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92
* * *
츠츠, 츠츠츠츠-.
유원의 몸을 감싼 글자들이 흩어지고 다시 새로운 글씨들이 새겨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써지고 다시 사라져 가는 글자들을 바라보던.
“시작됐군.”
도깨비왕이 중얼거렸다.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눈으로 유원을 지켜보고 있는 도깨비왕의 주위로는 스무 명의 다른 도깨비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뭐가 말입니까?”
도깨비왕은 바로 옆에서 들려온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진땀을 흘리고 있는 스무 명의 도깨비들 중, 비교적 가장 여유가 있어 보이는 도깨비.
도깨비왕의 수호 도깨비였다.
“이 글씨들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대부분은 너무 빨라서 다 읽을 수는 없지만요.”
“그럼 저것들 중, 몇 개나 남을 것 같으냐?”
“몇 개나…….”
사라지고 다시 새겨지기를 반복하는 글자들.
그 글자의 조합에 수호 도깨비가 답했다.
“대부분은 무의미한 글자로군요.”
“정확히는 무의미한 게 되는 거지. 결국에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까.”
“그럼 왜 저렇게까지 요란하게 하는 겁니까?”
“정해진 한 가지 미래를 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수십, 수백만, 수억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한 가지를 꼽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건…….”
도깨비왕의 말에 수호 도깨비는 그제야 ‘예지안’의 실체에 대해 깨달았다.
“……불가능합니다.”
“그래. 불가능하지. 그게 누구든 말이야.”
“머리가 터져 버릴 겁니다. 미미르를 보면 알지 않습니까?”
미미르.
이그드라실의 샘물을 마시고 지식의 저주에 걸린, 이 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
그는 지식의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지식의 저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다.”
“그럼 왜…….”
“그래서 화안금정이 필요한 거다.”
화르르륵-.
몸에 새겨진 무수히 많은 글자 가운데.
유원의 눈에 밝혀진 화안금정 위로 새빨간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저주라는 걸 제어하기 위해서 말이지.”
* * *
화르르륵-.
[‘화안금정’이 ‘도깨비의 시간’에 반응합니다.] [주술의 실체를 파악합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합니다.]눈앞에 펼쳐진 무수히 많은 장면들 가운데.
대부분의 장면들이 불에 탄 종이처럼 사라져 갔다.
일어날 리 없는, 그리고 일어날 수 없는 가짜 시간들.
‘진짜 일어날 미래를 보는 게 아니다.’
도깨비들의 주술은 만능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많은 양의 포인트를 지불하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확인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예지안’이라는 건 존재하는 스킬이 아닌, 존재할 거라고 믿는 스킬일 뿐이었다.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미래 중, 가장 높은 확률로 일어날 미래를 보는 것.’
수억 개에 달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들 가운데.
유원은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여기서부터는 유원의 몫이었다. 화안금정을 통해 무수히 많은 미래가 비춰져 보이고, 그 중에 몇 개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몇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지워 낸다.
화르르륵-.
[‘언젠가 일어날 일’을 추리하였습니다.] [예지력이 상승합니다.]지끈-.
해일처럼 눈으로 들어온 장면들을 겨우 가려 내자,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 왔다.
머릿속에 쏟아지는 수많은 장면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가능성에 대한 예측. 수억, 수십억이 넘는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확률의 축약.
그리고 그런 것들이 다듬어지고 또 다듬어져 다다른 ‘예상’을 넘어선 ‘예지’의 영역.
“예지안이라더니…….”
미래를 보는 건 거저 얻어지는 능력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건 예지라기보다는 가능성 높은 예측에 더 가까웠다.
지끈, 지끈-.
머릿속의 뇌가 요동치는 기분이었다. 눈 안으로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많아, 머리가 그걸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미르가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이렇게 미미르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대로라면 둘 중 하나였다.
여기서 포기하든가, 아니면 미미르처럼 버티고 지식의 저주에 빠져들든가.
원래였다면 포기했을 것이다.
아무리 예지안이 탐나도, 미미르처럼 백 년 중 대부분을 잠에 빠지는 저주에 들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게지.”
다행히도 유원에게는 같은 상황에서 잘못된 실수를 했던 미미르가 옆에 있었다.
“한 치 앞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아니, 그건 종족을 막론하고 모두 마찬가지지.”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미래.
그 모습 중 하나가 유원의 눈앞에 나타났다.
“난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었다. 볼 수 없는 걸 보고, 알고, 그걸로도 만족하지 못해 먼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다 알고 싶었지.”
지식에 대한 욕심.
그것이 바로 미미르를 망친 가장 큰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난 실패했다. 하지만 성공이기도 했지. 그건 반쪽짜리 성공이었다.”
“지식의 저주를 말하는 건가?”
“그것뿐만이 아니지.”
만약 지식의 저주에 걸린 게 전부였다면, 미미르는 아마 자신의 처지를 그리 비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 년 중에 일 년이 아니라 단 하루만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지식의 끝을 보고 싶었고, 그는 지식이 가리키는 끝이 완전한 미래를 보는 것이라고 여겼으니깐.
하지만 그는 미래를 볼 수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미래는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것뿐이다. 높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
“예지안을 말하는 거군.”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얻고 싶었던 거였다.”
그것이 바로 미미르가 자신의 지식을 반쪽짜리 성공이자 실패라 말하는 이유였다.
그의 지식은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결국 그것을 하나로 좁히지 못했다.
