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3
불카로는 뛰어난 대장장이었다.
아니, 뛰어나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는, 유원이 아는 최고의 대장장이였으니까.
“그건…….”
불카로는 유원의 손안에 있는 보석을 알아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보석 자체를 알아본 건 아니었다.
알아본 건 아마 보석이 지닌 ‘가치’일 것이다.
“자세히…… 봐도 괜찮겠냐?”
불카로의 물음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에게 제작 의뢰를 맡기면 싫더라도 살펴봐야 할 테니까.
불카로는 다리를 절뚝이며 유원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가까이서 퀴네에의 조각을 살폈다. 아직 제작 의뢰를 받은 게 아니라 그런지 직접 손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불카로가 퀴네에의 조각이 지닌 가치를 알아보는 데에는.
“아직 세공되지 않은 보석이군.”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보석이었다.
뿜어내고 있는 빛의 양도 상당한 데다, 지니고 있는 기운도 꽤 정제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그건 보통의 플레이어나 대장장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불카로는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퀴네에의 조각이 세공되지 않은 보석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세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세공해야 할지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는 뜻이었다.
“가능이야 하겠다만…….”
불카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유원은 그의 표정과 눈빛을 보았다.
망설이고 있다.
어떤 종류의 망설임인지는 투명하게 보였다.
대장간에 걸려 있는 쓰레기라 부를 법한 아이템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유원은 그가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꽤 긴 시간.
고민을 이어 가던 불카로가 입을 열었다.
“……이걸 어디서 얻은 거냐?”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었지만 꽤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유원은 퀴네에의 조각을 불카로에게 건넸다. 불카로는 얼떨결에 유원이 건넨 퀴네에의 조각을 받아 들었다.
“튜토리얼 공략 보상으로 받았습니다.”
“튜토리얼 보상으로? 그런 걸로 어떻게…….”
의아한 표정을 짓던 불카로는 곧 놀라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자신의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지금은 분명 튜토리얼이 진행되고 있을 시기.
하지만 그 튜토리얼이 끝나 신규 플레이어들이 중간 지역에 들어오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었던 것이다.
“며칠이나 걸린 거냐?”
“닷새 하고 2시간 정도.”
“신기록이군.”
“네. 그리고 제가 랭킹이 가장 높았거든요.”
“네가?”
불카로는 유원의 복장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불주술의 옷.
그것은 5만 포인트에 달하는 값비싼 아이템이었다. 신규 플레이어는 물론, 10층 이내에서 이만한 아이템을 가진 플레이어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평범한 녀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대 튜토리얼 랭킹을 갈아치운 데다, 가장 랭킹이 높기까지 하다니.
“확실히 그런 기록이라면…….”
물건을 얻은 출처에 대한 의문은 사라졌다.
불카로는 결심이 선 얼굴이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세공뿐이다.”
허락의 뜻.
유원은 씩 미소를 지었다.
애초에 그 이상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재료가 없어섭니까?”
“그런 아이템을 싸구려 재료에 쑤셔 박으면 도리어 독이 될 뿐이니까. 보석이 지닌 힘을 버틸 만한 재료가 필요해.”
“그렇군요.”
“그리고…….”
불카로는 유원의 눈을 피해 잠시 자신의 공방을 둘러보았다.
낡고 엉망인 장비들.
“정말 나한테 맡길 생각이냐?”
“그럴 생각입니다.”
“미친놈이군.”
불카로는 끌끌 웃었다.
그는 결국 손에 들어온 퀴네에의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이걸 가지고 도망칠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게냐?”
“지금 아저씨 눈이 어떤지 아십니까?”
“눈?”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유원은 퀴네에의 조각을 손에 쥔 불카로의 눈을 가까이서 살폈다.
“보석이 탐났다면 욕심이 보일 건데, 지금 아저씨는 완전 신나 보이거든요.”
