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50
* * *
“마, 막아!”
“상대는 한 명이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뒤쪽에서는 다음 녀석들 포지션 갖추고!”
상대는 한 명이다.
약하고 순한 양 떼가, 굶주린 공룡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숫자 하나만으로 공포를 이겨 내기에는 눈앞에 있는 공룡의 덩치가 너무나도 컸기에.
콰앙-!
곤봉을 휘두르자, 눈앞으로 달려들던 랭커들이 나가떨어졌다.
뒤이어 포지션을 갖추고 있던 원거리 스킬들이 헤라클레스의 머리 위로 퍼부어졌다. 화마가 헤라클레스의 몸을 휩쓸고, 거대한 압력이 위에서 아래로 가해졌다.
쿠구궁-!
짓눌려 움푹 아래로 내려앉은 땅.
그 속에 불길과 함께 휘말린 헤라클레스를 내려다보며 플레이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돼, 됐다!”
“무식하게 혼자 달려들더니만, 꼴 한번 좋…….”
“등신들아! 상대가 누군지 몰라?”
그때 들려온 호통.
“상대는 헤라클레스라고, 헤라클레스! 수백만 거인들을 학살한 괴물!”
쿵-.
움푹 내려앉은 구덩이로부터 거인족의 것이 아닐까 싶은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해치웠다느니 하는 헛소리는…….”
움푹-.
말을 잇던 랭커는 순간, 발밑이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잠시.
쿵-!
다시 한번, 아까의 진동이 땅 아래에서 울리고.
쿠과과과-!
땅이 움푹 내려앉으며, 수많은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그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따, 땅이!”
“으아아아-!”
“살려 줘! 나, 난 스킬이…….”
“비행 스킬 가진 사람! 어서!”
순식간에 전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헤라클레스는 두 발로 뛰어 땅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플레이어들과,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비행 스킬이 있는 랭커들.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금은 거기 잠시 내려가 있어라.”
저벅-.
헤라클레스의 걸음이 헤라가 숨어 있는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헤라를 지키는 몇몇 랭커들 외에, 남아 있는 인원은 모두 헤라클레스를 막기 위해 밖으로 나간 탓이었다.
벌컥-.
헤라클레스는 그 많은 방들 중, 가장 구석진 곳의 방문을 열었다.
한 평생 아름다움과 사치로 도배되어 있던 헤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방.
하지만 그곳이 정답이었다.
“……왔느냐.”
붉은 천으로 수놓아져 있는 방 안.
헤라는 그 안에서 헤라클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한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까.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녀는 최대한 그리 보이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가다듬고 있었다.
“왜 그랬지?”
저벅-.
헤라클레스가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헤라의 구원’이 몸을 속박합니다.]촤라라락-.
촤아-.
수천, 수만 가닥의 천들이 날아와 헤라클레스의 몸을 옭아맸다.
하나 그것도 잠시.
찌이익-.
그 무엇도 끊어 내지 못한다 알려진 헤라의 구원이, 헤라클레스의 완력에 뚝뚝 끊어져 갔다.
“분명 나와 약속했을 텐데.”
뚜벅-
지익, 지이익-.
너무나도 손쉽게 붉은 천들을 끓어 내며 뚜벅뚜벅 걸어오는 헤라클레스.
거인과 싸울 때를 제외하면 그 누구보다 온화하고 따듯하다 알려진 그가, 헤라의 눈에는 그 어떤 악귀보다 무서운 괴물로 보였다.
“……!”
구원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버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헤라클레스였다.
그것도 열두 과업을 모두 통과하고, 새로운 ‘신화(神話)’를 쓴.
저벅-.
“이 과업을 모두 마치면, 다 포기하기로 말이야.”
“오지 마라! 오지 마!”
헤라는 붉은 천에 마력을 더했다.
강철보다도 단단하고 거미줄보다도 질긴 천들이 헤라클레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 어떤 거대한 괴물이라도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방 안에서, 헤라클레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움직였다.
지이익-.
