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71
‘시계태엽이 왜?’
움직이기 시작한 초침을 보며, 유원은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시계태엽은 이미 힘을 다한 아이템이었다. 크로노스가 희생되고, 그 안에 담겨져 있던 마력이 모두 소모되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차마 버릴 수 없어 가지고 있었을 뿐,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물건인데.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다시 힘이 돌아왔다는 뜻.
유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스템을 이용했다.
[망가진 ?의 ?]# 힘을 다해 망가진 ?이다. ?가 여러 동료와 함께 힘을 합쳐 만들어 냈다.
# ? 가 ? 할 ?.
대부분이 물음표로 표시되어 정보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
하지만 어쨌거나 시스템으로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시계태엽이 시스템이 인정한 ‘아이템’이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왜……?”
-뭐가 왜입니까?
유원은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새하얀 빛무리 가운데, 손톱만 한 크기의 작은 요정이 날개를 파닥이며 날고 있었다.
심부름꾼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당신이 불러 놓고서는.
“내가?”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유원은 심부름꾼을 찾았다. 단지 시계태엽 때문에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지막에 말이 조금 흐려져서 취소된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
유원은 손안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계태엽을 내려다보았다.
‘나중에 알아봐야 하나.’
시스템에 등록된 걸 보면 시계태엽이 어느 정도 힘을 찾은 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계태엽이 작동을 시작한 이유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무엇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스윽-.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 다시 시계태엽을 집어넣었다.
일시적인 작동일지라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우선, 목적지를 찾아가야 했다.
“탈 것이 필요하다.”
유원이 큰손임이 알려져 있어서일까.
심부름꾼은 두 손을 모아 비비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예, 예. 잘 찾아오셨습니다. 탈 것이라. 탑승감, 하차감, 승차감, 속도. 어떤 걸 원하시는지요?
“속도. 가장 빠른 걸로.”
-비용은 100포인트부터 시작해서 1,000포인트, 10,000포인트까지 다양합니다.
“가장 빠른 걸로.”
반복된 대답.
심부름꾼은 서둘러 탈 것을 찾았다.
아다만티움을 구할 때 유원이 심부름꾼과 가격을 협상한 건 그들에게 꽤 유명한 이야기였다.
뒤에서는 포인트도 많으면서 짠돌이 기질이 강하다느니 하며 험담을 해도, 정작 눈앞에 있을 때에는 이만한 큰손도 없었다.
일 분 남짓한 시간.
유원의 인내심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심부름꾼이 물건을 내놓았다.
키히히힝-!
-바로 이겁니다! 길드 ‘하늘’에서 출시했던 하늘의 천마! 이제는 그 명맥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여기 있다.”
[10,000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유원은 서둘러 포인트를 지불하고는 눈앞에 나타난 말 위에 올라탔다.
두 개의 하얀 날개를 펼친 천마는 아스가르드에서도 애용하는 품종이었다.
그중에서도 길드 하늘의 천마는 날개를 가진 천사들마저 추월한다 알려져 있었다.
레플리카 버전의 태양마차나 아스가르드의 함선처럼 다수를 태울 수는 없지만 속도 면에서는 몇 배나 빠를 터.
지금 유원에게는 꼭 필요한 탈 것이었다.
‘이것도 그 녀석의 계획인가.’
단풍은 어리석은 혼돈의 분신을 먹어치웠다. 어리석은 혼돈의 계획은 틀어졌고, 녀석은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크로노스는 그것의 일부.
그렇다면 녀석이 원하는 건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키히히힝-!
고삐를 움켜쥐며, 유원이 천마의 방향을 틀었다.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친다.’
* * *
슈아아아-.
하늘 위에서 황금빛의 빛줄기가 아래로 떨어졌다.
제우스가 크로노스의 목을 움켜쥔 채, 그를 땅 아래로 처박았다.
아니.
처박으려고 했다.
[시간 정지]우뚝-.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두 사람이 멈추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가속하던 속력에 대한 제동 거리는 한 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 정지.
멈출 수 없는 시간을 강제로 잡아 두는, 크로노스의 스킬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순간.
스윽-.
크로노스가 제우스를 향해 손을 뻗어 왔다.
츠팟-.
황금빛의 전류와 함께 제우스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십여 걸음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난 제우스는 앞으로 손을 뻗던 크로노스가 그 자세 그대로 멈추어 있는 걸 발견했다.
“싸울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
“네가 보고 있는 대로이지 않겠느냐.”
없다는 소리였다.
관리자를 죽였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크로노스는 제우스와의 싸움을 조금씩 피하며 시간을 끄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끝낸 사람처럼 말이다.
스윽-.
크로노스가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과 죽어 가는 자들의 비명 소리.
수십 개의 길드가 모였음에도 싸움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오딘인가.”
눈앞에 있는 제우스도 그렇고, 새로 나타난 오딘도 그렇고.
둘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몇 개의 거대 길드라 해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들. 더군다나 오딘이 공문을 내린 탓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은 수의 길드가 모이기도 했다.
“대처가 좋았군.”
원래였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길드가 모였을 터.
그랬다면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보다 더한 광경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아마.
“김유원이라는 그 녀석 때문인가.”
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포세이돈의 기억으로는 랭킹도 그리 높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 몸을 차지한 크로노스조차, 김유원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계속해서 어리석은 혼돈의 대계를 방해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런 경우일지도 몰랐다.
