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13
* * *
헤라클레스의 싸움은 언제나 화난 들소 같았다.
쾅-!
그의 주먹은 형체가 없는 것마저 깨부쉈다. 물이나 불, 바람과 같이 무형의 에너지마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부서져 사라질 뿐이었다.
쫘아악-!
석판을 지키고 있던 슬라임이 터져 나가며 헤라클레스의 몸통을 뒤덮었다.
무시한 채 다시 발을 앞으로 뻗으며 주먹을 휘두르려는 헤라클레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 헤라클레스의 두 다리를 붙잡았다.
움찔-.
바닥을 힐끔 내려다 보니 무언가 자신의 다리를 잡고 있었다.
분명 죽였다고 생각한 슬라임의 잔해들이었다.
콰웅-!
헤라클레스의 옆을 지나쳐 날아간 벼락이 몸을 덮쳐오던 슬라임을 밀어냈다.
“긴장해라.”
“……고맙군.”
스윽-.
헤라클레스가 곤봉을 쥐었다.
맨손으로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을 상대하는 건 한계가 있다 생각한 것이다.
특히나 이런 녀석들에게 무기를 쓰지 않고 맨몸뚱이로 부딪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쉽지 않다.’
싸움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분.
슬라임처럼 보이는 단세포 생명체들 하나하나는 그리 대단한 힘을 가진 게 아니었다.
주먹을 뻗으면 그 충격파만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니, 처음에는 우습게봤다.
하지만 글쎄.
주먹을 몇 번 더 뻗고, 눈앞을 가로막는 슬라임들을 치워 내며 길을 열수록 헤라클레스는 다른 걸 느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몸에 있는 체력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
신경 쓰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만큼 미세한 차이였지만, 마냥 착각도 아니었다.
“우보 사틀라는 살아 있는 대상의 마력과 생명력을 갈취한다.”
유원이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에서 겪어 알게 된 정보.
“처음에는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정도야.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결국 체력은 빼앗기고 힘을 잃어버리지.”
“흡수 계열인가. 그 정도는…….”
“단순한 흡수 계열과는 다르지. 그랬다면 그 많은 동료들이 우보 사틀라 하나를 잡지 못해서 죽지는 않았을 거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껏 우보 사틀라를 공략하기 위해 움직인 동료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중, 우보 사틀라를 쓰러뜨린 사람은 물론이고 둥지에서 살아 돌아온 동료조차도 없었다.
배신자로 밝혀진 다이달로스를 제외하면 말이다.
“흡수. 그리고 소멸.”
두 개의 손가락을 펼치며 유원은 팀원들에게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은 이 두 가지만 명심해 둬라.”
퍼엉-!
주먹으로 눈앞을 가로막은 슬라임을 후려친 헤라클레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위액이라도 되는 건가.”
한 손이 바쁜 마당이었다. 슬라임들은 몸을 내던져 헤라클레스의 주먹을 빈번히 막아 내고, 주먹에 상처를 입혔다.
더군다나.
“그런 것과는 다르지.”
츠츠, 츠츠츠-.
유원은 눈앞에 깔려 있는 슬라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녀석들의 속성은 부식보다는 소멸에 더 가까우니까.”
불에 닿은 듯 피부가 타들어 가거나 어둠 속성의 마력처럼 부식되는 느낌과 비슷했지만 둘 모두 아니었다.
저 슬라임들의 속성은 소멸.
그렇기에.
[‘타르타로스’를 개방합니다.]화아아-!
우라노스의 심장에서 뿜어진 어둠이 슬라임들을 집어삼켰다. 손에 채워진 반지가 순식간에 문을 열고, 그 문틈 사이로 슬라임들을 잡아넣었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
치이이-.
유원의 몸에 슬라임들의 잔해가 달라붙었다.
‘검으로 베는 건 의미가 없다.’
툭, 툭-.
유원이 몸에 달라붙은 잔해를 털어 냈다.
