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
아가멤논은 유원의 옆에 앉았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 저 험상궂은 얼굴이 억지로 입을 끌어올려 웃고 있으니 마주 보고 있기가 영 거북했다.
“하르간이면 하늘의 권좌의 핏줄일 텐데…….”
유원은 아가멤논이 사겠다며 주문한 커피를 바라보았다.
“인사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유원의 물음에 아가멤논은 어깨를 으쓱여 대답했다.
“목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네.”
“목적?”
“나는 자넬 만나러 온 거거든.”
“그 정도는 말로 안 해도 알고. 용건은 뭐지?”
유원의 직설적인 물음에 아가멤논은 잠시 멈칫하다 대답했다.
“김유원. 자네가 이번 튜토리얼에서 랭킹이 1위라더군.”
아가멤논의 말에 유원은 그가 자신의 신상에 대해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튜토리얼 랭킹 1위는 당연하게도 주목을 받는다.
매 튜토리얼에서 가장 높은 랭킹을 기록한 플레이어는 높은 확률로 랭커가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 튜토리얼은 다른 튜토리얼보다 훨씬 특별했다.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 튜토리얼.
그만큼 이번 튜토리얼의 인재를 탐내는 길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르간께서는 2위시고 말이야.”
이번 튜토리얼에는 제우스의 핏줄, 하르간이 참여했다.
랭커를 넘어 하이랭커가 될지도 모를 재목.
하지만 그는 결국 튜토리얼을 1위로 통과하지 못했다.
유원의 존재 때문이었다.
“기록을 듣자 하니, 1위와 2위의 차이가 압도적이더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고 있어. 탑에 괴물이 들어왔다고 말이지.”
“진심 어린 칭찬, 고맙게 듣지.”
“넉살도 좋군.”
아가멤논은 눈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었다.
“하르간께서 그러시더군. 자네와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친구 같은?”
“이상한 대답이지?”
“조금.”
확실히 이상했다.
친구면 친구고, 아니면 아닌 거지.
‘친구 같다라.’
아니,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말이었다.
유원과 하르간은 ‘아직’ 친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하르간은 자신과 유원의 관계에 대해서 친구 ‘같은’ 거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하나였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말인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처음에는 단순히 실력이 뛰어나 자신을 팀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그게 맞았을 것이다.
그 이상의 호감을 가지게 된 건 아마, 시간이 흐르면서 일종의 경쟁심을 느끼면서였을 것이다.
하르간의 환심을 샀다.
유원으로서는 썩 나쁠 게 없는 이야기였다.
아가멤논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아직, 팀은 맺지 않은 모양이던데.”
“어디에 소속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한 선택이야. 튜토리얼에서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지. 랭커가 되는 플레이어는 드무니까. 아니, 층을 올라가려는 플레이어도 반이 되지 않아.”
아가멤논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유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대는 달라. 랭커를 넘어 하이랭커, 이 탑의 위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당연하게도 그 격식에 맞는 사람과 함께 탑을 올라야 하지 않겠나?”
자부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
무슨 소린지는 알만했다.
아니, 애초에 유원은 아가멤논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그의 용건을 알고 있었다.
“우리 올림포스에, 그리고 아레스님의 품으로 오게. 그대가 원하는 모든 걸 준비해 놓도록 하지.”
역시나.
목적은 길드 영입.
올림포스는 대형 길드 중, 가장 신규 플레이어의 영입에 힘쓰는 길드였다.
유원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재미있는 소리였다.
“내가 원하는 거?”
“그래. 아레스께서는 저런 어미도 모를 천한 것과는 달라. 헤라님과 제우스님의 적통이시며, 이미 하이랭커가 되신 위대한 존재시지.”
아가멤논은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손을 잡으면 그대도 올림포스의, 그리고 아레스님의 일원이 되는 것이야. 저런 근본도 모를 잡종과 손을 잡는 것보단…….”
“그만.”
유원은 처음으로 커피잔에 손을 가져갔다.
꿀꺽, 꿀꺽-.
반쯤 식은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유원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가득 채워져 있던 커피를 단숨에 바닥까지 들이켰다.
그리고.
달칵-.
드르륵-.
“차는 잘 마셨다. 난 이만 가지.”
“뭐?”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원의 말에 아가멤논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올림포스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거냐?”
“어, 그래. 맞아.”
어느새 아가멤논을 바라보는 유원의 얼굴 위에는 비웃음과 경멸 같은 것들이 떠올라 있었다.
“격식? 어미도 몰라? 천한 것? 그리고 뭐, 잡종?”
“친구라고 감싸는 거냐? 튜토리얼에서 얻은 짧은 인연 따위가 뭐라고, 올림포스의…….”
“난 제우스의 아들인 하르간이 직접 팀에 들어오라 제안해도 거절했다. 어디 소속될 생각이 없었거든.”
유원은 아직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아가멤논을 바라보며 웃음기를 섞어 물었다.
“그런데 넌 뭐야? 제우스랑 헤라가 아레스 엄마, 아빠지, 너희 엄마, 아빠냐?”
아가멤논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 위로 살기가 떠올랐다. 만약 하위 층계의 플레이어를 공격할 때 발생하는 패널티가 아니었다면 진작 손을 썼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원은 그런 아가멤논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대답은 하나다.”
더 할 말 없다는 듯, 유원은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난 너희들같이 격 떨어지는 놈들과는 같이 못 다니겠다.”
* * *
유원이 떠난 자리.
식당은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조용해졌다.
정확히는 아가멤논의 분노와 살기에, 진저리 친 손님들이 전부 떠난 거지만.