“뭐, 덕분에 생각보다 판이 작아졌다지만 그래도 이것도 나쁘지는 않구나.”
“뭔가 꾸미는 건 확실한 모양입니다.”
“벌써 너도 알고 있지 않으냐?”
“바깥의 벌레들 말입니까?”
파지지지-!
제우스의 손안에서 전격이 터져 나왔다.
잡담은 여기까지였다.
“얼마든지 오라고 하십시오.”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
저 하늘이 열리고, 바깥의 존재들이 안으로 들어오던 그날.
제우스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막아 냈다.
“모두 쓸어버릴 테니.”
콰웅-!
손에서 뿜어진 전격이 크로노스를 휩쓸었다.
크로노스의 손끝에서 뻗어진 힘이 제우스의 전격을 멈춰 세웠다. 잠시간 그림처럼 정지했던 전격은 크로노스의 마력에 힘의 방향이 반대로 돌아갔다.
“돌려 주마.”
콰우웅-!
반대로 제우스의 몸을 휩쓰는 전격.
그리 큰 충격은 없었다.
자신의 힘을 반대로 돌려받은 제우스는 작은 상처 하나도 없었다.
물론, 크로노스 역시 애초에 이런 걸로 제우스가 상처를 입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너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크로노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도 이렇게 눈을 감으면 여전히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너를 기억한다.”
처음 눈을 뜨기 전.
고저가 없는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크로노스는 두려움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다.
“너는 나의 자식이다.”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눈을 떠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크로노스가 본 거라고는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로브가 전부였다.
어리석은 혼돈.
탑 밖에서 본 그는, 감히 크로노스의 머리로는 받아들이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손을 뻗으면 자신에게로 닿을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일해라.”
욱씬-.
지끈거리는 머리.
한참의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그동안 정작 세상은 멈춰 있었다. 그걸 깨달은 크로노스는 방금 전까지 하던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지.”
그저 이 세계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뿐.
크로노스는 자신을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서 있는 자신의 핏줄을 바라보았다.
텅 비어 있던 눈동자에 조금이지만 힘이 돌아왔다.
단순한 변덕일까.
아니면 이대로라면 너무 오랫동안 제우스에게 붙잡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을까.
“따라와 볼 테냐?”
크로노스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제우스를 향해 물었다.
“네가 무엇과 싸우려는 건지를 확인하러.”
* * *
1층의 끝.
천장이 보이지 않는 높이의 검은 벽은, 탑의 끝을 의미하는 경계선이었다.
플레이어라면 한 번쯤 호기심에 가 볼 법하지만, 보통은 잘 가지 않는 장소.
하지만 역사에서도 드물게도, 그 세상의 끝이 무수히 많은 인파로 복작거렸다.
“많이도 모였네.”
“메시지 때문인가.”
“그런 걸 보고 어떻게 안 모이겠어?”
“하긴.”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하나.
탑 곳곳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 들. 그리고 랭커들에게 동시에 전달된 메시지 때문이었다.
[1층의 세상 끝에서 관리자의 힘을 얻을 수 있다.]세상 끝.
그것이 이 벽을 의미하는 것임을 모르는 플레이어는 아마 없을 터였다.
그들은 모두 1층으로 내려 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도시를 피해 세상 끝으로 향했다.
그간 아껴 두고 있던 포인트를 소모해 비싼 이용료를 내고 태양마차 같은 이동 수탄을 탔고, ‘관리자의 힘’이라는 기연이 자신의 것이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같은 생각을 한 플레이어들이 이미 우글거리는 상태.
“관리자의 힘을 얻기만 하면, 나도 인생 역전이지.”
“랭킹은 몇 위까지 올라갈까?”
“말도 마라. 난 얼마 전에 떨어졌잖아. 그것도 엄청.”
“맨날 술이나 처먹고 돌아다니는데, 그럼 안 떨어지겠냐?”
“자기소개하고 있네.”
서로 안면이 있는 랭커들의 대화였다.
관리자란 그들의 꿈이나 다름없는 최상위권의 하이랭커들마저도 우러러보는 존재들.
그런 관리자의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단번에 랭킹이 두 자릿수 이상으로 상승할 게 분명했던 것이다.
“근데, 그래서 관리자의 힘이라는 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러게. 관리국에서 돌린 메시지니 거짓말은 아닐 건데…….”
관리국의 메시지가 거짓일 리 없다. 그것은 지금껏 수백 년 동안 탑에 거주해 온 플레이어들에게는 절대 변하지 않으리라 여겨 온 약속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믿었다.
이곳에 자신들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있다고.
“조금 기다려 보면 뭐가 있긴 있겠지.”
“이벤트성 시험이라든가.”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일까.
쩍-.
수만 명의 랭커와 플레이어가 모였건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다.
쩍, 쩌적-.
이 탑의 그 누구도 부수지 못한 세상의 끝을 가로지르는 그 벽에 미세한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는.
아니 단 한 명.
“빙고.”
입술을 모아 작게 휘파람을 불며, 벽에 난 금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혹여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귀찮은 일이 생길까 모자로 머리를 깊게 눌러 쓴 유원이었다.
“찍기 성공인가.”
제우스와 오딘이 향한 장소와 이곳 중, 유원은 세상 끝을 선택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높은 곳. 그리고 예상이 맞다면, 훨씬 더 큰 일이 벌어지는 곳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원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아직은 미세한 틈일 뿐이었지만.
“시작된 건가.”
이제 정말,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