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28
* * *
웅, 웅, 웅, 웅-.
마력이 요동치며 발밑이 시끄럽게 울린다.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한 건축물 앞에서 라구엘이 중얼거렸다.
“진짜 저질러 버렸군.”
개인이 지닐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마력.
놀랄 것도 없었다.
애초에 이 현상은 플레이어의 스킬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었으니까.
‘워프 게이트의 사용 권한은 천왕에게 있다.’
워프 게이트를 내려다본 라구엘의 주위로는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천사들이 쓰러져 있었다.
‘어차피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균형이라면…….’
웅, 웅웅웅-.
붉게 변하기 시작한 게이트.
‘차라리 기울어진 쪽으로 붙는 게 낫겠지.’
[워프 게이트가 활성화됩니다.]천장 아래로 마력이 가득 찼다. 워프 게이트의 좌표는 유원이 알려 준 상태였다.
좌표를 듣고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그래도 듣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만약 유원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메타트론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천마대전을 조작해 온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곧 마왕이 이곳으로 올 거다.”
마왕.
디아블로를 주축으로 한 거대한 악마들의 길드.
그들 역시 하늘과 마찬가지로 천마대전을 준비해 오고 있었다.
“미카엘이 들고 일어선 지금, 어차피 천마대전의 균형은 무너졌어. 지금쯤이면 바알도 숙청됐을 거고.”
천마대전의 균형을 유지하던 건 자신과 바알이었다.
하늘의 재상이자 마왕의 군사였던 둘은 천마대전이 적당한 선에서 끝날 수 있도록 병력과 물자를 조절했다.
하지만 바알은 숙청되었고 라구엘 역시 평소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미카엘의 반역까지.
평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과연 지금 같은 때, 천마대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오랫동안 유지해 오던 균형이 깨어졌다.
선택을 해야 한다면 더 유리한 쪽에 붙는 게 당연지사.
라구엘은 작동을 시작한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어서 오십시오.”
척-.
라구엘이 무릎을 꿇었다.
“악마들의 왕이시여.”
스으으으-.
워프 게이트의 환한 빛무리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붉은 머릿결에 강렬한 턱선을 지닌 장신의 남자.
한 명의 등장만으로도 하늘이 붉게 물든다. 이 현상이나 저 얼굴은 낯익었다.
‘마왕 디아블로.’
마왕들의 정점이자, 랭킹 14위의 하이랭커.
그런 디아블로의 등장에 라구엘이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라구엘이냐? 얼굴 많이 좋아졌네.”
시정잡배처럼 껄렁껄렁한 말투.
천사들의 왕인 메타트론과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다시 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그 핏덩이 같던 녀석이 참…….”
스윽-.
디아블로의 손이 라구엘의 머리 위로 향했다.
“많이도 컸네. 재상씩이나 되고.”
라구엘이 하늘의 재상에 오른 지도 벌써 수천 년.
하지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그보다도 훨씬 먼 옛날이었다.
당시 마왕과 하늘은 지금처럼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좋다고도 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죽일 것처럼 미워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자신의 머리를 덮는 큼직한 손바닥에 라구엘은 몸을 움찔 떨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겁을 먹는 건 당연지사.
디아블로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라구엘을 내려다보았다.
“그 녀석이 넌 살 수 있을 거라 했다지.”
꽈아악-.
머리를 쥐어 오는 악력에 라구엘이 놀라 디아블로의 손을 붙잡았다.
“크으…… 으으으…….”
금방이라도 두개골이 부서져, 뇌가 짓뭉개질 것만 같았다. 통증에 눈알이 휘둥그레 커지고, 그 눈앞으로 디아블로의 얼굴이 가득 들어왔다.
“약속은 지키마. 난 거짓말은 딱 질색이니까.”
웅, 웅웅웅-.
워프 게이트가 빛을 뿜어냈다. 디아블로에 이어 하나둘, 마왕 측의 랭커들이 게이트를 타고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말이야.”
콱-.
디아블로의 손이 라구엘의 날개를 움켜잡았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라구엘은 바로 알아차렸다.
“아, 안……!”
쫘아아악-!
손아귀 힘에 뜯겨진 날개.
으아아아아아-!
라구엘의 비명 소리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산 채로 날개가 찢겨지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천사에게 있어서 날개란 두 팔과 다리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다.
“이 정도 분풀이는 이해하거라. 바알 녀석은 단숨에 머리통이 터져 나갔으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고.”
툭-.
디아블로가 손을 놓자 라구엘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성큼 걸음을 옮긴 디아블로의 뒤로 다른 마왕들이 따라붙었다.
“무혈입성도 이런 무혈입성이 없군.”
“예정보다 좀 많이 빠른데 괜찮은 건가?”
“관리자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하긴, 뭐. 무슨 큰일이야 나겠어?”
잔뜩 흥에 겨운 마왕들이 저마다 각오를 다지고 투기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게이트 밖으로 마왕의 군대가 넘어오자, 하늘의 색은 붉게 변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뒤 천마대전이 시작됩니다.]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관리자는 곧장 천마대전의 시작을 알려 왔다.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자고.”
* * *
“천마대전?”
“갑자기 왜 지금?”
“설마 여기 마족들이……?”
치열하던 싸움이 멈추고, 장내는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익숙한 메시지. 그리고 상황이었다.
천마대전이 시작되기 10분 전이라니.
그렇다는 건, 지금 이 하늘에 마왕 측의 전력이 도착해 있다는 뜻이었다.
“당신 짓입니까?”
침묵을 깬 건 메타트론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이게 당신이 말한 보험이란 거군요.”
“원래라면 좀 더 차근차근 준비하려 했어.”
한숨을 뱉으며 유원이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저 성질머리 급한 녀석 덕분에 그게 안 됐지.”
