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30
* * *
세상이 온통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막아! 막으라고!”
“막긴 뭘 막아! 일단 도망쳐!”
“썅! 발키리들은 아직이야?”
메에에에-.
갑작스레 세상을 덮친 산양들.
분명, 겉으로 보기엔 작은 산양에 불과했지만, 어중간한 랭커들로는 상대가 불가능한 괴물이었다.
“이건 우리끼린 안 돼!”
“아아악! 살려……”
콰득-.
산양들이 난동을 부렸다.
고작 한 마리의 산양을 감당하지 못해 랭커들의 머리와 다리가 뜯겨져 나가고, 무너진 성벽 아래로는 어느새, 핏물로 만들어진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전멸이다.’
메에에-.
성벽의 관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산양이 입을 벌렸다. 몸이 굳어져 말을 듣질 않아,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창 하나가, 산양의 몸을 꿰뚫었다.
“……어?”
“와, 왔다!”
“발키리들이다!”
하늘에 나타난, 하얀 백마를 타고 날아온 발키리들.
반가움에 함박웃음을 짓던 성벽의 관리자는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벌써?’
일이 일어난 건 겨우 삼십여 분 전.
발키리들의 천마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이만한 숫자의 발키리들이 준비를 갖추고 움직이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었다.
분명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성벽을 사수하려 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아직 내성에서는 준비가 덜됐을 테니.
그런데 이건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던 건가?’
화합의 날이라는 이 평화로운 날, 마치 전시 상황을 미리 대비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만 같았다.
의문도 피었지만 그건 잠시였다.
어쨌거나 덕분에 살았다. 발키리들이 왔으니 일단은 안심이었다.
콰웃-!
브룬힐데는 칼과 단창을 동시에 휘두르며 산양을 베어 넘겼다.
수많은 발키리들 중 역시 가장 빛이 나는 건 그녀였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잠시일 뿐.
‘뭐지? 이 녀석들은.’
메에에에-.
브룬힐데는 칼에 목이 베인 채,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산양들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게 아닌 상대와 싸우는 기분이다.’
분명 눈앞에 있는 산양은 작았다.
힘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운이 센 것도 아니었다.
가끔 기형적일 만큼 큰 입을 벌리며 위협을 해 왔지만 하이랭커들에게까지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을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마치 자신이 약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위축된 건가.’
콱-.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자존심이 상했다.
기이이잉-.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칼.
브룬힐데의 눈에서 빛이 뿜어졌다.
[‘광휘(光輝)’가 발동됩니다.]전방위를 모두 베어 버리는 브룬힐데의 스킬.
그것을 발견한 발키리들이 몸을 돌렸다.
“모두 물러나라!”
“단장이 움직인다!”
브룬힐데의 검은 적아를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발키리들은 브룬힐데가 힘을 쓰는 순간, 브룬힐데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움직였다.
화아악-!
사방이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다.
콰우우우우-.
콰우우-.
산양들을 집어삼키는 브룬힐데의 마력.
순간, 보랏빛의 하늘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 찬란한 풍경을 만들어 낸 브룬힐데는 손에 쥔 검을 높게 치켜들며 소리쳤다.
“아스가르드를 위하여!”
“위하여-!”
[‘전장의 함성’을 발동합니다.] [‘발키리’ 소속의 플레이어들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발키리’ 소속의 플레이어들에게 걸린 부정적인 버프가 소멸됩니다.] [‘발키리’ 소속의 플레이어…….]발키리들에게 걸리는 수많은 효과들.
단 하나의 버프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났다. ‘전장의 함성’은 브룬힐데를 발키리들의 수장으로 만들어 준 스킬이었다.
브룬힐데의 랭킹은 유원에게 밀려, 182위. 하지만 그녀는 발키리들과 함께 싸우면 두 자릿수의 하이랭커 못지않은 힘과 영향력을 발휘했다.
발키리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물론, 브룬힐데는 반대였다.
‘너무 과했나.’
순식간에 가지고 있던 마력의 절반을 쏟아 부은 브룬힐데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순간 후회도 됐다.
싸움이 얼마나 장기화될지 모르는 이때.
아무래도 방금 전의 한 수는 너무 무리가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한 공격에는 산양들이 잘 죽지도 않을뿐더러, 이 한 번의 일격은 근본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 싸움은 다른 무엇보다도 발키리들의 사기가 가장 중요한 싸움이라고 판단했으니까.
‘그래도 이 정도면…….’
메에에-.
환한 빛무리 속에서 들려온 울음소리.
오싹-.
잠시나마 두려움을 떨쳐냈던 브룬힐데는 다시금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빛무리가 서서히 옅어지며 그 속에서 일그러진 얼굴의 산양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메에에-.
메에-.
산양들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들은 히죽 웃음을 지었다. 브룬힐데의 광휘는 녀석들에게 치명상을 남기지 못했다.
“……일찍부터 왜 발키리들을 준비시키셨나 했더니.”
발키리로는 한참 부족하다.
잠깐이나마 솟아올랐던 사기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메에에-.
쩌억-.
눈앞으로 다가오며 입을 벌리는 산양들.
꽈악-.
브룬힐데는 검과 창을 쥔 양 손에 힘을 주며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여기가 내 무덤이었군.’
죽을 각오를.
-아스가르드의 발키리들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하더니만.
스윽-.
브룬힐데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하나.
-순 엉터리 소문이었군.
“누구…….”
