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15
* * *
“으아아아!”
사자왕이 기합을 질렀다.
수십 개의 팔이 사자왕을 밀어냈다. 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기합에 비명이 섞였다.
서서히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김유원의 말대로였다.
“안…… 서두르냐! 칼리!”
“다 됐다.”
웅, 웅웅, 웅웅웅웅-.
천장을 가득 메운 검은 물결.
칼리의 손을 타고 흐르던 물결이 사자왕과 대치하고 있던 우보 사틀라를 감쌌다.
“휩쓸리기 싫으면 알아서 떨어져라.”
“뭐, 뭐? 야! 야 이씨…….”
화들짝 놀란 사자왕은 서둘러 붙들고 있던 우보 사틀라를 놓고는 몸을 돌렸다.
칼리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할 때면 정말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팔로 땅을 디디며 네 발로 힘차게 땅을 박찬 사자왕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그 직후.
방금 전까지 사자왕이 있던 자리를 향해, 마나의 파도가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파도가 우보 사틀라를 비롯한 주위의 촉수들을 집어삼켰다. 마력을 다루는 기술만큼은 이 탑에서 거의 최고로 꼽히는 칼리가 준비한 기술이었다.
물론, 그만큼 앞에서 버텨 줄 든든한 탱커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허억, 헉-.”
“수고했다.”
“너 나 죽이려고 했냐?”
“눈치는 있군.”
“뭐 인마?”
버럭하며 얼굴을 붉히는 사자왕을 뒤로한 채 칼리가 우보 사틀라의 잔해를 향해 걸어갔다.
“이쪽으로 가면 석판을 지키고 있는 녀석들이 있을 거다. 칼리, 넌 사자왕이랑 같이 가라.”
“내가? 이 녀석이랑?”
“혼자는 어려울 거다. 애초에 넌 앞을 버텨 주는 녀석이 있어야 실력 발휘가 제대로 되니까.”
칼리는 잔해 속에 파묻혀 있는 석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석판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죽이면 되는 건가?”
“아니. 만약 거기 적힌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일단 석판을 회수해. 읽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부수고.”
“석판 자체가 목적이다? 왜?”
“그게 이 녀석의 본체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저 평범한 돌덩어리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이었다. 글자가 적혀 있긴 하지만 읽을 수도 없었다.
이런 게 정말 우보 사틀라의 본체인 걸까.
“부숴 보면 알겠지.”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유원에게 부여받은 임무를 이행할 뿐.
다리를 들어 올린 칼리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석판을 있는 힘껏 밟았다.
퍼석-!
그렇게 칼리가 하나의 석판을 더 부술 즈음.
투둑, 투두두둑-.
수천 갈래로 베어진 또 다른 우보 사틀라의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석판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아수라는 싸움 자체가 목적이었을 뿐, 석판에 적힌 글자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익-.
무겁고 지친 몸에 비틀거리던 아수라가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 격렬한 싸움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보 사틀라의 특성상,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빠르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씨익-.
두 개의 얼굴이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길지는 않았어도 꽤 재밌는 싸움이었다.
유원의 말대로였다.
“아수라, 넌 혼자 움직인다.”
“왜 나만 혼자지?”
“나와 헤라클레스는 가장 큰 본체를 칠 거다. 본체가 숨겨져 있는 벽을 부술 수 있는 건 여기 있는 헤라클레스가 아니면 어려우니까. 그리고 칼리와 사자왕은 팀을 이뤘을 때가 더 잘 어울려.”
애초에 아수라는 팀으로 움직이는 데 적합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팀은 같은 몸을 쓰는 또 다른 아수라뿐. 팀의 움직임에 맞춰 검을 휘두르는 건, 아수라의 검을 무뎌지게 만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유원은 아수라를 혼자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확실히 약속은 지키는 놈이군.”
아수라는 꽤 만족할 만큼 싸울 수 있었다.
힐끔-.
아수라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석판의 잔해가 보였다.
우보 사틀라를 베어 내며 함께 베어진 석판.
그래도 확실하게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콰웃-!
아수라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석판은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동시에 아수라가 서 있는 둥지가 흔들렸다.
구구구구구-.
흔들리는 바닥.
둥지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직 우보 사틀라의 둥지에 남아 있는 다른 외신들이 몰려들어오고 있는 소리였다.
“난리군.”
지익-.
아수라가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보 사틀라와의 싸움에서 꽤 많은 마력과 생명력을 사용했지만.
그래도 아직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며, 아수라는 네 자루의 검을 들어 올렸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우보 사틀라의 조각’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보 사틀라의 조각’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보 사틀라’가 약화됩니다.]연달아 떠오른 메시지에 유원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었다.
너무 늦지 않게 끝내 주어서.
“그렇지?”
칼리와 사자왕.
그리고 아수라.
두 사람은 세 개의 석판 중 두 개를 부수는 데 성공했다.
우보 사틀라의 둥지가 떨려 왔다. 이 떨림은 녀석의 몸부림이었다.
너는 누구지?
쩌억-.
천장 위.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둥지 안을 살피는 우보 사틀라의 눈이었다.
눈은 유원을 보고 있었다.
눈 속에는 온통 물음표 가득한 의문을 품고서.
그분의 계획에는 네가 없었다.
‘그분’이라는 건 당연히 어리석은 혼돈을 뜻했다.
녀석은 아우터 갓의 머리였다.
모든 아우터 갓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힘을 가진 존재.
그러면서도 가장 오랫동안 탑에서 활동을 해, 탑에 가장 많은 해를 끼친 존재가 바로 어리석은 혼돈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보 사틀라 역시 그런 어리석은 혼돈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히 없겠지. 안 그러면 내가 여기 있는 의미가 없으니까.”
