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34
길게 뻗은 날카로운 뿔.
마치 세공을 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날카롭고 매끈한 표면.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빛.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묘하다 못해 신묘하기까지 한 기운.
“뭐로 보이냐?”
유원의 되물음에 헤라클레스는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나 보군.”
듣던 그대로의 모양.
케리네이아의 뿔은 신묘한 힘을 지니고 있어, 그것을 달여 멱으면 천고의 영약이 된다고 했다.
그런 걸 유원이 만들어 냈을 리도 없었고, 이런 걸로 유원이 사기를 칠 성격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휘릭-.
유원이 케리네이아의 뿔을 던져 가볍게 다시 손으로 받았다.
“미리 잡고 준비하고 있던 거냐?”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케리네이아의 뿔에 고정되었다.
대체 무슨 수로 잡았는지는 몰라도 케리네이아를 잡은 건 유원이었다.
소유권은 유원에게 있었고, 이걸로 그의 과업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걸 가져가면 과업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다.”
“협상을 하겠다?”
“그래.”
“얼마를 바라지?”
평소 헤라클레스의 눈빛이 아니었다.
대체 헤라와 무슨 내기를 한 건지, 독기가 바짝 올라 있었다.
조금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헤라클레스가 저런 눈을 가지는 경우는 하나였다.
신념을 가졌을 때.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그게 정의라고 믿을 때 가지는 눈이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틀리지 않았지만…….
‘고집은 언제나 저 녀석의 최대 단점이었지.’
꾸욱-.
유원은 손에 쥔 케리네이아의 뿔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이런 상태의 헤라클레스는 위험했다.
협상이 잘되지 않을 경우, 어쩌면 뿔을 강제로 손에 넣으려 할지도 모른다.
유원의 경계를 읽었기 때문일까.
헤라클레스가 몸을 일으켰다.
“포인트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는 건 알 텐데.”
유원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 함께 동행하지.”
“동행?”
“열두 가지 과업을 하는 중이라고 들어서.”
“여기 동행하겠다고?”
헤라클레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언짢은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다. 어지간한 일에는 기분 나쁜 기색을 잘 드러내지 않던 헤라클레스였다.
“이건 혼자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영웅이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은 아닐 테고…….”
의심된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유원이 헤라클레스의 눈동자를 꿰뚫어 보았다.
“무슨 내기를 한 거냐?”
화륵-.
한쪽 눈은 붉은색으로, 다른 한쪽은 황금색으로 반짝인다.
속을 알기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었다. 헤라클레스 역시 유원이 자신의 속을 알아내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화안금정이라…….”
거짓을 간파하는 눈.
저 눈을 피해 괜한 핑계를 대 봤자였다. 헤라클레스는 한숨을 쉬며 속에 있던 것들을 내뱉었다.
“헤라께서는 아버지의 권한이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왕의 자리 말이냐?”
“그래. 그 자리가 하데스 큰아버지나 포세이돈 큰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우스의 자리를 하데스가 이어받았던 건 어디까지나 하데스가 올림포스 부수기의 주역이었기 때문이었다.
폭군 제우스를 몰아낸 새로운 왕.
랭킹 역시 제우스를 제외하면 올림포스 내에서 가장 높았으니,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헤라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올림포스 내의 영향력은 큰아버지들보다 헤라가 더 크다. 아버지를 따르던 세력을 자연스럽게 그녀가 흡수했기 때문이었지.”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긴 거군.”
“그래. 저울추가 맞춰져 버린 거지.”
하데스는 랭킹은 높지만 지옥의 군주였다.
지닌 세력이 그리 크지 않은 하데스는 아무래도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랭킹이 낮더라도 헤라는 무수히 많은 랭커들과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충분히 싸움을 걸어 볼 법한 상황.
더군다나 그녀에게는 왕의 자리에 대한 충분한 명분까지 있었다.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를 따질 수 없다. 그녀가 아버지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니까.”
“하데스 님은?”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시지. 헤라께서 다시 실권을 잡으면 다시 거인족과의 싸움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야.”
하데스는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거인족과의 싸움을 멈추고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다.
반면, 헤라는 그간 제우스가 이뤄 놓은 것들을 하데스가 망쳐 놓고 있다는 입장이었고.
중요한 건 헤라클레스였다.
하데스와 헤라. 둘 중 그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이 싸움의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넌 어느 쪽이냐?”
“가능한 거인족과의 싸움은 피하고 싶다.”
“그럼 어느 쪽에 설지는 결정됐네.”
“다만…….”
다만.
그 말이 나온 순간, 유원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는 알 것 같았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건 피하고 싶다.”
그는 지극히 이상주의적이고, 평화주의였다.
싸우지 않고 갈등을 끝내고 싶다.
그 욕심이 헤라클레스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를 찾아갔다. 싸움을 멈추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이 내기를 제안했군.”
“그래.”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가지 과업을 모두 성공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물러나겠다. 그렇게 말하시더군.”
그럴 줄 알았다.
딱 한 번 본 게 전부였지만 유원은 헤라에 대한 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만큼 헤라에 대한 인상은 선명했으니까.
‘여전하군.’
야망과 욕망. 그리고 독기.
헤라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라는 큰 벽을 넘어서기 위해, 그녀는 열두 가지 과업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내기를 통해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 내부의 갈등을 혼자서 짊어지기로 결심한 상태.
