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1
* * *
쾅-!
우지끈-.
자신의 신전으로 돌아온 헤라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엘프들의 도시에서 가져온, 수천 년 동안 자란 나무로 만들어진 귀한 가구였다.
평소 그토록 아끼던 물건이었건만.
그런 것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헤라는 화가 나 있었다.
“나와, 나오라고-!”
텅 빈 방 안에서 분개해 소리지르던 그녀의 앞으로 로브인이 나타났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건지.
어리석은 혼돈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부르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설명해라, 어서!”
“판도라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왜 생각을 못해, 왜!”
와장창-!
비명과도 같은 고함에 방 곳곳에 장식되어 있던 집기들이 부서졌다. 창문이 깨지고 유리잔과 접시들이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한동안 이어진 히스테리에도 어리석은 혼돈은 담담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네 집인데 부수든 불태우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하악, 학-.”
체력이 떨어져서보다는 화를 너무 많이 낸 탓에 숨이 가빠졌다.
헤라는 한동안 그렇게 속에 쌓인 화를 밖으로 토해 내고는 어리석은 혼돈을 노려보았다.
“이제 어쩔 거냐?”
“그래도 수확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뭐? 수확?”
“예, 덕분에 이 일에 그가 개입되어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라면…… 김유원 말이냐?”
“네.”
와장창-!
하나 남아 있던 창문이 깨어졌다.
어리석은 혼돈의 뒤쪽에 있던 창문이었다.
“지금 그딴 걸 수확이라고 말하는 것이냐?”
그녀의 눈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어리석은 혼돈과는 달리 그녀는 유원의 존재를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고 있었으니까.
당연했다.
자신들의 가장 큰 적은 역시나 헤라클레스였다.
제아무리 큰 불이라 해도 태양 앞에서는 다 똑같을 뿐.
하데스를 처리한 이상, 이제 남은 목표는 헤라클레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헤라클레스를 처리하든, 저 왕성을 뚫을 방법을 강구하든 해야 할 것 아니야! 그게 너와 내 약속 아니었나?”
“하데스를 처리해 드렸는데도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당신이었지요.”
“뭐라?”
“판도라, 그녀가 그렇게 무서우셨습니까?”
어리석은 혼돈이 성큼, 한 걸음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분노로 인해 눈이 가려졌던 헤라가 흠칫 놀랐다.
밥상을 다 차려 줬는데도 너는 뭘 하고 있었냐는, 그 타박에 헤라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눈앞에 있는 어리석은 혼돈이 갑작스레 크게 보여서였다.
저벅-.
어리석은 혼돈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헤라는 자신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로브 속 얼굴이 보일 듯 빠르게 가까워진 거리.
히죽-.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잘하셨습니다.”
“……뭐?”
“싸웠다면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겁니다. 잘 선택하신 겁니다.”
넌 절대, 판도라에게 이길 수 없을 테니까.
마치 그 말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헤라는 입술을 꽉 깨물 뿐, 더 이상 어리석은 혼돈을 몰아붙이지 못했다.
확실히.
하데스를 죽인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역할, 그 이상을 다한 셈이었으니까.
“방법이라면 아직 많습니다. 판도라가 버티고 있다 해도 성을 차지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방법이라니? 어떤 방법?”
“너무 많아서 탈이지요.”
손에 쥔 패는 얼마든지 있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올림포스의 기나긴 역사.
그 과정에서 생겨난 적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들을 부추겨 가벼운 엉덩이를 일으키는 건 어리석은 혼돈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중.
“올림포스에는 적이 많거든요.”
어리석은 혼돈은 어떤 카드를 사용할지를 고민했다.
* * *
열 번째 과업에서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힘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헤라클레스였지만, 그는 힘 외에는 마땅한 기술이 없었다.
더구나 열 번째 과업은 단순히 무언가를 잡는 게 아닌, 소를 안전하게 몰고 오는 시험이었다.
헤라클레스는 말을 듣지 않는 소들을 보며 진땀을 뺐다. 죽여서 시체만 데려갈 수도 없으니, 결국 말로 잘 타이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려서만 데려오면 되는 거 아닌가?”
유원이 생각을 비틀었다.
헤라클레스는 밧줄을 준비했다.
자신의 마력을 엮어 만든, 절대 끊어지지 않는 밧줄을.
그렇게 밧줄로 소들을 한꺼번에 묶어, 헤라클레스는 강제로 붉은 소 떼들을 끌고 왔다.
“쉬운 게 없군.”
태양마차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진땀을 흘렸다.
수만 마리의 소들을 강제로 끌고 다니려니, 제아무리 힘이 남아도는 헤라클레스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긴 밧줄을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유원의 한 마디 덕분에 10번째 과업은 생각했던 거보다 어렵지 않았다.
“수고했다.”
태양마차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를 유원이 맞았다.
헤라가 왕성을 노리고 쳐들어온 지도 벌써 사흘.
과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제 열한 번째인가.”
헤라클레스의 중얼거림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열한 번째 과업은 열 번째 과업과 같은 층에서 이루어졌다.
단.
다른 과업과는 달리, 그 장소가 명학하지 않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사과나무가 있는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을 찾는 게 문제지.”
“위치라면 알고 있다.”
의외였다.
헤라클레스가 황금사과나무가 있는 정원의 위치를 알고 있다니.
그 장소에 대해서는 유원도 추상적으로나마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과업을 시작하기 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들었다. 세계의 끝으로 가라더군.”
