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27
* * *
발키리들이 소집되었다.
전원이 랭커로 이루어진 수천 명의 군대뿐 아니라, 그들의 단장 브룬힐데까지 소환된 명령이었다.
발할라의 전사들은 모두 창과 칼로 무장을 갖춘 채 언제든 싸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부단장님. 뭐 들은 거 있습니까?”
“아직 전달된 건 없다. 그저 무장을 갖추고 대기하고 있으라는 말밖에는.”
부단장 지글린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달받은 명령은 그저, 전투태세를 갖추고 발키리들을 대기시켜 놓으라는 것뿐.
‘오늘은 분명 화합을 위한 날일 텐데…….’
거대 길드의 길드장, 혹은 랭킹 100위권 안쪽의 최상위 하이랭커들이 모여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이후에 대한 논의와 약속을 하는 자리.
더군다나 화합의 날은, 무려 오늘부터 사흘 동안 계속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만큼 탑의 바깥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히 논의될 문제였으니까.
그런데.
‘오늘 같은 날, 싸울 일이 뭐가 있다고?’
저벅-.
발키리들의 수장이 연무장에 도착한 건 그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모두들 궁금해하던 차.
지글린데는 모습을 드러낸 브룬힐데를 향해 먼저 경례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준비는 다 끝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명령이 내려온 거냐고?”
지글린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브룬힐데가 아니었다.
“폐하께서 내리신 명이다.”
“폐하께서?”
“이유는 나도 듣지 못했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룬힐데의 표정에는 한 점 의문조차 없었다.
“그래도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이니까.”
“……예.”
지글린데 역시 그 말에는 동의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딘이었다.
제대로 된 나라는커녕, 괴물들로 득실거리던 이 세계에 발할라를 세우고 발키리들을 양성한 위대한 존재.
그런 오딘이 하는 일에 의문을 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발키리들을 이해시킨 브룬힐데.
‘그렇긴 해도…….’
그녀는 무장을 마친 채,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발키리들을 바라보았다.
‘이번만큼은 폐하께서 틀리셨으면 좋으련만.’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불안했다.
이만한 숫자의 발키리들이 움직일만한 일이 과연 또 언제 있었을까. 아마 라그나로크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할라에, 탑 최강의 전력들이 모여들어 있는 이때에.
발키리들을 이렇게 무장시킨 채 대기시킨다는 건 한 가지를 뜻을 의미했다.
‘라그나로크보다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 * *
끼이이-.
발할라 성의 문이 열렸다.
오딘의 방으로 들어온 미미르는 그 안에서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 오딘을 향해 말했다.
“역시 또 여기 있었나.”
졸졸졸-.
정원사라도 되는지 햇빛도 없는 곳에서 오딘은 방 안에 줄기줄기 자란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대체 매번 이 기분 나쁜 곳에는 왜 오는 거냐?”
“이그드라실이 기분 나쁜 건 아마 이 탑에 너뿐일 거다.”
“당연하지. 이 빌어먹을 나무 때문에 내가 몇 년을 잠에 빠져 살고 있는데.”
이그드라실.
아스가르드에서 그것은 생명의 나무이자, 모든 마력의 원천으로 통했다.
하지만 미미르에게 있어서 이그드라실은 자신을 긴 잠에 빠뜨린, 불살라 태워도 부족한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오딘은 자신의 방에 이그드라실을 옮겨 심어 놓고 정성스레 그것을 기르고 있었으니 속이 안 탈 수가 없었다.
“너무 그러지 마라. 네게 저주를 건 것도 이그드라실이지만, 반대로 네 저주를 풀 수 있는 것도 이그드라실밖에는 없으니.”
구구절절 맞는 말.
미미르 역시 알고는 있었다.
자신의 이 빌어먹을 저주를 풀 방법은 이그드라실뿐이라는 걸.
“그런데 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네가 시킨 게 있지 않으냐?”
“발키리들?”
