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2
* * *
무너진 건물.
그곳은 원래 헤파이스토스가 사용하고 있던 공방이었다.
빈민가의 한 작은 건물을 개조해 공방으로 만든 것으로, 건물은 허름하고 오래 되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태였다.
유원은 크리세스의 주먹을 맞고 날아가 공방의 건물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흑신석을.
-아니, 이제는 세공이 완벽하게 끝나 만들어진 ‘진(眞) 흑신석’을 발견해 손에 쥐었다.
“위험하다니요?”
아가멤논은 크리세스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언뜻 크리세스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 위로는 짜증이 떠올라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헤파이스토스를 사로잡는 임무를 끝마치고 돌아가고 싶은데, 계속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 죽어 가는 녀석입니다. 겁먹을 것 없습니다.”
“어둠 속성의 마나는 특이 케이스야. 더군다나 다 죽어 간다고 보기에는 느껴지는 마나가…….”
“이제 됐습니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아가멤논은 결국 그의 말을 중간에 끊어 냈다.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신규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많이 지쳐 보이시는데, 이제 쉬고 계십시오.”
아가멤논의 시선이 다시금 유원에게로 향했다.
“저자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 무너진 건물 잔해 앞에 서 있던 유원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간 거…….’
쾅-!
무언가 터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
방향은 헤파이스토스가 쓰러져 있는 방향이었다. 깜짝 놀란 아가멤논은 고개를 휙 돌렸다.
“꺼으…….”
“아아악!”
쿵, 콰당탕-.
헤파이스토스를 옮기기 위해 움직였던 수하들이 마치 볼링핀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전장은 다시 아수라장이 됐다. 유원은 또다시 헤파이스토스의 옆을 지키고 섰고, 아가멤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아가멤논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거야? 가서 죽여! 죽인 새끼한테는 관리직을 준다고! 한꺼번에 덤비란 말이야!”
석화된 헤파이스토스의 몸이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상태 이상 ‘석화’는 어디까지나 움직임을 멈추는 스킬일 뿐. 정신까지 굳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즉, 헤파이스토스는 지금도 계속해서 석화를 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하, 한꺼번에 가자!”
“으아아!”
개개인의 실력은 보잘것없어도, 역시 숫자라는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유원은 밀려드는 인해(人海)를 마주하며 검을 꽉 움켜잡았다. 한 손에는 검을, 한 손에는 흑신석을 움켜쥔 채 마나를 있는 힘껏 방출했다.
번쩍-!
한순간에 뿜어진 마나의 파동.
스악, 사아악-.
츄아아악-.
어둠 속성의 마나가 스쳐 간 자리, 달려든 플레이어들의 목이 베어지고 팔과 몸통은 뼈가 보일 만큼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졌다.
귀곡성을 닮은 비명 소리가 플레이어들의 인파에서 들려왔다. 유원은 밀려드는 인파를 상대로 싸우며, 계속해서 흑신석의 힘을 끌어올렸다.
파지지직-!
콰릉-!
유원의 손안에 쥐어진 조각에서 끊임없이 마나의 속성이 변화하고, 마나가 폭발해 증폭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의 존재를 눈치챈 건 크리세스와 아가멤논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군. 튜토리얼의 보상인가?”
크리세스는 자신보다 높은 층에 도달한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유원에게 감탄하고는 고개를 돌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아가멤논을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 했나?”
얄밉게도 크리세스는 거 보라는 듯 혀를 찼다.
아가멤논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런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낌새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탑이 괴물을 불러들였군.”
“지금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땝니까?”
아가멤논은 눈에 불을 켜고 크리세스를 돌아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러고도 남았을 표정.
“왜 그러나? 아까는 자네들끼리 알아서 하겠다 해 놓고서는.”
“그래서 가만히 손 놓고 있겠단 말입니까?”
“애초에 내 역할은 헤파이스토스를 묶어 두는 거였지. 상대가 신규 플레이어라면 탑의 법칙상 그건 자네들끼리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겠나?”
“지금 그걸 말이라고……!”
민감한 아가멤논의 반응에 크리세스는 픽 웃고 말았다.
하긴, 그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리 무리까지 잃어버린 데다, 겨우 발견한 헤파이스토스까지 놓쳐 버린다면 올림포스 내에서 아가멤논의 입지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돼 버릴 테니까.
“걱정 마라.”
크리세스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아가멤논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끝은 볼 생각이니.”
뚝-.
걸음을 옮긴 크리세스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 떨어졌다.
이미 한계점까지 패널티를 감수한 상태.
걸음을 옮기는 크리세스의 움직임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유원은 그런 크리세스를 발견했다.
동시에, 흑신석을 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주위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불꽃이 어둠 속성의 마나를 머금었다.
두 가지 속성이 합쳐진 검은색의 불꽃이 유원의 몸을 감싸자, 달려들던 플레이어들이 주춤했다.
저벅-.
불꽃을 뚫고 걸어 들어온 건 크리세스뿐이었다.
그는 유원이 펼쳐 낸 불꽃이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뻗어 그 불꽃을 손바닥 위에 머금었다.
“……놀랍군.”
화르르, 화륵-.
손 위에 머금어진 유원의 불꽃을 본 크리세스가 나지막이 감탄을 흘렸다.
불과 어둠.
한 가지 속성의 마나를 다루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싶을 건데, 무려 두 가지 속성의 마나를 동시에 컨트롤하다니.
이 정도 마나 컨트롤은 웬만한 랭커들도 하지 못했다.
