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07
* * *
착-.
작은 발소리가 앞으로 들려왔다.
바닥에 축 처져 있던 좌절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크륵-.
손바닥만 한 작은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얼굴은 짓뭉개지고, 몸은 반쯤 사라졌다. 목숨만 겨우 붙어 있는 수준이었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단풍은 그런 좌절을 향해 다가갔다.
착, 착, 착-.
천천히 걸어온 단풍이 좌절과 눈을 마주쳤다.
죽기 전, 마지막 불사름일까.
좌절은 단풍의 눈을 피하지 않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위협인지, 살려 달라는 의미인지 모를 손짓.
그 손짓에 단풍이 대답했다.
쩌억-, 쩍-.
좌절의 주위로 새까만 풍경과 함께 수백 개의 이빨이 생겨났다.
손을 뻗던 좌절의 행동이 멈췄다. 단풍을 바라보던 좌절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들어왔다.
-당신, 설마…….
단풍은 겉보기에 소인족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종족을 통틀어 가장 약한 종족 중 하나인 소인족은 랭커조차 몇 명 보유하지 못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원래의 모습을 드러낸 단풍에게서는 좌절이 알고 있는 어떤 존재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왜 여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가 왜 여기에 있으며, 왜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건지.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와드득-.
그 의문이 해결되기도 전에 포식자의 이빨이 좌절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아바앗-.”
* * *
[‘단풍’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풍’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풍’의…….] [‘단풍’의 신력이 6 상승하였습니다.] [성장률이 32.44% 상승하였습니다.] [마력이 5 상승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좌절’을 처치하였습니다.] [500,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메시지가 울렸다.
덕분에 꽤 긴 시간 이어지던 침묵이 깨졌다. 어리석은 혼돈과 대치하고 있던 유원은 비로소 확신을 가졌다.
‘진짜 깨어났나.’
단풍이 눈을 떴다.
땅에 떨어진 좌절은 어리석은 혼돈이 부리던 외신 중, 꽤 강력한 편에 속하던 카드였다.
유원은 그런 녀석을 단풍이 놓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단풍은 언제나 배가 고파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풍은 녀석을 먹어치웠다.
성장률이 오르고, 레벨과 신력이 올랐다.
그리고 덩달아 자신의 스탯도 상승했다.
다섯 개의 스탯.
100이 넘어선 후부터는 거의 오르지 않던 마력이었다. 레벨의 상승도 더디던 중, 다섯 개의 스탯은 그야말로 포인트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어치 있는 수치였다.
당장 이 정도 레벨과 스탯에서 하나의 차이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유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스킬과 아이템에 비해 스탯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던 요즘이었다.
이 다섯 개의 스탯은 앞으로 유원에게 큰 발판이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제 시작이지.’
유원은 어리석은 혼돈을 바라보며 그의 의중을 읽었다.
침묵에 잠긴 그의 반응 속에서 유원은 수많은 생각들이 느껴졌다.
외신들의 죽음은 어리석은 혼돈에게 있어서 꽤 큰 타격이었다.
그의 계산에는 틀린 부분이 없었다.
삼신에게는 땅에 떨어진 좌절과 하늘을 덮는 절망을 쓰러뜨릴 힘이 없었다.
원래라면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제우스는 원래 예정되어 있던 미래보다 훨씬 강해졌다. 포지션을 갖춘 삼신은 각개전투를 펼칠 때보다 배는 더 뛰어난 전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오공과 김유원.
두 사람의 존재는 어리석은 혼돈의 계산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그 사실을, 어리석은 혼돈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너로구나.”
한참 만에 어리석은 혼돈이 꺼낸 말이었다.
뒤쪽에서는 손오공이 그의 움직임을 경계한 채 여의봉을 쥐고 있었다.
훨씬 더 위협이 되는 쪽은 손오공이었지만 더 이상 어리석은 혼돈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제우스도, 손오공도 아니었다.
지금 그의 관심을 끈 사람은 다름 아닌 유원이었다.
“계속 나보다 높은 수를 두던 게.”
처음 이상함을 느낀 건 기간토마키아가 무산되었을 때부터였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올림포스가 무너지고, 제우스가 자신의 패에서 적으로 돌아섰다.
라그나로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뒤바뀐 판도. 급작스럽게 벌어지게 된 라그나로크.
어리석은 혼돈은 그것이 모두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고 있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만들어 낸 그림은 망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오딘이나 제우스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수확이 없지는 않았다.”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자신보다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던 게 누구인지.
“랭킹이란 것도 믿을 게 못 되는군.”
어리석은 혼돈은 지금껏 랭킹에 기반을 두고 랭커들을 평가하고, 그들을 장기 말로 사용했다.
기간토마키아를 일으킬 말로서 제우스를 쓰거나, 천계대전을 일으킬 말로서는 옥황상제를 뽑았다.
오딘에 대한 응수로는 수르트를 이용해 라그나로크를 계획했다.
그 모든 근거는 전부 랭킹이었다.
반면, 유원은 얼마 전까지 랭킹에도 들어 있지 않았을뿐더러 현재의 랭킹도 다른 제우스나 오딘에 비하면 턱없이 낮았다.
그 지표가 바로 지금껏 어리석은 혼돈이 유원을 크게 경계하지 않던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앞으로는 수치로 확인한 된 등수보다, 어리석은 혼돈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을 생각이었다.
문득 자존심과 같은 것이 어리석은 혼돈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자존심이라면 유원도 지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는 말을 꺼낸 순간부터 이미 늦은 거다.”
“늦은 건 너희다.”
“글쎄. 과연 어떨지.”