“그래. 준비 다 됐다는군.”
“과연 브룬힐데야. 늘 기대한 것보다 한 발 빨라.”
구부정히 허리를 숙여 이그드라실을 돌보던 오딘이 허허 웃음을 지었다.
대체 얼마 동안이나 여기에 있었던 건지.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던 오딘을 떠올리며 미미르가 물었다.
“계속 여기 있던 거냐?”
“그럼, 내가 어딜 가겠나.”
“잠도 안 자고?”
“잠을 안 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하루 안 잔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미미르는 백 년 중 구십구 년을 잠에 들어 생활한다. 그 때문인지 미미르는 깨어 있을 때만큼은 절대 잠을 자지 않았다.
어차피 곧 실컷 자게 될 테니, 지금 깨어 있을 때를 즐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이 긴장한 모양이군.”
미미르와 오딘은 달랐다.
오딘은 지금처럼 일부러 잠을 자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오딘의 말처럼 하루 밤을 샌다고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는 규칙성이라는 걸 꽤 중요하게 여겼으니깐.
이해는 됐다.
불과 얼마 전에 있던 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수르트와 싸울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꾸욱-.
이그드라실의 뿌리에 물을 주던 오딘은 머리에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어 내려놓으며 물었다.
“정말 오늘인 거냐?”
벌써 몇 번째 듣던 질문.
“그래.”
“오늘은 화합의 날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겠군.”
“어쩔 수 없다. 제멋대로인 녀석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려면 오늘만한 날도 없으니까.”
“하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당장 어제 만난 랭커들만 해도 그랬다.
랭커란 모름지기 탑을 정상까지 공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자들.
플레이어로 선택받아 랭커가 될 확률은 수만 분의 일에 달해,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선택받은 존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하이랭커는 그런 랭커들 사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자들이었으니.
“디아블로 녀석만 하더라도 통제하기가 쉽지 않겠더군.”
탑은 여러 세력으로 흩어져 있었다.
길드라는 이름 아래로. 그리고 각기 다른 층으로 나누어진 세계로.
그렇게 나눠진 힘을 하나로 뭉치는 게 바로 오늘, ‘화합’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이 일을 아는 녀석이 또 있나?”
“두 명이 더 있다.”
“두 명?”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두 명이나 되다니.
오딘의 의문 어린 표정에 미미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김유원과 제우스. 적어도 이 둘은 알고 있을 거다.”
“김유원이야 그렇다 쳐도, 제우스까지?”
한 명은 그럴 만하다 싶었다.
유원은 시계태엽의 선택을 받아 돌아온 존재.
더군다나 그는 미미르의 지식을 통해 훗날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제우스는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풀어 놓길 잘했군.”
어쩌면 제우스 역시 유원과 마찬가지로 탑 바깥의 존재들과의 싸움에서 꼭 필요한 동료가 될지도 모른다.
오딘은 그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너무 믿지는 마라.”
미미르의 생각은 그런 오딘과는 사뭇 달랐다.
“김유원은 그렇다 쳐도, 제우스 그 녀석은 조금 위험하니까.”
“위험하다니?”
“목적은 같아도 그걸 위한 수단과 방법이 달라. 녀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희생시키는 데 거리낌이 없는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올림포스가 그렇게 세워졌으니까.”
“…….”
미미르의 말에 오딘은 지난 올림포스의 역사를 떠올렸다.
제우스를 비롯한 삼신과 함께 세워진 길드. 그 길드에서 제우스는 왕이 되어 군림했다.
아스가르드의 왕으로서 올림포스가 세워지는 과정을 멀리서나마 지켜보았지만, 확실히 그 과정은 그리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확실히. 경계해 두도록 하지.”
“뭐, 어쨌건 지금으로서는 최고로 든든한 아군이라는 건 확실하다.”
“뭘 어쩌라는 거야.”
복잡하게 번복되는 말에 투덜거리며 오딘은 옷을 갈아입었다.
