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74
* * *
메에에에-.
메에, 메에에-.
머리를 울리는 산양들의 울음소리.
까만 흑발에 앙상하게 마른 몸과 큰 키. 속이 비춰 보일 정도로 얇은 천 옷을 두른 남자가 산양들을 내려다보았다.
두근, 두근-.
산양들의 울음소리에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는 생각에 남자의 입꼬리는 올라간 상태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자신이 이토록 웃음이 많았던가.
백 년에 한 번 바뀔까 말까 하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짝 만 개했다.
사탄은 산양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시작이다.”
방금 전.
그는 무너진 저편에서 전혀 다른 차원에 선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것은 대체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사탄의 눈에 그것은 수백 마리의 산양들이 뭉쳐지고, 또 흩어지고, 다시 하나로 변하는 것을 무수히 반복했을 뿐이었다.
여러 형태를 지닌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형태가 여럿으로 보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던 것인지.
사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가 바라고 있는 건, 이 세계가 사라지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스윽-.
사탄의 시선이 옮겨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
산양들의 등장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길드의 함선들이 보였다.
* * *
저벅-.
오딘이 산양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너진 벽 너머,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던 인지를 초월한 존재를 느낀 이후.
오딘은 크로노스가 어째서 이 많은 플레이어와 랭커들을 모은 건지 알 수 있었다.
“전부 먹잇감이었던 건가.”
콰득, 콰드득-.
산양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는 랭커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대 길드들이 산양들에게 저항했다. 하나, 겉으로 보이는 덩치와는 달리 산양들은 쉽게 제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산양 한 마리가 중소 규모의 길드가 탄 함선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까지 보였다.
수백 마리의 산양들.
반면, 이 자리에 모인 랭커와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수만이 훌쩍 넘었다.
제아무리 그중 절반가량이 산양들을 본 순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지만…….
“이건 너무 처참하군.”
순식간에 1층의 세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포세이돈의 몸을 차지한 크로노스에 의해 땅은 바다에 잠겼고, 세계의 끝에는 이름도 정체도 모를 괴물들이 나타나 득실거렸다.
저 밖에 있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쉽게 지는 건 아스가르드의 왕으로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메에에에-!
한 마리의 산양이 오딘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한 양의 울음소리와는 달리, 입을 크게 벌린 채 단숨에 오딘을 물어뜯어 오는 녀석.
콰득-.
산양의 이빨이 오딘의 어깨에 박혀들었다.
원래였다면 다른 랭커들과 마찬가지로 어깨가 뜯겨졌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메에-?
오딘의 어깨에는 조금의 흠결조차도 나지 않았다.
산양의 이빨에도 뚫리지 않는 피부. 씹혀지는 것이 없자 산양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부우웅-.
콰앙-!
오딘의 주먹이 산양의 머리를 후려쳤다.
쩌어-.
산산조각 난 머리. 부서진 조각들이 우수수 흩어져 허공에 뿌려졌다.
므아에-.
조각난 머리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가 풍선처럼 터졌음에도 산양은 질기게도 숨통이 붙어 있었다.
꾸욱-.
오딘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평범한 생명체라면 결코 살아 있을 수 없는 일.
애초부터 눈앞에 나타난 산양들은 그 형체가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꼭 슬라임 같구나.”
이런 경우.
오딘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해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화악-.
오딘의 손바닥이 넓게 펼쳐졌다.
손바닥 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원형의 마법진.
그렇게 그것을 일그러진 산양을 향해 다가가자.
웅, 웅웅웅-.
산양의 주위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어디 몸을 이루고 있는 전부가 소멸되어도 살아 있는지 한 번 보자꾸나.”
화아아악-.
수십 개의 마법진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고 힘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매 초마다 힘이 수십, 수백 배씩 증폭되며 산양의 몸을 분해시켰다.
마법진의 힘으로 산양을 휩쓴 푸른빛의 기둥이 높게 솟아올랐다.
콰우, 콰우우-.
빛의 기둥은 한순간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순간적으로 산양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싸우거나 도망치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오딘에게로 향했다.
“오딘…….”
“오딘이다!”
지금껏 오딘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현재 활동하는 랭커들 중, 최강이라 알려진 자. 존재만으로도 사기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화아아-.
푸른 기둥이 서서히 빛을 잃었다. 그 속에 휘말렸던 산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검은 숲에 사는 염소의 새끼’를 처치하였습니다.]오딘의 머릿속에 뜬 메시지.
그 메시지에 오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검은 숲에 사는 염소라…….’
벽 너머로 보았던 눈동자.
새끼를 뿌리고는 금방 관심을 거두었던 그 녀석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언젠가 이쪽으로 넘어오겠지.’
꽈아악-.
오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쩌면 오늘 이 순간, 저 벽이 무너진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메에-.
메에에, 메에-.
산양들이 울부짖었다.
한 새끼의 죽음은 그들 모두를 울게 만들었다. 천 마리가 모두 모인 건 아니었음에도 수백 마리의 산양들은 지금껏 오딘이 만나 온 어떤 괴물들보다도 기세가 높았다.
츠륵, 츠르륵-.
