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85
* * *
손오공은 얼떨떨한 얼굴로 등 뒤에 있는 이빨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언제든지 손오공의 목을 꿰뚫을 수 있게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약 손오공이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대로 알을 입속으로 가져갔다면 아마 손오공을 그대로 씹어먹으려 했을 것이다.
“이거 좀 치워 봐라.”
“그 전에 네가 알부터 손에서 놔.”
“아, 맞다.”
손오공은 자신의 입에 가까이 위치한 알을 힐끔 바라보았다.
원래였다면 바로 치웠어야 하지만.
장난기가 동한 건지 손오공은 씩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그런 손오공의 표정을 유원이 의아한 듯 보자.
스윽-.
손오공이 살짝, 알을 입에서 떼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꿈틀, 꿈틀-.
손오공의 등 뒤로 포식자의 이빨이 조금씩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언제든지 손오공이 알에 위협을 가하면 물어뜯을 준비를 하면서도, 손오공이 알에서 손을 떼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윽-, 슥-.
손오공이 알을 입 근처에 가져갔다 다시 멀리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포식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계속되는 장난에 유원은 결국 웃고 말았다.
“그만 해라, 이제.”
“재밌지 않냐?”
그만 하라는 말에도 손오공은 멈추지 않았다.
하긴.
손오공이 머리가 조금만 더 좋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다면, 아마 랭킹이 최소 한두 단계는 더 상승했을 것이다.
“너무 그러지 마라. 그 녀석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러다 진짜 위험할 수도 있고.”
“다치면 잠깐 저 영감 옆에 누워 있지, 뭐.”
“못 봤냐? 그게 슈브 니구라스를 어떻게 했는지.”
“슈브 니구라스를…….”
손오공의 머릿속에 슈브 니구라스의 목덜미를 물어뜯던 포식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개를 힐끔 돌려 보자, 그것은 여전히 손오공의 뒤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딘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 묘한 허당끼도 느껴졌지만 포식자는 분명 위험한 존재였다.
스윽-.
결국 손오공은 조심스레 알을 다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포식자는 잠시 그런 손오공의 행동을 주시하더니 슬그머니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잠깐의 헤프닝.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알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손오공이 알을 건드리고, 그가 실수로 알을 먹으려던 그 순간.
포식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오공을 공격하지 않고 유원의 눈치를 살폈다.
이유는 하나.
손오공이 유원의 동료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우호적이라 이건가.’
처음 알을 얻었을 때.
유원은 위협적으로 알을 향해 칼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알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하면 녀석을 부화시키는 걸 멈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알은 유원에게 호의적이었다.
단풍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새롭게 변한, 처음보다 더 큰 알도 마찬가지였다.
‘일단은……’
유원이 알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슈브 니구라스를 막아냈던 그날이 떠올랐다.
* * *
검은 숲.
그 속에서 단풍이 고개를 들어 올린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다가갔다.
총, 총-.
걸음은 가벼웠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이.
하나, 유원은 감히 그 뒤를 따라갈 수 없었다.
카아아아아아-!
평소와 똑같은 단풍의 동그란 뒷모습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느껴졌던 것이다.
쩌어어-.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뒤덮는 포식자가 나타난 건 그 때였다.
포식자 역시 유원이 많이 보아 왔던 바.
그의 존재는 유원에게 그리 놀랄 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게 대체…….’
우지끈-.
콰드, 콰드드드-.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집어삼키는 포식자의 덩치만큼은, 지금껏 유원이 알고 있던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슈브 니구라스를, 아니.
검은 숲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는 거대한 입.
충분히 저항할 수 있을 텐데도 슈브 니구라스는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현상이 당연하다는 듯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콰드드드-.
검은 숲을 집어삼키는 포식자.
그리고 그 포식자를 다루는 눈앞에 있는 단풍을 보며, 슈브 니구라스가 말했다.
-끝없이 파괴와 창조를 반복하는 무정형(無定形)의 존재여.
-이제 그 형(形)을 찾아 우리의 앞에 나타나리니…….
-부디, 우리에게 이빨을 거두시길 바라겠소.
검은 숲의 염소.
만물의 어머니인 그가 보라색으로 반짝이던 눈을 감았다.
그렇게 슈브 니구라스에 의해 끌려갔던 검은 숲 안에서.
콰직-!
유원은, 단풍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
* * *
‘형(形)을 찾은 무정형(無定形)의 존재라…….’
아우터 갓에게는 모두 진짜 이름을 대신하는 이명이 존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탑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가짜 이름이었다.
아우터 갓의 이름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들의 특징과 상징 같은 것들을 빌려 만들어 낸 이름.
그런데 슈브 니구라스가 했던 말은 마치, 어떤 아우터 갓을 설명해 놓은 것과 같았다.
“뭔가 엄청난 걸 주운 것 같네.”
알을 보고 있는 손오공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주운 거라기보다는 키운 거에 더 가깝지.”
“네가 아빠라도 되냐?”
“그런 비슷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긴 하다.”
“안 어울리게 무슨.”
“으으음…….”
대화 도중 들려온 신음 소리.
유원과 손오공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닫혀 있는 방문.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
문이 열리자, 벽 한쪽에 있는 침대에서 크로노스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는 게 보였다.
멍하던 눈에 조금씩 초점이 생겨나며 서서히 크로노스의 정신이 돌아왔다.
“아저씨.”
“어이, 영감. 정신 들었어?”
