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90
* * *
처음부터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궁니르를 어디서 얻었냐고?”
회의 도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 하나.
동료들 사이에서조차 금기시되던 그 질문에 회의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그거야 궁니르는…….”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던 거 아니었나?”
“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냥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마지막은 가장 참을성이 없는 손오공의 말.
그 말에 몇몇 동료들이 손오공의 옆구리를 찔러 눈치를 줬다. 그만큼 궁니르에 관한 건 금기 사항이었으니까.
그런데.
“도깨비에게서 샀다.”
의외로 오딘은 순순히 대답을 해 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지 말라며 만류하던 동료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거 보라는 듯, 손오공은 뒤에서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헤라클레스를 뿌리치며 물었다.
“도깨비에게서?”
“그래. 100층에서 만난 녀석들이었지.”
“도깨비족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너, 만난 적이 있던 거냐?”
“그러니까 그 녀석들에게서 궁니르를 사지 않았겠느냐.”
오딘은 뒤쪽에 세워 둔 궁니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처음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보다도 더, 내 운명처럼 느껴졌지.”
“으, 느끼해…….”
“어찌 처음과 같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빼앗긴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던질 때마다 스스로 가슴을 도려 내듯 아프지.
“우웩.”
“쟤 왜 저래? 평소답지 않게 오버야.”
“궁니르 얘기만 하면 저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법한데도 궁니르에 대한 오딘의 예찬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궁니르는 오딘에게 있어서 목숨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든 가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제시한 포인트는 정말이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높더군.”
“얼마였는데?”
“얼마였어?”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궁니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최상급의 아이템이었다.
더군다나 궁니르는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으니 그 값어치 역시 미지수.
궁금증이 동할 만도 했다.
“가격이…….”
* * *
“1억 포인트였지, 아마.”
도깨비왕은 당시를 회상하며 중얼거렸다.
당시 도깨비들의 소유였던 궁니르가 오딘에게 판매되었던 가격.
오딘은 그것을 위해 아스가르드의 왕으로서 자신이 모아 둔 재산을 거의 대부분 탕진했다.
물론.
국가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았다. 오딘이 건드린 건 어디까지나 왕으로서 지니고 있던 개인의 재산이었을 뿐이었다.
“그 녀석, 열심히도 살았지. 아스가르드 상단을 만들고, 여러 사업도 하고. 1억 포인트를 모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설마하니 진짜로 그만한 돈을 모아 올 줄은 몰랐던 도깨비 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한 2억 포인트까지 질러 볼 걸 그랬어.”
애초에 궁니르는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았던,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억 포인트라면 한 번도 거래된 적 없던 엄청난 가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깨비왕은 그리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너는 조금 더 나은 모양이던데.”
유원을 바라보는 도깨비 왕이 군침을 삼켰다.
1억 5천만 포인트. 유원이 가진 포인트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게 된 만큼, 도깨비 왕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 뭘 원하지? 오딘의 말을 듣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뭔가 거한 걸 원하는 모양인데.”
“그 전에-.”
유원이 인벤토리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도깨비왕에 비해 한없이 작은 손안에 거대한 술병이 잡혀 나왔다.
쑤우욱-.
쿵-.
도깨비왕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술.
이게 뭐냐는 듯, 도깨비왕이 흥미를 보였다. 별다른 색깔이 없는 새까만 술병이었다.
“디오니소스가 아껴 놓고 있던 술이다.”
“디오니소스가?”
도깨비왕의 눈이 반짝였다.
웬만한 하이랭커들조차 눈에 차지 않는 그였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디오니소스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는 이 탑에서 술로서 가장 널리 알려진 랭커였다. 랭킹의 절반이 술 덕분이라 알려져 있을 만큼 디오니소스가 만든 술은 특별한 데가 있었다.
당장 양산형으로 만든 술조차 랭커들의 입맛에 맞을 정도로 고급스러울 정도.
그런데 그런 디오니소스가 아껴 놓고 있던 술이라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녀석이 아주 오래전에 만든 포도주지. 녀석이 술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 나중을 기약하며 오랜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 완성된 거다.”
“디오니소스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이라면…….”
“절대 양산형은 아니라는 거지. 그 녀석이 직접 빚은 술이다.”
디오니소스가 직접 빚은 술은 값비싸다. 한 명에 못해도 수백, 수천 포인트씩 하는 게 바로 디오니소스가 빚은 술의 값어치였다.
그런데 그게 디오니소스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만든 거라면 다른 술보다도 더 정성을 들였을 거라는 건 당연한 일.
더군다나.
“알다시피 포도주는 시간을 들일수록 귀해지는 술이지. 물론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디오니소스가 빚은 술이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꿀꺽-.
수천 년의 시간을 들인, 디오니소스가 직접 빚은 술.
과연 경매장에 이 술이 나온다면 얼마나 비싼 값에 거래될까. 아마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아니.
아마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내가 사지.”
단번에 거래의 방향이 바뀌었다.
“얼마면 되지? 십만? 아니면 백만?”
“가격이라는 건 모름지기 때와 장소,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아닌가?”
유원은 술병을 다시 인벤토리 속에 집어넣었다.
도깨비왕의 시선이 술병을 따라 움직였다.
“뭐, 넌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긴 하지만 말이지.”
“원하는 게 뭐냐?”
입에 고인 침을 다시금 꿀꺽 삼킨 도깨비왕이 채근하듯 물었다. 다행히도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도깨비왕이 제일 좋아하는 건 술이다. 그것도 아주 환장하지.”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유원으로서는 오딘의 충고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언을 흘려 들을 수도 없는 일.
