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96
* * *
양반탈이 밖으로 나간 뒤.
달빛을 안주 삼아 혼자 조용히 술잔을 들던 도깨비왕의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꿈틀거렸다.
스르르-.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도깨비가 도깨비왕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입 없이 눈만 웃고 있는 탈을 머리에 쓴 도깨비.
열 명의 도깨비 탈 중 하나, 이매탈이었다.
“너도 한잔할 테냐?”
도깨비왕이 주먹만 한 크기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매탈은 말없이 손을 뻗어 술잔을 받아 마셨다.
“크-.”
“맛있냐?”
“아니요. 씁니다.”
“세상에나. 참 술 맛 모르는 도깨비란 말이지.”
끌끌 웃어 보인 도깨비왕이 다시 술을 따랐다.
그렇게 예의상 한 잔을 받아 마신 이매탈이 입을 열었다.
“양반과 백정이 만났습니다.”
“그래?”
“이번 일로 몇몇 탈들이 돌아선 모양입니다. 도깨비들의 민심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우마 녀석에게 진 게 많이 충격이었나 보구먼.”
“많이 늙으신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짜식이 말하는 거 하고는.”
“그러니 이제 슬슬 술 좀 줄이시지요.”
“오늘 술 맛 떨어지게 하는 놈들이 뭐 이리 많아?”
도깨비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도깨비 나라를 책임져 온 왕.
그리고 왕의 위상은 아주 느리고 티나지 않게 서서히 떨어져 왔다.
도깨비왕은 양반과 백정을 비롯한 수호 도깨비들이 무언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도 그렇게 보이더냐? 내가 늙고 약해졌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됩니까?”
“언제는 안 그런 것처럼 말하는구나.”
“예. 많이 늙으셨습니다.”
“그래?”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살을 구긴 도깨비왕은 술잔으로 뻗던 손을 멈추었다.
“하긴. 이제 자제할 때도 됐군.”
스윽-.
손을 치운 도깨비왕은 고개를 들어 달을 올려다보았다.
저 달빛을 안주 삼는다는 핑계로 그간 마신 술이 대체 몇 통이나 될지. 숫자나 양으로 셈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양반탈과 백정탈.
열 명의 탈 중에 둘이 움직였다.
“다른 놈들도 움직이겠군.”
“노리신 겁니까?”
“노려? 내가 뭘?”
“우마왕과의 싸움 말입니다. 그 싸움에서 패하면 저들이 움직일 걸 알고 있으셨느냔 말입니다.”
이매탈의 물음에 도깨비왕은 대답 대신 술상을 발로 밀어 버렸다.
“이거나 갖다 치워라. 니들 덕분에 술 맛 다 버렸으니.”
대답을 피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매탈은 우연이라 치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딱 들어맞는다 싶었다.
이매탈은 결국 도깨비왕이 먹다 만 술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궁금하던 것에 대한 답은 듣지 못한 채였다.
그렇게 술상도 없이 혼자 남겨진 도깨비왕.
그는 방금 전, 자신을 찾아와 따지던 양반탈을 떠올렸다.
“부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말거라.”
우마왕과 김유원.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두 명이 도깨비들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지금이.
“뒤지기 싫으면.”
썩은 부분을 알아내기에는 딱 좋은 때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소문이 돌았다.
요괴들의 무덤이 생긴다는.
“그거 들었나?”
“뭐?”
“저- 쪽, 우리 선조들 무덤 옆에 요괴들 무덤이 생긴다는.”
“요괴? 요괴들 무덤이 여기 왜 생긴다냐?”
“왕께서 뭔가 약속을 하신가 보던데.”
“그래? 그럼 따라야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아무리 왕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해도, 우리랑 전쟁까지 한 요괴들 무덤을 만든다는 게.”
“그래. 그놈들 손에 죽은 선조들이 몇 명이야?”
“그래도 왕께서 다 생각이…….”
“맞아. 그 싸움이란 것도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했던 거 아니냐?”