“세계의 끝…….”
세계의 끝이라면 모든 층에서 공통된 곳이 있었다.
“벽 말인가?”
“아마 그렇겠지.”
한 세계를 샅샅이 뒤지는 것보다는 범위가 훨씬 좁혀졌다.
뿐만 아니라 태양마차를 타고 돈다면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준비성이 좋네.’
프로메테우스는 황금사과가 있는 헤스페리데스의 거인, 아틀라스의 형제였다.
아마도 그는 이 탑에서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 있는 위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랭커일 터. 과업을 시작하기 전에 그를 찾아간 건 꽤 현명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굳이 나서서 정원을 찾아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유원은 팔짱을 낀 채, 태양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한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한발 뒤에서 도움 주기도 힘드네.’
한 번씩 툭툭 던지는 유원의 조언들은 대부분 앞서 헤라클레스가 해결했던 방식들이었다.
부족한 머리로 그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해답을 찾았지만, 유원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한 번 헤라클레스가 해결했던 과업이었으니 그 방법만 알려 주면 그만인 것이다.
덕분에 시간은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과업이 이렇게까지 순조롭다는 건, 아마…….’
지금까지는 헤라클레스에게 들은 대로였다.
모든 과업이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를 노리고 과업을 시킨 거라면 시험이 이렇게까지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분산이 아닌 집중. 한쪽에 장난질을 몰아서 해 놓았다는 뜻이겠지.’
태양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층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세상의 끝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이동까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헤라클레스는 최대한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꿀꺽-.
값비싼 물약으로 입을 축이고,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 그렇게 휴식을 취한 헤라클레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검은 벽.
그 벽을 끝으로, 세상은 완전히 바깥과는 단절되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이 근처 어디군.”
황금빛으로 빛나는 숲 하나가 보였다.
“뭐가 저렇게 눈에 띄어?”
저벅-.
유원이 옆으로 다가온 건 그때였다.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건지.
이동하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유원이 함께 타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나 여기 있습니다, 하고 광고라도 하고 있네.”
“너도 그렇게 보이는 거냐?”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그런 거다.”
“하아-.”
깊은 한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너무 눈에 뻔히 보였다. 유원은 힐끗, 헤라클레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게 함정이라도 피할 생각 없지?”
“저기에 황금사과가 있다면 말이지.”
“그럴 거라 생각은 했다.”
너무 쉽게 대답해서 오히려 힘이 빠질 지경.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원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런 무식한 성격은 손오공이나 다를 게 없단 말이지.’
아마 어리석은 혼돈도 이런 헤라클레스의 성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함정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니, 헤라클레스는 정면에서 부딪치고자 했다.
무엇을 준비해 놓았든 정면에서 깨부수려는 자세.
빙빙 돌아가고 머리를 쓰는 건 헤라클레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 그럼 가자.”
궁금하기는 했다.
헤라클레스를 잡기 위해 뭘 준비해 놓았을지.
아마 호락호락한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열한 번째 과업은 모든 과업을 통틀어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과업에다 덫을 깔아 놓기까지 했으니.
이건, 어리석은 혼돈이 낸 시험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통과해 주마.’
저벅-.
태양마차에서 내린 유원이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숲을 향해 걸어갔다.
‘대신 너도, 쉽지는 않을 거다.’
화아악-!
황금색의 빛무리는 순식간에 유원과 헤라클레스를 집어삼켰다.
그렇게 시야가 사라지기를 잠시.
[‘히든 던전 – 망가진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입장하였습니다.]유원이 알던 것과는 다른 이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역시.’
뭔가 장난질을 쳐 놓았으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장난질이 바로 시스템에 반영되었다.
망가진.
그 말대로, 황금색 빛무리가 사라져 드러난 시야 속으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
가장 먼저는 앞장서 들어온 헤라클레스의 등이 보였다.
할 말을 잃은 듯, 목적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등.
무언가를 보고 잔뜩 놀란 모습이었다.
스윽-.
유원은 옆으로 한 걸음 움직여 헤라클레스의 등에 가려져 있는 눈앞의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유원도 헤라클레스와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뭐냐…… 저건?”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나무.
나무를 중심으로 까맣게 죽어 있는 땅.
그리고 죽어 버린 나무에 기댄, 괴물의 시체 하나.
“황금사과나무 옆은 라돈이라는 용이 지키고 있었다.”
술에 거하게 취한 헤라클레스는 당시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평소, 싸움 자랑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면서.
어지간히도 기억에 남는 싸움이었나보다 싶었다.
“어마어마한 녀석이었지. 그 녀석과의 싸움이 무려 닷새가 넘도록 이어졌으니.”
“강하긴 했나 보네. 그렇게 말할 정도면.”
“강하다고? 그냥 그렇게 말할 정도가 아니었어.”
유원은 눈앞에 쓰러져 있는 다 말라비틀어진 용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백 개의 머리를 가지고, 각각의 입에서 다른 속성의 브레스를 뿜어 대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뱀처럼 날렵한 머리들은 히드라보다도 단단한 이빨을 지니고 있었지.”
백 개의 머리.
뱀을 닮은 날렵한 머리.
“단언컨대, 야마타노 오로치든 히드라든 녀석의 상대는 아닐 거다.”
확실했다.
저기 쓰러져 있는 괴물의 시체.
녀석이 바로 라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