식당의 중앙에선 아가멤논이 혼자 분노를 곱씹을 뿐이었다.
잠시 후.
“괜찮으십니까?”
아가멤논의 수하들이 식당을 찾아왔다.
세 명의 수하들.
한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화를 억누르던 아가멤논은 천천히 표정을 수습했다.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이리들이 얼마나 있지?”
“이리들 말입니까?”
“그래. 이리들.”
“하지만 저 녀석은…….”
수하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본 아가멤논의 눈빛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그를 모셔 왔기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잘못 말을 꺼냈다간, 자칫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며칠 더 필요합니다.”
“얼마나?”
“지금은 이리들의 수금이 진행 중입니다. 그게 끝나야 충분한 숫자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고작 신규 플레이어 하나 죽이는 데 그 정도 준비가 필요해?”
“냉정하게 생각하십시오. 역대 튜토리얼 기록을 갱신한 녀석입니다. 어설픈 숫자로 되겠습니까?”
수하의 질문에 아가멤논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하르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신규 플레이어는 물론, 위쪽 층계의 플레이어들도 당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유원은 그런 하르간보다도 높은 랭킹으로 튜토리얼을 공략했다.
그 덕분에 여러 랭커들이 이번 튜토리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방금 전 수하의 망설임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럼 백 명 정도 준비해라.”
여전히 아가멤논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뿌득-.
그는 유원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수금이 끝나고 나면, 김유원을 죽인다.”
* * *
“그래서 이리 무리는 어떻게 처리할 건데?”
이틀 후.
하르간은 저녁 중에 유원과 다시 만났다. 플레이어 키트의 번호를 교환해 놓은 덕분에 다시 접선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만나야 할 녀석이 있다.”
“만날 녀석?”
“어디 사는지 찾아보는 데 시간 꽤 걸렸어.”
저벅, 저벅-.
유원은 어두워진 마을 어귀를 걸었다.
주위는 꽤 조용해졌다. 다들 장사를 접고 집에 돌아가거나 장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시장에는 왜?”
“따라와 봐.”
유원은 눈을 굴리며 걸었다.
옆에서 걷던 하르간이 슬쩍 유원의 눈을 살폈다. 그러자 지금까지와 다른 눈이 보였다.
‘이번에도 저 눈.’
붉게 변한 눈동자.
튜토리얼의 보스, 키메라 제작자 차일드와 싸울 때 변한 눈이었다.
“네 녀석, 설마 그 원숭이의 핏줄이더냐?”
유원의 눈을 본 차일드의 반응.
원숭이라고 무시해 말하긴 했지만 하르간은 그가 말한 ‘원숭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천대성 손오공.’
그는 탑을 오르기 시작하고 백 년이 채 되지 않아 하이랭커가 되었다. 역대 랭커들 중, 최고의 자질을 가진 싸움꾼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모르는 플레이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랭킹을 올리고, 이제는 탑의 지배자인 최상위권의 하이랭커가 되었다.
게다가…….
‘제천대성뿐만 아니라 형님과도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
대체 유원의 능력은 뭘까.
정체는?
관련된 소속은?
‘올림포스에 들어오지 않는 게, 혹시 다른 쪽과…….’
하르간의 걸음이 멈췄다.
걸어가는 유원의 뒷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그가 사용했던 스킬 하나가 떠올랐다.
‘거인화.’
거인들의 힘을 깃들게 하는 스킬.
올림포스 내에서는 유일하게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만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거인족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스킬.
만약 유원이 거인족이라면.
그래서 올림포스에 들어오지 않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던 때.
“어?”
유원이 갑작스레 한 가게 앞에 발걸음을 멈춰 섰다.
잡다한 물건을 파는 잡화상.
“호응 잘해라.”
“호응?”
“들어간다.”
드르륵-.
하르간은 마감 준비를 하는지 불이 거의 다 꺼진 가게로 들어가는 유원의 뒤를 따라갔다.
“주인장.”
유원의 부름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새하얀 옷을 걸치고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순박한 얼굴의 청년.
“아, 죄송합니다. 오늘 장사가 다 끝나서요.”
앳된 얼굴의 청년은 사람 좋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다가왔다.
“그래도 혹시 찾으시는 게 있다면 성함과 번호를 남겨 주세요. 제가 내일 연락드릴 테니까요.”
청년은 주머니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잠시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잠시 후, 유원의 입이 열렸다.
“무운천.”
유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운천이라는 녀석을 찾고 있는데.”
청년의 눈이 흔들리고.
“……씨.”
타다닥-.
순식간에 몸을 돌린 청년이 재빨리 뒷문으로 내달렸다.
화악-.
“어디 가려고.”
청년, 무운천의 뒷덜미를 유원이 잡아챘다.
몸이 뒤로 당겨짐과 동시에 무운천은 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무운천의 손안에 있던 짧은 칼날이 유원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슷-.
콰앙-!
“컥!”
무운천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가게의 바닥이 움푹 파이고, 가게가 흔들렸다.
“젠…… 장……!”
무운천은 몸을 비틀거리며 유원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몸만 비틀거릴 뿐, 유원의 손안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뭐, 뭔 놈의 힘이……!’
한 손으로 몸을 짓누르는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더 무서운 건, 본능적으로 이대로 힘을 더 주면 온몸의 뼈가 짓이겨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하르간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유원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이 녀석이다.”
“뭐?”
“가명 천남운. 본명 무운천. 탑을 올라가길 포기한 무림계(武林界)의 플레이어.”
유원은 바닥에 짓눌린 무운천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이 이리들의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