치명적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런 게 반복되면 역시 위험하겠다 싶었다.
모든 걸 먹어치우고 세상에서 지워 버리는, 말도 안 되는 종류의 속성이니까.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겠어.”
장기전으로 가면 위험하다.
그걸 깨닫게 된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이 상황을 길게 보고 마력을 아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쿵-.
두 손으로 곤봉을 단단히 쥔 채.
헤라클레스는 눈앞을 가득 메운 슬라임들과 그 중앙에 보호받고 있는 석판을 향해 겨누었다.
꾸득, 꾸득-.
부풀어 오르는 헤라클레스의 팔.
이미 완전 거인화를 사용했던 그였다. 하지만 신격을 얻고 탑의 끝을 본 그에게는 아직 한 번 더, 거인화를 진화시킬 방법이 남아 있었다.
‘시작됐군.’
땅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
오랜 시간 동안 헤라클레스가 써 온 신화는 거인과의 전쟁.
기간토마키아, 그 자체였다.
부우우웅-.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아래로 떨어지고.
[‘바다의 가호’가 몸에 깃듭니다.]유원의 반지가 푸른빛을 뿜으며 몸을 감쌌다.
콰아앙-!
* * *
뿌연 먹구름이 올라왔다.
둥지의 단단한 바닥이 뒤집혀지고,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다수의 슬라임들이 한꺼번에 휩쓸려 사라졌다.
유원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건 볼 때마다 놀라네.’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그 이름이 붙기 시작한 건 길게 이어지던 올림포스와 거인들의 전쟁, 기간토마키아에서 헤라클레스가 몇 번씩이나 활약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신화를 써내려 갔다.
‘제우스가 왜 그리 탐을 냈는지, 볼 때마다 알겠단 말이지.’
언젠가 헤라클레스가 말한 적이 있었다.
“나 때문이었다.”
기간토마키아.
수억에 달하는 거인들이 죽어 나간 게,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아버지는 날 만들려고 했던 거다. 기간토마키아를 이용해서 신화를 만들고, 그 안에서 괴물을 탄생시키려 한 거지.”
기간토마키아는 탑의 역사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거대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을 일으켰던 건 제우스.
그는 오래전부터 더 큰 신격을 얻기 위한 조건인 신화를 쓰기 위해, 기간토마키아를 계획했다.
“왜 자기가 직접 쓰지 않고?”
“어차피 그자는 오래전부터 ‘올림포스의 왕’이라는 신화를 써 왔으니까. 다른 신화는 필요하지 않았던 거지.”
“그런데 왜 굳이?”
“핏줄 때문이었다.”
“핏줄?”
“후계 때문인 거지.”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왕.
그는 자신의 다음 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건 올림포스를 위한다면서.”
그렇게 제우스의 계획에 따라 완성된 괴물.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거인들의 피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태어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그런 환경을 저주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그 덕분이었다.
제우스가 만들고자 했던 올림포스의 후계자는, 이렇게 완성되어 있었다.
‘마력 하나 없이 이만한 위력이라…….’
마력과 생명력을 빨아먹는 우보 사틀라.
그런 우보 사틀라의 힘에 맞설 수 있는 건, 마력 한 줌 쓰지 않고 이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헤라클레스뿐이었다.
‘덕분에 깔끔해지긴 했군.’
구구구구-.
피어오른 연기가 가라앉을 즈음, 흔들림이 멎었다.
유원과 헤라클레스는 아래로 떨어진 곤봉에 짓이겨진 슬라임들 너머, 석판을 둘러싼 형체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석판을 노리고 곤봉을 휘둘렀던 것인데.
두근-.
석판을 둘러싼 물방울이 움직였다. 일정한 형체가 없던 그것은 눈과 입과 같은 얼굴을 만들고 끊임없이 형체를 바꾸며 꿈틀거렸다.
수십 개의 눈이나 입, 그리고 다리인지 꼬리인지 모를 것들을 가진 이름을 규정할 수 없는 괴물의 모습.
