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3
* * *
쾅, 쾅-!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
헤파이스토스는 망치를 무식하게 휘둘렀다. 힘을 방출할수록 탑은 그의 몸에 계속해서 패널티를 부여했지만 헤파이스토스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단순히 허공을 때려 부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으…… 으으…….”
“어, 엄청 화났나 본데?”
“귀가…….”
무식한 망치질 소리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는 아가멤논의 칼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 금방 한 걸음만 가까이 다가가도 몸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그런 위압감이 느껴졌다.
공포.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몸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마나는 이미 한 명의 거인이나 다름없었다.
‘패널티는 무시할 생각이다.’
헤파이스토스는 지금 말하고 있었다.
어디 덤빌 테면 덤벼 보라고.
당장 랭커인 그가 하위 층의 플레이어들인 자신들을 공격할 방법은 없었다. 수십 명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을 무참히 살해한다면 제아무리 헤파이스토스라 해도 패널티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다 죽이기 전에 그 자신이 소멸하든가, 관리자가 개입하든가.
그렇기에 헤파이스토스는 허공에 애먼 마나를 낭비하면서 망치를 찍어 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해서…….’
아직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헤파이스토스도 석화에서 막 풀려난 상태인 만큼 멀쩡한 상태는 아닐 터.
그렇다면 패널티를 이용해서…….
그때, 아가멤논의 시야에 자신의 방향으로 휘둘러지는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보였다.
부웅-.
쩌어엉-!
허공을 찍은 일격.
그리고 그 방향으로는 아가멤논이 서 있었다.
“쿨럭!”
망치질에 의한 충격파가 아가멤논의 몸통을 강타했다.
파지지직-!
헤파이스토스의 몸에 강렬한 패널티의 전격이 흘렀다. 헤파이스토스는 아프지도 않는지 그 자리에 멀쩡히 서서 망치를 어깨에 걸쳤다.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아가멤논은 꽤 상층의 플레이어.
그만큼 먼저 선공을 취했다고는 해도 헤파이스토스에게 부여되는 패널티는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넌 내가 확실히 죽여 주마.”
저벅-.
치이이이-.
“쿨럭, 컥…….”
아가멤논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한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났다. 입 밖으로 토한 피에는 내장이 섞여 있었다.
몸에서 뜨거운 증기를 뿜으며 헤파이스토스가 걸어왔다.
패널티?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헤파이스토스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아가멤논 한 명 정도는 죽이더라도 그 자신이 소멸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공격은 모두 무시한 채, 헤파이스토스는 오로지 아가멤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웅-.
헤파이스토스의 망치가 하늘로 향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압도적인 존재감과 마나.
자신은 이런 거인을 잡으려 했던 것이다.
‘주, 죽는…….’
마지막 순간.
아가멤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콰아앙-!
대기를 진동시키는 묵직한 망치 소리.
아가멤논은 죽음을 직감했다.
아니, 했었다.
결과는 달랐다.
‘뭐가 어떻게 된…….’
충격이 없자 아가멤논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넓은 그늘이 몸을 가리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와 자신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너무 날뛰는군.”
3미터는 됨직한 거구의 옆모습.
그는 사람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손바닥으로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막아 내고 있었다.
거인족이 아니고서야, 저 정도 덩치에 한 손만으로 헤파이스토스의 망치를 막아 낼 만한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이 타이밍에 등장할 만한 존재라면…….
“관리자님……?”
아가멤논의 말대로, 헤파이스토스 역시 눈앞에 나타난 거구의 정체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1층의 관리자.
사실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였다.
“하필 지금 등장하기요?”
“그럼 언제까지 두고 볼 줄 알았나?”
헤파이스토스의 불평에 관리자는 그의 망치를 빼앗아 뒤로 던졌다. 헤파이스토스의 손을 벗어난 망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며 떨어졌다.
“제대로 싸울 생각이면 여기가 아니라 위쪽에서 싸워라. 여긴 1층이다.”
관리자는 시험이 아니면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의 일을 탑을 살아가는 플레이어와 랭커, 길드에 맡겼다. 관리자가 개입하는 경우는 대부분 시험에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하지만 저층 구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10층 아래쪽, 특히 1층은 관리자가 특별히 신경 쓰는 곳이었다.
그런 만큼 원래라면 길드에서 나서서 층을 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올림포스’라는 길드가 나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렇게 길드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관리자가 직접 나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 싸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관리자는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마주한 아가멤논은 그의 눈에서 광활한 우주 같은 것을 보았다.
관리자.
탑의 한 층을 다스리고, 지배하며, 말 그대로 관리하는 자.
그는 아가멤논이 섬기는 아레스는 물론, 올림포스의 왕인 제우스와 필적하는 존재였다.
“올림포스 놈이냐.”
“예, 예? 예! 그, 그렇습니다.”
바보처럼 말을 버벅대는 아가멤논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관리자가 말했다.
“가서 제우스에게 똑똑히 일러 둬라. 또 이따위 짓거릴 저질렀다간, 다음엔 전처럼 그 잘난 수염을 몽땅 뽑아 버릴 거라고.”
“아, 알겠습…….”
“말로만 대답하지 말고.”
스윽-.
관리자가 몸을 숙여 팔을 뻗었다.
거대한 손이 다가옴에도 아가멤논은 그 손을 피할 수 없었다. 피했다가는 금방이라도 그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터뜨릴 것만 같아서였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기이잉-.
아가멤논의 이마에 검은색의 문양이 새겨졌다.
혓바닥을 닮은 독특한 문양에 아가멤논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익숙한 문양에 헤파이스토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큭, 푸크큭…….”
이 탑에서 관리자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또한, 그는 아가멤논의 머릿속에 확실한 각인을 심어 놓았다.
