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55
* * *
‘굶주린 식탐. 저 녀석도 나왔나.’
유원을 하늘을 덮은 거대한 외신을 바라보았다.
제우스의 벼락을 집어삼킨 녀석.
굶주린 식탐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오래전, 유원이 있던 시대에서만 수백 명의 랭커를 먹어 치웠던 외신이었다.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름 있는 외신들이 다수.
‘어지러운 교만, 늪을 기는 고통, 우울에 빠진 혼란…… 생각보다 이름 아는 녀석들이 많이 나왔군.’
어리석은 혼돈이 정말 작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힘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균열을 만들어 다른 외신들을 끌어들인 것이겠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나 들여올 줄이야.
물론.
거기에 대한 제우스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시간을 벌라고 했더니만…….”
쿠르르-.
유원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천벌.
제우스의 상징인, 전격 계열 최강의 스킬.
그걸 사용한다는 건, 힘이나 체력을 조절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또는.’
콰르릉-!
시작을 알리는 천벌.
‘그만큼 자신이 있다거나 말이지.’
어차피 지금은 손 놓고 구경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친 체력과 바닥난 마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면, 지금은 손을 놓고 있어야 했다.
“바아아-.”
그게 불만이라는 듯.
단풍이 유원의 볼을 잡아당겼다.
어서 빨리 나가서 싸우라며. 자신을 재촉하는 단풍을 힐끗거리며 유원이 입을 열었다.
“그만 해라.”
“브아-!”
“아, 좀 쉬자.”
다른 때면 모를까, 지금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쉬고 싶었다.
콰르릉-!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빛의 소나기.
그 광경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유원이 눈을 동그렇게 떴다.
“지금은 안 움직여도 될 것 같으니까.”
* * *
콰우우-!
전격의 소나기가 외신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균열을 향해 뿜어지는 전격의 비. 그것은 앞서 나타났던 거대한 입을 향해 쏘아졌다.
콰우우우, 콰르릉-!
굶주린 식탐이 전격의 폭풍에 휩쓸렸다. 처음에는 그 폭풍마저 집어삼킬 듯 입을 벌리던 녀석은, 끝내 그 식욕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쩌저저, 쩡-!
온몸이 벼락의 소나기에 난도질되고, 폭풍에 휘말린 몸뚱이는 까맣게 타들어 갔다.
더 이상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지경.
그리고 그 폭풍에 휘말린 건, 비단 굶주린 식탐뿐만이 아니었다.
치이이, 퍼석-!
콰릉, 쿠구구궁-.
[천벌]은 제우스의 시야 닿는 모든 것들을 휩쓸었다.마치 자연재해와 같은 범위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태우고 파괴했다.
아니.
정확히는,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 아래의 모든 것들을.
치지, 치지지지-.
황금빛의 눈을 반짝이며 제우스는 까만 재가 되어 버린 외신들을 바라보았다.
몇몇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처음 목표였던 굶주린 식탐은 완전히 형체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지만, 그 주변으로 까만 재들 사이로 몇몇, 숨이 붙은 존재들이 섞여 있었다.
어지러운 교만.
늪을 기는 고통.
모두 어느 정도 이름이 붙은 외신들이었다.
제우스가 숨이 붙은 외신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손에서 뿜어져 날아가는 전격.
콰우웅-!
그것을 마지막으로 제우스는 남아 있는 외신들의 숨통을 끊어 냈다.
불과 몇 분이었다.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나타났던 외신들을 청소하는데 걸린 시간은.
유원은 이마에 땀방울 몇 개를 흘리고 있는 제우스를 올려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유원이 앉아 있는 자리로는 천벌의 영향이 조금도 미치지 않은 채였다.
평소와는 달리 팔짱까지 낀 채 싸움을 구경한 탓일까.
유원은 저도 모르게 전지적 랭킹 관리국 시점이 되어 있었다.
‘랭킹 3위…… 아니, 2위?’
천벌을 통해 확인한 제우스의 힘은 유원이 보아 온 하이랭커들 사이에서도 손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현 시대의 하이랭커들뿐만이 아니라 미래를 통틀어도 마찬가지였다.
