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5
* * *
헤라가 올림포스를 방문한 이후.
올림포스에는 내내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언제 다시 싸움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였다.
철그럭-.
“차라리 속 시원하게 싸웠으면 좋겠군.”
육중한 황금 갑옷으로 무장한 아테나가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뒤로는 올림포스의 랭커들이 만전 상태로 도열해 있었다.
이렇게 완전무장한 채로 싸우지 않고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아테나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으세요, 누님. 지금은 최대한 이 평화가 지속되는 게 좋습니다.”
근질거리는 몸에 혼자서 투기를 발산하고 있는 아테나에게 하르간이 다가왔다.
아테나는 넉살 좋게 다가온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으로는 판도라가 딱 달라붙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같이 다니는 것 같군.”
“유원이 같이 있으랬어.”
“유원?”
순간, 아테나의 머릿속에 두 장면이 스쳤다.
아레스 신전에서의 싸움과 천마신교에서의 싸움.
둘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벌어졌던 일이었다.
“그자 말이군.”
판도라가 그 녀석을 따르다니.
무슨 영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판도라는 제우스조차도 제어할 수 없어 올림포스의 감옥에 가두었던 여자였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어쨌든 덕분에 헤라를 막을 수 있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다행입니다. 누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버지께서 떠난 지금, 정통성은 이쪽에 더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아테나는 고지식한 성격이었다.
그녀가 지금껏 제우스를 따라온 건 자신을 낳아 준 아버지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올림포스의 적통한 왕이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데스는 그런 제우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자.
아테나는 하데스의 죽음과 헤라로 인해서 올림포스가 흔들리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
의미심장한 하르간의 표정.
순간, 아테나의 표정이 퍽 구겨졌다.
“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해라.”
“계속 어려워 보였는데, 누님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새삼 좋아서요.”
제우스에게는 수많은 자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우애가 돈돈한 형제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서로를 멀리하고 오히려 남보다 못한 경쟁자로 여기기 일쑤였다.
언젠가는 올림포스의 왕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될지도 모르는 사이.
그렇기에 하르간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썩 나쁘지 않게만 느껴졌다.
“다들 아폴론 형님과 아르테미스 누님처럼 잘 지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쓸데없는 소리를. 그들은 변절자다. 올림포스에 칼을 겨눈 헤라의 편에 붙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현재 이 싸움에서 빠져 있는 상태였다. 어머니인 헤라와 싸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두 사람이 싸움에서 빠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상 그 두 사람은 헤라의 편에 붙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믿고 있었던 만큼 아테나 역시 두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아폴론 남매가 언급되자 돌변한 아테나의 분위기에 하르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테나는 만약 두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당장에라도 칼과 아이기스를 빼 들 것만 같은 기세였다.
“아, 그거…….”
잠시 머뭇거리던 하르간은 품 안에서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헤라가 병력을 이끌고 올림포스에 다녀간 지 이제 7일째.
‘슬슬 시간이 되긴 했는데.’
그때였다.
꽈악-.
옷깃에서 느껴지는 강한 악력.
하르간이 고개를 돌리자, 판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말라는 듯이.
그러자 잠깐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말이 다시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하긴, 뭐…….’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생각하며 혼자 투기를 끌어올리는 아테나를 보며, 하르간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시간이 지나면 다들 알게 되겠지.’
* * *
그 시각, 태양마차 안.
“프로메테우스가?”
상처를 살피며 약을 바르던 헤라클레스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원에게 듣고 난 후의 반응이었다.
“아마 그럴 거다.”
“그러고 보니…….”
대체 프로메테우스는 어떻게 정원의 위치를 알고 자신에게 알려 준 걸까.
이상하긴 했다.
그동안 올림포스의 누구도 찾지 못했던 정원을, 그가 알고 있었던 것부터가 말이다.
“애초부터 함정이었던 건가.”
“그런 셈이지.”
“돌아가면 손 볼 녀석이 하나 더 늘어났군.”
뚜두둑-.
손아귀에 힘을 주며 헤라클레스가 살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원은 속으로 프로메테우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일이 다 끝난 이후, 한동안 헤라클레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다닐 것이다.
잡히기만 하면 몸을 단숨에 반으로 꺾어 버릴 기세.
“그런데 넌 이제 어쩔 거냐?”
그렇게 결의를 다지던 헤라클레스가 돌연 눈을 빛내며 물었다.
“뭘?”
“헤라 말이다. 이젠 거인족까지 끌어들인 것 같은데.”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틀라스가 움직인 걸 보면 이 일은 거인족과도 관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거인족이 기간토마키아를 포기하기 않았다면, 일은 훨씬 심각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업을 계속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
대쪽 같던 결심이 조금씩 흔들렸다.
웬만하면 과업을 모두 끝내고, 헤라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하고 싶었지만.
