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39
* * *
후끈한 열기가 안쪽까지 전해지는, 아폴론만의 전유물.
이 탑에서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이라 알려진 물건 중 하나.
태양마차.
유원과 헤라클레스는 그것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드르렁-.
헤라클레스는 잠에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리 잘 잘 수 있다니.
아마 이런 때라도 체력을 비축해 두기 위함일 것이다.
‘하긴. 과업이 쉬운 것도 아니고.’
히드라와의 싸움도 그렇고, 에리만토스의 멧돼지를 잡는 것도 그렇고.
하나같이 쉬운 과업이 없었다. 더군다나 헤라클레스는 헤라와의 내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마 그간 쌓인 피로가 상당할 터.
일단 내버려 뒀다.
이 싸움의 핵심은 바로 이 녀석이었으니까.
‘이렇게 진심이 된 헤라클레스는 흔치 않지.’
그는 천성적으로 싸움을 꺼려 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주먹을 쓰지 않는 게 바로 헤라클레스였다. 그렇기에 기간토마키아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지난 천 년 동안, 숲에서 나무만 해 왔던 것이다.
설령 필요한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과하게 주먹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주먹에 어떤 힘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문제는 저쪽이다.’
헤라가 올림포스를 장악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리석은 혼돈이 헤라클레스를 계산에 넣지 않았을 리 없었다. 녀석은 분명, 헤라클레스까지 계산에 넣어 둔 채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헤라클레스는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키가 아닌 셈이었다.
스윽-.
유원은 태양마차의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래전.
계획을 세우던 그때처럼, 유원은 칼집을 붓 삼아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핵심 키를 찾아야 한다.’
개인과의 싸움에서는 강함과 약함이 전부지만 지금처럼 큰 싸움에서는 열쇠가 있기 마련이었다.
‘녀석은 완전히 판을 새로 짰다.’
스윽, 슥-.
올림포스.
헤라.
어리석은 혼돈, 헤라클레스.
그리고 죽어 버린 하데스까지.
상세한 관계를 그리자, 그들 하나하나가 체스 말이 되어 유원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나 역시 판을 다시 그려야 한다.’
최강의 기물은 헤라클레스였다.
하지만 상대의 기물은 짙은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변수가 필요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강의 패가 무엇인지.
머릿속을 천천히 뒤지며 유원은 계속 그림을 그려 나갔다.
* * *
쿵-.
태양마차가 땅에 착지했다.
육중한 무게가 떨어지자, 잠에 들어 있던 헤라클레스가 정신을 차렸다.
얼마나 잔 건지.
반만 뜬 눈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헤라클레스가 입을 크게 벌려 하품했다.
“벌써 도착인가, 하아암-.”
정말 오랜만에 푹 잠든 기분이었다.
하긴.
과업을 시작한 후부터는 제대로 쉰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새삼, 태양마차가 좋긴 좋구나 싶었다.
‘그 녀석은…….’
잠에서 깬 헤라클레스는 가장 먼저 유원을 찾았다.
인기척 없는 주위.
유원도 잠에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지?”
유원은 헤라클레스에게서 등을 돌린 채,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질문을 던진 헤라클레스는 곧 입을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시라도 빨리 다음 과업을 치르기 위해 움직이고 싶었지만,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유원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아테나에게 연락해라.”
눈앞에 놓인 플레이어 키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유원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유원의 말이 길게 이어졌다.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헤라클레스는 미간자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될까?”
“지금 당장은 이쪽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저쪽에서도 그리 시간을 끌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긴 하다만.”
“믿어서 손해 볼 건 없을 거다. 보험을 들어 둬서 나쁠 것도 없고.”
“하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는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아폴론에게 문자를 남겼다.
서투른 손가락으로 느리게 써 내려간 문자. 메시지를 남긴 후, 헤라클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쪽은 알아서 하도록 하고. 넌 계속 여기 있을 거냐?”
“그래.”
“어차피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굳이? 정 도와주고 싶거든 저쪽을 도와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제 4번째 과업을 끝낸 참이었지만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도 이 과업을 끝까지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그래서 그는 유원의 동행이 불필요한 인력 낭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말, 후회 안 하냐?”
“……?”
어딘가 확신에 찬 듯한 유원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만만한 얼굴로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당연한 말을.”
“그래?”
의미심장한 말과 표정이었다.
“그 말, 꼭 지켜라.”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은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나절 후.
푹-.
두 팔에 잔뜩 힘을 준 채, 집채만 한 크기의 삽을 든 헤라클레스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중얼거렸다.
“뭐 이딴 시련이 다 있어…….”
음메에에-.
거대한 암소들이 울음을 흘렸다. 이 시간에도 녀석들은 자신들의 몸집만큼 여물을 처먹고 똥을 푸지게 싸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암소들이 싼 똥을, 그것도 천 년 동안 치우지 않은 똥을 치우는 헤라클레스.
도무지 익숙해질 수가 없는 과업이었다.
이만한 양의 똥을 치우는 건 그처럼 무식한 괴력을 지닌 자가 아니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문제는 힘이 아닌 ‘냄새’였다.
시작한 지 고작 반나절도 되지 않은 지금.
헤라클레스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키트가 울렸다.
[김유원 : 정말 안 도와줘도 괜찮겠냐?]빠직-.
마치 이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한 메시지.
“이 자식이…….”
헤라클레스는 정말 오랜만에 타인에게 화를 느꼈다.