유원의 비웃음에 어리석은 혼돈의 몸에서 스멀스멀, 보랏빛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지금 내가 하는 건 99의 확률을 100으로 만드는 작업일 뿐이다. 애초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래. 그러니까 그 불리한 싸움에서 결국 내가 이길 거라는 거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건방일지 어떨지는 천천히 확인해 보자고.”
어깨를 으쓱이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유원이었다.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뉘었다. 어리석은 혼돈은 유원을 잠시 노려보다 곧 천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흐려지는 로브.
“어디 가려고-.”
“그만.”
손오공이 막 나서려고 하자, 유원은 그를 제지했다.
잠깐의 망설임.
그리고 그 잠깐의 시간은 누군가에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스르르르-.
손오공이 멈춘 사이, 어리석은 혼돈이 자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손오공.
그가 유원을 왜 말렸느냐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끝까지 가면 안 된다.”
방금 전과는 달리 유원은 그리 자신 없는 투로 답했다.
종전까지 언제 다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손오공으로서는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그게 그렇게 도발해 놓고 할 말이냐?”
“아무리 도발해도 넘어오지 않을 걸 아니까.”
“그럼 그냥 약이나 올려다본 거야?”
“그런 셈이지.”
어쨌거나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싸움은 유원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다만.
“아마 앞으로는 지금까지처럼 쉽지 않을 거다.”
이제부터 어리석은 혼돈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자신이 들어갈 것이다.
지금껏 유원은 시계태엽을 이용해 돌아오기 이전, 모두와 함께 계획하고 정한 대로 움직여 왔다.
그 계획을 완성시킨 건 유원이었지만 어쨌거나 크게 바뀌지 않고 정해져 있던 사건이었던 만큼 매상황마다 판단을 내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어리석은 혼돈이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건, 같은 사건이라도 그 내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매 상황을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한층 더 난이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은 벌었다.”
두 개의 패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혼돈은 많은 시간을 잃었다.
반면, 유원은 이번 일로 꽤 긴 시간을 벌었고.
“뭐, 어쨌건…….”
유원은 어리석은 혼돈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걸로 큰 일 하나는 넘겼네.”
* * *
착, 착-.
작은 발이 경쾌하게 움직였다.
알 수 없는 콧소리를 흥얼거리며 움직인 단풍의 몸 위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아바앗-?”
고개를 든 단풍의 눈에 유원의 얼굴이 들어왔다.
유원이 손을 뻗자, 단풍이 폴짝 뛰어 손등에 올라탔다.
“다녀왔냐?”
“바앗-.”
만족한 듯 단풍이 활짝 웃었다.
단풍이 깨어 있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꽤 오래 잠만 자던 녀석이, 먹을 게 있다고 퍼뜩 눈을 뜨고 일어났다.
이제는 저 혼자 밖으로 나가 식사까지 끝내고 돌아올 정도로 커 버렸다.
“얘가 걔야?”
어느 정도 유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던 손오공은 신기한 눈으로 단풍을 바라보았다.
외신을 먹는 꼬마 아이.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단풍에 대한 정보는 손오공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 중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여 대충 대답해 보이고는 단풍의 성장률을 확인했다.
[이름 : 김단풍] [레벨 : 37] [근력 : 1] [민첩 : 1] [체력 : 1] [감각 : 1] [신력 : 136] [보유 스킬] [포식자, ?] [성장률 : 64.24%]신력이 꽤 올랐고, 성장률이 순식간에 64퍼센트까지 올랐다.
언제 다 키워서 제 몫을 하나 했는데, 생각보다 성장이 빨랐다.
유원은 팔뚝을 타고 올라 어느새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수치와는 다르게 아직까지 겉으로 보이는 차이는 없다.’
조금이라도 컸나 싶어서 자세히 봐 봤지만 작은 건 여전했다. 아무래도 성장률이 오르며 조금씩 성장하는 게 아닌, 모든 수치가 다 충족되었을 때 성장이 이루어질 모양이었다.
‘급할 거 없다. 시간은 많이 벌었으니까.’
유원은 단풍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싸운 장소와 거리가 먼 덕분에 숙소 주위는 멀쩡했다.
들어선 숙소 안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삼신이 모여 있었다.
그새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분위기가 심각했다.
그 말 많던 하르간조차도 입을 꾹 닫고 있을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왔네.”
반가운 얼굴로 하르간이 유원을 돌아보았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르간은 이번 전투에서 살아 있는 게 기적이었다.
아우터와의 싸움은 그만큼 위험했다.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다가온 하르간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어.”
“아무 일도?”
“어. 진짜 아무 말도 없어.”
“……?”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뭐 여기서 분위기 띄운다고 난리 칠 수도 없고…….”
분위기가 심각한 게 아니었다.
그냥 아무 말도 없었던 것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들은 한낱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들이었다.
그런데도 서로 말할 거리가 이렇게 없다니.
다른 때라면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워 보겠다고 나설 하르간이었지만, 제우스를 비롯한 삼신 앞에서 입을 조잘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와서 앉거라.”
유원이 숙소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하데스였다.
유원과 손오공은 그의 손짓에 넓은 테이블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이내 유원과 제우스를 번갈아보더니 물었다.
“우리에게 할 말이 있지 않으냐?”
하데스는 궁금한 걸 대놓고 묻지 않았다.
대신, 유원이 먼저 입을 열도록 판을 깔아 주었다.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는 뻔했다.
이 탑의 바깥의 존재들.
제우스라면 모를까 하데스와 포세이돈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잠깐 고민해 봤지만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원도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예. 있습니다.”
유원은 그 대신, 다른 대답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조만간 해야 할 이야기.
“이 탑의 꼭대기라 알려져 있는 100층.”
그 순간, 내내 시큰둥해 있던 제우스가 흥미를 보였다.
“그다음 세계인 101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