파지지지-.
유원은 우보 사틀라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유원은 다른 답을 줄 생각이었다.
“너와 싸울 때, 우린 고민했다.”
유원은 몸을 돌려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다.
잠시 멈춰서 쉬고 있던 그는 손에 곤봉을 움켜쥐고 있었다.
곤봉을 움켜쥔 주먹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눈이 마주친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우우웅-.
콰아앙-!
헤라클레스가 그대로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
구우우웅-.
둥지 전체가 흔들렸다.
곤봉은 멈추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다시금 벽을 후려쳤다.
콰아앙-!
흔들리는 땅.
유원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게 해야 널 잡을 수 있을까. 그냥 싸워서는 도저히 답이 없는데.”
콰앙-!
헤라클레스의 곤봉이 우보 사틀라의 몸을 안에서부터 부쉈다.
부서지지 않았던 천장과는 달리, 벽과 바닥은 곤봉에 쉽게 부서졌다.
마음껏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헤라클레스를 멈추기 위해 다른 외신들이 더 움직였지만, 한 번 날뛰기 시작한 헤라클레스를 멈추는 건 오딘이 와도 힘든 일이었다.
콰앙-!
구우우웅-.
우보 사틀라가 몸부림을 쳤다.
몸속에서 헤라클레스 같은 거력을 지닌 존재가 마구 힘을 뿜어내기 시작하니, 버티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답은 안에 있더라고.”
부서진 석판.
무슨 글자가 적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우보 사틀라의 힘을 이루는 결정체였다.
“석판이다.”
“석판?”
“그걸 부수니까 녀석의 힘이 약해졌다.”
한 팔을 잃어버린 헤라클레스 덕분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우보 사틀라의 둥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석판은 하나가 다냐?”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남아 있는 게 더 있을지.”
“밖에서 공략할 방법은 없고?”
“없다.
“그럼 결국 또다시 거길 들어가야 하는 건가…….”
“내가 다시 가지.”
“됐다. 넌 여기 있어라. 이번 팀은…….”
팀이 꾸려졌다.
한 번의 희생이 더 치러졌다. 겨우 이름을 외운,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동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알게 된 정보였다.
“넌 이게 없으면 힘을 못 써.”
콰앙-!
우보 사틀라가 무너져 간다.
하나의 생명체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철벽의 요새나 다름없던 녀석이, 힘없는 모래성으로 바뀌었다.
“왜일까. 대체 뭐가 적혀 있었길래 평범한 돌판 주제에 널 그렇게 지탱하고 있었던 걸까.”
우보 사틀라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내부에서부터 녀석이 지키고 있는 석판을 회수, 혹은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유원이 저 석판에 깊은 호기심을 느끼게 된 게.
‘역시 평범한 석판일 뿐이다.’
글자가 적힌 석판.
아무리 살펴봐도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특별한 마법적 장치도 없어, 이제 막 1층에 올라온 플레이어도 충분히 부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석판이 우보 사틀라의 본체였다.
마치 꼭.
‘석판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석판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줄곧 떨쳐 내기 어렵던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지금 이곳에서는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실제가 아닌 시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의 세계였으니까.
콰우우우우-!
그때, 유원과 헤라클레스가 있는 공동으로 검은 마력의 파도가 쏟아져 들어왔다.
“으아아아!”
“시끄러우니까 입 좀 그만 벌려라. 길도 헷갈린 주제에.”
퍽-!
그 파도를 타고 넘어오는 두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자왕, 그리고 함께 팀을 이뤄 움직인 칼리였다.
칼리는 함께 파도를 타고 있는 사자왕을 발로 걷어차 떨어뜨렸다. 아무래도 목적지까지 다 왔기 때문인 듯했다.
‘사이좋은 건 여전하군.’
사자왕의 저런 요란한 반응에 유원이 픽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도착했다는 건 즉.
저벅-.
다른 한쪽도 슬슬 도착할 때가 됐다는 뜻이었다.
“이쪽도 요란하군.”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제법 지친 듯한 모습의 아수라.
아무래도 그는 혼자 움직인 만큼 다른 팀과는 달리 체력적으로 더 지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아수라는 세 팀 중 가장 큰 짐을 짊어졌다.
‘다 모였군.’
유원이 고개를 들었다.
우보 사틀라를 쓰러뜨려야 하는 시험.
이계의 대적자.
이제 이 시험도 끝을 낼 때였다.
“여기서 탈출한다.”
“그래서 끝내고 다 모이라고 한 거였군.”
제일 지친 아수라가 제일 먼저 나섰다. 아직도 검을 휘두를 여력이 남았는지 그는 네 자루의 칼끝에다 한 줌 남아 있는 마력을 쥐어 짜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저 녀석처럼 다 깨부수면 되는 건가?”
“별로 어려운 건 아니군.”
그렇게 막 다른 팀원들이 움직이려고 하려는 순간.
쿵-.
“이제 됐나?”
손에 들고 있던 곤봉을 아래로 내린 헤라클레스가 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유원을 돌아보았다.
“그래.”
“……?”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듯한 눈빛들.
유원은 그 시선에 답하는 대신, 막혀 있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의 난동은 우보 사틀라의 몸속에 있는 다른 외신들로부터 이쪽으로 오는 아수라와 다른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선끌기일 뿐.
“가만히 지켜보면 된다.”
진짜는 이 위에서 나타날 것이다.
“석판을 정리한 순간, 이 안에서의 일은 끝난 거니까.”
이제, 이 시험을 끝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