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01
* * *
몇천 년 전.
도깨비왕은 한 작은 도깨비를 만났다.
“네가 독각이로구나.”
앙상하게 말라 쓰러져 가던 도깨비 하나.
도깨비왕은 도깨비 나라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그를 발견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네가 여기 골목대장이라지?”
동시에 독각이라 불린, 어린 도깨비의 눈에서 불이 뿜어졌다.
이름 그대로 독기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저 말라비틀어진 몸에서 어찌 저런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쌈질은 잘 하지만 몸뚱이는 영 아니로군.”
도깨비왕은 독각에게 흥미를 가졌다.
마치 오래전, 우마왕을 처음 발견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도깨비왕은 독각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지금껏 틀린 적이 없었다.
“이거 가져라.”
툭-.
독각의 앞에 떨어지는 작은 탈 하나.
“나중에 그거 들고 나한테 찾아와라. 그땐 크기 맞춰서 다시 만들어 줄 테니.”
“……당신 누구야?”
탈을 주워 들며 독각이 물었다.
거구의 도깨비왕을 보며 위압감을 느낄 법하건만 독각은 조금도 그러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 도깨비왕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왕의 얼굴도 모르는 불경한 놈이로고.”
“왕이라고? 당신이?”
“당신? 허, 참나 이놈 이거.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네.”
도깨비왕은 턱을 쓰다듬었다.
독각을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 앙상하게 마른 몸을 바꿀 방법이 떠올랐다.
“강해지고 싶냐?”
“……그래.”
“그래가 아니고 네. 따라 해 봐라.”
“네.”
“오냐, 그래. 강해지고 싶긴 하다 이거지.”
어린 나이의 독각.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탈을 보며 도깨비왕이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이매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골목을 전전하며 싸우던 독각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와 싸우던 다른 어린 도깨비들은 복수를 하겠답시고 독각을 찾았으나, 그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몇백 년이 흐른 후였다.
도깨비왕의 앞으로 익숙한 탈을 쓴 도깨비가 나타났다.
“이매가 인사드립니다.”
“오냐.”
당시의 이매탈은 겨우 랭커가 된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턱걸이. 그나마 그렇게 랭커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도깨비왕에게 배운 몇 안 되는 주술과 타고난 독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도깨비왕은 그를 높이 봤다.
“이제 몸만 고치면 되겠구나.”
바로 그날.
이매탈은 육체 강화 시술을 받았다.
약점을 보완한 이매탈은 그렇게 왕을 제외한 최강의 도깨비로 거듭났다.
그것이 도깨비들의 첫 번째 탈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 * *
보글, 보글-.
이매탈은 끓고 있는 시술약 속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신을 잃어버린 건가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시술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벌써 사흘째였다.
‘무아지경 상태인 건가.’
반쯤 정신이 나간 건 확실해 보였다.
저런 상태에서까지 시술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니. 이건 말 그대로 지독한 정신력이었다.
‘정말 이걸 다 시술할 생각인가.’
처음에는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반 정도나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그중, 수르트의 심장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대박이라고만 말이다.
그런데 웬걸.
벌써 사흘째. 유원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슬슬 끝나 가는군.”
슬슬 힘이 드는 건 도깨비왕도 마찬가지인 모양.
이마에 땀을 흘리는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왔다. 중간 중간 한 번씩 쉬었던 이매탈과는 달리, 도깨비왕은 지금껏 한 시도 쉬지 않고 있었다.
“더 이상 남은 게 없는 것 같소.”
우마왕 역시 상황은 같았다.
두 사람이 똑같은 의견이었다.
남은 게 없다니.
보글-.
이매탈은 여전히 끓고 있는 탕을 바라보았다. 색이 먹물처럼 까만 건 여전했다.
대체 뭐가 끝나간다는 건지.
‘……냄새?’
이매탈의 신경이 코끝으로 모아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시술약에서 나던 악취가 사라졌다.
단순히 냄새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
이매탈의 시선이 시술약 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치이이-.
팔팔 끓던 시술약에서 급격히 수증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시술약이 끓고 있던 건 단지 주술에 의한 현상에 불과했다. 열이 가해져 끓거나 하는 게 아니라 시술약이 증발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수증기를 통해 화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약이 증발하고 있었다.
‘뭐 때문에?’
팔팔 끓어오르는 열기에 이매탈은 주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건 도깨비왕과 우마왕 역시 마찬가지.
“떨어지거라.”
저벅-.
우마왕이 끓어오르는 약으로부터 뒷걸음질을 치며 말했다.
“아마 많이 뜨거울 테니.”
“……?”
우마왕의 말에 이매탈과 도깨비왕 역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가 조금 멀어질 무렵, 열기가 더 강해졌다.
치치, 치이이이-.
펄펄 끓는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두꺼운 구름을 만들었다.
그에 달빛이 가려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주위는 오히려 더 환해졌다.
화르륵-!
붉은 계열의 불꽃과 보랏빛의 불꽃이 뒤섞이며 위로 솟아올랐다. 불꽃은 순식간에 유원이 들어 있던 약을 증발시켰다.
