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75
* * *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단지 예상만으로 제우스를 비롯한 자식들을 낳고 난 이후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에서 추방되어, 스스로가 무엇이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크로노스는 그렇게 세계의 바깥을 떠돌았다.
“너는 버려졌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때.
스윽-.
누군가의 손이 크로노스를 붙잡았다.
“어리석은 자야. 어째서 너를 버린 세계를 다시 바라느냐.”
어리석은 혼돈.
아니, 크로노스가 추방되어 도착한 그 세계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니– 토-.’
인지할 수도, 말로서 내뱉을 수도 없던 이름.
크로노스는 뻗어 온 손길을 따라 그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자신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떠들어 대고 있었다.
“내가 왜 이 세계에서 버려졌었는지-.”
크로노스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너는 안다는 소리냐?”
억울함과 분노.
그밖에 여러 복합적인 생각들이 크로노스의 눈을 통해 전해져 왔다.
얼굴도 그대로였고, 가지고 있는 능력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거라면 크로노스를 통해 마력 외에 아우터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는 건 즉.
‘아직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라는 건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리석은 혼돈이나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처럼 완전히 저쪽에 동화되었다면 지금처럼 대화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대답해라.”
화아아아-.
째깍-.
크로노스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유원은 자신의 주위에서 흐르던 시간이 비틀려지는 것을 느꼈다.
형체가 불분명한 힘은 분명히 존재했다. 손에 쥘 수 없는 불이나, 중력과 같은 힘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시간은 그보다도 더 높은 차원에 속하는 힘이었다.
이 탑에서 유일하게 크로노스만이 다룰 수 있는 힘. 그 힘이 유원의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끔 속박해 오고 있었다.
[‘화안금정’이 ‘크로노스의 시계’에 저항합니다.] [‘거인화’가 ‘크로노스의 시계’에 저항합니다.]화르륵-.
째깍-.
유원의 스킬이 크로노스의 힘에 저항을 시작했다.
대화를 하더라도 이런 상태에서 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대화란 무릇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해야 의미가 있는 법.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이 힘에 저항해야만 했다.
파지, 파지지-!
[‘우라노스의 심장’이 ‘크로노스의 시계’에 저항합니다.] [저항에 성공합니다.]까닥-.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라노스의 심장을 찬 손가락이었다.
그렇게 유원의 팔이 위로 올라온 순간.
콰웅-!
반지를 통해 뿜어진 마력이 크로노스의 몸을 휩쓸었다.
파지, 파지지-.
전격이 휩쓸고 지나간 땅이 거뭇하게 변했다. 크로노스가 양팔을 교차해 전격을 막아 내자, 그제야 유원은 완전히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뿜어진 전격의 힘에 크로노스가 뒤로 죽 밀려 날아갔다. 물리적인 상처는 없어 보였지만 크로노스는 자신의 스킬이 파훼되었다는 데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대화를 원하는 거 아니었나?”
저벅-.
유원은 크로노스가 뒤로 밀려난 만큼 걸음을 옮겼다.
“그냥 싸우자는 건 아닐 텐데.”
“입을 열게 하려면 먼저 제압해 두는 게 편하니 말이야.”
죽음 앞에서만큼 사람이 솔직해지는 순간은 없다.
크로노스는 그렇게 믿었다.
그렇기에 그는 유원을 먼저 제압해 입을 열게 할 셈이었다.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지, 그리고 자신이 이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굳이 입을 열 필요까지야.”
유원은 굳이 번거롭게 크로노스와 긴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보여 주마.”
화르륵-!
유원의 두 눈동자가 매섭게 타올랐다.
[‘화안금정’이 ‘크로노스의 시계’와 공명합니다.] [시야를 공유합니다.]화안금정.
진실과 거짓을 꿰뚫고, 본질을 파악하는 만능의 눈.
그리고 그 눈에는 지금과 같은 힘도 존재했다.
스르, 스르르-.
유원과 크로노스가 보는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공명을 시작한 두 사람의 눈은 세상과 동떨어진 다른 풍경을 보게 되었다.
유원은 오래전, 손오공의 분신에게 지금과 같은 기억을 보여 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에는 손오공의 분신과 유원, 두 사람이 함께 발현시킨 현상이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충분하다.’
스으, 스스-.
주위의 풍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산양들과 싸우고 있는 랭커들도. 벼락을 뿌리기 시작한 제우스도. 산양의 머리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주먹을 휘두르는 오딘도.
모든 게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하나 모든 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뭘 보여 주려는 거지?”
크로노스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그는 유원의 스킬에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려거든 할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왜’라는 궁금증에 대한 갈망이 더 큰 까닭이었다.
그렇게 막, 크로노스가 질문을 던진 순간.
저벅-.
그의 앞으로 구부정한 허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저놈의 하늘도 몇 번을 봐도 지긋지긋하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축 늘어진 눈빛.
휘어진 허리와 얼굴의 주름을 보면 나이가 꽤 든 것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당연했다.
크로노스는 오래전부터 저 얼굴을 상상해 왔으니까.
“나…… 인가?”
시간을 너무 쓴 나머지 늙고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
상상 속의 그 모습과 판박이었다.
“어쩔 수 없지. 아우터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아직 남아 있었나.”