누구냐고 물으려던 브룬힐데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안색이 창백하고 입술은 파랗다. 이 산양들 가운데에서도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해 언뜻언뜻 광기마저 띄고 있다.
푸른 도복을 입고 붉은 칼을 손에 쥔 언데드 소환수.
그에 대한 정보라면 아스가르드에서도 가지고 있었다.
“스사노오?”
-우린 구면이군.
스사노오는 삼귀자에 속해 있었지만 자유로웠다. 그는 여러 강자들을 찾아다녔고, 그중에는 브룬힐데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발키리들의 수장인 브룬힐데를 차마 죽일 수는 없었지만, 당시 승부는 당연하게도 스사노오의 승리였다.
“김유원의 소환수가 되었다는데.”
-어쩌다 보니.
“그럼 널 이곳에 보낸 건 역시 그 자겠군.”
-너희를 여기로 보낸 건 오딘일 테고 말이야.
브룬힐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즉, 유원과 오딘이 같은 때에 같은 걸 생각했다는 뜻이었다.
메에에-.
산양의 눈동자가 스사노오에게로 향했다.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잘 죽지도 않는 녀석들이니까.”
-조심?
쩌억-.
스사노오를 덮쳐오는 산양의 입.
콰직-!
산양의 입이 스사노오를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브룬힐데가 놀라 다시 손을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다.
스아아악-.
푸화악-!
산양의 몸이 갈기갈기 베어져 나오기 전까지는.
-너희 발키리들 따위와 날 같은 수준으로 보면 안 되지.
툭, 후두둑-.
산양을 베어 내며 입속에서 빠져나온 스사노오가 오만한 얼굴로 어깨에 쿠사나기를 걸쳤다.
-잘 안 죽으면 좋지. 써는 맛도 더 오래 즐길 수 있을 테니.
우웅, 우우웅-.
쿠사나기에 걸려 있는 팔척경곡옥이 빛을 뿜었다.
한 손에는 야타의 거울을. 다른 한 손에는 팔척경곡옥을 단 쿠사나기를 든 스사노오.
브룬힐데는 방금 전, 스사노오가 언제 칼을 휘둘렀는지도 보지 못한 채였다.
‘삼켜지기 전에 이미 베어져 있었다.’
살아생전 스사노오의 랭킹은 알고 있었다.
57위.
그는 당시에도 삼귀자 중 가장 랭킹이 높았다. 만약 살아있다면 그는 지금쯤 그보다 몇십 단계는 높은 랭킹에 들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칼을 쓰는 솜씨에 있어서만큼은 이 탑의 누구보다도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언데드가 되고 더 강해졌다.’
기본적인 육체 능력만 해도 그랬다.
언데드가 되면 약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언데드를 부리는 소환사의 마력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살아생전보다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였다.
‘그만큼 김유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가.’
유원의 랭킹은 높다. 어느 누구든 유원이 수 년 내로 한 자릿수의 랭킹을 가지게 될 거라는데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스사노오의 힘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손에는 지금, 삼귀자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삼신기가 모두 들려 있었으니.
스윽-.
스사노오는 쿠사나기를 들어올리며 사방에서 모여드는 산양들을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꿈틀거림. 보통 사람들에게는 공포였겠지만 스사노오에게는 그것이 다르게 다가왔다.
-고마워 미치겠군.
이곳에 오기 전.
유원이 스사노오에게 내린 명령은 딱 하나였다.
“날뛰고 와라. 적아 구분만 똑바로 하고.”
날뛰어라.
그것도 마음껏.
삼신기까지 쥐어준 데다, 마력까지 이렇게 넘쳐난다.
살아생전과 똑같은.
아니.
그때보다 더 힘이 충만한 상태로, 최고의 전장에 자신을 보내 주었다.
씨익-.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고맙다, 주인.
스사노오.
그가 전장에 합류했다.
* * *
아폴론이 태양마차에 올랐다.
함께 마차를 몰기 위해 천마의 안장에 올라탄 아르테미스는 고개를 돌려 발할라 성을 올려다보았다.
“서둘러야 하지 않아?”
아르테미스의 말에 아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슬슬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발키리들은 이미 출발한 상태였고, 디아블로를 비롯해 성격 급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도 마찬가지.
한 시가 급한 이 상황에 지금처럼 태양마차를 놀리고 있는 건 아폴론도 속이 타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아직 제우스가 오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의 최고 전력 중 하나인 헤라클레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둘에 비하면 큰 상관은 없다지만, 하르간도 없기는 마찬가지.
그들 세 사람은 따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리고 그 시각.
발할라 성의 꼭대기.
“예정된 일이 일어났다.”
“…….”
“…….”
헤라클레스와 하르간이 나란히 서서 제우스를 마주보았다.
하루 전날 있던 대화.
그 대화가 정말, 사실처럼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게는.”
“하아-.”
제우스의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우스의 대답이었다. 심지어 그는 1층에 나타난 슈브 니구라스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제우스의 판단이라면 분명 확실할 것이다.
‘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힐끗-.
보랏빛이 짙어진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헤라클레스가 재차 한숨을 쉬었다.
겨우 바깥으로 쫓아냈던 바깥의 존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64층은 멸망이었다.
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헤라클레스가 힐끗, 옆에 있는 하르간을 보는 순간.
“하겠습니다.”
하르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러냐?”
제우스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결국 이 순간이 왔다.
헤라클레스와 하르간.
두 사람의 모습이 각각 제우스의 눈에 비춰졌다.
‘드디어 열매가 맺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