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54
* * *
천둥이 내려쳤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폭풍이 불었다.
캐멀롯의 위로 떨어졌던 것보다 더 큰 벼락이었다. 하나의 도시를 소멸시킬 정도의 힘이, 외신들을 까만 재로 만들었다.
보랏빛으로 변했던 세상이 잠시나마 노란빛으로 변했다.
눈앞에서 사라진 촉수들을 보며, 유원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일찍도 오는군.”
츠츠, 츠-.
하늘이 자신의 영역이라는 듯, 황금빛 전격을 온몸에 휘감은 제우스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한바탕 날뛰던 외신들 역시 잠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를 바라보던 어리석은 혼돈이 뒤로 한 걸음 주춤 물러났다.
-뭔가 잘못되었다 싶나 보지?
스사노오의 이죽거림에 어리석은 혼돈의 시선이 다시금 그에게로 향했다.
스사노오의 칼끝에서 붉은 꽃잎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검격들이 모이고 모여, 장미밭을 이루었다.
[폭풍만개]화아아악-!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칼날들이 어리석은 혼돈의 몸을 베어 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뿌리치려던 어리석은 혼돈조차, 이번만큼은 그리 쉽지 않았다.
“……!”
-그러게 감히 누구 앞에서 한눈을 팔아.
츠아아아-.
땅이 수만 갈래로 갈라지고, 바람과 꽃잎이 지나쳐가는 모든 것들이 베어진다.
그렇게 붉은 검들의 한가운데 선 어리석은 혼돈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턱-.
한바탕 검을 휘두른 스사노오는 쿠사나기를 어깨에 비스듬히 올렸다.
이제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유원에게서 공급되던 마력은 끊어졌고, 이제는 존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이래도 안 죽는 건가.
츠츠츠-.
어리석은 혼돈의 모습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죽지 않은 건지, 아니면 죽여도 다시 살아나고 있는 건지.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녀석을 죽일 수 없다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마력이 더 충분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제아무리 쿠사나기를 비롯한 삼신기가 손에 들어왔다 한들, 한 사람의 마력을 나눠 쓰는 이상 스사노오의 힘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폭풍만개]는 스사노오의 기술 중 가장 많은 마력을 소모해 사용하는 스킬이었다.그런데 그런 스킬로 고작, 이 정도 상처를 주는 데 그치다니.
-뭐, 어차피 이다음부터는…….
스르르-.
스사노오의 몸이 그림자가 되어 땅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저 괴물이 알아서 하겠지.
괴물.
저 하늘 위에 신처럼 올라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하이랭커.
천신, 제우스를 뜻했다.
콰르릉-!
제우스가 또 다른 벼락을 손에 쥐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제우스의 시선이 이내 어리석은 혼돈과 다시 마주쳤다.
스사노오의 스킬, 폭풍만개를 정면에서 얻어맞은 덕분인지 그는 아직까지도 몸을 다 원래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위험하군.’
저릿, 저릿-.
벼락을 손에 쥔 제우스의 모습에 어리석은 혼돈은 이 탑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큰 위협을 느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제우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는 게 보였다.
순간.
어리석은 혼돈의 몸 위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콰릉-!
치지, 치지지지-.
손을 앞으로 뻗은 어리석은 혼돈의 머리 위로, 거대한 촉수의 덩어리들이 고기 방패가 되어 나타났다.
아래로 떨어진 벼락에 검게 타들어 간 외신들.
하나 그 정도 고기 방패로는 어림없다는 듯, 제우스가 날린 벼락의 창끝은 다시금 어리석은 혼돈의 몸을 꿰뚫었다.
쿠릉-!
어리석은 혼돈을 관통한 벼락이 산맥의 귀퉁이를 부수고 땅에 떨어져 내렸다.
땅 아래로 추락한 어리석은 혼돈을 내려다보던 제우스는 고고히 허공을 밟고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하군.”
단 두 방의 벼락만으로 그 시끄럽던 전장을 조용하게 만든 제우스의 첫 마디였다.