호칭은 달랐다.
하지만 크로노스는 두 사람의 부름에 모두 반응을 보였다.
“여기는…… 몇 년이냐?”
“갑자기 몇 년이냐니? 영감, 노망났어?”
“탑력 만이천이십 년.”
유원의 대답에 손오공이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런 의구심 없는 대답.
그리고 그 대답에 크로노스는 입안에 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만이천이십, 만이천이십 년…….”
같은 말을 열 번쯤 중얼거렸을까.
유원이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으면 이야기해 봐. 그게 뭐든.”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계속 연도만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 터.
안정을 취하는 대신 쉬지 않고 같은 말을 중얼거릴 거라면, 속에 있는 말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크로노스의 입이 잠시 멈췄다.
이내, 그의 입에서 다른 말이 꺼내졌다.
“시간 여행을 했다.”
시간 여행.
단순히 시계태엽을 이용한 회귀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 것이다.
유원은 그의 눈을 통해 같은 얼굴의 여러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수많은 ‘나’를 만났다. 여러 세계에서 여러 삶을 살던.”
그는 며칠 전까지의 크로노스가 아니었다. 시계태엽을 통해 그는 수많은 크로노스들의 집합이자, 하나가 되었다.
여러 미래와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
크로노스는 수많은 자신을 겪었고,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스윽-.
졸린 것처럼 느리게 감기고 떠지는 눈꺼풀.
힘겹게 움직인 눈동자가 유원과 손오공을 보았고,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힘들게 새어나왔다.
“내 미래에는 너희가 있더군.”
유원과 손오공.
두 사람을 비롯한 여러 동료들의 모습을, 크로노스는 여러 시간대를 통해 보고 겪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랬다. 전부 아우터와 싸웠지.”
“왜 여기서만?”
손오공의 의문에 유원이 답을 던졌다.
“우리 때문이겠지.”
우리.
시계태엽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온 두 사람.
크로노스가 탑 바깥으로 추방되어 모두에게 잊혀졌던 건, 그로 인한 부작용이자 탑의 법칙을 어긴 대가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 때문이겠군. 넌 미미르의 눈을 대가로 온 거니까.”
“누구 때문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다. 내가 나를 몰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거지.”
두 번째 희생.
겨우 뜬 크로노스의 눈이 흙색으로 변해갔다. 이미 그는 수명을 한참 넘긴 상태였다.
단지 오랫동안 단련해 온 하이랭커의 육체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 뿐.
뿌득-.
유원은 표정 없이 이를 갈았다. 손톱이 주먹을 파고들 만큼 세게 주먹을 쥐었다.
그런 유원의 반응에 크로노스가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선택이었고, 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라.”
“사실 알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유한했다.
그가 모든 시간을 다 쓰면 이렇게 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부디 이런 결과가 아니길 바랐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최악은 역시, 그놈이 넘어오는 거였으니까.”
만약 슈브 니구라스가 넘어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유원은 물론이고 손오공, 오딘, 크로노스, 그밖에 수십, 수백만, 어쩌면 수억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죽어 나갔을지도 모른다.
슈브 니구라스는 그런 존재였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재앙보다도 더한. 불가해의 힘을 지닌 신.
유원은 어떻게든 녀석을 막을 방법만을 생각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슈브 니구라스가 벽을 넘어 오면, 그때는 더 이상 크로노스의 능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난 아저씨한테 떠넘긴 거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
“넌 예전부터 그랬지. 시간 좀 아껴 쓰라고. 금보다 귀한 거라고.”
유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원은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이나.
하지만 그건 적어도 이 시간선에서는 아니었다.
아주 먼 미래.
그러니까 그건, 아우터와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었다.
“시간 좀 아껴 써, 아저씨. 그러다 진짜 할아버지 소리 듣겠다.”
“그 말만 몇 번째냐?”
“몇 번 안 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열 번은 넘는다. 어디 돌려 볼까? 몇 번이나 말했는지?”
“그놈의 시간 좀 아껴 쓰라고 말 한 지 일 분도 안 됐다.”
매번 잔소리처럼 하던 말들.
그래도 부족했던 말들.
크로노스는 지금, 그 말을 언급하고 있었다.
“미안해할 거 안다. 그냥 너 하나 편하자고 그랬던 게 아니라는 것도.”
덜컥-.
닫혔던 방문이 다시 열렸다.
듣다 못한 손오공이 밖으로 나갔다. 비명소리에 가까운 괴성이 들려오자, 크로노스가 옅게 웃었다.
“저 녀석도 꽤나 열 받은 모양이군.”
파스스스-.
크로노스의 피부가 말라 비틀어졌다. 미라에 가까운 몰골과 초점이 다 사라진 눈을 하고서, 크로노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기억 하느냐? 네가 처음 시계태엽을 사용하던 날.”
바짝 마른입에서 흘러나온 힘겨운 목소리.
조금씩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했음에도 크로노스의 말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그 대신.
유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그 짧은 시간마저도, 이제 그에게는 천금보다 더 귀한 것이었으니.
“난 그날 내 목숨을 던지는 걸로 저들과 싸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죽지는 않았지. 그러니까 달라진 건 없다.”
죽으려 했으나 죽지 않았다.
다시 살아났다면 다시 살고자 할 법하건만, 크로노스는 다시 죽는 쪽을 택했다.
그게 그의 선택이었다.
“이건, 그때의 연장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