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1
* * *
유원이 떠난 자리.
하르간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왔군.”
신규 플레이어들 사이를 헤치며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황금색으로 도금된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투구를 푹 눌러 쓴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뒤따르는 열 명가량의 플레이어들.
아까부터 눈이 마주쳐서 혹시라도 아는 척을 해 올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뒤에는 올림포스의 상징인 거대한 산, 그리고 창과 칼의 문양이 흩날리고 있었다.
“올림포스의 아가멤논이 위대한 혈통께 인사드립니다.”
“아가멤논이었나?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멤논은 하르간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직 랭커가 되지 못한 플레이어인 그는 올림포스의 혈통에 따라 예를 차려야 하는 입장.
하지만 말이나 행동과는 달리, 하르간을 바라보는 아가멤논의 눈빛은 무미건조했다.
“아레스께서는 잘 계시나?”
“여전하시지요.”
“얼마 전에 하이랭커가 되셨다던데. 나도 축하한다고 전해 주라.”
“감사합니다.”
올림포스의 전쟁광, 아레스.
아가멤논은 바로 그를 따르는 플레이어였다.
“다만…….”
또한.
“아레스님께서는 혈통을 중요시 하시는 분이시라. 당신의 모친을 찾기 전까지 인사는 일절 전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올림포스 내에서도 아레스의 괴팍한 성격은 유명했다.
“지금 뭐라고?”
“아시다시피 하늘의 권좌께선 자식들에게 별반 관심이 없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하르간께선 모친이 누구인지도 모르시니…….”
“네 이놈-!”
파지지직, 파직-.
쿠르르르-.
하르간의 몸에서 전류가 흘러나왔다. 감춰 보려 했지만 이미 하르간의 분노는 사방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에도 아가멤논의 표정은 여전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얼굴.
아니, 어쩌면 하르간의 분노를 즐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아레스님의 성격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혈통이란 만들어 가는 것. 하르간께서도 부디 일가(一家)를 이루시길 바라겠습니다.”
“……끙.”
그야말로 병 주고 약 주고.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하르간은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아가멤논의 말대로라면 어디까지나 자신을 무시한 건 아레스였지, 눈앞에 있는 그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가멤논은 아레스의 사람. 여기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올림포스와의 관계가 자칫 틀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알겠다. 그만 가 봐라.”
“예. 그럼 이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아가멤논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아까 있던 남자는 누굽니까? 혼자 따로 간 걸 보니 하르간께서 구하신 팀원은 아닌 것 같던데.”
“그 녀석?”
하르간은 먼저 도시를 향해 떠난 유원을 떠올리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글쎄, 유원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결국 내기에서는 패해 팀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했으니 일행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아는 사이라고만 하기에는 아직 그와의 인연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유원과 자신의 관계.
잠시 생각하던 하르간은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 군가.”
한 번 말을 꺼냈기 때문일까.
하르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보다 정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친구 같은 거다.”
“……?”
하지만 하르간의 대답에도 여전히 아가멤논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같은 거요?”
* * *
이리들은 튜토리얼이 끝나는 시기를 이렇게 불렀다.
수확의 때.
그들은 튜토리얼이 끝나고 1층에 머무르며, 신규 플레이어들을 노리고 움직였다.
제아무리 플레이어의 자격을 얻었다고 해도 이제 막 튜토리얼을 끝낸 애송이들.
그리고 이리들의 대장, 팟타요는 이번 수확 시기에 꽤 큰 흥미를 가졌다.
“벌써 끝났다니. 예상보다 훨씬 빠른데?”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약 열흘.
사실상 5번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닷새가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그런데 벌써 신규 플레이어들이 들어오다니.
“역대급인데, 이번엔.”
“그만큼 좋은 아이템을 얻은 놈들도 많겠는데?”
“시간이 오래 안 걸린 만큼 더 약할 거고…….”
이리들에게 그것은 반길만한 소식이었다.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진 저레벨 신규 플레이어들이 탑에 들어왔다는 뜻이니까.
“서둘러 자리 잡자. 혹시 다른 길드가 붙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 잘하고.”
“알겠습니다.”
“예, 예.”
팟타요를 비롯한 열두 명의 이리들은 시작의 초원에서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목표는 5명 내외로 구성된 신규 플레이어 팀.
하지만 첫 번째 목표는 예상 밖에도 한 명의 플레이어였다.
“뭐야, 한 명?”
“진짜 한 명이야?”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일행 한 명이 팟타요를 보며 물었다.
“대장. 혹시 이거, 미끼 아닐까요?”
미끼.
간혹 1층에 자리를 잡은 길드에서 이리들을 끌어내기 위해 마련한 방법이었다.
소수의 신규 플레이어들을 보내 이리들을 끌어내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리들을 사냥하는 방법.
하지만 팟타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주위에는 저 녀석뿐이다.”
팟타요는 먼 거리를 내다보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 내에서라면 물체까지 투과하여 볼 수 있는 스킬.
그 스킬 덕분에 팟타요는 지금껏 이리들을 이끌고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그래요?”
팟타요의 말에 일행은 잠시 먹잇감을 바라보았다.
팟타요의 말대로라면 더 이상 걱정할 건 없었다.
“야, 진짜 혼자라는데?”
“뭐야. 꽝이 아니야?”
“일행도 없고?”
“조금 찝찝한데. 그냥 보낼까?”
평소 겁이 많던 일행의 말에 다른 일행이 발끈했다.
“보내긴 뭘 보내. 후딱 처리하면 돼. 그리고 딱 보면 모르냐? 저거 불주술의 옷이야.”
“불주술의 옷?”
“와우. 그럼 대박인데.”
