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73
* * *
덜, 덜덜덜-.
밥상이 흔들렸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하르간과 그의 팀원들이 멈칫했다.
“지진?”
“갑자기?”
지진이라고 하기엔 아주 잠깐이었다.
세기도 약해 예민한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랭커들 중에서 일부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진동이 아주 멀리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하르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가 지나간 거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
이리 민감하게 반응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안감이 가슴에 꿈틀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만이 아닌 것 같은데.”
막 스프를 떠먹던 팔라딘테가 자신의 플레이어 키트를 돌려보였다.
식사 때마다 키트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있는 그였다.
팔라딘테의 말에 제일 먼저 하르간이 고개를 내밀었다. 키트 위로는 여러 커뮤니티에서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28층 : 28층인 플레이어 있냐? 지진 난 거 같던데, 진동 나만 느낌?]└ 28층? 나도 느낌. 31층.
└ 나 42층인데 나도 느낌.
└ ? 나도. 17층.
└ 3층인데 여긴 좀 세게 느껴졌어요.
└ 3층 말투 공손한 거 봐라 ㅋㅋ
“이게…… 뭐야?”
3층부터 42층, 그리고 자신들이 있는 91층까지.
여러 층에 연쇄적으로 일어난 진동이었다. 그것도 지금 확인된 것만 3층부터 91층까지면, 사실상 모든 층에 이 진동이 전달되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말인즉.
자신들이 서 있는 탑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 * *
[‘세계의 벽’이 무너집니다.]쿠르르르르-.
검은 벽면이 무너져 내렸다.
탑과 바깥의 경계. 그것의 붕괴에 탑은 거칠게 흔들렸다.
그만큼 큰 충격이 가해졌다는 뜻이었다.
당장 1층에만 하더라도 그랬다.
한순간, 자리해 있는 플레이어들은 땅이 움푹 꺼지거나 또는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에에에-.
무너진 벽 너머에서 들려온 울음소리에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슨 소리야?”
“울음소리?”
“괴물인가?”
탑을 오른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괴물과 싸운 경험이 있었다.
아니, 그건 경험치의 차이일 뿐 플레이어의 자격을 취득한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플레이어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튜토리얼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선 게 바로 랭커.
하나, 그런 랭커들조차 무너진 벽 너머에서 들려온 울음소리에 침착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뭐지?’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다.’
‘뭔가 좀 달라.’
그들은 더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지금껏 자신들이 싸워 온 괴물들과는 다르다고.
단순히 더 강한 괴물이다, 라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공포심을 일깨우는 울음소리였다.
반면.
유원은 그 울음소리와 무너진 검은 벽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다소 안도했다.
‘다행히 그리 크지 않다.’
원래의 계획보다는 다소 포인트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우려 했던 정도로 벽은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다. 이만한 정도의 균열이라면 넘어올 수 있는 아우터의 힘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툭, 툭-.
무너진 벽 너머에서 걸어 들어온 건, 그리 크지 않은 산양 한 마리였다.
메에에에-.
보랏빛의 털을 가진, 작은 덩치의 산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모습이었다. 산양은 작다 못해 어딘가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그런 모습에 속은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긴장을 풀었다.
“뭐야?”
“그냥 양이잖아?”
저벅-.
하나둘, 플레이어들이 산양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저 벽 너머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미친…….”
그렇게 등장한 양을 본 유원은 욕지거리를 한 번 중얼거린 뒤 소리쳤다.
“떨어져!”
화르륵-.
화아아악-!
산양과 플레이어들 사이로 보랏빛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산양을 향해 다가가던 플레이어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어, 어어?”
“불?”
“앗, 뜨거어어!”
가장 가까이 있던 플레이어는 성화에 일부 휘말려 뜨거움을 호소했다. 그렇게 불길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서던 플레이어들 중, 일부는 다른 생각을 했다.
‘저 산양에게 뭔가 있는 건가?’
‘혹시 저 산양이 관리자의…….’
‘그렇다면.’
김유원이 산양에게 다가가려는 자신들을 견제했다.
그 사실에 눈을 반짝인 몇몇 랭커들이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화아아악-!
몸에 마력을 두르고, 누군가는 스킬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갑옷과 방패를 사용했다.
세 명의 랭커들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범위를 넓힌 탓인지 유원이 발현한 성화는 랭커쯤 되는 실력자의 목숨까지 앗아 갈 만큼 위력적인 게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그들이 모험을 건 건.
화우우우-.
세 명의 랭커들이 불길을 갈라내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들이 불길을 헤집고 도착한 곳에는.
“저 녀석은 내 거다!”
“아니, 내 거…….”
“내…….”
쩌억-.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파리지옥처럼 입을 멀리고 있는 산양이 있었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관리자의 힘을 품은 신수.
자신들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기회.
그런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콰직-!
세 명의 랭커들이 순식간에 산양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와드득, 뼈째 씹어 먹히는 소리에는 비명 소리조차 섞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제일 먼저 본 유원이 혀를 찼다.
“……쯧.”
어떻게든 살려 주려고 손을 뻗어도 그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를 거라고 오해하면 더는 방법이 없었다.
유원이 만들어 낸 불길은 서서히 걷혔다.
그렇게 다시 드러난 산양의 모습.
“뭐야? 랭커들은?”
