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91
예지안.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유원의 표정이 조금 꿈틀거렸다.
겉으로는 최대한 표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대신 속으로는 격렬한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제대로 찾아 온 건가.’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예지안을 언급했다.
적어도 헛걸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핵심은 예지안이다.”
잠에서 깨어난 미미르와의 대화.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예지안’을 강조했다.
“다른 놈이라면 모를까 너라면 불가능하지 않다. 화안금정은 이 탑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스킬들 중, 가장 예지안에 가까운 스킬이니까.”
“그건 나도 안다. 문제는 그걸 어디서 얻느냐지.”
“도깨비를 만나면 된다.”
“도깨비?”
그렇지 않아도 만나러 갈 계획이었던 종족이 언급되자, 유원이 마침 잘됐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런 유원의 반응을 미미르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아는 눈치군.”
“오딘에게 들었다.”
“여기의 오딘은 아닐 테고. 뭐, 알고 있다니 마침 잘됐군. 그 녀석들을 만나 봐라. 그럼 해답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확신은 없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존재를 만난다 한들, 예지안은 그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한 종류의 스킬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식의 저주를 받았다는 미미르조차도 마찬가지.
화르르-.
화안금정의 불이 점점 더 크게 타올랐다.
그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도깨비왕이 물었다.
“예지안에 대해 아나?”
“허, 진짜였군. 바라는 것도 커.”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는 도깨비왕.
“고작 그런 술 하나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디오니소스의 술에 ‘고작’이라는 말을 붙일 만큼 예지안은 특별한 스킬이었다.
이 탑에서 그 누구도 얻지 못한 스킬.
전설에서나 존재한다 알려진 그 스킬을, 유원은 요구하고 있었다.
“아니. 술이 문제가 아니다. 그건 이 탑에 있는 모든 술을 갖다 바쳐도 어려워.”
“그냥 노력만 하면 된다. 설렁설렁하지 말고.”
“허어-.”
정말 황당하다는 듯, 도깨비왕은 유원을 바라보았다.
화안금정.
진실과 거짓, 그리고 진리를 꿰뚫어 본다는 제천대성의 눈.
그 눈에 조금이지만 흥미가 생겼다.
‘어쩌면 정말…….’
잠깐의 고민.
이후, 도깨비왕이 입을 열었다.
“문지기.”
“예! 왕이시여, 말씀하시옵…….”
“긴말 말고, 똘똘한 놈들로 스무 명만 추려 봐라.”
“예?”
저도 모르게 반문했던 도깨비는 황급히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
“예! 알겠나이다!”
서둘러 몸을 돌려 방을 나서는 도깨비.
그런 도깨비의 뒷모습을 보며 도깨비왕은 쯧, 짧게 혀를 찼다.
“저리 어벙하니 문지기나 하고 있지.”
“스무 명이나 필요한 일인가?”
“숫자가 문제가 아니지.”
도깨비왕이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엄지와 검지로 그렸다.
“이거다, 결국.”
“포인트?”
“그래.”
예지안을 얻는 방법이 다른 무엇도 아닌 포인트라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에 도깨비왕이 말했다.
“포인트라는 게 결국 탑의 시스템과 법칙을 비트는 힘이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그런 게 다 포인트에서부터 나오는 거지.”
법칙을 어기는 힘.
뜻 모를 말이었다.
“이런 말, 들어 봤나? 포인트만 있으면 신도 될 수 있다고.”
도깨비들.
그저 포인트에 환장한 종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가 만든 말이다.”
아무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포인트만 있으면 신도 될 수 있다.
유원은 그 말이 다소 과장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돈이 최고라는 자본주의에 입각한 말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도깨비들에게는 그런 게 아닌 모양.
“포인트란 곧 힘의 수치나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그걸 어떻게 쓰는지.”
스윽-.
도깨비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조금이지만 화안금정의 위로 그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똑똑히 지켜봐라.”
* * *
도깨비들이 하나둘 성으로 모여들었다.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이렇게나 순조로워도 되는 건지.
“왜? 긴장되나?”
잠시 사라졌던 도깨비왕이 유원의 뒤로 다가왔다.
언제 온 건지, 기척도 없었다.
“도깨비들이 이렇게 친절한 종족인 줄 처음 알았군.”
“포인트만 많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수 있지. 그리고 넌 우리가 본 그 누구보다도 부자지.”
“다 뜯어먹겠다는 소린가?”
“바가지는 안 씌울 테니 걱정하지 마라. 디오니소스의 술을 가져온 건 아주 똑똑한 선택이었어.”
결국 가진 거 벗겨 먹기 위한 작업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거든.”
“……?”
“예지안이란 게 과연 가능한 건지.”
그들에게도 이건, 일종의 재미난 실험인 모양.
스윽, 슥-.
도깨비들이 바닥에 글씨를 새겼다.
알아볼 수 없는 언어의 나열. 도깨비왕은 그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예지안은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 시간의 나열을 앞으로 가져오는 눈이다. 물론, 안(眼)이라고는 하지만 그 형태는 꼭 눈이 아닐 수도 있지.”
쿵, 쿵-.
거구의 도깨비왕이 움직이자 성이 조금씩 흔들렸다.
스스, 스스스-.
도깨비왕의 가면이 서서히 벗겨졌다.