불카로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벽에 걸려 있는 갑옷에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다. 어느새 입꼬리는 올라가 있고, 흥미를 잃은 듯 죽어 있던 눈빛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날 믿냐? 중요한 아이템일 텐데.”
말로는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실상 조각의 가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불카로의 시선은 벽에 걸려 있는 싸구려 아이템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저런 걸 만든 자신을 정말 믿냐는 뜻이었다.
유원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카로라면.
외려 이 사람 외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믿습니다.”
“날 다 아는 듯한 말투군.”
“눈썰미가 없는 편은 아니거든요.”
유원은 벽에 걸린 싸구려 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뎌진 날.
투박한 손잡이.
누가 봐도 만드는데 실패한 망한 칼이었다. 만드는데 들어간 쇳물이 아까울 만한 작품으로, 대장장이가 아니라 평범한 플레이어 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지만.
“날은 뭉갤 수 있고, 손잡이야 투박하게 만들 수 있지만…… 습관은 어디 가는 게 아니죠.”
부웅-.
유원은 칼을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칼은 부드럽게 선을 그렸다.
유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만드실 때 무게 균형을 망가뜨리는 건 까먹으신 모양입니다.”
유원은 몇 개의 칼과 창 따위를 더 집어 휘둘러보았다.
이것도, 저것도.
몇 개의 무기를 휘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무게 균형.
단지 날이 뭉개지고 투박한 모양새를 하고 있을 뿐이지, 모든 무기는 완벽한 무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좋은 재료를 쓰고 시간을 들여 날을 간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망치질을 하는 대장장이의 경험과 실력에서 비롯된 결과물인 것이다.
“크흐흐. 진짜 뭐하는 놈인지.”
유원의 행동에 불카로는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황당한 상황이었다.
눈속임용으로 입구에 걸어 둔 장비들.
그런데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무시하기는커녕, 무기를 만든 대장장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녀석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이런 빈민가를 지나던 신규 플레이어가 말이다.
“너 뭐 하는 녀석이냐? 순혈인 거 같은데. 소속이 어디지?”
“그런 거 없습니다.”
“소속이 없어? 순혈은 맞고?”
“비슷하죠.”
“순혈이면 순혈이지, 비슷한 건 뭐냐?”
불카로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좋다. 네놈 의뢰를 받아주지. 믿어 준만큼 최고의 세공을 해 주마.”
“고맙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불카로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잠그는 모양새를 취했다.
“어디서 세공을 받았는지는 물론, 이 물건을 세공을 받았다는 사실도 절대 비밀로 부쳐라. 할 수 있겠지?”
철저히 자신을 숨기려는 모습.
이 정도 수준의 대장장이가 이런 곳에 썩어 있다니, 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유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물론입니다.”
지금은 그저, 지금 한 약속을 잘 지켜 내는 수밖에.
* * *
유원은 불카로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 주었다.
플레이어 키트에 등록된 번호에 연락을 취하면 해당 플레이어가 같은 층 내에 있을 경우, 전화처럼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기한은 열흘.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못 기다릴 시간도 아니었다.
‘어차피 한동안은 1층에 머물러야 했으니까.’
유원은 숙박집을 찾았다.
새로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들로 인해 숙박업소는 거의 만원이었다. 다행히 괜찮은 자리에 한 방이 비어 있어, 유원은 자리를 잡고 쉴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튜토리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고 달려왔다.
유원은 반나절이 넘게 잠에 들었다. 그러고 나자, 아침이 밝았다.
“조식 한 명. 빨리 나오는 걸로 아무거나.”
잠에서 일어난 유원은 1층의 식당으로 내려왔다.
식당은 꽤 넓었다. 3포인트를 내자, 아침 조식이 차려졌다.
음식은 꽤 그럴듯하게 차려졌다.
아무 숙박업소나 골라잡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곳을 고른 모양이었다.
‘열흘이면 시간은 넉넉해.’
유원은 빵을 집어 들었다.
