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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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 안에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술이 도착한 건 그때였다.
저벅-.
막사 문을 걷으며 들어온 마족이 두 개의 잔을 내왔다.
피처럼 새빨간색의 와인.
마족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다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천마대전을…….”
“그만.”
디아블로가 입을 열고, 그 말을 유원이 가로막았다.
눈치를 살피던 마족이 걸음을 멈췄다.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디아블로가 불쾌한 듯 인상을 구겼다.
“듣는 귀가 있는데.”
“상관없다.”
“여차하면 죽이면 된다고?”
막사에 들어온 마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유원이 술잔을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나. 얼른 나가 봐.”
“예, 예!”
자신들의 왕인 디아블로의 명령이 아님에도 마족은 서둘러 막사를 벗어났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올 대화를 듣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막사 안에 다시금 두 사람만 남았다.
유원이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귀한 대접을 받네. 천사의 피로 만든 술을 다 내주고.”
“아까 한 말이나 설명해 봐라.”
“천마대전 말이냐?”
유원이 고개를 들어 디아블로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이내.
주륵-.
유원이 술잔을 거꾸로 뒤집었다.
그러자 술잔에 들어 있던 걸쭉한 술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이런 건 이제 그만 마시자고.”
“무슨 짓이냐?”
“보이는 그대로다.”
“겁이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쿠구구구-.
막사가 흔들렸다.
디아블로의 몸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명백한 살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디아블로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 유원이 한 말과 행동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디아블로는 천마대전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마족들과 달리 천사들을 증오하지 않는 거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쿠직, 쿠직-.
유원이 앉은 의자가 바닥을 파고 내려갔다.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유원에도 유원은 디아블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천마대전은 없어져야 한다.”
“쓸데없는 이벤트라는 건 공감한다. 하지만 천마대전 자체를 포기하는 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를 만큼 네가 바보는 아닐 텐데?”
천마대전은 악마족과 천사족의 자존심이었다.
전쟁이라는 의미는 옅어진 지 오래였지만 어쨌거나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전쟁인 바.
그것을 포기한다는 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보고 지금, 저 녀석들에게 항복하라 이거냐?”
“말귀를 못 알아듣네.”
“뭐?”
“천마대전이 없어져야 한다는 게 어떻게 항복하라는 뜻이 되지?”
“평화 협정이라도 요청하라는 거 아니냐? 그게 항복이다, 그게!”
콰직-!
디아블로가 신경질적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단숨에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디아블로가 눈에 화를 잔뜩 담은 채 유원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해 준다면야 나는 좋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찾아왔던 거지만 역시나.
제아무리 천마대전에 관심이 없다 해도 디아블로는 악마였다. 그가 먼저 나서서 천사들에게 고개를 숙일 일 따위는 없었다.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드륵-.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마대전이 시작된 이유는 사소한 거라고 들었다.”
“……?”
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디아블로는 눈살을 구긴 채 유원을 바라보았다.
천마대전이 시작된 이유.
너무 오래된 그 이야기는 천마대전의 중심에 서 있는 디아블로조차도 가물가물할 만큼 사소한 것이었다.
“한 주점에서 천사와 악마가 함께 술을 마셨고, 그 자리에서 있던 다툼이 여기까지 온 거라고.”
“아마…… 그랬었지.”
“그 사소한 다툼으로 벌어진 싸움이 고작 자존심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넌 이게, 정상적인 걸로 보이나?”
유원의 물음에 디아블로는 천마대전의 시작을 떠올렸다.
그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던 시대. 사이가 좋지는 않더라도 서로 칼창을 겨누고 피를 보려고 하지는 않았던 시대였다.
어느 한 주점에서 다툼이 생겨났고, 한 악마의 손에 천사가 목숨을 잃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전쟁을 벌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천사와 악마의 사이는 오래전부터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
천사가 악마를 죽이는 일도, 악마가 천사를 죽이는 일도 이따금씩 한 번씩 일어나던 일이었다.
그런데.
‘메타트론.’
녀석이 끼어들면서부터 모든 게 다 엉망이 됐다.
메타트론은 악마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모두의 목숨은 평등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천사를 죽인 악마의 목을 잘라 광장에 내걸 것을 요구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이 탑에서 죽고 죽이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디아블로가 보기에 그들의 다툼은 합당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주점에서의 싸움은 정당한 싸움이었다.
“정상은 아니지.”
“다행히 그 정도는 알고 있군.”
“메타트론은 처음부터 우리와 싸우려고 꼬투리를 잡은 거다. 우리도 그걸 알고 싸움에 응한 거고.”
천마대전의 시작은 그처럼 사소했다.
하지만 시작은 사소할지언정, 그 규모는 사소하다 말할 수 없었다.
마왕이 나서고 대천사가 나섰다.
그리고 끝내 마왕의 우두머리인 디아블로와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메타트론이 나섰다.
천마대전은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넌 이 싸움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의미 없지. 괜히 서로 힘만 빼고. 재미도 없고.”
시큰둥하게 대답한 디아블로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유원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았고, 그와 더 입 아프게 말씨름을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됐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얼른 꺼져라. 내 손에 정말 죽고 싶지 않으면.”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지.”
“뭔데?”
