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6
* * *
“이젠 정말 멈춰야 하네.”
산을 끼고 앉은 거인들.
언성을 높이던 그들 가운데, 한 나이 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방금 전, 말을 꺼낸 거인에게로 향했다.
우르파였다.
“오랜만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만…… 그런 거였나?”
“어디 시골 촌에 처박혀 기어 나오지 않던 양반이. 갑자기 왜 여기까지 오나 했어.”
“우르파. 내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그따위 말을 해 봐라. 단박에 네 다리부터 부러뜨려 줄 테니.”
자리에 모인 거인들은 모두 거인족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하이랭커들이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우르파를 겁내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 가운데에서는 우르파를 우습게 여기는 자들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이름도 잊혀 가던 하이랭커일 뿐이었다.
“이미 끝난 싸움이야. 계속해 봤자 더 피만 흘릴 뿐이네.”
“우르파!”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 잊은 건가? 포세이돈, 그 망할 놈에게 동족을 잃었던 걸!”
분명, 우르파는 포세이돈과의 싸움에서 많은 걸 잃었다.
수많은 거인들이 물에 잠기고, 수압에 깔려 짓이겨졌다. 당시의 일은 지금까지도 악몽이 되어 우르파를 괴롭혔다.
분명 잊을 수 없는 과거였다.
“그렇다고 해서…….”
하지만 그게 기간토마키아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지금 살아 있는 아이들까지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르파의 목소리에는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기간토마키아가 끝난 이후, 오랫동안 한 층을 떠나지 않았던 그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그만한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거인들 역시 그걸 알기에 더 이상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의견이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우르파, 그대가 우릴 설득하기 위해 온 거라면 다시 돌아갔으면 하는군.”
“그래. 정말로 험한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들의 대답에 우르파의 눈가가 잠시 파르르 떨렸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대화로 해결하기에 올림포스와 거인족의 관계는 너무 많이 틀어져 있었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강이 되어 버린 셈.
“아쉬운 결말이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살벌한 눈으로 우르파를 보고 있던 거인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거인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 중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하는 키와 육중한 무게의 갑옷으로 무장한 남자였다.
어딘가 부상이라도 당한 건지 남자가 입고 있는 갑옷은 온통 넝마가 되어 있었다.
“잘만 이야기가 됐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뭐 하는 놈이…….”
“잠깐-.”
몇몇 거인들이 거인이 아닌 인간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들의 한가운데 앉아 있던 가장 큰 거인이 입을 열었다.
“움직이지 마라. 전부 다.”
구구구구-.
말 한마디로 다른 거인들의 움직임을 멈춘 그가 홀로 몸을 일으켰다.
산과 같은 덩치의 거인.
기간테스.
올림포스의 삼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가장 위대한 세 명의 거인들.
그는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에서 추방되었다고 들었는데.”
제우스와 기간테스.
그 둘은 아주 오랫동안 싸워 왔다. 기간토마키아가 시작되기 전부터 쭉, 그들의 관계는 앙숙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런 제우스가 홀로, 거인들의 세상에 찾아왔다.
“그랬지.”
“구질구질하게 돌아온 건가? 너를 버린 올림포스를, 다시 되찾으려고?”
분명 제우스는 이 싸움에서 빠졌을 터였다.
그는 올림포스에서 추방되었다. 하데스와 헤라클레스가 그것을 주도했고, 추락한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었다.
“그런 자리에 연연할 만큼 아쉬운 게 없어서 말이지.”
“그럼?”
“부탁받은 게 있다.”
치지, 치지지-.
제우스가 돌연 전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난 빚지고 사는 걸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녀석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거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많은 거인들의 투기가 일순간 제우스를 향해 뿜어졌다. 하이랭커급에 달하는 거인들이 열 명이 넘고, 그 주위로 수많은 거인족의 군대가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다.
“우리와 싸우러 온 건가?”
기간테스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먼저 싸움을 준비하며 전격을 일으킨 건 제우스였다.
가능하다면 그를 다시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야 한다면.”
제우스가 이곳에 온 건 싸우기 위함이었다.
각오는 됐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이미 올림포스에 미련을 버린 제우스였다. 그가 다시 돌아온 것만 해도 이상한 일인데,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돌아온 건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제우스가 누구던가.
그는 올림포스를 이 탑에서 손꼽히는 거대 길드로 만든 자였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움직일 만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대체 무슨 부탁을 받은 거지?”
“너희들을 떨어뜨려 놓아 달라더군. 다시 기간토마키아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간토마키아를 막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놈이 말이냐?”
황당하다는 기간테스의 말에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평소라면 아마 말도 안 되는 부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파지지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나 제우스가-.”
손끝을 타고 흘러나온 황금빛의 전격.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나간 전격의 힘이, 거인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번쩍-!
콰릉-!
“……!”
“……! …….”
소리가 삼켜졌다.
순식간에 거인들이 기대고 있던 산맥의 봉우리 하나가 소멸되었다. 비명을 지르던 거인들은 의식이 날아가 몸이 까맣게 탄 채 자리에 픽픽 쓰러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분명 싸움이 시작되었지만 장내는 온통 고요했다.
