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00
* * *
보글, 보글-.
유원이 들어간 시술약이 점점 더 세게 들끓었다.
세상 모든 악취를 모아 놓은 듯한 지독한 냄새에 이매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계속 시술약을 유원의 몸속으로 주입하고 있는 우마왕과 도깨비왕을 바라보았다.
‘하루쯤 됐나.’
시술이 시작되고 하루.
분명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술을 진행 중인 이매탈은 슬슬 정신력과 마력이 바닥을 드러나는 걸 느꼈다.
“피곤하면 잠깐 쉬거라.”
그런 이매탈의 상태를 눈치챈 우마왕의 말이었다.
괜찮다고 말하려던 이매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괜히 자신이 고집을 부렸다간 자칫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은 이매탈은 차분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쉬라며 한 마디를 던진 우마왕은 다시 시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도깨비왕은 지루한지 늘어져라 하품했다.
‘대단하군.’
분명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팔팔 끓고 있는 탕에 녹아 있는 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하이랭커들조차 잡기 어려워하는 괴물이나 신수에게서 얻은 재료들이었다.
그런 재료가 지니고 있는 힘을 강제로 녹여 낸다는 건 그만큼 많은 양의 포인트도 포인트였지만 바깥의 도움도 필요했다.
자칫 시술약이 잘못 섞이거나 시술이 진행되던 중 다른 시술이 시작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물론…….’
보글-.
이매탈의 시선이 끓고 있는 시술약 속의 유원에게로 향했다.
‘이런 시술을 견디고 있는 저 녀석도 마찬가지지만.’
이매탈은 이미 오래전, 비슷한 시술을 겪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이매탈을 도와주었던 주술사는 도깨비왕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육체 강화 시술은 지금처럼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만한 양의 재료를 구해 온 건 오로지 유원의 능력이었고, 그로 인해 시술의 부담은 이매탈이 겪은 것보다 몇 배나 커진 것이다.
‘견뎌 낼 수 있었으면 좋겠군.’
시술을 받는 당사자가 정신을 잃어버리면 이 시술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제아무리 바깥의 주술사들이 힘을 쓴다 해도 시술자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끝이었으니 말이다.
‘잘 버텨 봐라.’
* * *
[‘고대 기사왕’의 특성을 흡수합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체력이 1 상승합니다.]슬슬 정신적으로도 힘들 즈음,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래도 보상은 있으니 다행이었다. 이런 거라도 아니었다면 진작 포기했을지도 몰랐다.
‘죽겠네, 진짜.’
보글-.
숨을 쉬는 건 지장이 없었다.
지금 숨이 막히는 건, 몸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시술약의 영향 때문이었다.
약 속에 섞여 있는 온갖 재료의 특성들이 몸속에 쑤셔 넣어졌다. 그만큼 스탯을 많이 얻긴 했지만 정신력과 체력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처럼 한 번씩 체력을 스탯으로 얻지 않았다면 이미 몸이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이번이 스무 번째쯤 됐나.’
그렇다면 남은 게 대체 몇 개나 더 될지.
따로 숫자를 세 보질 않아서 감이 오질 않았다. 유원은 자신이 모아 온 재료를 머릿속으로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수르트의 심장’이 몸에 스며듭니다.]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육체 강화 시술’이 중단됩니다.] [포인트를 사용해 ‘육체 강화 시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512489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화아악-.
살과 근육을 태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유원의 눈이 부릅떠졌다.
‘올 게 왔나.’
육체 강화 시술을 계획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재료였다.
수르트의 심장.
무조건 집중해야 했다. 이걸 실패하면 시술의 절반을 날려먹는 거나 다름없었다.
[51248900포인트를 소모합니다.] [‘육체 강화 시술’을 다시 시작합니다.]한순간에 5천만 포인트가 사라졌다.
하지만 수르트의 심장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당장 튜토리얼에서만 하더라도 유원은 수르트라의 심장을 통해 다량의 스탯을 얻었다.
‘이건 그 확대판이다.’
수르트라는 수르트의 여러 자식들 중 하나. ‘무스펠의 아들’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수르트는 달랐다.
수르트라가 거대한 나무의 여러 잔가지 중 하나라면 수르트는 몸통이자, 뿌리.
녀석의 심장은 튜토리얼에서 유원이 복용한 거인의 심장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치이이이-.
“……!”
마치 온몸을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
화륵-.
유원의 두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화안금정’이 ‘정점에 다다른 거인과 악마의 불꽃’에 저항합니다.] [‘성화’가 ‘정점에 다다른 거인과 악마의 불꽃’에 저항합니다.] [‘화안금정’이 ‘정점에 다다른 거인과 악마의 불꽃’에 저항을 실패합니다.] [‘성화’가…….]어떻게든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으로부터 저항해 봤지만 완벽히 저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수르트의 심장이 녹아든 약은 주술의 인도를 받아 유원의 몸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그 불꽃을 견뎌 내고, 받아들이는 건 유원의 몫이었다.
겨우 익숙해졌던 통증은 다시 심해졌다.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유원이 몸을 꼬았다.
반드시 이겨 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 * *
보랏빛의 하늘.
바닥에 떨어진 검은 나뭇잎들을 밟으며 로브인이 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나무도, 땅도. 모든 게 검은 숲.
로브인은 오랜만에 방문하는 숲속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긴 언제 와도 기분 나쁘군.”
