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7
* * *
쿠르르르-.
쾅-, 쾅-!
불길이 휩싸인 동굴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탈출구를 버티고 서 있던 유원과 하르간은 서둘러 무너지는 동굴에서 멀리 벗어났다.
“후우우-.”
꽤 긴 시간 동안 전격을 뿌려 대며 싸운 하르간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체력적인 문제였는데, 마나가 바닥났을 뿐이지 크게 지친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냐?”
“안 괜찮을 리가 있나.”
하르간은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들어 유원을 올려다보았다.
자신과는 달리 유원은 별반 지쳐 보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직 힘이 넘쳐 보이는 모습. 실력도 실력이지만 체력도 대단하다 싶었다.
“넌 괜찮냐?”
“뭐가?”
“천 명이나 죽였다, 우리.”
그 말에 유원은 바닥에 앉아 있는 하르간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지쳐서 주저앉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일련의 죄책감 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 본 게 처음일 테니까.’
하르간은 전쟁을 겪어 보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를 죽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게 설령 이리들과 같은 죽어 마땅한 족속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하르간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살인, 납치, 강탈, 노예 시장. 모두 이리들이 돈을 버는 방법들이다.”
이리 무리는 1층의 골칫거리였다. 그들은 신규 플레이어를 비롯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을 사냥해 가진 아이템을 빼앗고, 그들의 목숨을 갈취했다.
또한, 외모가 출중한 플레이어들의 경우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납치해 노예 상에 팔아넘기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야말로 해충과도 같은 집단.
“그놈들 하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 열 명을, 백 명을 구할 수 있다.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지?”
“그래도…….”
“어설픈 죄책감에 주저앉아 버리면 너는 편할지도 모르지.”
유원의 말에 하르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표정.
잠시 멍하니 있던 하르간은 털레털레 고개를 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로 알게 된 게 있다.”
“뭘?”
“넌 보기보다 혓바닥이 길다는 거. 머리도 좋고 말이지.”
“칭찬이냐?”
“그래. 칭찬이다.”
유원은 어느새 씩 웃고 있는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생각한 거였지만 하르간은 꽤 정신력이 강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죄책감과 후회로 얼룩져 있던 하르간의 얼굴이 고작 말 몇 마디에 좋아진 것을 보니.
“넌 참 정의로운 놈이다. 피곤해지기 딱 좋게 말이지.”
“그러는 넌 착한 것과는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지. 보기와는 좀 다른데?”
“다르다니?”
“얻을 것도 없으면서 먼저 나서서 이리 무리를 정리하는 거, 쉽지 않은 일이니까. 튜토리얼 때도 그랬지만 넌 나보다 훨씬 큰 걸 생각하고 움직인다.”
유원을 바라보는 하르간의 눈빛이 달라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걸 가리켜 대의(大義)라고 배웠다.”
대의라니.
낯 간지러운 말이었다.
유원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한 가지 틀린 말이 있다.”
“뭔데?”
“얻을 게 없기는 왜 없지?”
바스락-.
유원의 손 안에 두툼한 종이봉투가 흔들렸다.
“이렇게 많은데 말이지.”
봉투를 본 하르간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잊고 있었던 사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건 바로 이리들이 빼앗은 아이템을 암상에 팔아 번 포인트였다.
“그거…….”
“나눠 가질 거냐? 이번 일은 네 도움도 있었는데.”
“끙…….”
앓는 소리와 함께 하르간은 고개를 숙였다.
고민하는 듯한 반응.
슬쩍슬쩍 눈을 굴린 하르간의 시선은 유원의 손에 있는 봉투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눠 주라.”
모기처럼 기어가는 목소리.
“그럴 줄 알았다.”
씩 웃어 보이는 유원의 반응에 하르간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이리들이 모은 포인트는 신규 플레이어들을 죽여서 빼앗은 것들. 비록 돌려줄 주인은 없었지만 하르간은 그런 돈을 취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유원은 봉투의 입구를 열어 액수를 세어 보려다 말했다.
“아, 그리고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볼 거?”
“그래. 네가 나 다음이었지? 튜토리얼에서.”
“그랬지.”
하르간은 그런 걸 왜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갈등하던 유원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보상이 뭐였냐?”
* * *
“왜에에-!”
쾅-!
상의 모서리가 부서졌다. 올라와 있던 술병과 음식들이 바닥에 쏟아지고, 한순간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대체 왜 연락이 안 되는 거냐?”
한순간 화를 참지 못해 주먹을 내리쳤던 아가멤논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제아무리 늦은 밤이라지만 장소는 술을 파는 주점.
지금부터 할 말은 이런 장소에서 너무 큰 소란을 떨며 언성을 높일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연락을 넣어 놨는데…….”
“무운천이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거냐?”
“메시지를 넣어 놨으니 곧 응답이 올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아가멤논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겨우 화를 억누른 그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 눈으로 화를 뿜어내며 물었다.
“언제냐, 이 말이다.”
“그, 그건 저도 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니고서야 그 자식이 감히 우리 돈을 빼돌려 달아나진 않았을 텐데…….”
이리들이 올림포스에 가져다주는 포인트는 상당했다.
튜토리얼이 열릴 때마다 한 번씩이었지만, 그들이 가져다주는 포인트는 수십에서 많게는 백만 포인트에 달할 정도.