“올림포스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 장비가 목적이라면 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맡긴 것보다 훨씬 좋은 걸 약속하지.”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목적일 리가.”
“하긴. 그건 그렇군.”
“그리고 그 대답이라면 이미 저쪽에 한 적이 있다.”
유원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아가멤논을 가리켰다.
“대답은 거절이겠지?”
“당연히.”
“아쉽군.”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크리세스는 단 1프로의 확률로라도 유원을 끌어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유원은 그 정도로 탐이 나는 보석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화아아악-!
크리세스의 불꽃이 유원의 불꽃을 집어삼켰다.
검은 불길로 이글거리던 주위가 붉게 변했다.
주위의 절반은 유원의 흑염이, 다른 절반은 크리세스의 붉은 불꽃이 지배했다.
불꽃은 서로 경쟁하듯 치열하게 싸웠다. 그 순간에도 크리세스의 몸에는 패널티가 부과되고 있었다.
“더 싸울 수 있겠어?”
유원의 물음에 크리세스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신규 플레이어에게 이런 말이나 듣게 될 줄이야.”
어디 가서 말도 못할 만큼 쪽팔린 이야기였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들이 유원의 존재를 모르기에 부끄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한 몇백 년만 더 지나면, 오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문득, 그런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옛날엔 김유원과 싸워 본 적이 있다.”
“진짜다. 언제냐고? 김유원이 1층에 막 올라왔을 때였는데…….”
크리세스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훗날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 걸 생각하니, 벌써 우스워졌다.
그 누가 랭커와 신규 플레이어가 이렇게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물론…….’
화르르륵-.
크리세스의 불꽃이 유원의 불꽃을 집어삼켰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아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화아아악-!
사방의 불꽃이 크리세스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빠르게 휘감긴 불꽃은 크리세스의 머리 위로 올라가 뭉쳐 태양처럼 변했다. 유원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소멸을 각오했군.”
이번 임무가 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유원은 새삼 느꼈다.
하긴.
그러니 1층에 랭커를 투입하고, 레플리카라고는 하나 아이기스까지 쥐어 보냈을 테지.
‘만약 여기서 아저씨가 올림포스에 합류하지 않게 된다면…….’
츠츠츠츠-.
유원은 손안에 쥔 흑신석에 힘을 불어넣었다.
유원의 마나에 반응한 흑신석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공명을 시작한 마나는 유원의 육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다음 기간토마키아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유원은 여기서 헤파이스토스를 지켜야 했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
그 비극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기에.
화르르륵-.
츠츠츠, 츠-.
두 개의 거대한 마나가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으르렁거리는 두 종류의 마나가 부딪쳐 주위에 강렬한 돌풍을 일으켰다.
저벅-.
유원과 크리세스.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발을 옮겼다.
크리세스가 만들어 낸 작은 태양은 그의 손짓에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파즈즈, 파즈-.
탑은 그런 크리세스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몸에 강렬한 패널티를 부과했다. 작은 태양의 형태가 잠시간 힘을 잃고 흔들렸다.
콰득-.
얼마나 힘을 줬던지 입안에서 부서진 이빨과 핏물이 굴러다녔다. 크리세스는 마지막 정신력을 쥐어짜, 다시금 마나를 한 점에 집중시켰다.
고오오오-.
불꽃이 다시 뭉쳐지며, 작은 태양이 힘을 되찾았다.
크리세스의 정신력은 마지막 순간, 탑이 부여한 패널티를 이겨 냈다.
그렇게 탑의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양극하는 두 존재가 부딪치는 순간.
“역시 대단하다니까.”
거대한 마나의 충돌 속, 유원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역시라고……?’
콰아아아-!
* * *
뜨거운 열을 지닌 거대한 돌풍이 불었다.
주위에 있던 플레이어들 중 몇 명은 그 돌풍에 정신을 잃었다.
‘뭐 이런 무식한…….’
두 마나의 충돌로 인해 1층의 세계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마나와 마나의 충돌, 그리고 크리세스에게 가해진 패널티의 여파로 주위는 이미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었다.
돌풍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아가멤논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부는 어떻게 됐지?’
크리세스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싸우는 건 고사하고, 이번 일격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면 다행일 것이다.
랭커가 1층에서 이 정도 힘을 사용한 건 긴 탑의 역사를 뒤져 봐도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소멸이 아니더라도 크리세스는 아마 한동안 힘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육체가 망가졌을 게 분명했다.
스으으으-.
열기로 어지럽게 일렁거리는 대기.
두 불꽃의 충돌로 인해 생긴 아지랑이가 서서히 걷혀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둘 다…… 살아 있군.”
그 속에서 크리세스와 유원의 모습이 보였다.
“살아는.”
말 그대로 ‘살아는’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유원과 크리세스.
크리세스는 몸이 잘게 떨리는 것으로 살아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건 유원이었는데, 그마저도 손가락을 하나씩 까닥일 뿐 더 움직일 수는 없어 보였다.
사실상 무승부.
그리고 그 결과에 아가멤논은 미소를 지었다.
“이겼다…….”
애를 먹긴 했지만, 어쨌거나 유원은 쓰러졌다.
아무리 유원이 강하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아가멤논이 드디어 승리를 확신했을 때였다.
“이겨?”
쾅-!
불길한 소리.
아가멤논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직 안 끝났다, 애송아.”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망치를 손에 움켜쥐고 있는 절음발이가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석화에서 풀려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