밀짚모자를 벗고, 옷을 갈아입은 것뿐인데도 위엄이 흘러나왔다.
미미르는 표정이 바뀐 오딘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됐다.
“제천대성은 아직 안 왔나?”
“수소문해 보긴 했지만 행방불명이다.”
“아쉽군. 있었으면 큰 힘이 됐을 텐데.”
“실력이야 의심할 게 없지. 아마 녀석은 장차 이 탑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될 테니.”
“가장? 나보다도 더 말이냐?”
“아마 그럴 거다. 녀석은 지금 천축을 찾고 있으니까.”
“천축이라…….”
두 사람의 눈에 문이 보였다.
오늘 화합을 위한 회의장.
저 안에는 지금, 수많은 거대 길드의 위대한 랭커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우마왕이 있으니 찾는 건 문제 없겠군.”
“아마 그럴 거다.”
“그럼 그쪽은 내버려 두기로 하고.”
턱-.
오딘이 회의장을 여는 손잡이를 잡았다.
“우리는 우리 일을 하자고.”
끼이이이-.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활짝 열렸다.
두껍다고는 하나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문 하나가 열렸을 뿐이었다.
하나 오딘은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피부로 와닿는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들어 차 있는 수십 명의 랭커들.
그들의 앞으로 서며 오딘이 입을 열었다.
“하루 만이군.”
허례허식은 없었다.
그런 거라면 어제 충분히 했다.
“오늘이 어떤 자리인지, 다들 충분히 알고 왔겠지?”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리는 탑 바깥의 존재들에게 대비하기 위한 자리라는 걸.
‘데바의 아그니. 쿠베라.’
오딘의 시선이 좌중을 훑었다.
그는 1층에서 슈브 니구라스와 함께 싸웠던 랭커들을 찾았다.
‘제우스.’
데바의 아그니와 쿠베라. 그리고 제우스까지.
이 자리에는 초대장을 보낸 대로, 슈브 니구라스에 대해 아는 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탑 바깥의 존재에 대해 증언해 줄 자들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해.
‘김유원은…….’
유원은 아마, 자신들보다도 더 많은 걸 알고 있겠지.
그런데.
툭툭-.
미미르가 오딘의 뒤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알고 있었다.
자신도 눈이 있으니까 보고 있는 중이었다.
‘없다.’
분명 이 자리에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이.
‘김유원이…… 왜?’
* * *
같은 시각.
검은 벽이 하늘 높은 곳까지 치솟은, 세상 끝의 어느 마을.
콱-.
호미질을 하던 농부들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늘 보아 오던 벽을 힐끔거렸다.
“오늘이 그날이지? 수도에서 화합의 장을 연다는.”
“그럴걸? 저~ 기 바깥에서 웬 괴물이 쳐들어왔는데, 그거 때문에 모인다네.”
“흉흉해서 살겠나, 이거.”
“얼른 이사를 가든가 해야지.”
잠시 굽혔던 허리를 펴고 시작되는 수다.
밭을 나와 제자리에 앉은 농부들이 새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거야 뭐, 대단하신 플레이어분들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입에 풀칠만 잘 하고 살면 되지. 안 그려?”
“그래, 그래. 오딘께서 잘 해결하시겠지.”
“그래도 영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구먼.”
벽이 무너지고, 탑 바깥의 존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여러 세계에서 벽과 맞닿아 있던 마을의 주민들이 대거 이동하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
더 이상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오늘 모인 게 저거 때문이라지 않았는가? 어떻게 며칠 지나고 나면 뭐든 답이 나와도 나오겠지.”
“맞다. 너무 그렇게 신경들 쓰지 말고, 자. 일단 한 잔…….”
쩍-.
어디선가 들려온 소리.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모두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쩍?”
마을에 모여 있던 주민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방향으로.
그렇게 그들의 눈에.
“……어?”
다시 금이 가기 시작한 벽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