아스가르드의 왕이자, 랭킹 2위의 하이랭커 오딘.
어쩌면 현재 제우스의 실력은 그와 필적할지도 모를 정도로 보였다.
“진짜 괴물이 됐군.”
저벅-.
유원의 시선이 잿더미가 된 땅을 걸어오고 있는 어리석은 혼돈에게로 향했다.
꽤 비장한 발걸음이었다. 잠시간 앉아서 쉬고 있던 유원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까지 갈 생각이군.”
제우스의 힘을 보고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아마 진작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혼돈은 굳이 자신들의 앞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는 건.
여기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바앗-.”
스으-.
어리석은 혼돈의 팔이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균열 속에서 다시금 외신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촤르르르-.
꾸득, 꾸드드-.
잠시 옅어졌던 보랏빛의 하늘도 다시 색이 짙어졌다.
한 차례 천벌을 사용해 세상을 휩쓸었던 제우스의 미간자리가 조금씩 구겨졌다.
“질기구나, 질겨…….”
“난 분명 시간만 끌라고 했다.”
제우스는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헤르메스의 발걸음을 이용해 위로 뛰어오른 유원이 제우스에게 다가왔다. 조금 쉰 덕분인지 얼굴색이 아까보다 나아 보였다.
물론, 제우스는 그런 유원의 도움이 마냥 반갑지 않았다.
“넌 계속 쉬어도 상관없다만.”
그의 입장에서 완전히 체력을 회복하지 않은 유원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몸은 알아서 지킬 테니 걱정 마라. 어차피 너 도와주려고 싸우는 것도 아니니까.”
유원은 단지 이기려고만 싸우는 게 아니었다.
이 싸움은 아우터와의 1차전이었다. 그리고 이 탑 바깥의 존재들은 단풍의 배를 채우고, 녀석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어리석은 혼돈이 단풍을 노리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단풍에게 시간과 노력을 쏟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만한 기회도 없지.’
쩌억, 쩍-.
곳곳에서 입을 벌리는 포식자들.
[‘포식자’가 ‘굶주린 식탐’의 잔해를 포식합니다.] [‘포식자’가 ‘늪을 기는 고통’의 잔해를 포식합니다.] [‘포식자’가 ‘우울에 빠진 혼란의…….] [성장률이 1.02% 상승하였습니다.] [성장률이 0.89% 상승하였습니다.] [성장률이…….]이미 다 죽어서 시체조차 찾기 어려운 잔해들이었다.
그 때문인지 제법 이름 있는 녀석들의 시체조차 성장률은 그리 올려 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물량이 많기 때문일까.
포식자가 시체가 된 외신들을 모두 집어삼키자, 성장률은 7퍼센트가 넘게 오르고 부족해졌던 마력까지도 제법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세 자릿수가 넘어간 스탯의 추가 상승은 꽤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전투 상황에서 1스탯의 상승은 바닥났던 마력을 반절 가까이 회복시켜 줬다.
그리고 그게 바로 유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유였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다시 차오른 마력.
화르륵-.
그와 동시에 유원의 눈동자에 다시 화안금정의 힘이 깃들었다.
어리석은 혼돈과 유원의 눈이 마주친 건 바로 그 직후.
“다시 빼앗아 와라.”
새로 투입된 외신들을 향해 어리석은 혼돈이 명령을 내리고.
쿠릉, 쿠르르-.
제우스의 주위로 또다시 한 다발의 벼락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다시, 충돌이 시작되었다.
* * *
[‘우라노스의 심장’이 벼락을 생성합니다.]파지지지-!
손안에 창이 쥐어졌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치고, 꽤 크고 멋들어진 형태의 창이었다.
비록 눈앞에 있는 제우스의 것에 비하면 초라할지 몰라도.
쿠르르르-.
유원의 창은, 두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쾅-!
손안에 쥐어진 벼락이 폭발음을 뿜어내며 날아갔다. 촉수를 휩쓸고 날아간 창이 구름에 구멍을 만들었다.