‘이리들의 집결 시기는 튜토리얼이 끝나고 사흘 뒤. 그럼 앞으로 이틀 후다.’
이리들을 잡아 캐물어 얻게 된 정보.
몇 개의 이리 무리를 잡아 캐물었고, 대답은 모두 같았다.
시간과 장소 모두 일치했다. 문제는 이리 무리의 숫자였다.
‘혼자서 다 잡아 죽일 수 있으면 더 편하겠지만…….’
유원은 빵을 씹으며 계획을 다시 상기시켰다.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여기 있었네.”
드르륵-.
유원은 비어 있는 맞은편 의자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환한 금발에 떡 벌어진 넓은 어깨의 남자.
하르간이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지?”
하르간은 자신이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일행은 같이 오지 않은 듯 보였다.
“여기저기 숙소를 찾아다녔다. 김유원이라는 이름으로 찾으니까 여기가 나오던데.”
“쉽지 않았을 건데?”
“내가 인맥이 좀 넓어서. 사람을 좀 썼다.”
하르간의 대답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1층은 올림포스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층이었다. 게다가 하르간은 어쨌든 제우스, 하늘의 권좌의 핏줄이었다.
대단한 부탁도 아니고 숙소에 머물고 있는 사람 한 명 찾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플레이어 키트 만들었지? 번호 좀 알려 주라.”
“남자한테 번호를 따일 줄은 몰랐네.”
“그런 농담도 할 줄 알았냐? 엄청 재미없는 놈인 줄 알았는데.”
“재밌는 편은 아니지.”
유원은 대답과 함께 하르간에게 플레이어 키트의 번호를 알려 주었다.
번호를 교환하고, 곧이어 하르간의 식사가 나왔다. 유원은 스프를 떠먹으며 물었다.
“탑은 언제 올라갈 거냐?”
“한 닷새 후쯤에.”
“뭐하다가?”
“바깥 지역에서 레벨을 올릴 생각이다. 팀원들 호흡도 더 맞춰 보고. 그러려면 닷새는 더 필요하지.”
“그래?”
일상적인 대화.
띵-.
유원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럼 나랑 일 하나만 하자.”
“일?”
예상 밖의 제안에 하르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일이라니.
유원이 자신에게 먼저 뭔가를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약속한 것도 있고 해서 번호를 받으러 온 것인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냐?”
“이리 무리들.”
이어진 이야기에 하르간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싹을 뽑으려고.”
“이리들을?”
이리.
그들은 1층의 골칫거리들이었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고, 제대로 된 집단의 형태를 이루지도 않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녀석들의 싹을 뽑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다.
그런데 이리들의 싹을 뽑자니.
“그놈들을 선별해 내는 것도 문제지만 고작 열 명이서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열 명이 아니라 너랑 나, 둘이다.”
유원은 자신의 말에 흔들리는 하르간의 표정을 보며 넵킨으로 입을 닦았다.
“뭣하면 나 혼자 해도 되고.”
“자세히 이야기해 봐라.”
“지금은 좀 이르고, 모레 저녁쯤 여기로 와라. 그때 이야기해 주마.”
“모레 저녁…….”
하르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다 하지 않았다. 더 음식을 입에 밀어 넣기에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이 너무 많았다.
드르륵-.
하르간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빨리 일어나네?”
“모레 저녁에 시간을 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거든.”
튜토리얼에서 만든 팀. 아무래도 하르간은 그들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 팀을 성장시켜, 함께 탑을 오르려 하다니.
‘꽤 정성이네.’
유원은 하르간이 식당을 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기다리는 것 같던데.”
유원은 뒤쪽의 테이블에 앉아 등을 맞대고 있던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제 끝났는데, 용건이 있으면 얼른 하지 그래?”
“갑자기 하르간께서 오셔가지고 깜짝 놀랐군.”
아까부터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남자.
“우린 초면이지? 반갑네.”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난 아가멤논과 눈이 마주쳤다.
“올림포스에서 왔네만,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