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8
* * *
왜 바로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로부터 며칠 동안, 유원의 머릿속에는 이름 모를 알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정말 아우터 갓의 문양인가.’
느껴지는 기운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고작 튜토리얼의 보상이 아우터 갓과 관련이 있다니. 이런 경우는 유원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 중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확신은 없다.’
터벅, 터벅-.
유원은 밖으로 나와 걸었다.
‘그래도 만약 사실이면…….’
과연 이 알 속에서 부화할 건 유원을 도울 든든한 아군이 될지.
아니면 그가 알고 있는 다른 아우터 갓처럼 이 세계의 멸망이 될지.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알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 부화시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말도 안 되는 도박이군.”
문득 어이가 없어져 웃음이 나왔다.
아우터 갓의 알이라니.
부화를 기다리는 알의 경우, 가장 오랫동안 접촉하고 처음 눈을 뜨고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랭커들 중에서는 어렵게 신수의 알을 구해 신수를 데리고 다니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제대로 키워 내기만 한다면 신수는 꽤 강력한 아군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알을 제대로 부화시켜서 키워 낼 수만 있다면…….’
거기까지 이어진 생각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복잡한 생각은 금물이었다.
지금은 당장 눈앞에 있는 물건에 집중할 때였다.
치이이이-.
유원은 볼카로의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거기 잠깐 기다려라.”
화르르륵-.
손님의 방문에도 불카로는 고개도 돌려보지 않았다.
그는 보석을 불에 담구고, 세공 칼로 세공을 시작했다. 뜨겁게 가열된 보석은 그제야 조금씩 형태가 바뀌어 갔다.
‘어지간히 단단하군.’
삼주신이 다루던 조각의 세공 작업은 유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보통은 세공 칼로 조금씩 세공 작업을 해 나갈 텐데, 퀘네에의 조각은 불에 지지거나 하지 않으면 거의 흠집도 나지 않는 경도를 가지고 있었다.
불카로는 계속해서 세공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끄응.”
겨우 허리를 핀 불카로는 침침한 눈을 몇 번 깜빡이며 퀘네에의 조각을 물 안에 담갔다.
치이이이-.
뜨겁게 달궈진 조각은 순식간에 수십 리터에 달하는 물의 반을 증발시켰다. 그러자 공방 안은 순식간에 뜨거운 수증기로 가득 찼다.
“왔냐?”
불카로는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유원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뜨거운 공방 안, 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에 마주 앉았다.
“네. 오라고 하셔서.”
“물어볼 게 있다.”
“물어볼 거?”
“네가 쓰는 무기와 갑옷은 어떤 종류냐? 검이라면 어떤 검인지, 길이나 두께는 어떤지, 갑옷이라면 종류가 어떤 건지, 무게감은 어떤지…….”
“그건 왜입니까?”
“보석의 부산물들이 생겼다.”
불카로는 그렇게 대답하며 작은 병에 담겨져 있는 검은색 가루를 꺼내 보였다.
“이걸 가지고 여기서 물건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 말이지.”
흑신석을 세공하는 도중 나온 가루들.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지만 그 가치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흑신석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워낙 큰 만큼, 저 가루들도 웬만한 보석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저걸 가지고 아이템을 만들어 준다면 유원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하데스의 낫은 퀘네에의 조각을 세공하는 중에 나온 가루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다른 재료들이 필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흑신석의 힘을 뒷받침할 아이템은 결코 구하기 쉬운 게 아니었다.
하물며 불카로의 성격상, 이런 재료를 어중간한 아이템을 만드는 데 쓰고 싶지는 않을 터.
하지만 아직까지 유원은 그런 재료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만타디움 같은 재료는 없지만 비슷한 재료는 있다. 세공된 보석도 아니고 도중에 나온 가루 정도면 미스릴 만으로 충분할 게다.”
“미스릴……?”
“내가 조금 가지고 있다.”
덜컥-.
말과 함께 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불카로의 의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불카로는 한쪽에 걸어 둔 철근을 집어 들었다.
후끈한 열기에 꽤 뜨거워졌을 텐데도 불카로는 거침없이 그것을 가져와 말했다.
“3근쯤 된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섞어서 장비를 만들기 부족한 양도 아니야.”
미스릴.
경, 강도는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마나 전도율이 뛰어나고 제련하기에 따라 마나에 대한 저항력까지도 갖춘 희귀한 금속.
탑 내에서도 미스릴은 꽤 귀한 축에 속했다. 1근 정도만 있어도 금속에 녹여 꽤 그럴듯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데 불카로는 그것을 무려 3근이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릴 3근이면…… 가격이 상당할 텐데요.”
유원은 지금 10만 포인트가 넘는 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스릴 3근이면 10만 포인트로는 어림도 없는 가격. 못해도 30만 포인트는 지불해야 할 것이다.
‘수표를 포인트로 바꾸면 값을 치를 수는 있겠지만…….’
현재 유원이 지니고 있는 포인트는 이리들에게서 빼앗은 것까지 도합 50만 포인트.
하지만 당장 이만한 양의 아스가르드 수표를 포인트로 바꿀 방법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1근 정도만 사야 하나.’
하지만 고민도 잠시.
“돈은 나중에 줘도 괜찮다. 외상으로 달아 놔.”
“외상으로?”
황당한 제안이었다.
이제 막 1층에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에게 수십만 포인트에 달하는 미스릴을 외상으로 판매하겠다니.