악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증기와 땅이 만나 흙 내음이 조금 느껴질 뿐이었다.
저벅-.
뿌연 수증기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누굴지는 뻔했다.
‘김유원인가.’
저 속에는 유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매탈은 그 뻔한 답에 잠시간 의문을 가졌다.
‘정말…… 김유원인가?’
아직까지는 수증기 속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형상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매탈은 수증기 너머 인물이 유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존재가 그를 통해 보이는 듯했다.
지금 이태탈의 눈에 유원은 하나이자 여럿의 힘을 지닌 작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윽고 유원이 천천히 걸어 수증기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스으으-.
이매탈은 초점이 없는 유원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정신이 있긴 한 건가.’
하긴.
무려 사흘 동안 저 안에서 지독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정신이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게 더 신기한 일.
“괜찮은…….”
“다가가지 마라.”
유원을 향해 한 걸음 옮긴 이매탈의 앞을 우마왕이 가로막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그냥 걸어 나와도 될 걸, 유원은 굳이 열을 뿜어내며 모든 약을 증발시켜 버렸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괜히 피 볼 수도 있으니.”
저벅-.
그렇게 우마왕이 이매탈을 말린 직후, 도깨비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기심에서였다.
이만한 규모의 시술을 끝마친 유원이 대체 얼마나 강해졌을지.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며칠 전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유원이 맞는 건지.
“성공은 성공인 것 같긴 하다만-.”
도깨비왕은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군.”
둘의 거리는 열 걸음 남짓.
그마저도 유원의 걸음으로 열 걸음이지, 도깨비왕에게는 불과 세 걸음 정도에 불과했다.
“정신이 나가 버리기라도 한…….”
부웅-.
위로 떠오르는 몸.
“……?”
도깨비왕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대체 이 짧은 시간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렇게 반대로 뒤집혔던 도깨비왕의 몸이 땅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우지끈-! 쿠구구구-.
도깨비왕이 바닥에 떨어지며 땅이 갈라졌다.
넓게 생겨난 구덩이. 그 중심에 떨어진 도깨비왕은 어느새 자신의 팔이 유원에게 잡혀 있는 걸 발견했다.
꽈아악-.
유원의 손아귀가 도깨비왕을 꽉 붙잡았다.
힘에서는 우마왕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도깨비왕이었다. 제아무리 며칠 동안 주술을 사용하느라 힘이 빠져 있다 해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몸이 들린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무슨 놈의 힘이…….’
아무래도 시술은 꽤 성공적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빠직-.
도깨비왕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도와줬더니 돌아오는 게 엎어치기라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너 이노…….”
그 순간.
스르륵-.
급격하게 풀리는 손아귀 힘.
풀썩-.
유원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엎어치기에 바닥에 드러누웠던 도깨비왕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뭐냐, 이건?”
갑작스러운 공격, 그리고 이어진 기절.
어리둥절해 하던 도깨비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너지고 갈라진 땅. 그 충격으로 인해 무너진 기와집.
순식간에 벌어진 난리 통에 도깨비왕이 중얼거렸다.
“……비싼 값으로 받아야겠군.”
* * *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아마, 수르트의 심장과 싸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반쯤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수르트의 심장에 비하면 이후 나타난 다른 특성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는 점이었다.
‘언제 기절했지?’
정신을 차리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오늘따라 눈꺼풀이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무겁게 느껴졌다.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여의봉이라도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도 눈꺼풀은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어쩌겠나. 충분히 잤으니 일어나야 하는 것을.
그렇게 유원이 천천히 눈을 뜨자.
“깼느냐?”
아니나 다를까, 우마왕이 유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원은 대답 대신 눈동자를 굴려 천장과 함께 자신이 누워 있던 방을 둘러보았다.
낡은 집이었다. 으리으리한 도깨비왕의 기와집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분명 자신은 도깨비왕의 허락을 받고 그의 거처에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유원의 눈동자에 떠오른 의문을 읽은 우마왕이 말했다.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집을 다 부숴 놓았으니 말이야.”
“……제가 말입니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자신이 도깨비왕의 집을 부쉈다니. 대체 언제 말인가.
지끈, 머리가 아파 왔다. 아무래도 몸이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몸은 다 나았다. 문제는 정신이지. 억지로 끊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려 했으니 머리가 많이 아플 게야.”
탁-.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
유원은 우마왕이 건네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마시거라. 향을 맡으면 그래도 머리가 좀 나을 게다.”
“고맙습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차 향을 맡으니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렇게 차를 마시며 머리를 굴려 봤지만 역시나, 기억나는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물어보는 수밖에.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힘이 많이 세졌더구나.”
“예?”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나 보군.”
우마왕의 반응을 보니 장난은 아닌 듯했다. 하긴, 그가 손오공도 아니고 이런 일로 장난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유원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가 먼저 이야기해 주길 기다렸다. 집을 부쉈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을 내긴 낸 모양이었다.
금방 말해 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유원이 다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때.
“어떠냐?”
스윽-.
우마왕이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와 팔씨름 한 번 해 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