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36
* * *
메에에에-.
메에-.
천 마리의 산양들의 울음소리에 랭커들이 정신을 잃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손에 오딘이 추락했다. 동시에 높아졌던 사기는 그의 추락에 오히려 처음보다도 더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랭커들의 사이.
“쯧-.”
디아블로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휘두르던 주먹을 멈추고 서서.
전장의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아악!”
“어깨가-!”
“떨어져, 떨어…….”
“으아아아-!”
사기가 바닥난 랭커들과 산양들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아니.
그 누구도 이런 걸 가지고 ‘싸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건, ‘사냥’이었다.
“재미없네, 이런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껏 기대하고 있던 싸움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건.
빠직-.
디아블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산양들로부터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는 데바의 랭커들이 보였다.
그나마 발키리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맞서 싸우고 있지만, 부딪치기도 전부터 겁을 먹고 어깨를 덜덜 떠는 게 보였다.
한심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건.
퍼억-!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었다.
“컥!”
디아블로의 팔에 얻어맞은 마족 랭커 한 명이 자리에 엎어졌다. 조금 전까지 산양들로부터 살아남고자 도망치던 중이었다.
“죽는 게 그리도 두려우냐?”
“디, 디, 디아…… 블로 님…….”
“두렵냐고.”
“아, 아닙니다!”
디아블로의 물음에 마족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건 뭐란 말인가.
여우를 피하다 호랑이를 마주친 격이었다.
‘내 명도 여기까지…….’
“그래. 두려운 게 당연하지.”
마족은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예?”
디아블로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산양의 등에 올라타 있는 슈브 니구라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죽으면 더 싸울 수 없을 테니까.”
더 싸울 수 없기에 두렵다.
마족은 그 말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자신들 종족이 싸움에 미쳐 있다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극복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디아블로는 마치.
“그래서 나도 무섭다.”
그 공포마저 이겨 낸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으깨질 줄만 알았건만, 디아블로는 몸을 돌려 산양들 무리를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디아블로의 머리 위로.
지이이익-.
머리를 뚫고 나온 뿔이 더 길어지는 게 보였다.
‘설마…….’
마족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설마라는 생각도 잠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디아블로가 본체를 드러내지 않을 리는 없을 테니까.
메에에에-!
한 산양이 자신들의 어미를 향해 다가오는 디아블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쩌억-.
비상식적인 크기로 벌어지는 입. 산양은 단숨에 디아블로는 삼키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는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우웅-.
쩌억-!
디아블로의 뒤에서 날아온 붉은 꼬리가 산양의 몸통을 후려쳐 날려 보냈다.
퍼어억-!
날아간 산양이 또 다른 산양과 부딪쳐 바닥에 쓰러졌다. 충격에 휘청거리는 산양을 뒤로한 채 디아블로는 비늘이 돋아난 팔뚝을 들어 올렸다.
어느새 처음보다 족히 두 배는 커진 몸집.
“애새끼들 속에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덤벼라.”
뚜둑-.
기다란 붉은 꼬리를 흔들며, 디아블로가 시뻘겋게 변한 눈을 빛냈다.
“이 염소 놈아.”
쾅-!
디아블로의 꼬리가 땅을 때렸다.
부서진 땅이 높게 솟아오르며 디아블로의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산양들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디아블로의 행동에 맞춰, 슈브 니구라스 역시 주위를 감싸고 있던 산양들을 물렸다.
“공포에 질린 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공포에 질식되어 스스로의 목을 조르거나 혹은, 도망치거나.”
저벅-.
디아블로를 향해 다가오며 슈브 니구라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네 반응은 그 둘 다 아니구나. 너는 지금 죽을 걸 알고 있으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는 디아블로.
“즐기고 있다.”
어느새 디아블로는 완전한 악마의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붉은 비늘로 온몸이 덮이고, 머리에는 여덟 개의 뿌리 솟아 있는 악마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디아블로.
최강의 악마이자 마계의 군주.
그가 본체를 드러냈다.
구구구구-.
-맞다.
본체를 드러낸 디아블로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의 보라색에 붉은색이 섞였다. 디아블로의 몸에서 뿜어진 마기가 세상을 뒤덮었다.
쩌적, 쩌저저-.
딛고 있는 땅이 갈라지고 용암과 같은 열기가 그 속에서 뿜어져 올라왔다.