“천사들이 먼저 휴전을 제안하면, 받아들일 생각은 있나?”
“메타트론이?”
디아블로가 미간자리를 찌푸렸다.
다른 무엇보다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가 아는 메타트론은 절대 그런 걸 제안할 녀석이 아니었다.
천사답지 않게 가장 이 싸움을 원하는 게 바로 메타트론이었으니까.
“이유는 생각하지 마라. 그런 일이 있을 경우를 묻는 거다.”
“휴전 제안이라…….”
잠시 고민하던 디아블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기는 할 거다.”
십 년에 한 번 벌어지는 이벤트.
천사와 마족의 싸움인 천마대전은 이미 먼저 휴전을 제안하는 쪽이 지는 싸움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휴전 제안은 곧 항복이나 다름없는 셈.
그리고 디아블로는 천사들의 항복을 받아들일 생각이 있었다.
“그럼 됐다.”
거기까지면 됐다.
먼저 이 싸움을 끝내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 주면 멈출 의사가 있는 거니까.
더 이상 여기서 디아블로를 설득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냐?”
디아블로가 막사를 벗어나려는 유원을 멈춰 세워 물었다.
“천사들의 항복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거냐? 혼자서?”
“뭐든 해 볼 생각이다.”
“왜지? 넌 천사도, 악마도 아닌데.”
“그러니까 말이다. 뭣도 아닌 나도 이러는데, 너희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지.”
디아블로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유원이 천마대전을 멈추겠노라 나섰다.
그리고 그것은 그 오랜 세월, 천마대전이라는 전쟁을 당연시 여기던 디아블로에게 있어 크나큰 자극이었다.
스윽-.
유원은 디아블로를 자리에 내버려 둔 채 막사를 나섰다.
방금 전.
조금이지만 디아블로의 반응에서 유원은 자그마한 변화를 발견했다.
‘이 싸움이 잘못됐다는 건 아는 모양이군.’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조금은 알아먹었을 것이다.
디아블로는 한 종족의 왕이었다. 그는 한 생명의 가치를 경시할지언정 한 종족의 부흥과 안정에 대한 책임까지 없지는 않았다.
‘천마대전의 시작까지는 열흘.’
막사를 나온 유원은 군데군데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들을 살폈다.
마족들 사이에 인간이 한 명 섞여 있으니 신기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천마대전의 준비가 한창이라는 걸 모를 플레이어가 없을 테니 말이다.
‘천마대전은 천천히 곪아 썩어 가고 있다.’
아마 시작은 훨씬 작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천마대전이 한 번 두 번,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점 규모가 커져 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야 작은 다툼 정도였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보라.
이 많은 수의 마족들, 여러 마왕들이 참전하게 된 싸움. 대형 길드의 길드전이나 다름없는 싸움이 된 것이다.
하나 천마대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유원이 있던 지금보다 훨씬 먼 미래에서, ‘천마대전’이란 단 한 번의 싸움을 의미했다.
‘천사와 악마가 함께 공멸한 거대한 전쟁.’
조금씩 쌓여 온 서로에 대한 악감정과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예정대로라면 그 버튼을 누르는 건 ‘천계’였다.
“천계가 개입되면서부터 천마대전의 규모는 삽시간에 커졌다. 마왕도 더는 참지 못하게 된 거지.”
‘천계는 이미 무너졌다.’
유원이 손오공을 도와 옥황을 잡고 천계를 무너뜨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옥황을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훗날 천마대전의 씨앗이 될 테니까.
옥황과 나타태자가 죽은 천계는 이랑진군을 주축으로 다시 예전의 힘을 회복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랑진군이라면 믿을 만했다.
그라면 아마, 천계의 플레이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천마대전에 참여하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손오공을 구하고 천계를 무너뜨리고 나면 일단 시간을 번 거다. 아마 천마대전이 벌어지기까지는 못해도 천 년은 더 걸리겠지.”
오딘은 천마대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손오공과 함께 천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의견은 꽤 그럴듯했다. 무엇보다 순서상으로도 나쁠 게 없었다.
문제는 너무 여유롭다는 거였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군.”
“천사와 악마들이 공멸한 싸움만 천마대전이 아니다. 그 전까지도 그 둘은 계속 싸웠어.”
그리 여유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는 헤라클레스가 가장 앞장섰다.
“빠르게 해결을 봐야 한다.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은 더 많은 피를 흘릴 뿐이니까.”
급하다면 급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서두르다간 자칫 일을 그르칠 위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유원은 동감하는 쪽이었다.
한 번의 천마대전으로 죽어 가는 천사와 악마들의 숫자가 몇 명이며, 그로 인한 전력의 손실이 대체 얼마일까.
그로 인한 전력의 손실은 한 번 한 번이 치명적이었다.
‘가능한 이번 회차에서 끝을 본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야, 거기 인간!”
유원은 자신을 부르는 우렁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고민하던 게 해결된 느낌이 들었다.
“네가 왜 여길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거인족이 아닐까 싶을 만큼 큰 덩치의 떡대. 불그스름한 피부에 허리까지 내려온 기다란 하나의 뿔.
‘베에모트.’
천마대전을 이 지경까지 만든, 강경파의 선두에 선 마왕.
그가 유원을 향해 적의를 풀풀 풍기며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