그는 이내, 외신들과의 싸움으로 잔뜩 지친 유원을 보며 혀를 찼다.
“그게 대체 무슨 꼴이냐, 고작 이런 놈들한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말이지.”
“숫자?”
치익-.
콰릉-!
옆에서 느껴진 미세한 외신의 움직임에 제우스가 손을 뻗었다.
황금빛 전격의 물결이 다시금 산맥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한 무리의 외신들을 검은 재로 만들어 낸 제우스가 비웃듯 되물었다.
“그게 뭐가 문제란 거지?”
“…….”
이렇게 할 말이 없어진 것도 오랜만이었다.
확실히 제우스라면 이렇게 말할 만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제우스는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만큼은 이 탑의 그 누구보다도 능했다.
그런데다가.
‘완전 괴물이 다 됐군.’
치지, 치지지-.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제우스의 몸 안에서 황금빛 전격이 줄줄 새어 나왔다.
저 힘이 마음껏 뿜어져 나오는 순간, 대체 어찌 될까.
보통 이만하면 힘에 도취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달랐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힘이 제 것이었던 것처럼.
그의 눈빛은 전과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더군다나.
“그래. 지금부터는 뭘 해야 할지?”
제우스는 다행히도 힘만 믿고 날뛰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반격으로 어리석은 혼돈과의 싸움을 계획하고, 마지막 비장의 수로 제우스를 끌어들인 건 다름 아닌 유원이었다.
그렇다면 이다음까지의 그림도 분명 그려져 있을 터.
제우스는 힘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만큼은 자신보다도 유원이 더 뛰어나다 인정하고 있었다.
유원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그가 새로 얻은 힘을 믿고 미쳐 날뛴다면 이보다 다음을 볼 수 없었으니까.
“일단 시간부터 벌자고.”
“시간을 번다? 뭐가 또 있다는 뜻인가?”
“일단 그렇긴 한데…….”
유원의 시선이 힐끗, 무너진 산맥에서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으로 향했다.
“저 녀석이 더 싸우려 할지가 문제지.”
벼락을 얻어맞고 날아간 어리석은 혼돈.
유원은 그가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제우스라 한들, 그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유원을 비롯한 동료들조차 그를 잡는 데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막 자격을 얻고 풋내기 신이 된 제우스가 그를 쓰러뜨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화아아아-!
일순간, 먼지구름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외신들을 쏟아 내던 균열은 닫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더 커져, 탑에 더 많은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이는구나.”
다행히도. 그렇게 말을 중얼거린 제우스가 옅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
하긴.
제우스로서는 그토록 기대하던 상황이었다. 그는 아스가르드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부터 줄곧, 어리석은 혼돈에게 한 방 먹이는 걸 기다려 왔다.
그리고 지금.
“그럼 됐다.”
바로 그때가 온 것이다.
“지금부터는 네 마음대로 해라.”
파지지지지-!
유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우스의 몸에서 막대한 전격이 뿜어져 나왔다.
특별한 스킬을 쓴 것도, 공격을 하려 한 것도 아니건만 가까이 있던 유원이 다 뜨겁게 느껴질 정도의 전격이었다.
물론.
쩌억-.
그런 제우스의 힘에 호응하듯, 바깥과 이어진 하늘의 갈라짐도 더 커져 갔다.
‘생각보다 더 적극적이군.’
유원은 내심 어리석은 혼돈이 여기서 멈추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그는 많은 걸 잃었다.
기간토마키아를 다시 시작하려던 계획도 실패했고, 올림포스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헤라라는 카드도 잃어버렸다.
또한 유원과의 싸움으로 상당량의 포인트까지 사용한 상태.
그런 그에게 더 이상의 싸움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바앗-!”
유원은 어깨 위에서 씩씩거리는 단풍을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혼돈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역시 이 녀석 때문이겠지.’
어리석은 혼돈은 단풍을 노리고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유원에게 나쁜 건 없었다. 오히려 녀석이 더 싸우려 하면 할수록 유원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 주지.”