미미르는 이그드라실의 샘물을 마시던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넌 너무 멀리 보려고만 하지 마라. 너나 나나, 멀리는 보면서 한 치 앞을 못 봐서 문제니까.”
“한 치 앞…….”
유원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코앞에 있는 한 폭의 그림이 보였다. 그것은 아까까지 보던 아우터와의 싸움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장면이었다.
유원은 도깨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도깨비왕의 박수와 다른 도깨비들의 놀란 모습까지.
“멀리 보지 말라, 이거지.”
스윽-.
유원은 인벤토리 속에서 한 가지 작은 물병을 꺼내 들었다.
[암브로시아]# 황금 사과 나무의 수액이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다.
# 복용 시 랜덤 스탯 증가.
# 복용 시 정신력 강화.
# 복용 시 회복력 증가.
# 몸에 바를 시 모든 속성에 대한 강한 내성 증가.
# 몸에 바를 시 물리 방어력 증가.
# 몸에 바를 시 마법 저항력 증가.
암브로시아.
황금사과나무에서 뽑아 온, 아킬레우스를 반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주었던 아이템.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운 일종의 ‘물약’으로 구분되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충고는 고맙게 들으마.”
어차피 당장은 쓸 필요가 없어 아껴두고 있던 아이템이었지만.
유원은 지금이 바로 그 적기라 여기며 암브로시아를 담아 둔 물약의 마개를 열었다.
뽕-.
“하지만 난 예전부터 좀 욕심쟁이라서 말이다.”
그렇게 마개를 연 병을 입으로 가져가,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꿀꺽-.
[‘암브로시아’를 복용하였습니다.] [일시적으로 정신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암브로시아’가 ‘도깨비의 시간’에 저항합니다.] [‘화안금정’이 ‘도깨비의 시간’을 통제합니다.] [‘지식의 저주’가 약화됩니다.] [‘지식의 저주’가…….]남아 있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든 암브로시아를 입안에 털어 넣은 유원이 빈 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
“난 지지 않을 거다.”
반드시.
* * *
쨍-.
유원이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떨어뜨렸다.
맑은 물약을 입안에 털어 넣은 유원의 몸은 이미 새까만 글자로 빽빽하게 가려져 있었다.
“완전히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있군.”
“이쯤 되면 미쳐서 쓰러질 때도 됐는데 말이지.”
“정신력 하나는 인정해야겠어.”
주술을 사용하고 있는 도깨비들이 질린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주술을 사용하고 있는 도깨비들은 알고 있었다.
유원의 몸에 새겨지고 있는 주술의 효력은 무수히 많은 정보와 가능성의 주입이었다. 주술의 힘은 유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앞으로의 일들을 제시하고, 또 제시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통제하는 게 바로 유원의 몫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눈앞에 시각화되어 펼쳐지는 미래에 보통 사람이라면 머리가 터져 버리거나 정신이 나가 버리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유원에게는 그것을 통제할 수단이 하나 존재했다.
“가진 게 화안금정 하나뿐인 줄 알았더니만…….”
아니.
하나라고 생각했다.
“암브로시아를 숨기고 있었나.”
도깨비왕은 바닥에 떨어져 깨진 유리병의 파편을 바라보았다.
암브로시아가 담겨져 있던 병. 저것 덕분에 유원은 조금이나마 더, 몸에 새겨진 주술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암브로시아는 영약이면서 동시에 마약과도 같았다. 그 효력은 일순간 복용자의 정신력을 몇 배나 증폭시켜 주었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아이템인 바.
도깨비왕은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군.”
“이러다 정말…… 예지안을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다.”
수호 도깨비의 말에 도깨비왕은 이죽거리며 웃었다.
“이대로라면 미치광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예?”
“아니면 백 년 중 구십 년 정도를 잠에 빠져 살거나. 원래는 미미르 꼴이 나는 건데, 많이 나아지겠군.”
미미르는 그 지식을 다 감당하지 못해 예지안을 얻는데 실패하고 지식의 저주에 빠져들었다.
물론 두 사람은 조금 차이가 있었다. 이그드라실의 샘물을 통해 지혜를 얻었던 미미르와는 달리, 유원은 주술을 통한 정보의 주입이었으니까.
하지만 방법은 다를지언정 그로 인한 결과는 다를 게 없었다.
뇌의 과부하.
그로 인한 정신의 붕괴. 혹은 기나긴 수면.
암브로시아 덕분에 조금 안정을 찾았다지만 그렇다고 결과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 대단한 주술사 한 명이 녀석을 돕는다면 또 모르지.”
“저희로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주술의 중심이 되는 도깨비왕을 비롯한 스무 명의 정예 도깨비들.
그들의 주술로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게 바로 예지안이었다.
“맞다. 우리는 한계지.”
저벅-.
도깨비왕의 성에 들어오는 발자국 하나.
“그런데 한 놈.”
도깨비왕은 꽤 한참 전부터 자신을 향해 투기를 끌어올리고 있는 거구의 남자를 돌아보았다.
“더 괜찮은 녀석이 있어서 말이다.”
고오오오-.
거대한 성을 짓누르는 존재감에 다른 도깨비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꺾고 주저앉았다. 도깨비왕은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 반갑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깨비왕과 주술에 둘러싸인 유원을 번갈아보는 장신의 남자.
도깨비왕이 그를 향해 인사했다.
“어서 오거라, 우마(牛魔)야.”
하늘을 평정하였다 하여 하늘 아래 적수가 없으리라 스스로를 선언하였던 요괴.
평천대성(平天大聖) 우마왕이 도깨비왕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