동시에 울음을 토하는 산양들.
오딘의 눈에는 그들이 한데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보였다.
“발악을 하는구나.”
쿵-.
오딘이 땅을 밟았다.
우우우웅-.
하늘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졌다. 수백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한 산양을 향해 오딘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콰드득-.
오딘의 눈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들어왔다.
“……뭐냐, 저건.”
산양들을 먹어치우는 더 큰 이빨들.
포식자 위의 더 큰 포식자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 *
[‘포식자’가 ‘검은 숲에 사는 염소의 새끼’를 포식합니다.] [마력이 소폭 상승합니다.]‘이걸로 세 마리째.’
콰드드득-!
한 마리의 산양을 먹어치운 포식자가 또 다른 먹잇감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풍이 불러낸 포식자는 물 만난 고기처럼 산양들을 사냥했다.
하나하나, 모두 웬만한 등급의 외신들에 버금가는 존재들.
준비되어 있던 만찬에 이미 어느 정도를 배를 채운 산양들은 포식자의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네 마리째를 먹어치웠을 때.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유원은 추가적인 스탯을 얻을 수 있었다.
‘성과는 나쁘지 않은데…….’
산양들 하나하나의 덩치는 작지만 존재는 컸다.
그들은 검은 숲의 염소의 새끼들이었다. 소화하는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당연히 소화된 힘 또한 컸다.
문제는 아직, 0.01퍼센트가 다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
‘뭐, 상관없나.’
당장은 녀석들을 잡아먹고 스탯을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유원은 조급한 마음을 떨쳐 냈다.
‘오히려 잘됐다.’
힐끗-.
유원은 무너져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검은 숲의 염소의 새끼들이 넘어온 통로.
언제까지 저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력이 필요한 때니까.’
“바아, 바아아-!”
유원은 자신의 발밑에서 춤추고 있는 단풍을 내려다보았다.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난 건 포식자만이 아니었다. 단풍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둬도 괜찮을까.
유원의 시선이 힐끗, 산양들을 먹어치우는 포식자에게로 향했다.
메에에에엑-!
콰드드득-.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산양.
그리고 그런 산양을 씹어 먹는 포식자와, 그런 포식자를 향해 달려드는 또 다른 산양들.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사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거기에 더해.
‘괜찮을 것 같군.’
유원은 산양들 한가운데를 누비고 있는 오딘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있는 한, 당분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후에 신격을 얻은 오딘은 산양들 따위가 아닌, 산양들의 어미와의 싸움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의 힘을 지녔었으니까.
그렇다면.
“단풍아.”
“바아?”
“밥 더 먹고 있어라.”
몸을 숙인 유원이 단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는 녀석이라, 조금 걱정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조금 떨어져 있어야 했다.
지금 신경 써야 할 건 검은 숲의 염소의 새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바앗!”
맡겨만 두라는 듯,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녀석.
귀여운 몸짓이 제법 믿음직했다. 더 걱정할 필요 없겠다 싶어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딘과 단풍.
저 둘이면 충분히 믿을 수 있었다.
‘산양들은 저쪽에 맡겨 놓고.’
화르륵-.
유원의 눈동자에 두 개의 색이 맺혔다.
그렇게 막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상담 좀 하러 갈까.’
콰릉-!
황금빛의 벼락이 지상 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 * *
콰릉-!
크로노스가 아래로 떨어진 전격을 붙잡았다.
손안이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아무리 시간을 멈춘다 한들, 모든 벼락을 붙잡아 둘 순 없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파짓, 파지지지-.
제우스의 벼락은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뭘 불러내신 겁니까?”
수십 개의 벼락이 겨눠지고.
제우스는 비밀을 추궁하듯 물었다.
“대체 저것들은 어디서 온 거냐는 말입니다.”
“말해 줘도 너는 모른다.”
또 이 소리.
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었다.
“슈- 니—스의 새끼다.”
필터링이 된 듯 불투명하게 들렸던 유원의 대답.
절대 입에서 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마치 세상이 그 단어를 거부하듯, 그 말은 제우스의 귀에 닿지 못하고 중간에서 흩어지고 말았다.
아마 저 밖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터.
‘결국 알 수 있는 건 없는 건지.’
답답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 쉽게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굳이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윽고 제우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파짓, 지지지-.
하늘 위에 떠 있던 수십 개의 벼락들이 소멸되었다.
“너는 들을 수 있겠지?”
저벅-.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우스와 크로노스의 사이로 누군가 걸어왔다.
“당연히.”
유원이었다.
화안금정을 불태우며, 유원은 제우스를 등지고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제우스가 양보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다행히, 더 이상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그리 큰 미련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대신.
“그럼 난 저쪽으로 가보지.”
파즈즈-!
제우스는 무너진 벽과 산양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크로노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유원이 자신을 찾아왔다.
분명, 산양들과 싸우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게 뭔가 용건이 있는 건가?”
그렇게 크로노스와 둘만 남겨진 유원은.
“궁금하지 않나?”
처음부터 크로노스를 향해 가슴에 꽉 찬 직구를 던졌다.
“당신이 왜 이 세계에서 추방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