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19
* * *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하르간만이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여기 나올 만한 사람이 아닌데, 왜 그가 여기 있단 말인가.
“왜? 누군데?”
물론, 모두가 투기장에 올라온 선수를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랭킹은 둘째치더라도 애초에 랭커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몇몇 섞여 있어, 그들은 함께 온 일행에게 남자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모르냐?”
그들은 한심하다는 듯 질문을 던진 일행을 바라보았다.
투기장을 즐겨 오는 관중들에게 있어 상위 랭킹의 랭커들은 꼭 알아 둬야 할 정보였다.
그들의 랭킹을 비롯한 정보를 알아야 어디에 포인트를 걸지를 판단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김유원이다…….”
“진짜야?”
“와, 나 얼굴은 처음 봐.”
“웬만한 사람들은 다 그럴걸?”
경기장에 나타난 유원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중들.
유원은 그 명성에 비해 얼굴까지 그리 많이 알려진 건 아니었다. 다른 랭커들과는 달리 활동 기간이 짧은 탓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유원이 탑에 들어온 건,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유원과 하르간은.
“네가 왜 여기 있냐?”
함께 탑에 들어온 동기생이기도 했다.
한때, 두 사람은 1층에서는 라이벌로 꼽히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현재 하르간은 그런 유원에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러는 너는?”
똑같이 되돌아온 유원의 질문에 하르간은 할 말이 없었다.
이 시기에 64층에 있을 만한 이유는 하나뿐.
“……화합인가.”
“그것뿐이지.”
“아니, 그래도 갑자기 네가 투기장에는 왜이, 씨…….”
말을 하던 하르간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긴.
자신도 투기장에 뛰어들기는 마찬가지. 그는 제가 할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그래. 일단은 시합부터 끝내고.”
척-.
유원의 동의에 하르간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는 자세를 취했다.
애당초 이 시합은 하르간이 스스로 랭커가 되기 전, 일종의 데뷔 무대로 생각하고 올라왔던 것.
랭커들이 출전하는 시합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보다 더 멋진 데뷔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 계획은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버틴다.’
상대가 그 김유원이었다.
어느새 아버지, 제우스와도 견줄 만한 랭킹까지 도달한 최상위 하이랭커가 된 자신의 친구.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가 버린 존재.
그런 유원을 상대로 버티면 버틸수록 자신의 이름값 역시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합, 시작!”
부웅-!
콰르릉-!
심판의 외침에 하르간은 주먹이 뻗어졌다.
시작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강렬한 일격. 그 황금빛의 전격이 권격과 함께 유원의 몸을 집어삼켰다.
“선수 필승!”
상대는 11위의 최상위 하이랭커.
그런 유원에게 생채기 하나라도 내기 위해서는, 앞뒤 가릴 게 없었다.
쾅-.
자리를 박차는 하르간.
그는 두 주먹 가득, 황금빛의 전격을 모으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간……!”
그렇게 하르간이 기합을 내지르며 유원을 향해 달려드는 그 순간.
“제법이네.”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황금빛의 물결.
그 속에서 유원과 하르간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그때 하르간은 직감했다.
첫 번째 일격으로 유원은 흔들지 못한 순간.
이 싸움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말이다.
번쩍-!
하르간의 눈앞으로 방금 전 자신이 뿜어냈던 것과 같은 색깔의 빛이 터져 나왔다.
콰릉-!
투기장을 가득 메운 황금빛의 전류.
하르간은 그 전류에 휩쓸려 나가며 생각했다.
‘아, 썅…….’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게, 하르간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 * *
멀어졌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
눈이 떠지기 전.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인기척과 함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등신.”
그것은 의식이 깨어난 하르간이 처음 들은 말이었다.
흐릿하게 돌아온 시야. 하르간의 눈에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욜체가 보였다.
“……다.”
“응?”
“……다 들었다고.”
찔리라고 한 말이었지만 욜체는 당당했다.
“잘했네. 들으라고 한 소리야.”
팀원들 중 가장 하르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욜체였다. 그녀는 할 말은 꼭 해야 한다며 가끔 막무가내로 나가는 하르간에게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끔 그런 욜체의 언행에 기뿐이 나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르간은 그런 욜체의 말투에 적응하고 오히려 더 고마움을 느꼈다.
팀에서 자신을 제어해 주는 유일한 동료가 그녀였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욜체는 침상 옆에 앉아서는 눈을 가늘게 좁혀 하르간을 노려보았다.
“말 좀 듣지?”
멈추라고 할 때 진작 멈췄으면 이런 망신은 안 당했을 거라는 타박.
맞는 말이었지만 하르간도 할 말은 있었다.
“그 녀석이 시합에 참가할 줄 내가 알았나, 뭐.”
잔소리를 회피하기 위한 변명이라 해도 이 부분에서는 욜체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하이랭커 한두 명쯤은 시합에 참가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김유원이 튀어나올 줄이야.
“그 녀석은? 어디 갔냐?”
“여기 있다.”
덜컥-.
때마침 유원이 문을 들어왔다.
손에는 과일바구니 하나를 들고.
“입원했다고 해서 와 봤다.”
“내가 어디 길가다 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말하네.”