눈앞에 유원이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말은 이미 뱉었고, 주워 담을 수는 없었으니까.
푹-.
결국 헤라클레스는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눈앞에서 계속 변을 싸고 있는 소들이 미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유원은 냄새가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하여간 고집하고는.’
어떻게든 과업을 끝내는 것으로 헤라를 저지하겠다는 의지였다.
하데스가 죽고 난 후.
헤라클레스의 이런 의지는 더 강해졌다. 이대로라면 자칫, 올림포스는 파국으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다.
과업에 집착하는 건 그래서였다.
유원은 내심, 불확실한 내기보다는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가 헤라와 싸우는 쪽을 택하기를 바랐지만…….
‘그건 저 녀석답지 않지.’
모험을 하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바라는 것.
그게 바로 헤라클레스였고, 헤라클레스가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희생해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까.
푹-.
유원은 집채만 한 삽으로 순식간에 똥을 퍼 나르는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거인화까지 사용한 채, 가볍게 삽을 움직이는 헤라클레스의 독기는 무서울 지경이었다.
‘이게 다섯 번째.’
세 번째 시험과 더불어 헤라클레스가 가장 고역이었다고 말한 과업.
‘만약 움직인다면…….’
유원은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앞으로 남아 있는 과업을 떠올렸다.
과업의 여섯 번째, 스튐팔로스의 세 떼를 잡고.
일곱 번째, 크레타섬의 황소를 잡는다.
…….
열 번째, 게뤼오네스의 붉은 소 떼를 산 채로 데려오고.
그리고 열한 번째.
‘열한 번째이려나.’
총 열두 개에 달하는 과업 중.
유원은 열한 번째 과업을 떠올렸다.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황금사과를 가져오는 것.
그게 열한 번째 과업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유원은 황금사과는 관심 없었다.
대신, 그 정원에서 꼭 얻어야 하는 게 있었다.
“내 어머니, 테티스는 날 불사의 존재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아킬레우스.
올림포스 소속의 상위 랭커로, 실력에 비해 높은 랭킹을 지닌 랭커였다.
이유는 하나.
그가 지니고 있는 한 가지 특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탄생과 함께, 어머니는 내 몸을 스틱스 강에 담그시고 암브로시아를 바르셨지.”
질긴 그의 생명력.
절대로 지치지 않고, 죽지 않는 아킬레우스의 생명력은 죽지 않는 불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불사는 무슨. 몸에 바르는 것만으로 효과가 있을 리가 있나. 조금 튼튼해지긴 했지만, 불사까지는 아니야. 다들 명심해. 무슨 영약이든, 피부에 양보하지 말고 무조건 입에 처넣어.”
그렇게 말하며 아킬레우스는 손오공을 힐끔거렸다.
자신과는 달리 진짜 불사의 존재인 손오공이 못내 부러운 모양.
“그래서 그걸 어디서 구했냐고?”
그렇게 그는 하나둘, 자신의 비밀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도 몰라. 황금사과 나무 옆에 있다는 것 말고는.”
“황금사과 나무?”
놀란 목소리로 터져 나온 중얼거림.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향했다.
딴에는 작게 혼잣말을 한다고 한 것인데,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워낙 굵고 큰 탓에 못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집중된 시선 속.
헤라클레스는 멋쩍은 얼굴로 아까보다 훨씬 작아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거기 다녀왔는데…….”
* * *
구름 위의 성.
가장 신성한 성, 올림포스에 헤라가 당도했다.
하늘을 나는 마차를 탄 수천 명의 플레이어와 랭커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저벅-.
구름 위의 성을 밟은 헤라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몸을 두른 붉은 천이 바람이 휘날리고, 코끝을 상쾌한 공기가 자극했다.
“오랜만이구나, 여기도.”
예전에는 집이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제우스가 숙청된 후.
그녀는 단 한 번도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
저벅-.
그녀의 앞을 왕성의 수많은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가로막았다.
성에 입성하려던 헤라는 가장 앞장서 있는 금발의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 자리를 찾으러 왔느니라.”
“돌아가십시오.”
하르간.
그가 헤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 장례도 치르기 전입니다.”
“순서야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으냐?”
“돌아가십시오.”
그 순간.
척-.
아테나의 손짓에 왕성 측의 랭커들이 자세를 취했다.
금방이라도 무기를 빼어 들고, 스킬을 사용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적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나를 막을 방법은 있느냐?”
스윽-.
헤라의 시선이 아이기스를 손에 쥔 아테나에게로 향했다.
“저 아이 한 명으로는 힘들 텐데 말이다.”
그녀의 말에 하르간은 직감했다.
헤라클레스가 자리를 비우고, 하데스가 죽었다.
아폴론 남매는 친어머니인 그녀와의 싸움을 거절했다. 제아무리 적이 되었다 해도 자신들을 낳아 준 어머니를 공격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남은 전력은 아테나뿐.
올림포스의 전력은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헤라는 그 틈을 노려 온 것이었다.
“예.”
참 신기했다.
“있습니다.”
문득, 참 신기하다 싶었다.
‘그 녀석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확신한 건지.’
하르간은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오렌지로 물을 들인 것처럼 아름다운 머리색.
하얗고 고운 피부와 전보다 훨씬 또렷해진 초점.
얼굴을 본 건 딱 한 번뿐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판도라?”
오래전.
상자를 열어 저주를 받았던 소녀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