만약 아가멤논이 언젠가 제우스를 만나게 된다면, 그는 관리자가 전하라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할 것이다.
수염을 몽땅 뽑아 버리겠다는 말까지도.
아가멤논은 허탈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린 헤파이스토스와 관리자를 번갈아보았다.
이 거인들 사이에서, 자신이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은 길지 않았다.
관리자가 개입한 이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싸움은…….
올림포스의 패배였다.
* * *
뜨거운 화롯불에 몸이 지져진 기분이었다.
정신을 잃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어떻게든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 이후의 일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의 알’이 이빨을 드러냅니다.]황당한 메시지였다.
아직 부화도 하지 않은 녀석이 이빨을 드러내다니.
알은 한동안 인벤토리 속에서 계속 잘게 떨렸다.
마치, 정말 싸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쩌억-.
보라색 문양이 새겨진 알 속.
거대한 이빨 같은 것이 보이는 듯했다. 직접 눈으로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이건 위험하다.
랭커를 눈앞에 두고도 느껴지지 않았던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대체 이건 무엇인가.
두려움과 함께, 유원은 복잡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날 지키려 했던 건가?’
알이 단단한 껍질 속에서 드러낸 이빨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아니면 약해진 틈에 잡아먹으려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기 전, 유원은 또 다른 메시지를 들었다.
[‘?의 알’이 다시 수면 상태에 들어갑니다.]한동안 이빨을 드러내던 알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메시지는 유원이 정신을 잃고 있던 중에 쌓여 있던 게 아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유원의 머릿속에 떠오른 메시지였다.
유원은 자신이 어느새 의식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난…….”
언제 정신을 잃었지?
유원의 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난? 난 뭐?”
귓가로 또렷이 파고드는 걸쭉한 목소리.
눈을 뜬 유원은 흐릿한 시야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희뿌연 시야 속, 큼지막한 대두가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요놈 말하는 본새 봐라.”
전부터 생각했지만 참 잠이 달아나는 목소리였다.
안개가 낀 듯했던 시야는 금방 돌아왔다. 유원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빈민가의 작은 집.
아마도 한바탕 소란으로 집을 버리고 도망친 빈민의 집을 잠시 빌린 모양이었다.
“언제 깨셨습니까?”
“이놈 봐라.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이다.”
헤파이스토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녀석이 깨어나서 한다는 말이 언제 깼냐는 거라니.
하긴.
헤파이스토스가 깨어났을 때는 유원이 이미 정신을 잃었을 때였으니, 서로 걱정할 만도 했다.
“몸은 괜찮으냐?”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화상은 거의 치유된 듯했다. 아마 화안과 불에 대한 내성이 강화된 덕분일 것이다.
“아저씨는요?”
“그놈의 아저씨라는 호칭은 언제까지 할 거냐?”
“아줌마라고 부를 수는 없잖습니까?”
“허, 이놈 보게나.”
“어쨌든 덕분에 살았잖습니까. 호칭이야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닙니까?”
뻔뻔한 말이었지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머쓱해진 헤파이스토스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올림포스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유원의 덕분이었다.
헤파이스토스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말을 머뭇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유원이 그의 얼굴을 보고 한동안 멀뚱히 있자, 곧 우물거리던 입이 열렸다.
“고맙다.”
“예?”
“고맙다고 이놈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어?”
고작 두 번 말했을 뿐인데 헤파이스토스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헛기침을 해 댔다.
어지간히도 쑥스러운 모양.
하지만 유원은 두 번이면 참 많이 했다 싶었다.
‘많이 노력하셨네.’
유원이 기억하는 헤파이스토스는 고마운 일이 있을 때, 말로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말보다는 행동.
그것이 헤파이스토스의 지론이었고, 삶의 방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헤파이스토스가 말했다.
‘고맙다’고.
행동으로도 부족하다고 여긴 것이다.
“난 사실 불카로가 아니다.”
헤파이스토스는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헤파이스토스다. 올림포스의 대장장이였지.”
“그렇습니까?”
“안 놀라냐?”
“충분히 놀랐습니다.”
“거짓말을 못하는 거냐, 아니면 거짓말을 할 생각이 없는 거냐?”
황당하다는 듯 그렇게 물은 헤파이스토스는 돌연 웃음을 흘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어쩌면 유원이 자신이 헤파이스토스인 걸 알면서 찾아왔던 걸지도 모른다고.
하필 타이밍이 적절해, 어쩌면 유원이 올림포스의 사람일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이걸로 확실히 알았다.”
내내 속에 품고 있던 의문.
과연 유원은 올림포스의 사람인가?
만약 아니라면 이상했다. 그럼 대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맞다면 그것도 이상했다. 그럼 대체, 왜 자신을 잡아가려 하지 않는 거지?
어느 쪽이든 결국 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넌 올림포스 쪽 사람은 아니야. 그렇다고 평범한 플레이어는 더 아니지만 말이지.”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자신과의 싸움으로 많이 상처 입고, 상당한 패널티를 감수한 상황이라 해도 한낱 신규 플레이어가 랭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다니.
“난 은혜든 원수든 열 배로 갚아야 하는 성격이라 말이지.”
잘 알고 있었다.
헤파이스토스의 그런 성격.
“어차피 관리자까지 개입한 이상, 올림포스에서 당장에 날 다시 잡으러 올 수는 없다. 그래서 이번에 큰맘 먹고 도시에 있는 큰 공방을 며칠 대여했다.”
새로운 공방.
지금껏 올림포스를 피해 음지에 있는 작은 공방에 있던 그가, 제대로 된 공방을 구했다.
“며칠만 기다려라.”
당연히 작업의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칼을 만들어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