“이젠 제법 쓸 만하게 만드는군.”
유원의 벼락을 본 제우스의 평가.
싸움이 시작된 이후, 내내 유원의 벼락을 못마땅해 하던 그였다.
처음으로 나온 칭찬. 그만큼 벼락을 만들어 내는 유원의 숙련도가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템의 도움을 받고도 그 정도면, 아직 한참 부족하다.”
“그럼-.”
콱-.
유원의 손안에 검은 창이 하나 잡혔다.
“이건 어떠냐?”
부웅-.
손끝에서 날아간 창이 제우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 순간.
투화악-!
제우스의 등 뒤로 손을 뻗던 어리석은 혼돈의 어깨에, 니르가 박혔다.
[‘니르’가 완전히 시동되지 않았습니다.] [불완전한 시동으로 회수가 늦어집니다.]불과 몇 분 전에 회수되었던 니르.
유원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던졌다.
이런 전장에서 제대로 된 시동을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니르를 얻어맞은 어리석은 혼돈은 잠시 휘청거리더니 이내 다시 유원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콰웅-!
눈앞을 가로막는 전격의 기둥.
어리석은 혼돈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어, 강제로 길을 열어젖혔다.
“그새 정이라도 든 겁니까?”
“아직은 햇병아리라서 말이지.”
제우스는 자신에게 어리석은 혼돈을 맡기고 다른 외신들과 싸움을 시작한 유원을 힐끗거렸다.
“조금 더 키워 볼 생각이다.”
제우스는 지금 당장의 유원을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었다.
현재 이 탑에는 유원보다 강한 하이랭커가 얼마든지 있었다.
당장 자신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도 그랬고, 손오공과 오딘 등등 10위권 안쪽의 하이랭커들 전부가 유원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게 5년 뒤, 10년 뒤라면?
유원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제우스로서도 쉽게 짐작이 되질 않았다.
“비키지 않겠다면-.”
화아아-.
어리석은 혼돈의 손을 타고 보랏빛의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강제로라도 비키게 만들어 주마.”
“할 수 있다면 말이지.”
쾅-!
제우스와 어리석은 혼돈이 충돌했다.
몇 번이고 벼락에 얻어맞아 지져지고, 소멸되는 것처럼 보이던 어리석은 혼돈은 끝내 죽지 않았다.
‘환상 같은 건가.’
몇 번이나 죽여도 되살아나는 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설령 불사의 힘을 지닌 제천대성이라 할지라도 상처는 입고, 결국에는 지쳐 쓰러지기 마련.
분명 이기고 있었건만, 싸우면 싸울수록 제우스는 이상하게도 깊은 늪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으으-.
그 순간.
제우스의 눈앞으로 보이던 모든 시야가 사라지고, 순간 눈앞으로 흐릿한 인영이 나타났다.
검은 머리와 수염.
자신을 꼭 빼닮은 남자.
“크로…….”
크로, 뭐였더라.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공포감이 가슴에 꿈틀거렸다.
그러던 때.
“-세, 천…….”
저 멀리 어디선가.
작지만 우렁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화아아-.
눈앞을 가렸던 보랏빛 안개와 함께, 남자의 모습이 사라진 건 그때였다.
그러자, 방금 전에 들렸던 희미한 목소리들이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
“천세, 천세, 천천세!”
“와아아-!”
아직도 거리는 꽤 멀었지만.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다수의 인기척들.
제우스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
그는 지금에 와서야 유원이 왜 시간을 끌라고 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네 녀석이 기다리던 게 이거였나.”
자신들의 소교주를 돕고자, 저 멀리서 몰려들어오고 있는 천마신교의 교인들과-.
“저쪽이다-!”
“피 냄새가 난다?”
“좀 다른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싸움이다-!”
싸움이라면 환장을 하는, 이 탑에서 가장 전투적인 종족까지.
천마신교.
그리고 마왕.
두 개의 길드가, 외신과의 싸움을 위해 자리에 도착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