유원은 올림포스를 돕고, 디오니소스를 만나 물었다.
“아껴 둔 술 있나?”
“왜? 같이 한잔하려고?”
처음 유원의 질문에 화색을 내비추던 디오니소스는 이내, 유원의 대답에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나 달라고.”
대놓고 술을 요구하는 유원.
거기다가 유원은 아끼고 있던 술 중, 가장 귀한 걸 요구했다. 뻔뻔한 요청이었지만 당시 유원은 올림포스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입장이었다.
올림포스 부수기에서도, 그리고 이어진 헤라의 반란에서도.
만약 유원이 없었다면 올림포스는 반쪽으로 갈라지는 등, 꽤 큰 타격을 입었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즉.
“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 그, 그게…….”
“왜? 안 되나?”
“……알았다. 준다, 줘.”
디오니소스에게는 달리 거절할 만한 명분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디오니소스가 오랫동안 아껴두고 있던 술은 올림포스가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유원의 손에 넘어왔다.
어쩌면 이 탑에서 가장 귀한 술일지도 모르는, 디오니소스에게도 단 세 병밖에 남아 있지 않은 귀한 술이 말이다.
“원하는 건 많지.”
대화를 할 때는 언제나 위에서 해야 한다. 주도권을 빼앗기면 몸을 숙이게 되고, 그러면 관계는 자연스레 갑과 을로 나뉘게 된다.
더구나 이곳은 도깨비들의 나라.
유원은 손님이라기보다는 이방인의 입장일 뿐.
하지만 이것으로 도깨비왕에게 유원은 더 이상 단순한 이방인이 아닌,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지닌 거래 상대가 된 셈이었다.
“십만이든, 백만이든 금액은 아무래도 좋다.”
“그냥 포인트를 주고 팔 생각은 아닌 모양이군.”
“포인트에 이 좋은 패를 쓰긴 아깝지.”
“하긴. 포인트라면 넘쳐 날 테니 말이야.”
도깨비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는 상황이었다.
협상을 먼저 제시하러 온 녀석이 오히려 상대를 더 애타게 만들다니.
아마도 그건 이런 상황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말해 봐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너희들의 주술을 빌리고 싶다.”
주술.
우마왕과 미미르를 비롯한 소수의 랭커들이 익히고 있는 기술.
마법과는 궤가 다른 그것에는 뿌리를 찾다 보면 결국 도깨비가 있었다.
“주술, 주술이라…….”
돌연 흥미가 식은 듯.
도깨비왕은 다른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결국 원하는 게 그건가.”
꿀꺽-.
취기를 원한 게 아니었는지 술은 한 모금에서 그쳤다.
입가에 묻은 맑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 도깨비왕이 물었다.
“주술을 빌리고 싶다는 건 어떤 거지? 뭐, 풀고 싶은 봉인이나 저주라도 있나? 아니면 뭐, 점이라도 쳐 줄까?”
주술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나 눈앞에 있는 도깨비왕은 주술이라는 분야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존재.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술주정뱅이 아저씨일 뿐이지만 유원은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용건은 두 가지다.”
“두 가지나? 일단 들어 보지.”
들어 보고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듯, 도깨비왕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유원이 원하는 게 생각보다 뻔하다 싶어, 재미가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 전에…….”
화륵-.
유원의 눈동자 색이 바뀌었다.
한쪽은 붉게. 다른 한쪽은 황금빛으로.
화안금정이 발현되자, 유원의 시야에 들어온 도깨비왕의 모습 또한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보기보다도 더…… 위험한 녀석이었나.’
오싹, 오싹-.
두 개의 뿔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한 거구의 남자.
그건 가면이었다.
화안금정을 사용하자 도깨비왕의 얼굴 위로 전혀 다른 얼굴의 도깨비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화안금정으로도 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도깨비왕의 반쪽뿐이었다.
“화안금정이라…….”
도깨비왕은 유원이 그 눈으로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다는데 흥미를 보였다.
제아무리 도깨비들이 세상 물정에 어둡다 한들, 제천대성을 모르면 탑의 거주민이라 할 수 없었다.
그는 현재 이 탑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힘과 영향력을 지닌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런 스킬도 가지고 있었군. 과연, 흥미롭긴 해.”
스윽-.
도깨비왕의 손이 잠시 동안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자.
화르르르-.
[‘화안금정’이 ‘도깨비왕’의 실체를 파악합니다.] [실체를 알 수 없습니다.] [‘화안금정’이 ‘도깨비왕의 가면’에 저항합니다.] [‘도깨비왕의 가면’이 ‘화안금정’을…….]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도깨비왕의 주술과 화안금정이 부딪쳤다. 화안금정은 도깨비왕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 매섭게 타올랐고, 가면은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게 버텼다.
그러기를 잠시.
“그 눈이 뭐 어쨌다는 거지?”
도깨비왕의 물음에 유원은 더 이상 그의 실체를 파악하는 걸 그만두었다.
하긴.
뭐 얼마나 잘생긴 얼굴이라고 봐 두나 싶었다.
재미없는 싸움은 여기까지.
“이 스킬을 강화하고 싶다.”
도깨비왕의 물음에 유원은 도깨비나라에 온 두 가지 이유 중, 첫 번째 이유를 말했다.
그러자.
꿈틀-.
도깨비왕이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며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혹시, 예지안을 말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