“나 때문에 입원한 거니까 와 봐야지.”
휙-.
유원이 던진 사과를 받아 든 하르간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좀만 봐 주지 그랬냐?”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데뷔전은 다음에 해라. 다른 기회가 있을 거니까.”
유원은 하르간이 시합에 참여한 이유를 꿰뚫어 보았다. 그러자 하르간은 눈을 빛내며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좋은 자리라도 있나 봐?”
“있을 거다. 아마.”
“‘아마’라고 말하는 걸 보면 꽤 신빙성이 있나 본데.”
유원은 절대 빈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하르간이 아는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사람이었으니깐.
더 좋은 무대가 있을 거다. 그게 빈말이 아니라면 분명, 발할라의 투기장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대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좋다.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고.”
“말하는 걸 보니 쌩쌩하네.”
“죽으라고 전격을 뿌린 건 아닐 거 아냐? 정신만 잃고 끝났다. 어디 많이 다치진 않았어.”
“죽으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멀쩡할 줄은 몰랐다.”
“왜, 아예 반쯤 죽여 놓지 그랬냐.”
유원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해 큭큭 웃던 하르간은 웃음기 한 점 없는 유원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진심이냐?”
“그래.”
“……이런 것도 친구라고 욕해야 할지, 아니면 좋아해야 할지.”
생각해 보면 유원은 친구라고 많이 봐주거나 할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불필요한 살생을 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최대한 다치지도 않게끔 손에 자비를 베푸는 편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유원이 생각한 것보다 자신이 더 튼튼하다는 의미.
“이렇게 멀쩡할 줄 알았다면 와 보지도 않았을 거다.”
가까운 병원에 입원한 하르간을 찾아온 유원은 적잖이 놀랐다.
생각했던 것보다 하르간이 훨씬 더 멀쩡해 보였기 때문.
단지 정신을 잃었던 것뿐이지 하르간은 지금 당장 퇴원해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괜히 왔다 싶었던 유원은 곧 욜체가 자리를 비켜 주어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화합이 시작될 때까지는 크게 바쁠 것도 없었다.
더 병상에 누워 있을 필요가 없어 하르간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조금 뻐근해진 몸을 풀며, 하르간이 물었다.
“화합장은 그렇다 치고. 투기장은 왜 참여한 거냐?”
유원은 부자였다. 투기장의 상금이 제법 크기는 하지만 하이랭커들이 탐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처럼 랭커로서 이름을 날리고, 랭킹을 올릴 목적도 아닐 것이다. 발할라의 투기장이 제법 유명하긴 해도 유원의 랭킹은 투기장에서 수백 수천 번 우승해도 변동이 없을 만큼 높았으니까.
“네가 뭐 심심하다고 그런 데 나갈 녀석도 아니고.”
“내가 여길 왔다는 걸 알려야 했으니까.”
“누구에게?”
“있다. 그런 녀석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밀 많은 놈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하르간은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다.
그렇게 유원과 함께 병원을 나온 하르간의 눈에, 병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인족처럼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들어왔다.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한참도 걸리는군.”
팔짱을 끼고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녹색 눈동자의 남자.
하르간의 배 다른 형, 헤라클레스였다.
“갑자기 친구를 한 명 만나서.”
“친구?”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돌려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하르간은 서둘러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시 뵙습니다, 형님.”
“하르간이군.”
“예. 하르간입니다.”
“왜 그렇게 긴장하나? 긴장 풀어라. 편하게.”
“감사합니다.”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하르간은 헤라클레스의 앞에서 마냥 편하게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거인 학살자이자 기간토마키아의 영웅, 헤라클레스.
그는 오래전부터 하르간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편하게 있으려 해도 긴장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하르간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 왔다는 건…….”
“예! 맞습니다.”
“그런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가 유원을 돌아보았다.
“볼 일 끝났으면 가자고, 그럼.”
“그래.”
“만나서 반가웠다. 어차피 조만간 다시 볼 테지만.”
“살펴 가십시오, 형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사이, 유원과 헤라클레스가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하르간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장난 아니겠네, 이번 화합은.’
멀어져 가는 유원과 헤라클레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원의 랭킹은 11위.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헤라클레스의 랭킹은 사탄이 죽고 난 후, 16위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당장 자신의 눈에 들어와 있는 저 두 사람만 하더라도 한 명 한 명이 웬만한 거대 길드 하나와 맞먹는 전력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번 화합에 참여한다.
벌써부터 규모가 어마어마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욜체.”
“응?”
“화합 참여자 명단은 아직 안 나왔지?”
“아마 오늘 중으로 나올 걸? 그래도 웬만큼 굵직한 랭커들은 이미 기사로 발표가 다 났다고 생각했는데…….”
욜체 역시 하르간과 같은 생각이었다.
“저 둘은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네.”
길드에 소속된 하이랭커들이야 길드의 입장이 있으니 화합의 참석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원이나 헤라클레스처럼 길드의 입장을 신경 쓰지 않거나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이번 화합은 예상보다도 훨씬 큰 규모로 이루어질 모양이었다.
‘그런데 대체…….’
하르간은 헤라클레스와 보폭을 맞춰 걸어가는 유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기 온 걸, 누구한테 알려 주려고 했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