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07
* * *
철푸덕-.
바닥에 드러누운 손오공의 눈동자에 하늘이 비춰졌다.
“으아아아-!”
짜증이 가득 담긴 비명.
몇 날 며칠 동안 계속 근두운을 타고 돌아다니며 온몸이 녹초가 된 탓이었다.
그동안 찾아다닌 곳이 얼마나 되는 건지.
천축을 찾으려다 세계 일주라도 할 지경이었다.
“어디야, 대체.”
이 넓은 탑을 다 뒤지려니 도통 답이 없었다. 아무리 근두운이 빠르다 해도 탑은 넓고, 그곳을 다 뒤는 데에는 개인인 이상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내내 돌아다니다 지친 손오공은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기잉-.
손오공의 이마에 씌워진 긴고아가 작게 떨렸다.
“응?”
방금 누운 자리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키는 손오공.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올라갔구나.”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유원이 다음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걸.
시험을 통과해 격을 얻고 나면, 대체 얼마나 또 변해 있을지.
잠시 퍼졌던 정신이 돌아왔다.
의욕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뭘 어디로 가야 되지?”
쓸데없이 직진만 하던 결과가 이것이었다.
천축은커녕, 쓸데없이 높기만 한 산만 찾아다녔다.
그렇게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즈음.
저벅-.
손오공의 뒤로 풀잎을 밟으며 걸어오는 사뿐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생각이 이제야 든 게냐?”
“어?”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손오공이 씩 웃어 보였다.
“형님!”
“잘 있었느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른 손오공이 우마왕을 향해 달려갔다. 손오공의 모습이 엿가락처럼 쭉 늘어날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그대로 우마왕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부우웅-.
퍽-!
우마왕의 손에 손오공의 주먹이 잡혔다. 손아귀에 잡힌 손오공의 주먹을 잡아 올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얼추 비슷하게 맞아졌다.
“그 버릇없는 손버릇은 여전하구나.”
“아직 안 죽었고 살아 있었네요, 형님.”
“버릇없는 말투도 여전하고.”
툭-.
잡고 있던 주먹을 놓자, 손오공이 땅에 다시 내려왔다.
손오공은 뻐근한 주먹을 몇 번 흔들어 보이고는 장신의 우마왕을 가까이서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습니까?”
“막내가 알려 주더구나. 네가 천축을 찾고 있다고 해서 도와주러 왔다.”
“막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손오공.
그렇게 잠시 후.
“풉…….”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손오공이 배를 부여잡기 시작했다.
“푸핫! 푸큭…… 푸하하핫!”
“…….”
“캭캭! 아, 아이고! 아이고 배야! 푸캬하하핫!”
우마왕은 익숙한 듯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미래에서는 꽤 친한 친구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는 바. 이런 반응 역시 예상은 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그렇게 웃었을까.
한동안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던 손오공이 너무 웃은 나머지 새어 나온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 녀석이 인정하긴 한 모양입니다?”
“형님이라고는 하더구나. 한 번이지만.”
“한 번이면 끝났네, 뭘. 형님한테 말렸어.”
경험에서 녹아난 말.
그렇게 한동안 낄낄거리던 손오공은 문득 우마왕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축이요?”
“그래.”
“뭘 어떻게 도와준단 겁니까?”
손오공의 물음에 우마왕이 몸을 돌렸다.
망설임 없이 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우마왕이 손짓했다.
“따라오거라.”
* * *
하얗게 변한 세상만큼 유원의 의식도 덩달아 함께 하얗게 변해 갔다.
온갖 풍경들이 뒤섞이고 흩어졌다. 몸이 붕 떠올라 세상 어딘가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몸에 느껴지는 감각도 함께 희미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죽은 듯이 흘러갔다.
얼마나 됐을까.
스륵-.
긴 잠을 자다 깬 것처럼, 눈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떠졌다.
기분 나쁘게도 그렇게 처음 본 하늘은 여전히 보랏빛이었다.
“……아.”
생각보다 앞서 흘러나온 탄성.
그런 유원의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쁘지 않나?”
굵직하고 온화한 말투.
타닥, 타닥-.
장작과 불쏘시개를 넣어 불을 피우며, 헤라클레스가 고기를 굽고 있었다.
겉은 까맣게 탔지만 안은 아마 노릇하게 익었을 이름 모를 동물의 고기 냄새.
잠에서 깨어난 듯 몸을 일으킨 유원은 헤라클레스를 보며 물었다.
“원시적인 방법은 여전하군.”
“스킬로 익힌 고기는 맛이 없으니까. 장작 향이 배어야 비로소 진짜 요리라고 할 수 있지.”
“그래.”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긴 했지만 유원은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바로 저 하늘에 있는 보랏빛의 하늘이 그 증거였다.
‘시작인가.’
이미 시험은 시작되었다.
무엇을 시험하려 하는 건지는 이제부터 알려 줄 것이다.
[배신자를 찾아 실패한 임무를 원래대로 되돌리십시오.]‘임무? 배신자?’
메시지를 듣는 순간, 유원은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와 함께 움직이던 중간 지점.
그리고 곧 들이닥칠 임무.
유원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의 왼팔로 향했다.
“우보 사틀라는 찾을 수 있으려나.”
“글쎄. 그건 가 봐야 알겠지.”
돌아온 대답에 유원은 눈을 감았다.
역시나.
메시지가 말한 임무라는 건, 이걸 말하는 거였다.
‘우보 사틀라. 그 녀석을 잡기 위한 임무.’
아우터 갓 중 하나.