다 죽어 버린 나뭇잎을 밟으며 어리석은 혼돈이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검은 숲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치 자신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중간한 존재들은 이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숲에 잡아먹혀 버리기 십상이었다.
메에에에-.
바로 저들에게 말이다.
꿈뻑-.
까만 수풀에서 눈을 깜박히는 작은 산양 한 마리.
아직 새끼인 듯 보이지만 녀석은 자신을 향해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이리로 오너라.”
어리석은 혼돈이 산양을 향해 손짓했다.
바스락-.
수풀을 헤치며 산양이 어리석은 혼돈을 향해 다가왔다.
허리 정도 오는 키의 작은 산양. 그것은 어리석은 혼돈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갑작스레 거대한 입을 벌렸다.
쩌억-.
그리고 그 순간.
“덧없구나.”
사아아-.
새끼 산양의 몸이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소리도 없었다. 흩어진 재가 바람이 흩날리는 게 산양의 마지막이었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메에에에-.
메에-.
주위의 산양들이 울부짖었다.
자신들의 새끼를 죽인 ‘적’의 등장에, 곳곳에서 수십 수백 개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산양들을 둘러보며.
“좋은 곳에 갈 녀석들이 많군.”
어리석은 혼돈은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산양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서.
그런데 그때.
-마-아-.
저 멀리, 다른 종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싹, 오싹-.
몸을 떨게 만드는 공포. 산양들의 고개가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갔다.
어리석은 혼돈 역시 행동을 멈추었다.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게 진작 이러시지 그랬습니까.”
저벅-.
발걸음을 돌린 어리석은 혼돈이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어갔다.
울음소리는 한 번 울리더니 사라졌다. 어리석은 혼돈을 가로막던 산양들은 다시 수풀로 몸을 숨긴 채, 눈빛만을 반짝였다.
그렇게 검은 숲을 헤쳐 간 끝에.
번뜩-.
보랏빛의 눈동자 하나가 어리석은 혼돈을 맞이했다.
-왔느냐.
검은 숲에 사는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염소.
그 이명과 어울리게, 그는 검은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주변에 산양들을 거느린 채 누워 있었다.
보랏빛의 눈동자에 어리석은 혼돈의 모습이 비춰졌다.
스윽-.
어리석은 혼돈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눈앞에 있는 슈브 니구라스는 그보다 더 높은 격을 지닌 몇 안 되는 존재였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나.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시는 분이시니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입 발린 말을 잘도 하는구나. 아니라는 걸 알면서 말이지.
“제가 예의가 좀 바릅니다.”
슈브 니구라스는 헛소리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어리석은 혼돈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슈브 니구라스의 목덜미 부근.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무언가에 물어뜯긴 자국이 보였다.
“상처가 잘 아물지 않나 봅니다.”
-꽤 오래 걸리는군. 이상하게도 말이야.
슈브 니구라스의 재생력이라면 하루 안에 다 나았어야 할 상처. 하지만 상처를 입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슈브 니구라스의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너는 알고 있었지?
슈브 니구라스의 눈동자가 빛을 뿜었다.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들이민 염소의 얼굴이 어리석은 혼돈을 향해 다가왔다.
-이것도 네 계획이더냐.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나를 그 제물로 쓴 것이고.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어리석은 혼돈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용서를 빔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었다. 일부러 잘못을 한 건 괘씸하지만 슈브 니구라스는 굳이 이 상황에서 어리석은 혼돈과 싸움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정말 ‘그’가 살아 있는 게 맞다면 가장 피곤한 건 너일 테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혼돈의 고개가 더 깊게 숙여졌다.
그는 이곳으로 오며 팔 하나쯤은 뜯겨져 나갈 것을 각오한 상태였다. 이 정도로 넘어가는 건 천만다행이었다.
-썩 나가 봐라. 더 있다가는 네 두 팔과 다리는 여기 있는 새끼들의 먹이로 던져 줄지도 모르니.
“알겠습니다.”
대체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 건지.
어리석은 혼돈은 슈브 니구라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는 검은 숲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 새끼 산양들이 어리석은 혼돈을 따라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괜히 저것들이 거슬려 손을 썼다가는 자칫 그나마 가라앉은 슈브 니구라스의 화를 돋우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검을 숲을 빠져나온 뒤.
“슈브 니구라스가 당했다…….”
어리석은 혼돈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이었던 거군.”
어리석은 혼돈의 머릿속에 한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아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 신경 쓸 게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위로 어리석은 혼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존재가 겹쳐져 보였다.
절대 눈앞에 나타나선 안 될 이가 말이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분신체 정도로는 당시 제우스나 김유원을 뚫고 그에게 도달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리석은 혼돈은 슈브 니구라스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많은 걸 잃었지만…….
스윽-.
고개를 들어 보랏빛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꼭 확인해야 할 걸 확인했다.’
슈브 니구라스의 목덜미가 물어뜯겼다. 슈브 니구라스에게 그만한 상처를 낼 수 있는 존재가 현재 탑 안에 존재할 리 없었다.
그렇다는 뜻은 하나.
“우둔하고 눈 먼 우리 아버지여. 혼란하고 어리석은 자여.”
아우터 갓.
그중에서도 ‘어리석은 혼돈’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던 원래의 주인.
“우린 악연인 모양입니다.”
어리석은 혼돈이 눈을 감았다.
이젠 다시 그의 앞으로 가야 할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