“저놈 입에…….”
“피?”
산양을 향해 달려든 세 명의 랭커들.
사라진 랭커들과 산양의 입가에 묻은 핏자국.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너진 벽의 ‘바깥’에서 들어온 보라색 털의 산양이 랭커들을 잡아먹은 것이다.
“뭐냐? 저 녀석은.”
유원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유원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키. 담백하고 느끼한 목소리와 이런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빛나는 황금빛의 머리.
제우스였다.
“슈- 니–스의 새끼다.”
“뭐?”
유원의 대답에 제우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말에 필터링이 씌워지기라도 한 듯, 유원의 목소리가 퍽 부자연스럽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제우스의 반응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아직은 말을 해도 못 알아 들어서.”
“그럼 똑바로 말해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가 있다.”
메에에에-.
자신 어미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일까.
염소가 유원이 있는 방향을 향해 울어댔다.
메에에, 메에에, 메에에에-.
메에에에에-.
울음소리가 서서히 늘어났다.
모두 한 마리에게서 들리는 울음소리들.
그리고 그런 염소의 울음소리에 유원은 확신했다.
“저 녀석은 아마 그 ‘천 마리’ 중 일부일 거다.”
쩌억-.
염소의 입이 비현실적인 크기로 벌어졌다.
몸집의 몇 배나 되는 크기의 입 속에서는 또 다른 염소가 뱉어졌고, 그 염소는 또다시 다른 염소를 뱉어 냈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염소들의 숫자.
메에에, 메에에에-.
메에-.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보다 못한 제우스가 손에 벼락을 쥐었다.
그 순간.
“그만둬라.”
파짓-.
제우스의 손에 쥐어진 벼락이 조금씩 흐려졌다.
유원의 손에 채워진 반지.
우라노스의 심장이 제우스의 손에 쥐어진 벼락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저항하려 한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제우스는 그러지 않고 왜 그러느냐는 듯 유원을 바라보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끼를 공격하면 녀석들의 어미가 움직일지도 모른다.”
“어미?”
유원이 고개를 까닥였다.
아직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산양들 너머.
무너진 벽의 바깥으로 새빨간 눈동자가 보였다.
“……저 녀석 말인가.”
확실히 위험한 놈이다 싶었다.
차원간의 간극을 넘어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이니.
“그래. 저만한 크기의 균열만으로 저놈이 들어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럼 상관없는 거 아닌가?”
“만에 하나라도.”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죽어.”
“만에 하나까지 생각하는 겁쟁이인 줄은 몰랐군.”
“그만큼 위험한 놈이라는 소리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그것은 녀석을 칭하는 여러 이름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수많은 새끼들을 거느린 녀석에게 어미로서의 모성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검은 숲의 염소는 ‘새로운 새끼’에 대한 애착은 강한 편이었다.
유원이 제우스를 말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말로 만에 하나.
분노를 참지 못한 검은 숲의 염소가 무너진 벽을 통해 넘어온다면, 이곳에 있는 모두는 죽은 목숨이었기에.
‘아직까지 저 녀석은 맞붙을 때가 아니다.’
다행이라면 검은 숲의 염소가 넘어오게 되면 저쪽에도 분명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만한 규모의 균열을 통해 넘어오려면 가진 바 힘 또한 상당히 줄어들 테고, 과부하로 인한 포인트의 낭비도 상당할 테니까.
양측 모두 득 없이 실만 생기게 될 상황.
그렇기에 유원은 기다렸다.
검은 숲의 염소가 완전히 눈을 감을 때까지.
그렇게 잠시 후.
스르륵-.
벽에 생겨난 균열 너머.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검은 숲의 염소가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먹지 못할 떡을 평생 바라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건, 새로 태어난 산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미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성애였다.
음메에에에-!
음메, 음메메메메-!
세상을 울리는 산양들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 속에 아우터의 기운이 섞였다.
마력, 마기 따위와는 완전히 다른 낯선 기운.
똑같은 보랏빛 털을 가진 수많은 산양들은 마치 수백 개의 머리와 하나의 몸통을 가진 거대한 괴물처럼 보였다.
스르르르-.
털썩-.
“뭐, 뭐야?”
“야, 너 왜 그래!”
“도망가야 돼! 도망…….”
인지의 범위를 벗어난 괴물의 등장에 몸을 돌려 도망치는 플레이어가 속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양과 눈을 마주친 플레이어 중, 정신력이 약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눈을 반대로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풀썩-.
그렇게 정신을 잃은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절반 남짓.
대부분이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특별한 이동 수단 없이 달려올 수 있을 만큼, 1층에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던 플레이어들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콰득, 콰드드득-.
우직-!
산양들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산 채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포식의 시간.
이제 막 태어나 배가 고픈 녀석들의 눈에 눈앞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그저 먹음직한 만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바앗-.”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이거면 배를 채울 수 있겠지?”
꼬르르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배고픈 소리.
유원의 머리 위로 축축한 단풍의 침이 떨어졌다.
눈앞에 나타난 산양들이, 단풍의 눈에는 꽤 맛있는 만찬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검은 숲의 산양이 이쪽에 관심을 거두었다.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건 없었다.
저벅-.
유원은 잠시 크로노스를 뒤로한 채 단풍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0.01퍼센트를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