막사 입구에 앉아 있던 유원을 발견한 크로노스가 물었다. 머리가 산발이 된 미래의 유원은 붕대로 감아 놓은 팔을 흔들어 보였다.
“보다시피, 팔이 이래서.”
아우터와의 싸움으로 부상당한 팔.
반 이상 괴사한 팔은 제대로 전투에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고칠 방법은?”
“아주 없지는 않다던데.”
“고생이군. 내가 고쳐 주랴?”
“됐다.”
“됐기는. 아주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크로노스의 능력은 시간이었다.
시간.
언제, 어디에나 있지만 그렇기에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힘이었다.
하지만 쓰기에 따라서 시간은 그 어느 의학적 능력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상처를 입은 부위를 과거로 되돌리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유원은 그러지 않았다.
“거기서 더 늙으면 보기 추해, 아저씨.”
“흐흐. 별걱정을 다 하는구나. 됐다. 여기서 더 늙어 봤자 티도 안 난다.”
“할아버지 소리 듣고 싶으면 그렇게 하든지.”
크로노스가 힘을 쓰면 쓸수록 점점 더 늙어지는 걸 알기 때문.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약해졌고, 점점 죽어 갔다.
“스포일러 하나 해 줄까?”
유원은 팔을 들어 올렸다.
“결국 내 팔은 나았다. 네가 고쳐줬지.”
“내 목숨 쓰면서, 널 고쳤다고?”
말도 안 된다는 듯, 크로노스가 미간자리를 구겼다.
확실히.
지금의 유원은 저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미래에서는 그랬다- 라고 해야겠지.”
“미래라…….”
달각-.
크로노스의 머릿속에서 빠져 있던 퍼즐 하나가 맞춰졌다.
이제야 납득이 될 것 같았다.
김유원이라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내가 널 이곳으로 보냈군.”
“그래.”
“생각보다 우리가 많이 친했던 모양이야. 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도 다 하는 걸 보면.”
눈앞에 있는 미래의 유원과 크로노스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때웠다.
멸망에 가까워진 세계.
그 세계에서 쌓인 동료애와 유대감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는 지금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크로노스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미래에서는 친했으니, 사정을 좀 봐 달라고 말하는 건가?”
미래의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크로노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
“내가 이 꼴이 될 동안, 너희는 뭘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지 않았나?”
빠득-.
크로노스는 저 벽의 밖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일 초가 수십, 수백 년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크로노스는 수많은 외신들 속에 파묻혀 억겁과 같은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려 왔다.
그 끝에 크로노스는 어리석은 혼돈을 만났다.
그래서 더더욱 그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생기지 않은 미래의 인연 따위, 지금의 그에게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구해 낸 건 결국, 저 바깥의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유원이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뭐?”
“네 선택이었다.”
스으으-.
두 사람을 둘러싼 장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보랏빛으로 변한 하늘.
바닥에 쓰러진 불투명한 형체의 무언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유원과 크로노스.
그리고 여러 동료들.
그것은 바로 유원이 기억하는 미래의 마지막 날.
크로노스가 희생되었던, 그날의 기억이었다.
* * *
콰드득-!
포식자의 이빨이 또 다른 산양을 물어뜯었다.
메에에에-!
산양이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산양들은 더 이상 포식자를 공격하지 않고, 되레 반대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였다.
“바아, 빠-!”
그리고 그 포식자와 산양들 한가운데서 신이 난 듯 춤추는 어린 꼬마.
“허어-.”
오딘은 그런 꼬마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저런 녀석이 어디서 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녀석이 불어 낸 포식자가 산양들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일단은 아군이라고 봐야겠지.’
그렇게 오딘이 단풍에게로 잠시 관심이 쏠린 사이.
메에에에-!
한 마리의 산양이 또다시 오딘의 몸을 집어삼켜 왔다.
부우웅-.
쩌어-!
오딘의 팔꿈치가 산양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러자 산양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 나가며 멀리 무너진 벽을 향해 날아갔다.
쿵, 콰드드-.
오딘이 날려 버린 산양은 제법 덩치가 커져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플레이어들을 먹어치우고 제법 덩치를 불린 모양.
오딘은 그렇게 산양에게서 관심을 거둔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콰릉-!
쿠궁, 쿠구구구-.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황금빛 벼락의 비.
제우스가 전장에 합류했다. 또한, 그밖에도 여러 길드에서 산양과의 싸움을 시작한 상태였다.
거기에 포식자의 도움까지.
“어떻게든 정리가 될 모양이군.”
처음 산양이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훨씬 큰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크로노스가 이 많은 수의 랭커들을 불러낸 덕분에, 어떻게든 바깥에서 흘러 들어온 산양들이 탑 곳곳으로 흩어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으니까.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만약 이곳에 제우스나 자신, 둘 중 한 명만 없었더라도 다른 결과가 벌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오딘은 이 싸움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런데.
-메-아-.
지금까지 들려온 울음소리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소리.
순간적으로 오싹 몸에 소름이 돋았다. 울음소리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몸과 귀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리가 방향 때문이었다.
‘설마…….’
부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딘은 아직 무너져 있는 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아-.
오딘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분명 이쪽에서 관심을 거두었었던.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어미의 시선이, 이쪽으로 다시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