그 정도 포인트는 아레스 지파의 자금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리 무리는 아가멤논이 1층에 거주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흔적은 찾아봤나? 무운천이 누굴 만났는지, 어딜 갔는지?”
“이미 무운천뿐만 아니라 연락망을 통해 이리들의 흔적을 찾는 중입니다. 아마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놈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찾아내라. 그놈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다 끝이란 말이다.”
그렇게 한바탕 으르렁거리던 아가멤논은 다시 술을 따랐다.
취기는 마나로 날려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취하지 않고서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쯤 지났을까.
“아, 아가멤논님!”
주점 안으로 아가멤논의 수하 한 명이 달려들어왔다.
급한 반응에 아가멤논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어쩌면 무운천을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찾았나?”
“차, 찾긴 했습니다만…….”
“만?”
수하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가멤논은 급히 마나를 일으켜 취기를 날려 보냈다. 수하는 아가멤논의 시선을 피해 눈을 굴리고는 플레이어 키트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뭐…….”
무너진 동굴과 함께 온통 까맣게 불탄 시체들이 보였다.
“뭐냐, 이건?”
“이리들…… 입니다.”
“이리들? 이게 다?”
상당한 숫자.
전부 합치면 족히 천 단위는 되어 보였다. 그만한 숫자라면 올림포스가 파악하고 있는 이리들이 거의 전부 다 모인 숫자였다.
“그, 그럼 무운천도…….”
“아마 이 안에…….”
아가멤논의 눈알이 뒤집어졌다.
그는 마지막 인내심을 쥐어짜, 소리를 억눌러 물었다.
“수금액, 수금액은?”
“…….”
대답이 없었다.
이내.
“으아아아아-!”
아가멤논은 목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 * *
숙소로 돌아온 유원은 봉투를 열어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384,000포인트]무려 384장.
절반을 하르간에게 배분해 주었는데도 이 정도가 남았다.
‘어지간히도 해 먹었네.’
38만 포인트라면 랭커들이나 겨우 만져 볼 만한 금액이었다. 이 정도 금액이면 랭커들이 사용하는 아이템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은 없겠네.”
유원은 봉투를 인벤토리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스가르드 상단에 달려가 이걸 포인트로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올림포스 측에서 유원이 이리들을 소탕한 걸 눈치챌 가능성이 있었다. 1층에서부터 그렇게 복잡하게 얽히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이 돈이면 흑신석의 뼈대로 쓸 아이템의 재료를 구할 수도 있다. 아직 세부적인 재료를 사기에는 포인트가 부족하긴 하겠지만…….’
유원은 두둑하게 모인 포인트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제작을 마칠 수도 있겠어.’
흑신석은 현재 유원이 가진 아이템들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올림포스의 3주신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그 아이템이 지닌 힘은 유원이 알고 있는 아이템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였던 것이다.
비록 지금은 은신과 마나의 속성 변화가 전부인, 그런 아이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퀘네에의 조각이 가진 진짜 가치는 그런 게 아니지.’
지금쯤이면 아마 퀘네에의 조각은 그 가치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대장장이의 손에서.
“문제는…….”
유원은 숙소에 있는 침대에 드러누워 인벤토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속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알이 만져졌다.
인벤토리에서 꺼낸 알은 새하얀 바탕에 보랏빛의 불규칙적인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의 알]# ?의 알이다. 누구의 알인지, 무엇이 나올지, 어떻게 해야 부화할지 모두 알 수 없다.
# 부화율 : 0.00%
참으로 모호한 설명.
‘이걸 어디서 쓸지 모르겠다는 건데.’
설명이 불분명한 아이템은 더러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 아이템이 보통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들다 만 제작형 아이템의 경우였다. 탑의 무수히 많은 신비를 경험한 유원조차도 ‘알’의 형태를 띤 아이템이 이처럼 표시된 건 본 적이 없었다.
‘이 알은 튜토리얼 공략 보상이다. 그것도 가장 높은 기록으로 얻은.’
유원은 알을 손 안에서 굴리며 이리저리 살폈다.
‘하르간이 받은 아이템은 뇌왕수(雷王手). 랭커들이 사용하는 아이템 중에서도 꽤 상위 랭크의 아이템이다. 그런 걸 보면 이것도 보통 물건은 아닐 건데…….’
아마도 최소한 흑신석에 준하는 아이템일 터.
애초에 키메라 제작자를 처치하고 얻은 히든피스의 보상이 흑신석이라면 ?의 알은 그보다 더 나은 아이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알은 무려 67만 포인트에 달하는 공헌도로 튜토리얼을 통과한 보상이었으니까.
“도통 알 수가 없으니.”
유원은 복잡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주먹만 한 작은 크기.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체의 알.
불규칙한 보랏빛의 문양.
그리고…….
‘문양?’
유원은 침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손바닥 위에 있는 알에서는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보랏빛의 문양은 분명, 처음 알을 확인했을 때는 없던 것이었다.
지끈-.
머리가 욱신거렸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 떠오른 기억은 빠르게 선명해져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
아니, 어쩌면 아주 먼 미래.
그때에 유원은 이런 불규칙한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
“아우터 갓…….”
그 말을 중얼거린 순간.
[‘?의 알’이 당신에게 인사합니다.]알이, 말을 걸어왔다.
화르륵-.
유원은 붉게 변한 눈동자로 손바닥 위의 알을 바라보았다.
“너……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