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49
* * *
뚝-.
전화는 거기서 끊어졌다.
헤라의 머릿속에 이명이 울렸다.
방금 전, 키트를 통해 들려온 유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메아리 치고 있는 듯했다.
넋이 나간 듯한 헤라.
그녀를 향해 주춤주춤, 다른 랭커들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폴론 님과 아르테미스 님이 헤라 님을 배신할 리 없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었다.
기껏 한다는 위로가 전부 쓸데없는 말뿐이었다.
“……온다.”
“네?”
입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작은 중얼거림.
“헤라클레스가…….”
사색이 된 얼굴로 그녀는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헤라클레스가 와…….”
모든 계획이 틀어진 지금.
헤라에겐 더 이상, 헤라클레스를 막을 수단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 * *
헤라의 출정이 있고 닷새가 흘렀다.
77층에 위치한 헤라의 신전에는 정적이 흘렀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아래쪽의 플레이어들도 다 알고 있었다. 닷새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게 그 증거였다.
어쩌면 자신들이 먼저 시작한 이 싸움이 패배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
그렇게만 되면 올림포스에서 그간 자신들이 쌓아온 입지는 모두 물거품이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거 지면 진짜 어떡하냐…….”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가서 다른 길드 찾아 봐야지.”
“그땐 이미 올림포스에서 찍힐 대로 찍혔을 텐데?”
“지금 그게 문제냐? 살아서 나갈 수는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지금이라도 빨리 탈퇴할까?”
“장난해? 그럼 헤라께서 가만히 있을까?”
“으아-.”
77층까지 올라온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어느 길드를 가나 대접을 받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길드에서 입지를 다지고, 고위층 랭커에게 줄을 대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그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 정도쯤 되면, 다시 다른 길드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제대로 녹아들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저 녀석은 올림포스에서 쫓겨난 녀석이다, 라는 인식이 생기면 어느 길드에서든 자리를 잡기가 더욱 어려울 테니 말이다.
“아무튼, 우린 여기나 잘 지키면서 승전보나 기다릴 수밖에. 만약 지더라도 저쪽에 항복을 하면 했지, 다른 길드로 들어가는 건 절대…….”
“절대 안 되겠지.”
“우왁!”
깜짝 놀란 남자가 소리를 지으며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부터 멀리 거리를 벌렸다.
당황한 상황에서도 이리 대처를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상층의 플레이어답다 싶었다.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척, 척-.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창과 칼을 겨누었다. 그들 사이엔 몇몇 출정을 하지 않은 랭커들도 섞여 있었다.
왕좌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라지만 신전을 완전히 비우지는 않은 듯, 숫자가 제법 있었다.
수많은 창칼에 겨누어진 유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최악보다는 차선이라도 선택해라. 어차피 이미 다 끝난 싸움인 거.”
유원의 말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눈을 부릅떴다.
“다 끝나?”
“뭐 하는 놈이기에 혼자서 검도 없이…….”
“김유원?”
“어?”
몇몇 플레이어들이 유원을 알아보았다. 애초에 유원은 랭킹 100위 안쪽에 들어온 하이랭커였고, 그에 대한 정보는 키트에 검색하면 꽤 나올 만큼 유명해져 있었으니까.
물론 정보의 대부분이 신원을 알 수 없다거나, 최단 시간 내에 하이랭커로 인정받았다거나 하는 것들이었지만, 얼굴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알음알음 이름이 퍼져 나가자.
“……진짜로?”
“망했네.”
“두 자릿수 하이랭커 상대로 우리가 뭘 어째?”
단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잃는다.
그게 바로 하이랭커가 지니는 힘이었다.
물론, 집단 안에는 몇몇 겁 없는 녀석도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헤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랭커들이었다.
“겁먹지 마라!”
“어차피 상대는 하나다!”
“이쪽도 랭커가 수십 명이다! 충분히 승산이…….”
뻐억-!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소리치던 랭커는 순간 눈앞이 핑 도는 걸 느꼈다.
잠깐 눈앞에 별이 보인다 싶더니 그대로 의식이 날아갔다. 턱에 주먹을 꽂아 랭커의 정신을 날려 버린 유원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수십 명은 무슨. 열 명이 간신히 넘는 주제에.”
헤라의 신전에 남아 있는 랭커의 숫자는 고작해야 열 명 남짓.
그 외에 대부분의 인원은 왕좌의 탈환을 위해 출정한 상태였다.
지금 헤라는 이쪽도, 저쪽도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올림포스로 향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하고, 다시 신전으로 돌아오기에는 뒤가 문제였다.
결국 탑 한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그녀는 가지고 있는 전력을 계속 낭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유원은 이 신전을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 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파지지-!
손에 찬 반지를 통해 검은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손끝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전격은 곧 뿌연 구름을 만들었다.
쿠르르-.
쾅, 쿠구궁-!
천둥치는 구름.
막대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천둥번개는 올림포스의 플레이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스킬의 징조였다.
“벼, 벼락?”
“조금 다르긴 한데…….”
“마, 맞지?”
기간토마키아를 겪은, 올림포스의 오래된 플레이어들.
그들은 제우스의 벼락이 시작되기 전의 징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강렬했던 건 당연하게도 벼락의 위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본인이 헤라에게 대단한 충성심이 있다, 혹은 날 이길 자신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외에는 모두 자리를 비켜 주길 바라지.”
저들 중에는 올림포스라는 길드를 단지 철밥통처럼 생각해 들어온 자들도 있을 것이다.
