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86
* * *
크로노스의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먼지를 모아 유원과 손오공은 1층에 작은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 대단한 무덤은 아니었지만.
유원은 무덤을 향해 목례를 한 뒤 몸을 돌렸다.
“제우스한테는 내가 전달하지. 이쪽에 무덤을 만들었으니, 나중에 옮기든지 하라고.”
“그 녀석은 영감을 기억 못하지 않나?”
“기억한다. 찾은 모양이더라고.”
“진짜? 그 녀석도 대단하네. 마법사나 주술사도 아니면서.”
“문자 보내 놓으면 알아서 찾아오든가 하겠지.”
그리 관계가 돈독하지 않았다지만 크로노스와 제우스는 어쨌거나 부자지간이었다.
크로노스의 죽음을 알리는 건 당연한 일.
파스스스-.
유원이 입고 있던 양복이 사라지고, 사대 정령의 옷을 비롯한 원래의 복장으로 돌아왔다.
그런 유원의 모습을 보며 손오공이 신기한 듯 말했다.
“그 옷은 매번 누가 죽을 때마다 입네.”
검은 양복은 크로노스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동료들이 죽을 때마다 갖춰 입던 옷이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제대로 된 식을 치러 줄 수는 없을지언정, 최소한 그들 앞에 화려한 옷을 입고 설 수는 없었으니깐.
“내가 살던 세계에서 입던 옷이다.”
“어쩐지. 너 말고는 입는 놈을 못 봤어.”
손오공의 머릿속에 양복을 갖춰 입은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보다 보니 꽤 멋진 디자인이긴 했다.
“나도 하나 맞춰 주라, 그거.”
“굳이 그럴 것까지야.”
“왜? 좋잖아. 다 같이 똑같은 옷 입고 보내면.”
맞는 말이긴 했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격식은 차리는 게 모양새도 더 나을 테니까.
격식은 과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갖추지 않으면 무례가 된다.
하지만.
“기왕이면 누굴 보낼 준비는 안 하고 싶어서 말이지.”
그렇게 옷을 갈아입은 유원은 손오공과 함께 배에 올랐다.
아스가르드에서 보내 준 배였다.
“이제 어쩔 거냐?”
배에 오르는 유원을 보며 손오공이 물었다.
유원은 배의 닻을 피며 대답했다.
“올라가야지.”
“어쨌거나 답은 위에 있단 건가.”
“흔한 이야기지.”
어리석은 혼돈의 분신체를 몰아낸 것만으로도 꽤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조금 더 서둘러야겠어.”
슈브 니구라스가 나타났다. 생각보다도 더, 녀석들은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마음이 급해졌다는 걸까.
당장은 쫓아 내긴 했지만 언젠가 슈브 니구라스와도 맞붙어야 했다. 그때는 아마 지금처럼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혼자 갈 수 있겠냐?”
손오공의 물음에 유원이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내가 애냐.”
“너 노리는 놈도 있는 것 같더만.”
“괜찮다. 그런데 넌? 어디 갈 데라도 있냐?”
“시계태엽으로 돌아온 게 너 하나냐? 나라고 그냥 돌아왔을까 봐?”
생각해 보니 그랬다.
손오공이 머리가 나쁘긴 했지만 그는 제천대성이었다.
하늘을 다스리는 큰 성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만하고도 위대한 존재.
그런 그가 시간을 역행해 이곳에 왔다.
당연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터.
“천축에 다시 가 볼 생각이다.”
“천축에?”
“시험에서나 도달했었던 곳이지만…….”
천축.
불경(佛經)이 있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장소.
손오공은 그곳에서 새로운 힘과 긴고아를 얻었다.
그런데.
“어쩌면 실존할지도 몰라. 아니,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든다.”
손오공은 그 장소가 어쩌면 시험에서만이 아니라 이 탑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추측 따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직감은 빗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유원의 생각에도 마찬가지.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맞는 거겠지.”
단순히 하루 이틀도 아니고 꽤 오래된 감이었다.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온 결과, 손오공의 직감은 단순한 감(感)과는 다른 탁월한 데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화안금정의 숙련도를 극한까지 높인 덕분에 나오는 일종의 예지에 더 가까웠다.
몽글-.
손오공의 발 아래로 구름이 생겨났다.
근두운에 올라 탄 손오공이 유원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친구.”
손오공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은 가는 길이 달라, 잠깐 헤어져야 했다.
투확-!
손오공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져 갔다.
아마 근두운이라면 이 넓은 탑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천축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는 없겠지만.
유원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오공이라면 반드시 진짜 천축에 도달해, 불경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 나도…….”
유원은 고개를 들었다.
움직이는 아스가르드의 배 위.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올라가 봐야지.”
* * *
탑의 벽이 허물어졌다.
곧 수복이 되긴 했지만, 그 밖에서 들어온 슈브 니구라스의 존재는 탑의 랭커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오딘이 고전했다지?”
“뿐만이야? 제우스랑 제천대성도 있었다던데.”
“베다의 랭커들도 있었고, 거기 있던 랭커들 숫자만 해도 수천 명이야. 아마 역사에 남을 정도의 전력일걸?”
“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그런 전력이 겨우 막은 거지?”
탑 바깥의 괴물에 대한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플레이어 키트를 통해 여러 기자들이 슈브 니구라스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몇몇 랭커들은 사진까지 찍은 상태.
그런데 그 사진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뭐야, 이거?”
“뭐 어떻게 되어 먹은 사진이야?”
“다 깨졌잖아?”
제대로 된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운, 불투명한 형체를 찍은 듯한 사진들.
어느 한 명의 랭커조차도 슈브 니구라스의 사진을 제대로 찍은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잔뜩 흔들리거나 초점이 어긋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런 사진이 열 장 남짓. 단순한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았다.