“그런데 왜 그랬지?”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하데스의 죽음.
왕좌의 탈환.
그리고 과업의 훼방까지.
헤라클레스가 치른 과업은 절대 정당한 내기가 아니었다.
“이런 짓만 하지 않았다면, 네가 뭘 하든 상관하지 않았을 거다.”
참으려고 했다.
가능하다면 피를 보지 않으려고. 최대한 평화롭게 이 싸움을 끝내려고.
그래서 처음부터 헤라클레스는 하데스와 헤라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켰다.
자신이 개입하는 순간, 이 싸움이 어디까지 커질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정당한 방법으로 왕좌에 앉으면. 나야 누가 왕이 되든 상관없었으니까.”
과업을 수행하기 전.
헤라가 자신을 찾아왔다.
“나와 내기를 하지 않겠느냐?”
내기.
한적한 숲에서 나무를 하던 헤라클레스는 그녀의 말을 들어 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어서였다.
“과업을 시작하는 거다.”
“열두 과업 말입니까?”
“그래. 만약 네가 그 과업을 모두 통과하면, 더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마.”
고민은 길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들고 있던 도끼를 내려놓고 곧장 과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중립을 지키던 헤라클레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입으로 그랬지. 진정 평화를 바란다면, 과업을 해내라고.”
지이익-.
붉은 천들이 넝마가 되어 찢겨져 나갔다.
거리가 지척까지 가까워졌다.
“내가 틀린 거였다.”
헤라클레스는 평화를 위해 때때로 피를 흘릴 필요가 있다는 걸, 이번 일로 깨달았다.
자신이 너무 큰 평화를 원했기에.
너무 많은 욕심을 냈기에, 올림포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유원이 아니었다면 정말 기간토마키아가 다시 시작됐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
그리고 헤라는 그런 헤라클레스의 물렁한 점을 노려 왔다.
“기간토마키아를 다시 일으키려 하지만 않았어도, 내기의 결과를 따라 여기서 멈추려 했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거인족을 끌어들이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헤라 역시 그런 헤라클레스의 역린을 알기에, 과업을 통해 헤라클레스를 먼저 제거하려 했던 것이고.
“그래도 덕분에 하나 배웠다. 때로는 폭력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는 걸 말이야.”
“오, 오지……!”
“세 번 참았으면 많이 참았다.”
부우우웅-.
쩌억-!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피를 뿌렸다.
“누가 호구로 보여?”
* * *
기름지고 날씨 좋은 땅에는 늘 사람이 복작이기 마련이었다.
헤라의 신전이 있는 77층이 바로 그런 세계 중 하나였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번화한 도시.
그 도시를 이루고 있는 건물들의 지붕 위로, 유원이 몸을 날렸다.
파앗-.
미끄러지듯 빠르게 발을 스친 유원이 다음 지붕 위로 향했다.
지붕 아래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풍경이 휙휙 지나쳐가고, 유원은 한 곳을 향해 전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추격을 이어 갔을까.
웅-.
대뜸 품 안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메시지였지만, 기다리고 있던 연락이었다.
이동을 멈추지 않은 채 유원은 품 안에서 키트를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헤라클레스 : 헤라는 처리했다.]자신보다도 헤라클레스가 먼저 일을 끝낼 줄이야.
‘하긴. 케로베로스 왕을 잡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한 팔이 다쳤다지만 케로베로스는 오래전부터 헤라클레스와는 상성이 그리 좋지 않은 괴물이었다.
더구나 케로베로스 왕의 위치는 하데스가 알려 주었다. 덕분에 헤라클레스는 빠르게 과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과업을 끝낸 직후 그는 헤라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이번 과업을 통해 헤라클레스가 얻은 건 두 가지였다.
‘이걸로 답답한 성격은 좀 고쳐졌으려나.’
첫 번째는 헤라클레스의 성격이었다.