기간토마키아까지 엮인 이상, 더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졌다. 어쩌면 과업을 모두 끝내기 전, 우려하던 큰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그런 헤라클레스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하나 남은 거, 마저 끝내. 그편이 나중을 위해서도 더 나을 거다.”
“뭐?”
의외라는 듯, 헤라클레스가 유원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내기를 끝내기 위해 고집을 부리던 건 자신이었다.
당연하게도 헤라클레스는 고집을 내려놓고 과업을 포기한다면 유원이 반가워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과업을 멈추려는 듯한 자신을 유원이 만류하다니.
“헤라가 왜 이런 내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왜라니? 그거야…….”
“시간을 벌기 위해서.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거다.”
이 과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아마 헤라는, 네가 이 과업을 성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거다.”
원래대로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가 올림포스 부수기를 겪지 않았다면.
그의 손에 이그드라실의 곤봉이 쥐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옆에 유원이 없었더라면.
십중팔구는 과업에 도전했다 실패하거나, 최악의 경우 그 도중 죽었을지도 몰랐다.
히드라는, 아마존의 여전사들은, 황금사과를 지키는 용 라돈은.
불과 몇 년 전까지의 헤라클레스에게는 분명 버거운 상대였을 테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널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수를 쓰긴 했지만…….”
어쨌거나, 헤라클레스의 과업은 단순한 내기와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과업을 끝낸 너와, 그렇지 않은 너는 분명 다르니까.”
“다르다니?”
질문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유원은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 헤라클레스는 익숙한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다.”
이제는 더 추궁하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밀이 많은 녀석. 하지만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는 녀석.
그게 딱, 헤라클레스가 생각하는 유원의 이미지였다.
헤라클레스는 곧 단절된 대화에 신경을 거두고 상처를 돌보는 데 집중했다. 인벤토리에서 마저 약을 꺼내, 상처에 치덕치덕 발라대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이 과업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헤라다.’
그리고 유원은 그런 헤라클레스를 보며 생각했다.
‘과업을 끝낸 헤라클레스와 싸운다?’
열두 가지 과업을 통과한 헤라클레스.
이그드라실의 곤봉을 얻고, 열두 과업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유원이 알고 있던 모습에 가까워졌다.
‘그녀도 알겠지.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열두 과업의 내기는 단순히 ‘포기하겠다’라는 약속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과업을 끝낸 헤라클레스와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바로 헤라의 생각일 것이다.
꽈아악-.
잠시 시간이 흘러, 헤라클레스가 약을 바른 상처에 붕대를 모두 둘렀다.
다친 팔을 몇 바퀴 허공에 빙빙 돌려보았다.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이 팔로는 당장 뭘 하기도 어렵겠군.”
다친 상처를 바라보는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거인족에는 기간테스도 있고…….”
“그쪽은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급한 상황에도 유원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하데스의 죽음 이후에도 그랬지만,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지?”
“해결사가 한 명 갔거든.”
“해결사?”
“넌 별로 내켜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곧이어 이어진 누구냐는 질문에, 유원은 해결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섭외한 건지.
길지 않은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헤라클레스는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딘가 마뜩잖은 듯한.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역시 불만인 거냐?”
“그런 건 아니다.”
“그럼?”
고민이라도 하는지 헤라클레스의 대답이 늦어졌다.
그렇게 잠시 머뭇거리던 헤라클레스가 이내 천근 바위보다 무겁던 입술을 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괜찮을지 모르겠군.”
그런 이유에서였나.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문제였다.
“믿어 볼만할 거다. 뭣보다, 그 녀석도 지금까지와는 다를 테니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설득은 무사히 끝났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렇게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건 또 뭐냐?”
헤라클레스는 한참 전부터 유원의 손에 들려 있던 작은 풀뿌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틀라스가 쓰러진 후에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서 챙겨 온 뿌리였다.
“이거?”
귀한 보물이라도 되듯.
유원은 조심스레 뿌리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암브로시아다.”
* * *
올림포스의 구름 아래.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땅.
그곳에서는 하늘 위에서 추방된 거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절그럭-.
황금색의 갑옷을 몸에 두른 남자가 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내려오는 건 오랜만이야.”
절그럭-.
황금빛으로 번쩍이던 갑옷은 온통 빛이 바래고 여기저기 잔뜩 부서져 있었다.
넝마가 되다시피 한 갑옷 사이사이로는 몇 개의 흉터가 들여다보였다.
쿵-.
저 멀리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반갑지 않은 소리였다.
“직접 발로 뛰는 것도 말이지.”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직접 움직일 만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그는 성격상, 빚을 지고 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기간토마키아라…….”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희들의 운명도 기구하군.”
절그럭-.
높은 절벽 아래로 걸음을 옮기던 남자가 어질러진 머리를 뒤로 가지런히 쓸어 넘겼다.
“이젠, 내가 그걸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됐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