피가 강처럼 흐를 수밖에 없는 싸움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는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헤라가 그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하나?”
“지킬 거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그녀의 목을 꺾을 테니까.”
확신에 찬 목소리.
하긴.
제아무리 헤라라 해도 헤라클레스와의 약속을 어길 만한 배짱은 없을 것이다.
그랬다간 어찌어찌 중립을 지키고 있던 거인을 적으로 돌리게 될 테니까.
“이제 알았으면 내놓아라. 이 내기에 외부인인 네가 끼어 들 자리는 없으니까.”
“알긴 알았지만…….”
유원의 눈에는 이미 헤라클레스가 덫에 걸려 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기에는 이미 헤라클레스의 고집이 너무 깊게 박힌 상태.
“난 아직 그녀를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말이 안 통하는군.”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릴 필요 있나? 과업을 방해겠다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과업은 혼자만의 힘으로 통과할 것. 그게 바로 이 내기의 핵심이다.”
역시 이런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유원은 힐끗, 헤라클레스의 어깨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히드라에게 난 상처.
그 상처를 잠시 훑어본 유원이 입을 열었다.
“세 번째 과업은 아마 네게 가장 어려운 관문일 거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 넌 이런 사냥과는 담을 쌓은 녀석이었으니까.”
“그래도 사슴 하나 못 잡을 내가 아니다.”
“그냥 사슴이 아니라 케리네이아지. 아르테미스도 잡는 걸 어려워한.”
갈수록 헤라클레스의 얼굴은 일그러져 갔다.
“그래서?”
“둘 중 하나다.”
쑤욱-.
금방이라도 손을 뻗을 것 같은 눈치에 유원은 아예 인벤토리 속에 뿔을 집어넣어 버렸다.
“나와 함께 동행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멈추거나.”
그 말에 헤라클레스의 눈썹이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그런 제안이라면 거절하지.”
헤라클레스의 고집은 아무도 못 말렸다. 고집불통이라면 손오공과 쌍벽을 이루는 게 바로 그였다.
하지만 유원은 저 고집을 꺾을 유일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럼 나와도 내기를 하나 하지.”
“내기?”
“너랑 나랑 싸우는 거다.”
헤라클레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게 너무 유리한 내기군.”
제아무리 유원의 랭킹이 높아졌다 한들, 헤라클레스와 유원의 격차는 작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걸 모를 유원이 아니었다.
“그래. 그렇겠지.”
“알면서도 그런 내기를 제안한다?”
“삼십 분이다.”
“삼십 분?”
“삼십 분 안에 내가 쓰러지면 너의 승리. 그 안에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내 승리.”
그렇게 말한 유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뻔뻔하게 말을 붙였다.
“애초에 내가 널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말이야.”
니르를 던질 수 있다면 모를까, 헤라클레스를 앞에 두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이 싸움은 이겨야 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삼십 분.
그 시간 동안 헤라클레스의 주먹을 버텨 내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삼십 분이라…….”
헤라클레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삼십 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금방 지나가도, 목숨이 오가는 싸움에서 시간은 서로 다른 결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실력적인 격차가 상당한 마당.
“그 말.”
꽈악-.
헤라클레스가 주먹을 쥐었다.
“후회하지 마라.”
내기가 성립되는 순간이었다.
* * *
저벅, 저벅-.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거리가 충분히 벌어질 때까지 움직이며,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넌 언제나 내게 도움을 주는군.”
척-.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돌렸다.
“가장 골치 아프다 생각한 과업을,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게 해 주다니 말이야.”
“아직 해결이라고 말하기엔 좀 많이 이르지.”
“글쎄-.”
쿵-.
다시 한 걸음.
유원을 향해 뻗은 헤라클레스의 발걸음이 땅을 울렸다.
발바닥을 통해 땅 속으로 전해진 힘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마주하고 있는 몸이 다 짓눌리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아닐 것 같은데.”
쿠구, 구구구-.
헤라클레스의 분위기에 짓눌린 유원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2미터가 훌쩍 넘는 거구의 덩치에서는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꿀꺽-.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힘겹게 넘어갔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꽤 즉흥적으로 내건 내기였다.
터무니없기는 했다.
이그드라실의 곤봉을 손에 쥔 헤라클레스를 상대로 30분을 버텨야 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의 입장에서 100퍼센트 승리를 확신할 만한 내기가 아니라면, 애초에 내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실제로도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잠시나마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
어렵기는 해도, 결국 이 방법뿐이었다.
저 고집불통을 꺾기 위해서는 말이다.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이 11시 28분.”
째깍-.
“31초.”
“30분이 되면 시작하지.”
“그래. 그러자고.”
1분 30초.
숨을 고르며 싸움의 그림을 그리기에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유원은 눈을 감았다.
이 싸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머릿속에 시곗바늘 하나를 두고, 흑백의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칵-.
다시 눈을 뜬 유원이 검을 뽑아 들었다.
시간이 됐다.
[‘화안금정’이 길을 읽습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화륵-.
스아아아-.
유원의 눈동자가 서로 다른 색으로 빛을 뿜고, 주위의 모든 기척들이 선명해졌다.
마력을 아껴서 될 싸움이 아니었다.
이 싸움은 아마-
“시작하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