“너 인마, 지금 말 다 했어?”
도깨비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왕의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는 쪽.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는 쪽.
그리고 그렇게 갈라진 무리들 중, 왕의 의견에 반대하는 쪽은 꽤 성격이 단호했다.
도깨비 나라의 무덤.
넓은 평원에 자리하고 있는, 수백만에 달하는 도깨비들의 무덤에 새로운 자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중.
퍼억-!
방해꾼이 나타났다.
“배, 백정탈님!”
얼굴을 백정탈로 뒤집어쓴 도깨비.
열 명의 탈 중, 가장 성격이 난폭하기로 알려진 백정탈이 무덤을 만들던 도깨비를 상대로 발길질을 날린 것이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저희는 왕의 명령으로…….”
“더러운 요괴 놈들의 무덤이나 만들고 있었지.”
저벅-.
백정탈은 살기를 내뿜으며 도깨비들을 향해 다가갔다.
“왕의 명령이고 나발이고, 여기서 안 꺼지는 놈들은 내 손에 다 죽을 줄 알아라.”
“하지만……!”
“하나.”
스칵-.
백정탈의 허리춤에서 기다란 칼이 뽑혀져 나왔다.
“둘-.”
느리게 이어지는 숫자.
도깨비들은 그가 셋을 세는 순간, 망설임 없이 동족을 향해 칼을 휘두를 것이라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탈이라면 몰라도 백정탈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세에-.”
“집에서 안 배웠냐?”
툭 던져진 기분 나쁜 목소리.
백정탈의 고개가 돌아갔다. 조금 떨어진 자리, 도깨비의 무덤 한 곳을 보며 묵념하고 있던 유원이 몸을 돌렸다.
“이런 곳에서는 평소보다 더, 예의라는 걸 좀 갖춰야지.”
“……인간?”
소문은 들었다.
우마왕과 함께 자신들의 나라에 들어온 인간이 한 명 있다고.
바깥의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도깨비들조차 들어 봤을 만큼 유명한 이름이었다.
“네가 김유원이군.”
서늘한 마력이 백정탈의 칼끝을 통해 뿜어졌다.
유원은 그런 백정탈과 누군가가 겹쳐져 보였다.
‘스사노오 과인가.’
느껴지는 기세도, 분위기도.
백정탈은 확실히 삼귀자 중 한 명인 스사노오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실력은 그보다 못해 보였지만 말이다.
‘저런 녀석이 열 명이라는 거지.’
유원은 도깨비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의 저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하루 전날.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하기 전, 우마왕은 유원을 불러 경고했다.
“‘탈’을 가진 도깨비들은 모두 상위 하이랭커들 이상의 실력자들이니.”
탈.
도깨비왕 다음가는 권력을 지닌, 열 명의 도깨비들.
그들은 도깨비왕의 명령조차도 한 번은 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백정탈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죽여도 되는 겁니까?”
“된다.”
“도깨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도깨비왕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 능구렁이,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더구나. 이리 빨리 움직였다는 건 도깨비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있었다는 뜻일 테니.”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도깨비왕은 우마왕과의 싸움에서도 진 게 아니라 져 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다른 도깨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테고, 우마왕의 협력을 얻어 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뭐, 그래도 덕분에…….”
스캇-.
검에는 검으로.
“포인트는 좀 아끼겠어.”
나쁠 건 없었다.
여기서 포인트를 아끼면 그만큼 다른 데 포인트를 더 투자할 수 있을 테니까.
“포인트?”
유원의 중얼거림에 백정탈이 비웃음을 지었다.
“목이 떨어져 나가면 포인트가 다 무슨 소용이냐?”
“안 떨어져 나갈 거니 괜한 걱정이다.”
“이제 막 랭커가 된 햇병아리 주제에 눈깔 하나 얻었다고 건방을 떨어?”
김유원.
이름은 들어 보았다.