누구도 선뜻 제우스를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그건, 그 오랜 세월 제우스와 싸워 온 기간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벅-.
손끝으로 전격을 날린 제우스가 거인들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너희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오만 그 자체.
하지만 그 누구도 제우스를 오만하다 손가락질 하지 못했다.
“이제 너희가 선택할 차례다.”
쿠릉, 쿵-.
햇살을 가리고 있던 하늘 위의 두꺼운 먹구름.
그 속에서 요란한 천둥소리가 아래로 들려왔다.
치치, 치치치-.
제우스의 몸에서 황금빛의 전류가 흘러나왔다.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몇 번을 보다 못해, 꿈속에서까지 나올 지경이었으니.
그만큼 제우스의 벼락은 거인족에게 있어서 공포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못 보던 새, 더 괴물이 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쿠릉, 쿠르르-.
하늘에서 울부짖고 있는 매서운 천둥소리.
기간테스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이 모든 하늘의 천둥번개가 전부 제우스의 손안에 들린 무수히 많은 창과 다름없었다.
“나와 싸우겠느냐?”
거인들의 땅에 홀로 쳐들어온 제우스.
그가 수만, 수억 개의 창을 가지고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아니면, 여기서 멈추겠느냐.”
* * *
제우스가 거인족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헤라클레스는 몰라보게 침착해졌다.
태양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지친 몸을 쉬게 하기 위해 눈을 붙였다.
약을 바른 팔의 상처는 불과 하루 사이 꽤 많이 나아졌다. 살점이 덜렁거리고 뼈가 다 드러나 있던 상처는 적당히 아물어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몸뚱이 단단한 거 하나는 진짜 알아줘야겠군.”
언제 봐도 대단한 육체였다.
단단하기로도 이루 말할 수 없고, 회복력도 스킬을 쓴 것처럼 눈에 띄게 빨랐다.
물론 그마저도 그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부웅-.
헤라클레스는 붕대를 두른 팔을 휘둘러보았다.
팔을 따라 제법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 힘에 겨우 붙었던 상처가 벌어져, 붕대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야, 그 몸으로 뭘…….”
“아직 멀었군.”
부우웅-.
다시 한번.
헤라클레스가 팔을 휘둘렀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표정을 구겼다.
“역시.”
“…….”
이번 일로 힘에 대한 욕심이라도 생긴 걸까.
그런 거라면 환영이었다.
헤라클레스의 최대 단점이라면, 어쩌면 욕심이 없다는 것일 테니까.
쿵-.
태양마차가 땅에 착지했다.
위로는 컴컴한 밤하늘이 보였다. 퀴퀴하고 축축한 냄새. 그리고 밤하늘만큼이나 검은 땅이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도착이었다.
지옥에.
“가자.”
유원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래.”
헤라클레스가 그 뒤를 따랐다.
유원은 지옥을 둘러보았다. 여길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탑에서 가장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
그게 바로 지옥이었고, 유원도 이 세계를 꺼리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저벅, 저벅-.
헤라클레스는 제법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유원의 뒤를 따라갔다.
“어딘지는 알고 가는 거냐?”
열두 과업의 마지막은 케로베로스 왕을 잡는 것.
사냥 자체는 어려울지 쉬울지 알 수 없으나 문제는 케로베로스 왕이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유원은 마치 길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케로베로스 왕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그럼?”
“대신, 알 만한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
“알 만한 사람?”
케로베로스 왕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니.
유원은 헤라클레스의 의문을 다 풀어 주지 않은 채 지옥의 아래로 내려갔다. 어차피 가 보면 다 알게 될 일이었다.
저벅, 저벅-.
지하로 향하는 길.
헤라클레스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와 봤던 곳이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었다.
탑을 오르던 그가 막 지옥에 도착했을 때.
큰아버지인 하데스를 한 번 만나기 위해 밟았던 길이었다.
당시 수많은 케로베로스들이 자신에게 덤볐다.
사흘 밤낮을 싸우며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모두 제압했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앞에.
-“네놈이 헤라클레스냐?”
올림포스의 삼신 중 한 명.
하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그가 케로베로스들을 모두 제압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제우스 녀석이 자랑할 만하군.”
그것이 헤라클레스와 하데스의 첫 만남이었다.
말로만 듣던 사신의 등장에 얼마나 긴장했던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데스와 헤라클레스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
곳곳에서 헤라클레스와 유원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케로베로스들이 보였다.
녀석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오래전, 자신들을 제압했던 헤라클레스.
그리고 같은 역사를 써 내려간 유원.
두 사람이 함께 있으니 충분히 겁을 먹을 만했다.
그런데.
‘도망치지 않는다.
케로베로스는 두려워할지언정, 이빨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깨달았다.
척-.
걸음을 멈춘 채, 자신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케로베로스들을 바라보았다.
“진짜였군.”
이 지옥 바닥 아래에 깔린 수많은 케로베로스들이 지키고 있는 존재.
비로소 확신이 생겼다.
“살아 계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