유원이 넘어가 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지금부터 딱, 열을 세고 나면…….”
파앗-.
유원의 눈앞으로 날아온 창끝.
그 순간.
콰릉-!
짙은 먹구름 아래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꺼어…….”
창을 들고 유원에게 날아들었던 랭커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 가 바닥에 쓰러졌다.
창은 유원에게 가까이 닿지도 못한 채였다. 말을 하던 중간에 기습을 노려본 것인데, 제아무리 빠르다 한들 벼락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전부 통구이가 될 거다.”
“으…….”
“나, 난 아니야!”
“충성심은 개뿔, 항복!”
“항복이 문제가 아니라 얼른 도망부터 치라니까 등신아!”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하는 플레이어들.
랭커급의 플레이어는 대부분 자리에 남았다. 그들은 애초에 헤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그녀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반면, 올림포스라는 후광과 그로 인한 이득을 따지던 자들에게 목숨을 담보로 한 협박은 그 무엇보다 잘 통할 수밖에 없었다.
열을 셀 필요까지도 없었다.
보통 사람보다 신체적인 능력이 월등한 플레이어 들은 도망치는 속도가 눈부실 정도였으니까.
대략 다섯 정도를 세었을 무렵.
유원의 눈에는 도망칠 자들과 남을 자들이 구분되어 들어왔다.
“더 남을 거냐?”
유원의 물음에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과 다섯 명의 랭커들이 자신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우린 헤라께 목숨을 바쳤다!”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거라면 단지…….”
콰릉-!
이어진 소리는 천둥에 파묻혔다.
더 대답을 들을 가치도 없었다.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진 벼락의 비. 그것들이 남아 있던 랭커와 플레이어들을 휩쓸었다.
“그래, 그렇다면야.”
저벅, 저벅-.
유원은 까맣게 타들어 간 신전의 정원을 걸어갔다.
드넓은 헤라의 신전이 조용해졌다. 방금 전의 소란으로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고, 남은 건 유원뿐이었다.
그리고 유원은 이 신전에 볼일이 있었다.
끼이이-.
육중한 문을 열고, 하나 남은 인기척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처럼 보일 만큼 높은 천장. 밝은 하늘빛의 구름 문양과 붉은 선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진 신전의 벽면.
텅 비어 있는 신전의 안쪽으로 걸어간 유원이, 헤라의 자리였던 것으로 보이는 의자를 살폈다.
마치 스스로가 왕이라도 되듯.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마치 옥좌처럼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살피던 유원의 눈에 한 가지 자국이 보였다.
‘방금까지 있었다.’
팔걸이 쪽의 긁힌 자국.
손톱처럼 보이는 자국이었다. 하나, 헤라의 것은 아니었다.
짐승의 것처럼 보일 만큼 날카로운 자국이었다. 더군다나 생긴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은 것이었다.
“도망…… 은 아닐 테고.”
화륵-.
고개를 돌린 유원의 눈동자에 화안금정이 떠올랐다.
“또 이렇게 사라지겠다 이건가?”
매번 일이 틀어지면 자취를 감추는 녀석이었다.
하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렇지?”
“바앗!”
유원의 품 안에서 쏙, 단풍이 고개를 바깥으로 들이밀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
아틀라스와의 싸움에서 잔뜩 지쳤던 녀석이, 그때보다도 더 쌩쌩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오랜만에 잘 부탁한다, 레이더.”
“……?”
처음 듣는 단어인 듯 레이더가 뭐냐는 얼굴로 단풍이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화안금정만으로 자취를 감춘 어리석은 혼돈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단풍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피해다니는 건 여기까지다.’
저벅-.
유원의 걸음이 신전의 바깥쪽으로 향했다.
‘이젠…….’
[‘포식자’가 이빨을 드러냅니다.]유원은 속에 감추고 있던 포식자의 식욕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에서 찾아주마.’
* * *
아레스 신전에 뜻밖의 많은 인원이 찾아왔다.
올림포스로 향하던 헤라와 그녀를 따르던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두 아레스 신전으로 방향을 돌린 덕분이었다.
비좁은 신전에서는 급히 방을 구해 그들을 묵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레스가 없어 어수선한 신전에서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헤라께서는?”
“방에 계십니다만…….”
“만?”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십니다.”
헤라를 찾아온 그녀의 수하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그녀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온다…… 헤라클레스가 와…… 헤라클레스가…….”
며칠 전.
태양마차 위에서 연락을 받은 후부터 줄곧 지금과 같은 상태였다.
잔뜩 공포에 질린 반응.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걱정이 되어 온 자들은 나중을 기약하며 돌아갔다. 헤라는 온몸에 붉은 천을 두른 채, 방 안에서 벌벌 떨었다.
헤라의 구원.
방어와 회복에 관한 능력으로는 이 탑에서 손꼽히는 아이템.
그것을 몸에 두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헤라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방법이 없어.’
헤라클레스가 온다.
그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열두 과업을 마친 헤라클레스.
그는 전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는 그를 막을 장치나 힘이 없었다. 일은 벌어졌고, 가지고 있던 안전장치들은 모두 사라졌다.
헤라클레스와의 내기는 끝났다. 과업에 장난을 친 이상, 그 마무리 역시 깔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쿵-.
그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콰앙-!
흔들리는 땅.
신전의 바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라아아-!
헤라클레스.
모든 과업을 마친 그가, 결국 자신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