어리석은 혼돈만큼은 아니지만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라는 이름으로 불린 녀석은 가장 활동이 왕성한 아우터 갓이었다.
그렇기에 어리석은 혼돈 다음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당시 임무는.
‘실패였지.’
실패 중에서도 대실패로 끝났다.
수많은 랭커들을 잃었고, 헤라클레스는 그 임무에서 팔을 잃었다. 세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던 아수라는 형제들 중 하나인 머리를 하나 잃어버렸다.
‘배신자가 있었다…….’
유원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우보 사틀라의 둥지를 찾아 나섰을 때.
그 둥지 안에 있던 건 우보 사틀라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치 이곳에 자신들이 나타날 걸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우보 사틀라는 둥지 안에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임무의 유무가 유출되기라도 했던 걸까.
당시에는 그저 의심에서 그쳤던 문제였다.
아우터 갓은 워낙 불가해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우연이거나, 혹은 미리 자신들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다고 해서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였다, 이거지.”
“뭐라고 했나?”
막 고기를 잡아 뜯던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쓸데없는 소리면 조용히 이거나 먹어라. 당분간 제대로 된 식사는 힘들 거니까.”
“이것도 별로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세상에서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지익-.
한 손으로 고기를 잡아 뜯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세상에서 멀쩡한 음식을 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능한, 이런 세상이 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우보 사틀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시험이었다.
배신자를 찾는 게 끝이라면 다행이지만 우보 사틀라를 제거하는 것까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슈브 니구라스와는 달리,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은 녀석의 본진 안에서 이루어질 테니까.
지이익-.
유원은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을 떠올리며 검게 탄 고기를 입에 물었다.
배를 든든히 채워 놔야 할 것 같았다.
* * *
헤라클레스와 함께 동행한 끝에 도착한 곳은 척박한 땅의 끝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벽이 있던. 세상의 끝과 가까운 장소.
그곳에는 약속한 대로 다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공들이 오셨군.”
유원과 헤라클레스의 도착에 갈색 머리의 중년인이 환하게 웃으며 팔을 활짝 벌려 두 사람을 반겼다.
애초에 이 작전을 설계한 당사자.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였다.
“주인공은 무슨.”
그리고 그런 다이달로스의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카가각-.
네 개의 칼집을 모두 등에 차고, 손에는 이미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는 하이랭커.
삼두육비.
아니, 이제는 두 개의 머리와 네 개의 팔만이 남게 된 하이랭커, 아수라였다.
그리고 그런 아수라의 맞은편.
“저 둘이 가장 센 건 사실이니까. 왜? 자격지심이라도 있나 보지?”
거뭇한 피부와 다크엘프족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
칼리가 아수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죽는다, 너?”
살벌한 표정을 짓는 아수라.
“상대하지 마라.”
그런 아수라를 다른 머리가 만류했다.
아수라의 성격은 불 같아서, 한 번 무기를 꺼내 들고 싸움을 시작하면 적당한 수준에서는 끝나지 않을 테니까.
잠시 동안 칼리를 노려보던 아수라는 다시 칼을 갈기 시작했다.
카악, 카각-.
잠시 동안의 소란.
혹시라도 둘이 싸우면 중재할 생각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물었다.
“인원은 이게 단가?”
“적긴 하지, 너무.”
다이달로스의 불평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보 사틀라를 잡으러 가는 계획치고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수라와 칼리, 황도십이궁의 사자왕, 용인전쟁의 영웅 지크프리트, 계획의 설계자 다이달로스, 그리고 헤라클레스와 유원까지.
모두 일곱뿐인 계획.
“하지만 멤버가 멤버니까.”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지크프리트가 꺼낸 말이었다.
“헤라클레스에 김유원, 아수라, 칼리…… 하나하나가 핵심 전력들이다.”
“이봐. 난?”
처음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에서 걱정을 내비췄던 팀원.
한때 거대 길드 황도 십이궁을 이끌었던 하이랭커, 사자왕의 말이었다.
“난 빼 먹냐?”
“널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다만, 뭐?”
“아무래도 여기 안에서는 말이지.”
어깨를 으쓱인 지크프리트의 시선이 헤라클레스에게로 향했다.
사자왕의 몸이 움찔한 건 그때였다.
오랜만에 다이달로스와 근황을 묻고 이야기하던 헤라클레스가 때마침 사자왕과 눈이 마주쳤다.
사자왕의 시선이 아래로 내리깔렸다. 그는 오래전, 헤라클레스와의 싸움에서 패해 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팀원들을 지켜보던 유원은.
‘이중 한 명이라는 건가.’
유원은 한 명 한 명, 팀원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다이달로스.
‘가능성은 가장 높다.’
그는 이 계획의 설계자였다. 그는 이 탑의 지리에 누구보다 밝아, 여러 함정을 파거나 작전을 설계하는 등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계획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직접 설계를 한 만큼 가능성은 가장 높았다.
‘그다음은 사자왕.’
그는 헤라클레스와 원한 관계에 있었다. 비록 지금은 아우터 갓이라는 더 큰 적을 눈앞에 두고 잠시 손을 잡았다지만, 사자왕이 이끄는 황도십이궁이 헤라클레스를 노린다는 소문은 탑의 누구나가 아는 유명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녀석들을 의심하지 않을 순 없지만.’
유원은 당시 상황을 겪어서 알고 있었다.
팀원들을 살리기 위해 팔을 희생한 헤라클레스나 아수라가 아니라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
‘헤라클레스는 아니다. 당연하지만 나도 아니고.’
소규모로 이루어졌던 계획.
유원의 시선이 팀원들 한 명 한 명을 훑었다.
‘자, 누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