보통이라면 도깨비의 형상을 한 얼굴을 가면이라 여기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정반대였다.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얼굴이 바로 가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면이 모두 벗겨진 순간.
[‘도깨비왕의 가면’이 소멸합니다.] [‘도깨비왕’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도깨비왕’이 현신합니다.]오싹, 오싹-.
유원은 도깨비왕의 실체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녀석이었나.’
쿠구구구-.
그저 덩치 큰 술주정뱅이 아저씨로만 보였던 녀석이었다. 오딘이 대체 왜 그렇게까지 녀석을 치켜세웠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절대로 도깨비왕과 싸울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
도깨비들의 나라에 갈 계획을 세우던 중.
오딘이 손오공을 걱정스레 보며 말했다.
“특히 너. 네가 돌아갔을 때가 제일 걱정이다.”
“뭐? 왜?”
“아마 보자마자 싸우자고 달려들 테니까.”
“내가 그런 바보로 보이냐? 공사 구분도 못하게?”
“지금까지는 구분을 했다는 게 신기하군.”
“싸우자는 거냐 지금?”
그때는 오딘이 왜 그렇게 손오공을 걱정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막연하게 도깨비왕이 그만큼 강한 녀석이구나, 싶었을 뿐.
하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봤으면 못 참았겠어.’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괴물이었다.
그것도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괴물.
도깨비왕은 화안금정으로도 그 실체를 다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두꺼운 가면을 쓰고, 막대한 힘을 지닌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있었다.
“다 끝났다.”
스으윽-.
다른 도깨비들과 함께 바닥에 글씨를 새긴 도깨비왕이 유원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이쪽으로 와라.”
저벅, 저벅-.
유원은 도깨비왕의 손짓을 따라 바닥에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 위로 걸어갔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력이라고는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단순한 글자의 나열들일 뿐인데.
그 위에 서 있으니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준비됐느냐?”
글자 위에 선 유원이 도깨비왕을 돌아보았다.
준비라니.
“마음의 준비 말이다.”
“뭘 하는질 알아야 준비를 하지.”
“지금부터 시간 여행을 할 거다.”
시간 여행.
이미 유원은 시계태엽을 이용해 시간을 역행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 유원이 존재하고 있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또다시 다른 시간으로 가기라도 하는 걸까.
도깨비왕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진짜 시간 이동을 하는 건 아니고. 시간을 새길 거다.”
츠츠, 츠츠츠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원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글자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스무 명 안팎의 도깨비들.
그들이 바닥을 짚으며 마력을 움직여, 주술을 시작했다.
“이 방법이 예지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법칙을 어기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게 가능할지…….”
촤아아아-.
유원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글자들.
“네가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스륵, 스르르륵-.
무수히 많은 글자들이 유원의 몸을 덮으며 시야를 가렸다.
유원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손가락 한마디 까닥하기 어려워질 즈음, 시험은 시작되었다.
[‘도깨비의 시간’이 ‘화안금정’과 반응합니다.] [100,000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도깨비왕의 거래’를 받아들이겠습니까?]* * *
꽤 긴 시간 잠에 들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유원은 무수히 많은 장면들 속에 서 있었다.
‘꼭 영화 같군.’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개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하나하나를 따로 떼고 본다면 잘 몰랐던 장면들 중, 몇몇은 익숙한 것도 섞여 있었다.
‘저건 처음 손오공과 만났을 때.’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몇 없던 패배 중 하나. 유원은 손오공과의 싸움에서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이 탑은 정말 넓고, 강한 녀석도 많구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저건 헤라클레스가 날 구했을 때.’
동료로서 싸우던 어느 날, 헤라클레스는 유원을 대신해 죽을 각오로 싸웠다.
넓은 등을 돌려 서고 유원의 앞을 가로막은 헤라클레스는 홀로 아우터 갓들을 막아섰다.
‘정말 죽는 줄 알았지.’
문득 헤라클레스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싶었다.
아마도 그는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어쨌거나 헤라클레스는 유원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이었고, 둘도 없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저건…….’
또 다른 장면.
오딘이 궁니르를 던지고, 슈브 니구라스를 막아섰을 때.
온갖 장면들이 다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유원이 아는 장면들이 많았다.
대체 이건 다 뭘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던 때.
“뭐야…… 저건?”
유원의 눈길을 잡아끄는 장면이 하나 보였다.
콰드득-.
슈브 니구라스에게 씹어 먹히고 있는 오딘의 모습.
이런 건 눈으로 본 기억이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콰직-!
부서지는 헤라클레스의 팔. 한쪽 팔뿐만이 아니라 양쪽 팔이 모두 부서졌다.
그리고 그 장면은 유원을 지키기 위해 아우터와 싸우던 때를 비추고 있었다.
지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들은 그 숫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것들은 점점 쌓이고 쌓여 거대한 바다가 되어 유원을 덮쳐 왔다.
그리고 더더욱 미칠 것 같은 이유는 바로.
‘이 많은 게…… 전부 보인다.’
개수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장면들이 모두 유원의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들은 다 무엇일까.
유원은 눈 안으로 들어온 장면들을 보고, 또 보다가 확신했다.
‘미래에 벌어졌을지도 모를, 무수히 많은 일들.’
수십, 수백만.
수억이 넘는 무수히 많은 미래들.
숫자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가능성’들이 모두 유원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