대단한 루키가 탑에 들어왔다고. 역대 플레이어들의 랭킹을 다 갈아 치우는, 아주 엄청난 녀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세상 밖으로 나갔던 도깨비가 들고 온 소식에 백정탈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
모든 도깨비들이 다 마찬가지였다.
당연했다.
어차피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
“세상 물정 모르는 건 다 똑같네.”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백정탈이 눈살을 구겼다.
하지만 유원은 더 이상 그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더 해 봤자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칼에는 자신 있나 보지?”
저벅-.
유원은 칼끝을 위로 들어 올리며 백정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 해 봐라. 칼질.”
“이 새끼가-.”
“개성 없는 대사하며.”
스윽-.
옆으로 지나쳐가는 유원의 옆모습.
“형편없는 실력하며.”
검을 휘두르던 백정탈이 멈칫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유원의 검은 자신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쳐갔다.
주륵-.
목덜미에서 흐르는 피.
“너무 잘 보이잖아, 칼이.”
화륵-.
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목을 부여잡고 고개를 돌린 백정탈이 유원과 눈을 맞췄다.
유원의 양쪽 눈이 모두 황금색으로 바뀌었다.
화안금정과는 다른 종류의 눈.
실전에서 사용하는 첫 예지안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속 방금 전과 같다면, 화안금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이번엔 좀 더 잘해 봐라.”
* * *
도깨비왕의 거처.
그 앞으로 양반탈을 비롯한 수백 명의 도깨비들이 모여들었다.
“양반탈에 주지탈, 각시탈까지…….”
“탈급 도깨비가 세 명이나 모였어.”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오랫동안 바뀌지 않았던 도깨비왕.
그를 몰아 낼 명분과 힘이 갖춰진 때는 지금뿐이었다.
“아직 왕은 다 회복되지 않았을 거다.”
불과 며칠 전.
도깨비왕은 우마왕과의 싸움에서 패해, 따로 거처를 잡고 요양에 들어갔다.
그 이후부터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니 도깨비들은 왕이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조심해야 하는 쪽은 이매탈이다.”
“그놈 실력은 잘 알지.”
“괴물 같은 놈…….”
이매탈.
그는 열 명의 탈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도깨비였다.
가장 늦게 탈을 부여받았으면서도 실력은 월등해, 도깨비들 사이에서는 그가 사실은 플레이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돌 정도였다.
가장 경계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
“주지, 양반. 이매탈은 너희 둘이 맡아.”
“그럼 왕은 너 혼자 맡을 생각이냐?”
“데려온 놈들은 폼이냐? 이쪽에 붙은 수호 도깨비가 다섯이다. 그리고 이제 곧 백정탈도 합류할…….”
끼이이-.
그때였다.
도깨비왕이 머물고 있는 기와집의 대문이 열리기 시작한 게.
바짝 긴장하기 시작한 도깨비들. 그들은 저 문을 통해 거구의 도깨비왕이 걸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벅-.
“하나, 둘, 셋…… 셋인가.”
대문을 걸어 나온 건 도깨비왕이 아니었다.
도깨비왕만큼은 아니어도 2미터가 넘는 충분히 큰 키를 가진 남자.
우마왕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구나. 이 정도는 직접 하지. 쯧.”
“뭐야?”
“요괴잖아?”
“우마?”
도깨비왕을 쓰러뜨린 우마왕이 멀쩡한 몸으로 이곳에 나타났다.
도깨비들을 이끌던 세 명의 탈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분명, 도깨비왕과 우마왕은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였을 텐데.
“지금부터 너희들에 대한 왕의 판결을 알려 주마.”
짜악-!
우마왕이 손뼉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쿠구구궁-!
“꺼억!”
“몸…… 이……!”
“아아악!”
철퍼덕, 우드드득-.
수백 명의 도깨비들이 몸에 가해지는 압력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엎어지고, 온몸의 뼈가 부러져 비명을 질렀다.
특별한 준비도 없었다.
우마왕은 그저 손뼉을 부딪치는 것만으로 주술을 사용해 이 주위의 공간을 장악했다.
“판결은-.”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