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21
* * *
끼이이-.
저택의 문이 열렸다.
하얀 천으로 옷을 대신한 천사들이 문을 열고, 미카엘을 마중했다.
복잡한 머릿속이 도저히 정리되질 않았다.
방금 전.
유원이 던진 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당신은 메타트론을 얼마나 믿습니까?
지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것 같은 말이었다.
메타트론을 얼마나 믿냐니.
‘그분은 천왕이시다.’
미카엘은 잠시 자리에 서서 눈을 감았다.
까맣게 변한 시야.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생각은 더욱 깊어졌다.
‘그 누구보다 저 하늘에 가까우신 분. 우리가 모셔야 할, 유일하고 위대하신 분.’
그런 메타트론을 의심한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전.
처음 한 천사를 변호하여 악마들에게 맞서 싸웠을 때에도 그랬다.
미카엘은 한 치도 메타트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메타트론의 행동은 숭고하기 그지없었으며, 모든 천사들의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카엘은 그런 메타트론에게 영원한 충성과 믿음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건 천마대전이 수백 번씩 이어져 온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천마대전을 일으킨 게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째서.
-하늘의 천사들을 죽이고 있는 게, 정말 악마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딴 녀석의 말이 이렇게 머릿속에 맴도는 걸까.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아니, 그럴 리 없다.
메타트론에 대한 자신의 믿음은 확고했다. 만약 그가 하늘을 위해 자신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미카엘은 기꺼이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래.
메타트론이 하늘의 천사들을 죽이기 위해 천마대전을 일으켰을 리가 없었다.
다만…….
‘천마대전으로 수많은 천사들이 죽어 나간 건 사실이다.’
유원의 말에서도 일부 공감하는 건 있었다.
하나 이미 천마대전은 싸움의 의미는 퇴색되고 이벤트가 되어 버린 상태.
이 이상의 싸움은 의미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미카엘에게 저택의 집사가 다가왔다.
상념에서 깨어난 미카엘이 눈을 떴다. 그러고는 곧장 발걸음을 왔던 방향으로 돌렸다.
“잠시 다녀올 데가 생겼다.”
“모시겠습니다.”
대천사의 수행원들이 다가오자, 미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혼자 가겠다.”
“어딜 가시려는지…….”
“왕께 다녀와야겠다.”
“메타트론 님을 말입니까?”
수행원은 이미 깊게 저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달이 환하게 반짝이고 있다지만 날이 꽤 어두워졌다. 그만큼 늦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미카엘은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급하게 결정을 내렸다.
‘천마대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결심을 굳힌 바.
한 시라도 빨리 이 싸움을 멈춰야 더 이상의 희생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달은 이상,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펄럭-.
미카엘이 날개를 펼쳤다.
* * *
천왕 메타트론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하늘 위의 하늘에 떠 있는 작은 성 하나.
오직 단 한 명의 천사를 위한 궁전이었다. 하늘성은 천왕과 그의 허락을 받은 대천사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였다.
날개를 펼친 미카엘은 하늘성으로 날아왔다.
성에 들어와 날개를 접은 미카엘은 붉은 카펫이 깔린 대전을 걸어 들어왔다.
메타트론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카엘이 천왕을 뵙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불경이라 여기는 행동이었다.
그의 무릎은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장신의 천사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시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금발의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투명하다 못해 반짝이기까지 한 피부를 지닌 천사.
하늘의 역사이자 살아 있는 천사들의 신과 같은 존재.
메타트론.
그가 미카엘을 내려다보았다.
“고개 드십시오.”
“예.”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 늦은 시간에.”
질책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와야 할 만큼 급한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급한 일인 만큼 당신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그런 메타트론의 어조에 미카엘은 아래로 떨어지려는 고개를 겨우 지탱해 들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십시오.”
“여기서 천마대전을 멈추었으면 합니다.”
“천마대전을……?”
메타트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온 마왕과 하늘의 긴 싸움을 이토록 쉽게 끝내자고 말하다니.
역정이라도 낼 법하건만 메타트론은 오히려 차분하게 물었다.
“갑자기 그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게…….”
유원의 이야기를 꺼낼까 하던 미카엘은 잠시 꺼내던 말을 멈추었다.
괜히 한 인간의 말에 휘둘렸다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나을 터.
미카엘은 잠시 입을 닫았다가 열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피를?”
“예. 그리고 이 싸움이 계속 이어지면 앞으로도 계속 피를 흘리게 될 겁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죽어 가는 천사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누구 한 명, 그 사실을 모르는 천사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대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카엘은 결심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리온데, 휴전을 요청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휴전, 휴전이라…….”
메타트론은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진 듯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마대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돌연 던져진 질문에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억합니다.”
“그 천사의 이름은요?”
“이름…… 말입니까?”