헤라클레스는 그것을 보며 눈살을 구겼다.
“징그럽게도 생겼군.”
“다 그렇지. 저 녀석들은.”
이계의 존재들은 대부분 하나의 이름으로 말하기 어려운 불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보 사틀라는 특히 더 그런 편이었다.
그렇기에 녀석에게는 이런 별명이 붙었다.
“‘부정확한 형태의 백치’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아아아, 아아-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우보 사틀라를 중심으로 울려 퍼졌다. 그것은 사람의 울음소리와 닮아, 유원과 헤라클레스의 고막을 흔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울음소리.
꿈틀-.
우보 사틀라의 수많은 꼬리 중 하나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쭈와아악-!
빠르게 앞으로 뻗어 온 꼬리에 헤라클레스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스캇-.
유원이 먼저 검을 뽑아 나섰다.
쫘악-!
뻗어 오는 결을 따라 길게 베어지는 꼬리.
치이이익-.
유원은 그대로 헤라클레스의 몸을 뒤로 밀어 우보 사틀라와의 거리를 벌렸다.
왜 방해하냐는 듯.
헤라클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냐?”
“부딪치지 말라니까.”
“한 번은 부딪쳐 봐야 저 녀석에 대해 알지.”
“싸울 때 무식한 건 손오공이나 너나 다를 게 없네.”
“지금 말 다했…….”
어떻게 알았지?
수십, 수백 명이 뒤섞인 목소리.
유원과 헤라클레스가 우보 사틀라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석판을 가운데 보호한 녀석은 수많은 눈들을 불규칙적으로 꿈벅거렸다.
여길, 어떻게 알았지?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이 뒤섞인 가운데.
유원과 헤라클레스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섞여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지크프리트?”
“그 녀석만이 아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 [‘청각’이 활성화 중입니다.]하나의 소리를 수백 개로 쪼갠다. 유원의 귀에는 우보 사틀라의 목소리가 하나하나 나뉘어서 들렸다.
대답, 해라.
대답, 해라.
대답, 해라.
대답…….
아니나 다를까.
유원은 눈앞에 나타난 우보 사틀라의 눈과 입들을 바라보았다.
‘죽었다고 알려진 녀석들이 다, 저기 있는 건가.’
우보 사틀라는 살아 있는 생명의 마력과 생명력을 흡수한다.
여기까지는 유원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꽤 알려진 정보였다. 하지만 직접 우보 사틀라와 정면으로 부딪쳤던 헤라클레스와에게는 유원의 감각지대와 같은 스킬이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헤라클레스는 당시 우보 사틀라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적도 없었고.
그래서였다.
이런 정보를 구하지 못했던 게.
“저 녀석에게 잡아먹히면 저런 꼴이 되는 건가.”
“한 시라도 빨리 잡아야겠다.”
빠직-.
헤라클레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던 그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화가 나면 그만큼 더 무서운 법이었다.
자신과 함께하던 동료들이 우보 사틀라에게 잡아먹혀 저런 꼴이 되어 있다는 게, 헤라클레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진정하고 있어 봐라.”
저벅-.
유원이 우보 사틀라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우보 사틀라가 석판을 지키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둥지 전체가 녀석의 몸이라면,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건 녀석이 지금까지 모아 온 수많은 생명체들의 근원과도 같은 바.
가장 먹음직한 먹이가 등장한 셈이었다.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 있었거든.”
“……?”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라니.
이곳에는 유원과 헤라클레스, 둘뿐이었다. 게다가 순번을 따질 만한 여유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쩌억-.
그때였다.
유원의 등 뒤.
시커먼 속과 하얀 이빨을 드러낸, 거대한 입이 나타난 것이.
[‘무정형(無定形)의 혼돈’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의 알’이 꿈틀거립니다.]사탄을 먹어치웠던 입.
둥지에 들어온 직후부터 계속 굶주린 배를 알려 오던 녀석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