“안에서부터 하나씩. 제 입지를 흔들 셈이었습니까?”
“그래.”
“굳이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메타트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 내부에서 미카엘을 중심으로 메타트론의 입지를 흔들고, 그를 몰아내는 것.
처음 유원이 하늘에 들어와 그렸던 그림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걸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라구엘을 비롯한 여러 대천사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늘과 마왕의 문제일 뿐.
역시나 가장 간단한 건, 라구엘과 바알을 색출해 내고 균형을 무너뜨린 후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당신은 영웅 심리 같은 걸 가질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요.”
“주입식 교육 때문이지.”
“무슨 말입니까?”
“있어, 그런 게.”
귀찮게 빙빙 돌아올 수밖에 없던 이유.
유원도 이렇게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건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가능한 하늘과 마왕의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
자타공인 제일의 평화주의자, 오딘은 피를 많이 흘리지 않는 쪽을 주장했다.
“내 말 좀 들어 봐라. 미카엘을 먼저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 뒤는 하늘 내부에서 해결할 수…….”
‘처음부터 그냥 내 식대로 할 걸 그랬어.’
그랬으면 지금처럼 빙빙 돌아올 필요도,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마왕의 전력은 하늘과 엇비슷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천마대전에 흥미가 식은 디아블로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 문제라면 바알을 색출해 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배신감만큼 분노를 끌어내기 쉬운 감정도 없으니까.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판은 만들어졌다.’
방법은 달라졌어도 목표는 같았다.
천마대전은 끝나야 하는 싸움이었다. 지속되면 될수록 천사와 악마의 전력은 꾸준히 감소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양 쪽이 함께 공멸하게 될 뿐이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도 바로 천마대전이었다.
“흐음…….”
메타트론은 주위를 살폈다.
미카엘의 손에 쓰러진 대천사가 둘. 부상을 입은 대천사는 그보다 더 많았고, 랭커급의 천사들 중에는 사망자가 속출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왕과 충돌하는 건 좋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은 평소처럼 전면전이 아닌, 하늘의 심층부에 마왕이 침투해 있는 상황이었다.
‘좋지 않다.’
천마대전의 마지막은 화려한 폭발이 되어야 한다.
한데 지금은 천마대전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그 형태는 소규모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여기서 후일을 도모하려 한다면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 했다.
싸우고자 한다면 미카엘과 함께 디아블로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건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항복입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이길 수 없다면 깨끗하게 지고, 다음을 기약한다.
그게 바로 메타트론의 주관이었다.
하지만.
“거절하지.”
저벅-.
때로는 그게 통하지 않는 상대도 있는 법이었다.
“오랜만이다.”
“……디아블로.”
마왕 디아블로.
오랜 시간 동안 메타트론의 숙적이자, 마왕의 수장으로 굳건히 버텨 온 하이랭커.
그가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며 하늘성으로 발을 들였다.
“누구 마음대로 항복이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쪽이다-!”
“메타트론이 저기 있다!”
“오늘이야말로 지긋지긋한 천마대전의 종지부다!”
마족의 군대가 하늘성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천사들이 불안에 떨었다.
상황은 메타트론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디아블로만큼은 절대로 마주쳐선 안 됐는데 말이다.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군요.”
“그래. 넌 싸우기 싫겠지. 그래서 아랫것들만 앞으로 내세운 걸 테고.”
뚜둑, 뚝-.
손가락 마디를 풀며, 디아블로가 메타트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매번 천마대전이 시작되면 어디로 사라지는지. 꽁꽁 숨어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더니만, 겨우 만났네.”
메타트론은 매번 천마대전에 참여하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그로 인해 메타트론을 잡는 걸 목표로 하던 디아블로는 자연스레 천마대전에 흥미가 식었던 것이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항복? 어림도 없지.”
“정말 끝을 보셔야겠습니까?”
“그래.”
대답과 함께 디아블로가 걸음을 멈췄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말이지.”
천마대전의 시작까지 5분.
그 메시지를 듣는 순간, 메타트론은 디아블로가 그 급한 성질머리에 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는 건지를 깨달았다.
천마대전은 결국 상대 진영의 왕을 잡으면 끝나는 싸움.
천마대전이 시작되고 메타트론이나 디아블로가 죽게 되면 자연스레 이 싸움도 종결될 것이다.
즉.
디아블로는 시스템이 인정한, 천마대전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왔고…….’
디아블로와 메타트론이 마주쳤다.
원래대로라면 여기까지가 유원이 해야 할 일이었다.
“천마대전은 악마와 천사의 전쟁. 승자는 상대의 모든 걸 갖고, 패자는 모든 걸 잃는 싸움이다. 그런데 말이야.”
천마대전.
그 싸움이 큰 충돌로 끝나지 않는 게 바로 자신들이 계획한 이상적인 그림이었으니까.
“그 싸움에서 큰 충돌을 피하고 메타트론 하나만 잡을 수 있다면, 어쩌면 마왕과 하늘은 하나로 합쳐진 더 큰 길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왕과 하늘.
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지닌 두 거대 길드가 하나로 합쳐진다.
그건 메타트론을 몰아내고 하늘과 마왕의 전력을 보전하는 것 이상으로 완벽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디아블로의 손에 달려 있는 일.
지금 이 순간, 유원의 고민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이건데.’
[천마대전이 3분 뒤 시작됩니다.] [공헌도 : 0] [천마대전의 종결 후, 공헌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천마대전의 종결 후, 공헌도에 따라 마계 내의 랭킹이 변동됩니다.]공헌도.
천마대전에 참여할 자격을 얻은 악마와 천사들만이 얻을 수 있는 점수.
얼떨결에 유원은 천마대전에 참여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