그리고 그건 슈브 니구라스뿐만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산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벽이…… 우릴 지켜 주고 있던 건가.”
“그게 언젠가 무너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면 큰일이잖아?”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을 아는 자는 없었다.
그의 이름은 유원이나 손오공이 아니면 들을 수 없었고,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렇기에 탑의 랭커들은 슈브 니구라스를 비롯한 산양들을 이렇게 정의했다.
아우터(Outer).
탑 바깥의 존재를 규정하는 단어가 처음 생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아우터에 대한 정보가 알음알음 퍼져 나갈 즈음.
“아스가르드에서 거대 길드의 화합을 신청했다던데.”
“아스가르드에서?”
“오딘이 충격이 큰 모양이야. 자신은 화합 날까지 폐관에 들 거라 하고.”
“하긴. 일대일로 오딘이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났으니…….”
“거대 길드면 어디?”
“전부.”
“전부라고?”
올림포스, 베다, 마왕, 원탁, 무림을 비롯한 여러 거대 길드에 보내진 초청장.
그 수많은 길드가 한데 모일 계획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베다의 랭커들도 이번에 많이 죽었다지.”
“아그니와 쿠베라?”
“그럼 베다의 삼신들도…….”
“이번엔 움직이는 건가.”
“그쪽은 시바 말고는 다 은거하지 않았어?”
“아무리 그래도 오딘의 초청인데.”
베다는 아스가르드, 올림포스와 함께 탑에서 손꼽히는 거대 길드였다.
그리고 그런 베다를 이끌어가는 건 베다의 삼신들.
세간의 관심은 이번 아스가르드의 초청에 베다의 삼신들이 움직일지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98층에 위치한 베다의 별, 우주의 어느 한복판에서는 환한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화륵, 화르륵-.
“여기 계시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그니는 주황빛 머리를 뒤로 묶고, 흰색 머리를 한 가느다란 체구의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행성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별. 작은 섬만 한 크기의 별의 끄트머리에서 남자는 작은 실 하나를 손가락에 걸어 놓고 있었다.
“오딘이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
“언제까지 그런 실 하나에 집착하실 생각이십니까?”
“…….”
아그니의 물음에 남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그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같은 시각, 쿠베라 역시 마찬가지.
“오랜만입니다, 브라흐마 님.”
쿠베라가 발견한 작은 소년.
넓은 숲 한가운데 서 있던 소년은 쿠베라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었다.
슈브 니구라스를 겪은 베다의 하이랭커들은 삼신을 움직이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시각.
“녀석의 이름을 알았다.”
한동안 다시 잠에 들어 있던 미미르가, 웃통에 진득하게 땀을 흘리며 작은 바위산을 짊어지고 있는 오딘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그리고 그 바위산 뒤.
고오오-.
하늘을 넘어 끝없이 높게 뻗은 거대한 나무 하나가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이그드라실을 움직여야 할 것 같구나.”
* * *
쿵-.
배가 도착했다.
유원은 아스가르드에서 빌린 배를 반납하고는 곧장 관리자를 호출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응답이 없었다.
-관리자님은 현재 바쁘십니다.
대신 유원을 찾아온 건 관리자의 심부름꾼 하나.
녀석은 그 말을 툭 던져놓고는 곧장 뿅, 모습을 감추었다.
어지간히도 바쁜 모양이었다.
‘벽이 무너져서인가. 아니면 1층의 관리자의 부재 때문에?’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관리자의 공백은 그들에게 꽤 큰일이었다. 하나의 세계를 비워 둔다는 것만큼 관리자에게 시급한 일도 없을 것이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슈브 니구라스까지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장 빠른 길은 글렀군.”
조금 포인트를 쓰더라도 가능한 관리자의 시험을 통과해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관리자가 바빠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유원이 막 발을 돌려, 시험장으로 향하려던 때.
저벅-.
유원이 타고 온 배의 뱃머리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가벼운 발소리. 유원의 고개가 뱃머리 위로 돌아갔다.
그림자처럼 어둡게 보이는 형체.
섬뜩한 살기가 몸을 간질였다. 그는 한쪽뿐인 날개와 팔을 가진, 기형적인 모습의 왜소한 체구의 남자였다.
불과 얼마 전에 만났던 녀석.
‘사탄인가.’
녀석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장 손오공만 하더라도 그런 사탄 때문에 유원을 걱정했으니까.
하지만 유원은 그런 이유로 손오공의 손을 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려 와라.”
유원의 손짓에 사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녀석은 꽤 이전부터 이곳에서 유원을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펄럭-.
사탄은 처음부터 날개를 펼쳤다.
제우스와의 싸움으로 이제는 한쪽밖에 남지 않았다지만, 날개야말로 사탄의 힘의 근원과도 같은 바.
그것을 꺼내 들었다는 건 초장부터 진심을 다하겠다는 뜻이었다.
‘차라리 잘됐군.’
어차피 한 번 치워야 하는 똥이다.
무엇보다 사탄, 저 녀석은 언제 어디서 사고를 칠지 모르는 악동 같은 녀석.
시간을 더 들여 다른 변수를 만드느니 여기서 잡는 게 나을 것이다.
거기다.
“이번에 얻은 게 조금 많아서 말이다.”
유원은 이번 싸움에서 평소보다도 훨씬 많은 스탯을 얻은 상태였다.
파지지지-!
손안에서 터져 나오는 전격.
그렇게 만들어진 벼락과 다른 한 손에 쥐어진 니르까지.
“아마 그때랑은 다를 거다.”
동시에.
사탄의 눈에 벼락을 손에 쥔 유원의 위로, 제우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탑은 그렇게 곳곳에서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