전을 기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
어리석은 혼돈은 지금껏 제우스도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존재였다.
용족과 같이 탑에 알려진 다른 종족도 아니었고, 정당한 과정으로 탑을 올라 관리자들에 의해 랭킹이 측정된 랭커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탑에 속하지 않은 또 다른 무언가였다.
불가해의 존재들.
그렇기에 제우스는 유원의 뜻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던져라.”
제우스의 그 말과 함께 삼신은 약속이라도 한 듯 좌절에게서 멀어졌다.
이 자리에 있으면 당장 휘말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그 순간.
투확-!
저 멀리서, 검은 창 하나가 날아왔다.
* * *
쭈아아아악-.
날아간 창이 기다란 선을 그렸다.
지나간 자리까지 전부 집어삼키고, 삼신에 의해 움직임이 속박된 좌절의 몸을 꿰뚫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땅에 떨어진 좌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찢어진 몸이 부식되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어둠 속성의 마력, 그 끝에 다다른 결과는 소멸이었다.
좌절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유원은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이건,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잡아먹었다.
‘두세 발은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니르의 시동은 처음이 아니었다.
당연히 소모된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창을 몇 번이나 던질 수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었다.
타르타로스 때문일까.
이번 시동에서 니르는 전보다 족히 배가 넘는 마력을 잡아먹었다.
창을 시동하는 데 필요한 마력의 양도 상당했건만, 타르타로스를 여는 데에도 상당한 마력을 사용한 탓이었다.
위력이 그만큼 배가 되는 건 당연한 일.
다만.
‘전체의 7할. 마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
전투가 막 시작되었을 때에도 사용하기 부담되던 창이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싸우는 도중 시동하는 건 엄두도 못 낼 지경이었다.
무림계에는 3할의 실력을 숨겨 두어 야 한다는 격언이 있었다.
그 격언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탑 곳곳에 퍼져 나가, 또 다른 형태의 말로 바뀌었다.
3할의 마력은 언제나 남겨 두어 야 한다고.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힘을 다 쏟아 내고 남아 있는 마력이 없으면 살아남는 건 불가능했다.
유원은 그 격언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따르기도 가장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유원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이 투창 한 번에 가지고 있는 마력을 전부 쏟아 낸 것과 다름없었다.
‘혼자서는 못 쓰겠군.’
이렇게 되면 창을 던지는 데 필요한 조건이 두 개로 늘어난다.
창의 시동까지 시간을 벌어 주고.
시동 이후, 탈진에 가까운 상태의 자신을 지켜 줄 ‘팀’이 필요한 것이다.
아니면.
‘그게 아니면, 창을 몇 발을 던지고도 남을 정도의 마력을 가지든가.’
적어도 유원이 알기도 이 탑에 그만한 양의 마력을 지닌 하이랭커는 한 명뿐이었다.
오딘.
아스가르드의 위대한 왕이자, 랭킹 2위의 하이랭커.
그는 궁니르를 몇 발을 던지고도 남을 만큼 거대한 마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도 유원은 그의 마력이 마르는 걸 본 적이 없었고.
“숙제가 또 생겼나.”
투덜거리면서도 유원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마력이란 많이 사용한다고 무작정 위력이 배가 되지 않는다. 한 번에 이만한 양의 마력을 퍼부을 수 있는 스킬은 유원의 머릿속에도 몇 개 되지 않았다.
스킬의 개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특히나 이런 위력을 지닌 한 방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길 수 있게 만든다.
이제 남은 숙제는 명확하다.
이 창을, 오딘처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기대 창을 던져야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러지?”
화륵-.
비틀거리던 균형을 붙잡은 유원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뭔가 생각한 것과 그림이 다른가봐?”
스으으-.
아무것도 없던 텅 빈 공간 위로 보랏빛의 아지랑이가 떠오른다.
이미 꽤 이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어리석은 혼돈은 로브 속에서 살벌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타났다.
이미 일이 틀어진 건 그 역시 알고 있었다. 눈치챘을 때에는 이미 한 박자 늦은 상태였다.
그는 두 가지를 간과했다.
유원의 목표를 착각했고, 유원이 던질 수 있는 창의 위력을 무시했다.
또한.
손오공이 나타나, 유원이 창을 던질 시간을 벌어 준 것도 예상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성가시군. 너도, 그 눈도.”
어딘가 마음에 잔뜩 들지 않는 듯한 투였다.
오랜만의 재회였다.
유원의 머릿속에 순간, 시체가 된 어리석의 혼돈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을 잡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로 인한 폐해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화안금정은 어리석은 혼돈을 잡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어리석은 혼돈과 눈을 마주친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디 성가신 게 이거 하나뿐일까.”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면 더 숨길 수도 없다.
유원은 힐끗, 평소보다 허전한 품 안을 내려다보았다.
“아마, 훨씬 성가신 게 있을 건데.”
단풍이 사라졌다.
외신을 먹는 아이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