워낙 오래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당시에도 천사장의 지위에 올라 있었던 미카엘과는 마주칠 리 없을 정도로 낮은 곳에 있던 하급 천사였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뿐, 그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천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제 막 약관을 넘은 어린 천사였습니다. 이름은 티마엘이었고요.”
타마엘.
낯설은 이름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건지, 이제는 그 이름이 기억의 끄트머리에도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마대전이 끝나면 그의 이름은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억울함은 위로조차 받지 못하게 되겠지요.”
메타트론의 목소리가 슬픔으로 잠겼다.
오래전, 목숨을 잃은 한 작은 천사를 회상하던 메타트론은 이내 결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눈앞에 있는 희생에, 한 번 굴복하면 그것은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피를 흘리는 게 두려워 싸움을 주저하게 되고 결국 모든 걸 잃어버릴 테지요.”
저벅-.
메타트론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미카엘을 향해 다가왔다.
“미카엘.
“예.”
“그걸 바라십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메타트론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질책이나 꾸짖음은 없었다.
툭, 툭-.
미카엘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린 메타트론이 다시 몸을 돌렸다.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돌아가십시오.”
떨어진 축객령.
미카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성을 걸어 나온 미카엘의 머릿속이 다시 한번 더 뒤엉켰다.
날개를 펼쳐 하늘을 조금 목적지 없이 날아다녔다.
그렇게 그가 다시 저택에 돌아왔을 때.
“이야기는 다 끝났습니까?”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첫 번째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눈에 띄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저택 근처에서 유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얼굴이라, 그를 발견한 미카엘의 얼굴이 단박에 구겨졌다.
하지만 살벌한 그 표정에도 유원은 개의치 않았다.
“그랬지요.”
“그런데?”
“보면 모릅니까?”
“무시한 거로군.”
스으으-.
바람의 방향이 한 곳으로 향했다.
주위의 공기가 온통 미카엘의 마력으로 가득 찼다.
화륵-.
유원의 눈에 화안금정이 떠올랐다.
주위에 불던 바람이 자신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미카엘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공격할 것처럼 마력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 손을 쓰지 않고 있었다.
“뭘 망설이십니까?”
“망설여?”
“하늘의 검이자 방패. 악한 것을 벌하고 단죄하는 바람. 그게 바로 대천사 미카엘 아닙니까?”
유원을 향해 움직이던 바람이 잠시 흔들렸다.
망설이고 있다.
미카엘은 자신의 머릿속이 복잡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제가 잘못된 거라 생각하시면 망설일 게 없겠죠.”
“……그래서?”
“천마대전을 멈춰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이유는 왕의 명령 때문일 테고.”
빠득-.
계속해서 정곡을 찔린 탓인지 미카엘은 이를 갈았다.
대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뭘까.
대체 뭐기에 자신의 머릿속을 자기 자신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까.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다.
맞는 말이기에 손을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왕을 배신할 수는 없다.”
기억하기 힘든 긴 세월을 이어 온 충성은, 이렇게 쉽게 무너질 만큼 무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유원도 알고 있었다.
대천사 미카엘.
그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메타트론의 곁을 지켜왔는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배신하라 마라를 말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메타트론을 만나고 오셨지요?”
다 알고 왔다는 듯, 자신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
저벅-.
유원이 미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메타트론이 다가오던 것처럼.
“천왕 메타트론과 하늘의 모든 천사들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척-.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멈춘 유원이,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의 미카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 * *
미카엘이 떠난 자리.
메타트론은 한동안 그 자리를 맴돌았다.
“피라…….”
그의 머릿속에는 방금 전, 미카엘이 남기고 간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지난 천마대전에서 죽어 간 천사들의 숫자가 과연 몇일까.
아마 몇억에 달할 것이다. 한 번의 전쟁이 아닌, 수백 번에 걸쳐 이루어진 전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미카엘의 말이 맞았다.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군.”
그는 앞으로 못해도 천 년, 길게는 수천 년은 더 천마대전이 지속될 거라 여겼다.
시작은 사소할지 몰라도 천사와 악마의 싸움은 천마대전이 반복될수록 더 깊어졌고, 서로를 향한 증오도 점차 쌓여 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메타트론은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서로를 향한 천사와 악마의 대립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미카엘이 천마대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너무 많은 천사들이 죽었고, 앞으로도 죽어 갈 거라면서 말이다.
“하긴. 많이 흘리긴 했지.”
몇 명 정도, 미카엘 같은 주장을 하는 천사가 있었다.
그때마다 메타트론은 똑같은 말로서 그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천사장도 아니고 대천사.
게다가 미카엘은 대천사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천사였다.
“하필 미카엘이라…….”
상대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처럼 어영부영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번 지펴진 불씨는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퍼질 게 불 보듯 뻔한 일.
“슬슬…….”
저벅-.
목적 없이 같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걷던 메타트론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판을 키워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