“그러다 제가 돈 떼먹고 도망가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어차피 이걸 가지고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 보자는 건 내 욕심이니까. 내가 못 참고 제안하는 거니까, 만약 네가 돈을 떼먹고 물건만 가지고 도망간다 하더라도 원망은 않으마.”
“그래도…….”
“따지고 보면, 이깟 미스릴보단 네놈이 내게 맡긴 이 물건의 가치가 수십 배는 높을 게다. 아니, 이건 감히 포인트로 셈할 수도 없는 가치를 지닌 물건이지.”
역시.
불카로는 흑신석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있었다.
또한, 그렇기에 그는 유원에게 미스릴을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네놈이 날 믿고 뭔갈 맡겼다면, 나 역시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30만 포인트에 달하는 가격.
그만한 가격을 덜컥 외상으로 맡기다니.
유원은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참아 냈다.
불카로.
그는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저기 어디서 하나 장비를 골라 보라. 사용하기 괜찮아 보이는 형태의 장비가 있거든, 거기 맞춰서 제작에 들어갈…….”
“검 한 자루가 필요합니다.”
스캇-.
유원은 곧장 검 하나를 역수로 꺼내 손잡이 방향으로 불카로에게 건넸다.
“무게는 상관없습니다. 무거워서 못 들 정도만 아니면 금방 적응하니까요. 형태는 이것과 같은 길이와 모양이면 충분합니다.”
“칼이라…….”
불카로는 유원이 건넨 칼을 이리저리 살폈다.
칼은 튜토리얼 상점에서 구입한 ‘잘 벼려진 검’이었다.
그리 어려울 것 없는, 투박하고 단순하다 할 만한 검.
만드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불카로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그거라면 안 그래도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종목이지.”
유원을 만나고, 처음 지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 * *
그로부터 일주일.
도시의 가장자리, 올림포스 부지의 길드 하우스.
철그럭-.
그곳에 딸린 넓은 마당에서 아가멤논은 몸에 은빛이 감도는 묵직한 갑옷을 둘렀다.
수하들은 갑옷의 마디를 잠그고, 그의 칼을 가져왔다.
“다들 모였나?”
“예. 1층부터 10층 사이에 주둔하고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집결했습니다.”
“숫자는?”
“2백 명 정돕니다.”
수하의 대답에 아가멤논은 고개를 끄덕였다.
200명.
어지간한 중소 규모의 길드 하나와 맞먹는 숫자였다.
이만한 숫자를 모으는 데 며칠이 걸렸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면 이리 무리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피할 수 있을 거다.”
아가멤논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어쩌면 하늘의 권좌께서 우리를 눈여겨보실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늘의 권좌.
그 이름에 아가멤논의 수하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기대와 희열로 가득한 얼굴.
지금부터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그들은 기대감으로 두려움을 덮어 내고 있었다.
아가멤논은 수하들을 돌아보며 입가를 끌어올려 웃었다.
‘설마하니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며칠 전.
그는 이리 무리가 전멸한 사실을 알고서는 절망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올림포스 내에서 입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그저 그런 평범한 플레이어로 전락해 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탑의 의지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험을 겪은 플레이어에게 더 큰 힘을 주듯 더 큰 기회를 내려 주었다.
“위치는 어디지?”
“위치는…….”
수하의 대답에 아가멤논은 눈을 부릅떴다.
워낙 의외의 장소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못 찾았을 만하군.”
아가멤논의 말에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를 찾기 위해 자신들은 정말 긴 시간 동안 이 1층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지금에 와서야 겨우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가멤논은 칼을 받아 들어 허리춤에 채웠다.
“지원은?”
“관리자의 개입과 탑의 제약을 고려해, 적당한 지원이 도착했습니다.”
“좋아.”
이윽고 아가멤논은 말을 타고 출정을 준비했다.
“……가자.”
달그락-.
달각-.
수백 명의 플레이어들.
아가멤논을 비롯한, 올림포스의 군대가 임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츄아악-!
쿵-.
5미터 길이에 달하는 거대한 범이 바닥에 쓰러졌다.
배가 갈라져 피를 흘리며 잠시 꿈틀거리던 범은 곧 몸을 축 늘어뜨리고 눈빛의 생기를 잃었다.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천살성의 완성도가 0.006% 상승하였습니다.]참 지독히도 안 오르는 완성도였다.
유원은 칼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 냈다.
바닥에는 비약적으로 큰 늑대와 범 무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모두 유원이 사냥한 1층 중간 지역의 사냥감들이었다.
지난 열흘.
유원은 사냥에 집중했다.
세공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기는 싫어서였다. 또한, 천살성의 완성도를 올릴 필요도 있었다.
‘역시, 1층에서 레벨을 올리기는 무린가.’
유원의 사냥 속도는 꽤 빨랐다.
하지만 탑을 오르지 않고서 1층에서 올릴 수 있는 경험치는 한계가 있었다. 열흘 동안 사냥을 했지만, 올릴 수 있었던 레벨은 고작 한 개가 전부였다.
너무 더딘 속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욕심을 부려 탑을 올라갈 수도 없었다.
‘더 높은 기록을 세우려면 세공된 조각이 필요하다.’
결국, 지금은 천살성의 완성도를 높이며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고 유원이 다시 사냥을 시작하려는 때.
띠링-.
주머니에 있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현재 유원의 플레이어 등록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두 사람.
바로 하르간과 불카로.
두 사람뿐이었다.
유원은 서둘러 칼을 허리춤에 집어넣고 플레이어 키트를 확인했다.
메시지 안에는-.
[불카로 : 세공 끝났다. 와라.]-기다리고 있던 소식이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