정의로운 것과 어리석은 건 그야말로 한 끗 차이였다. 그리고 이때까지의 헤라클레스는, 거인족과 싸울 때를 제외하면 지나치게 소심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번 일로 헤라클레스는 무언가 결단을 내렸다. 아틀라스와의 싸움에서는 힘에 대한 무력감을, 그리고 헤라와의 내기에서 그는 단호함을 배웠다.
모두 헤라클레스에게는 필요했던 자극들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헤라클레스가 생각보다 일찍 신화를 얻었다.’
신화(神話).
천장을 뚫고, 신이 되기 위한 여러 조건들 중 하나.
열두 가지 과업을 모두 통과함으로써 헤라클레스는 그 조건의 하나를 충족했다. 그로 인한 성장은 아마, 이그드라실의 곤봉을 얻었을 때보다도 훨씬 가파를 것이다.
‘넌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
헤라클레스.
유원, 손오공과 함께 과거로 돌아올 후보로 거론되었을 만큼 막강한 하이랭커.
그의 성장은 과거로 돌아온 유원이 해결해야 할 숙제 중 하나였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어리석은 혼돈이 깔아 놓은 판 위에서 그 숙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
팟-.
어리석은 혼돈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턱-.
지붕 위를 달리던 유원이 돌연 아래로 내려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몇몇 유원을 힐끔거렸다 이내 관심을 거두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일쯤이야 77층의 플레이어들에게는 걸음마처럼 쉬운 일.
그리 신기하게 여길 것도 없었다.
저벅, 저벅-.
유원의 걸음이 아까보다 훨씬 느릿하게 움직였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가운데.
유원의 눈동자에 유독 환하게 들어오는 한 명이 있었다.
-기어이 계속 따라오겠다는 거냐?
인파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음침한 로브인.
유원이 녀석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입모양을 벌렸다.
당. 연. 히.
어리석은 혼돈은 더 이상 유원과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더 벗어나려 해도 유원이 그를 놓아 주지 않았다. 헤라의 신전에서 뒤늦게 빠져나온 게 실책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믿는 건 있었다.
-여기서 한 판 벌이면, 많은 사람이 죽겠군.
굳이 이 거리 한복판에서 멈춰 선 이유.
-그래도 괜찮겠나? 정의의 사도님.
그건, 어리석은 혼돈이 유원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유원은 이 탑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왜 그런 건지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목적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어리석은 혼돈은 유원이 무고한 거주민들을 희생시킬 리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정말 여기서 싸우려고?”
유원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유원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이른 시간.
인구밀집도가 높은 도시인만큼, 수많은 거주민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싸우면 저들이 말려들게 될 터.
“거주민까지 건드리면 관리자가 개입할지도 모르는데.”
저벅-.
유원은 주저 없이 어리석은 혼돈과 거리를 좁혔다.
“나야 뭐, 그렇게 되도 상관없고.”
어리석은 혼돈은 이곳의 거주민들을 인질 삼아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그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옭죄는 일이었다.
관리자.
탑 바깥의 존재들이 가장 경계하는, 이 탑의 실질적인 지배자들.
그들은 랭커나 플레이어들의 싸움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지만, 힘이 없는 거주민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만약 랭커나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가 자신이 다스리는 층의 거주민들을 공격한다면, 관리자들은 어김없이 제제를 가할 터.
심지어 그게 랭커도 아닌 이 탑의 바깥의 존재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더 큰 걸 잃는 건 네 쪽이다.’
어리석은 혼돈은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원은 그 갈등 끝에 녀석이 내릴 결정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관리자를 끌어들이는 건, 이 녀석들에게 천 년은 이른 결정이니까 말이야.’
사면초가(四面楚歌).
지금 어리석은 혼돈이 처한 상황에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시작은 마음대로였을지 몰라도 그 끝까지 마음대로일 수는 없었다. 싸움을 끝낼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은 이쪽에 있었다.
그리고 유원은 이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자-.”
척-.
유원의 걸음이 어리석은 혼돈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포식자’가 먹잇감을 발견합니다.]유원의 속에서 어리석은 혼돈을 향한 이빨이 꿈틀거렸다.
“어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