제우스는 점점 균열이 커져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전격을 불태웠다.
“대신-.”
치지지, 치-.
제우스의 손안에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한 벼락.
“저 녀석에게 한 방 정도는 꼭 먹여야겠다.”
저벅-.
제우스가 다시금 외신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제우스의 뒷모습에 그제야 유원은 지친 숨을 내뱉었다. 혼자 하는 싸움은 여기까지였다.
“후아-.”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겠어.’
천천히 멀어지는 제우스의 모습에 유원은 기대를 품었다.
회귀 이전, 그는 그토록 바라던 천장을 뚫지 못하고 신격을 얻는 데 실패했다.
그렇기에 유원도 신격(神格)을 얻은 제우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랭커들 중, 그는 어쩌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준비해 왔을 터였다.
올림포스의 왕. 기간토마키아의 승리자. 하늘의 주인.
그리고 천신(天神).
수많은 신화를 쓰고, 신이 될 준비를 해 온 자.
‘어디 구경해 볼까.’
유원은 근처에 떨어져 있는 바위에 앉고 팔짱을 끼며 구경 준비를 마쳤다.
팝콘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 * *
제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랏빛의 물결이 하늘을 뒤덮고, 균열 사이로 촉수들과 함께 처음 보는 종류의 기운들이 흘러 들어왔다.
고오오오오-.
그 물결들을 바라보는 제우스의 눈동자 속에 황금빛과 보랏빛이 공존해 뒤섞였다.
점점 그 규모가 늘어날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닌, 이해의 문제였다.
“이 탑에 별의별 놈들이 다 있다는 건 알았지만…….”
치지지-.
손안에 쥐어진 벼락이 꿈틀거렸다.
“위가 아닌 ‘밖’도 있을 줄이야.”
강렬한 적의와 반발.
제우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 저들은 절대로 자신들과는 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말하자면 이건 침략이었다.
그리고 지금.
“재미있구나.”
쿠궁, 쿠구구-.
제우스는 그 침략에 맞서고 있는 셈이었다.
쾅-!
제우스의 손을 떠난 벼락이 아래에서 위로 쏘아졌다.
하늘을 뒤덮는 황금빛의 전격.
그것은 순식간에 어리석은 혼돈이 갈라낸 균열을 집어삼켜 갔다.
그런데 그 순간.
우오오오오-!
그 균열 속에서 아까부터 들리던 울음소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쩌어억-.
거대한 고래가 입을 벌렸다.
벼락은 그 입속으로 들어가, 몇 번이나 천둥소리를 터뜨렸다.
하지만 그뿐.
쿠르르르-.
천둥은 곧 멎어 들었다. 제우스는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녀석을 바라보았다.
“대어로구나.”
고래? 아니면 아귀?
온갖 물고기를 섞어 놓은 듯한 괴물이었다. 더 특이한 건 눈과 코가 없이 가지고 있는 게 오직 거대한 입뿐이라는 점이었다.
잔챙이들만 내뱉던 균열이, 어느새 하나둘 진짜 큰 놈들을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장에 맞춰.
파지, 파지지-!
쿠릉, 쿠구구-.
제우스의 주위로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윽-.
제우스의 시선이 이 난잡한 전장 속에서 태연히 앉아 싸움을 구경하기 시작한 유원에게로 향했다.
참으로 건방지다 싶었다.
제 할 일은 모두 끝냈다는 듯,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기다니.
“이제부터는 내 차례라 이거냐.”
하지만 제우스는 그런 유원을 가소롭다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이 탑에서 자신이 인정하는 유일한 존재였고.
지금까지 혼자 이 판을 만들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었으니까.
“거기서 똑똑히 보고 있거라.”
콰릉, 콰르르릉-!
제우스의 주위로 떠오른 수백, 수천 개의 벼락들.
“이 내가 있는 한, 우리는 절대 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제우스가 지닌 가장 강력한 스킬.
[천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