불주술의 옷이라면 상점에서도 무려 5만 포인트에 달하는 아이템.
그런 고가의 아이템이라면 상대가 한 명이라도 고생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럼 모두 찬성한 걸로 알…….”
수풀 속에서 일행들을 둘러보던 팟타요의 표정이 굳어졌다.
옆에 있던 일행은 굳어진 팟타요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어?”
“어디 갔지?”
“없어졌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길목 한가운데 있던 상대가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저기 있었는…….
“아아아악!”
“뭐, 뭐야!”
“적이야?”
차앙, 창-!
기기기긱-.
이리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창과 칼, 그리고 활. 한 명은 무기보다는 스킬을 집중적으로 수련했는지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푸욱, 푹-.
촤아아악-!
“아아아악!”
“누구야, 썅!”
“나와, 나오라고!”
이리들이 혼란에 빠졌다.
적은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모습조차 보지 못한 이리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 대장…….”
“이거 아무래도…….”
“미끼였던 거 같은데요?”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녀석이 사라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1층에 올라온 신규 플레이어 가 은신계 스킬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아마도 자신들을 유인하기 위한 다른 플레이어의 환각계 스킬일 터.
‘어쩐지 신규 플레이어가 불주술의 옷이라니. 말이 안 됐어.’
뿌득-.
팟타요는 이를 갈았다.
벌써 들려온 비명 소리가 다섯이 넘었다. 언제 어디서 적의 칼끝이 자신의 목에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단 모두 후퇴한…….”
촤아아악-!
“리, 리쿠이!”
“여기, 여기다!”
“다시 사라졌어!”
“아아아악!”
어느새 팟타요의 근처에서 함께 잠복해 있던 일행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지 않았다. 벌써 적은 지척까지 근접해 있었다.
팟타요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흐릿하지만 누군가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팟타요는 눈에 마나를 담았다.
동시에 지금의 그를 여기까지 있게 해 줄 스킬.
‘매의 눈’이 활성화되었다.
기이이잉-.
환하게 밝혀진 시야.
흐릿하게 보이는 게 있었다.
촤아악-!
흐릿한 인영이 칼을 휘두르자, 붉은 용포와 함께 적의 얼굴이 보였다.
적은 금세 다시 모습을 감췄다.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칼을 휘두르는 단 한 순간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마, ‘매의 눈’ 스킬이 없는 다른 일행들에게는 흐릿한 잔상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터.
‘그 녀석이다.’
팟타요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붉은색의 용포. 긴 칼.
흐릿하게 보이지만 저 붉은색은 자신들이 약탈하려 했던 신규 플레이어가 분명했다.
털썩-.
가까이 있던 일행이 또다시 목이 잘린 채 쓰러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옷과 긴 칼을 쥔 플레이어.
“으, 으으…….”
팟타요는 뒷걸음질을 쳤다.
‘미끼 따위가 아니었어.’
시작의 초원에서 처음으로 도시를 향해 움직인 신규 플레이어.
처음에는 녀석이 조금 뛰어난 신규 플레이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는 잘못 생각했다고, 아마 길드를 등에 업고 자신들을 색출해 내기 위한 ‘미끼’일 거라 생각했다.
틀렸다.
녀석은 미끼 따위가 아니었다.
직접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인 ‘칼’이었지.
‘이 정도 실력이면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다. 아니, 그런데 왜?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가 1층에 간섭하면 패널티를 받을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생각도 잠시.
이내 지금은 한가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 도망쳐라-!”
팟타요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돌려 더 깊숙한 숲 속으로 내달렸다.
아니.
내달리려고 했다.
스걱-.
“귀찮게 멀리 가지 마라.”
발에서 느껴진 뜨끈한 감각.
동시에 팟타요의 시야가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졌다.
“아아아아악!”
두 발목이 잘린 팟타요가 비명을 질렀다.
털썩-.
몸을 지탱해 줄 발이 사라진 팟타요가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앞으로 기었다.
“으, 으으…….”
푸욱-.
“으아아아아아!”
몸을 질질 끌던 손이 칼에 꿰뚫렸다.
팟타요는 몸을 뒤덮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잔상이 점차 선명해지더니, 불주술의 옷을 걸친 유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차피 금방 잡힐 건데 뭘.”
꽈아악-.
유원의 발이 팟타요의 어깨를 밟아 눌렀다.
“끄으…… 으으…….”
“내가 뭘 좀 물어볼 건데, 성의껏 대답하면 편하게는 보내 주마.”
“끄으으…… 주, 죽여…… 이, 이 새끼, 죽여 버…….”
“누구한테 말하는 거냐?”
유원의 말에 팟타요는 바닥에 쓰러진 채 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는 20명에 가까운 팀이 있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규 플레이어들을 사냥해 온 이리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머리가 상체가 잘려 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들뿐이었다.
“뭘 바라는진 알겠는데, 시체들한테 가능한 걸 바라야지.”
“으아…… 아…….”
“계속 벙어리처럼 그렇게 있을 거면…….”
꽈아악-.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나도 하던 거 계속 하지.”
“마, 말할게! 말!”
어깨가 부러지고 짓이겨지는 고통에 팟타요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어깨를 짓누르던 힘이 서서히 사라졌다. 유원은 여전히 뒤쪽에서 그의 몸을 밟은 채 질문을 이어 갔다.
“무운천이라는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아나?”
유원의 물음에 팟타요의 눈이 흔들렸다.
“너, 네가…….”
어떻게, 라는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와 놀란 듯한 반응에 유원은 씩 미소를 지었다.
“뭐야.”
꽈아악-.
팟타요를 짓누르던 유원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처음부터 잭팟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