천천히 벌어지는 입.
-즐겁다. 너무 즐거워서 미칠 것 같다.
디아블로는 공포에 잡아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수천 년 전.
악마들의 왕이 된 디아블로를 찾아온 바알이 물었다.
“재미없겠군.”
앞뒤를 다 잘라먹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왕좌에 앉아 따분하게 하품하던 디아블로는 다 안다는 듯이 답했다.
“맞아. 재미없다.”
“거기까지 오르는 동안 충분히 많은 피를 봤을 거다. 아직도 부족한 거냐?”
디아블로는 악마들의 왕이 될 때까지 많은 피를 흘렸다.
이 자리까지 오르는 데, 목을 베고 심장을 뜯어낸 마왕이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디아블로는 그들 무리를 홀로 제압하고선 피의 숙청을 멈췄다.
“부족이란 말은 맞지 않아.”
“무슨 소리냐?”
“내 갈증은 끝이 없다. 아무리 들이부어도 채워지지 않으니 더 이상 채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무서운 말이었다.
애초에 다 채울 수 없는 갈증이기에 더 채우려 하지 않는 거라니.
“계속 참을 생각이냐?”
“어쩔 수 없잖아. 내 손으로 동족을 다 쳐 죽일 수는 없으니까.”
“힘들 텐데.”
“그래도 기대하는 건 있다.”
“기대하는 거?”
디아블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디아블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보다 더 강한 녀석이 나타날 거다. 아마도 그 싸움은 피할 수 없겠지.”
상상만으로도 손에 땀이 찼다.
흥분으로 목소리가 점점 고양되며,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자리가 들썩였다.
“이 갈증을 채울 방법은 내가 죽는 것뿐이다. 이걸 깨닫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려 버렸어.”
그렇게 말한 디아블로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이대로라면 또다시 지금처럼 눈앞에 있는 바알까지도 죽여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난, 그때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참을 생각이다.”
디아블로는 그렇게 수천 년을 참아 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동안 참아 왔던 갈증을 채울 상대를 마주했다.
화르르륵-!
불꽃이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휘어 감았다.
시야를 가리는 붉은 불꽃. 용암보다도 뜨거운 열기에 산양들이 울부짖었다.
슈브 니구라스는 환한 불꽃을 마주 보았다. 전방위를 다 뒤덮은 불꽃 때문에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화아악-.
불꽃 가운데 디아블로의 형상이 떠올랐다.
-나는 오늘을 기다렸다.
콱-.
불꽃에서 튀어나온 손아귀가 슈브 니구라스의 목을 움켜잡았다.
-내가 죽을 날을.
스으으으-.
디아블로의 형상이 슈브 니구라스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슈브 니구라스가 입을 열었다.
“이 세계에는 재미있는 자들이 많구나.”
콱-.
목덜미를 움켜잡은 디아블로의 팔을 붙잡으며.
“그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다.”
지이이익-.
슈브 니구라스 역시, 머리의 뿔을 길게 뽑아 본래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양이 되어 영원히 싸울 수 있게 해 주마.”
* * *
화르르륵-!
불꽃이 치솟았다.
디아블로가 있던 자리는 이미 땅이 녹아 없어진 상태였다. 주위는 불바다로 변했고, 하늘은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본체를 드러낸 디아블로의 힘이었다.
“불꽃에서 멀어져라! 서둘러!”
화아아아-!
강렬한 바람이 사방으로 번지던 불꽃을 걷어 냈다. 디아블로의 불꽃은 적아를 가리지 않았고, 미카엘은 아군에게 디아블로의 불꽃이 번지지 않도록 그것을 막아섰다.
미카엘의 지휘에 마족과 천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너머.
“이건 뭐…….”
“갑자기 전장이 무스펠하임이 됐는데.”
“이 정도 불꽃이면 혹시…….”
랭커들의 가슴속에는 디아블로의 불꽃에 혹시나 하는 희망이 다시 피어났다.
이 불꽃을 보라.
무스펠하임의 왕이자 오딘의 라이벌이었던 수르트에게도 못지않은 불꽃이었다. 이런 불꽃에 휘말리고도 살아 있을 생명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죽이는 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직 이곳에는 수많은 랭커들과 하이랭커들이 남아 있었다.
제아무리 괴물 같던 적이라도 치명상을 남길 수만 있다면 싸움의 승기를 가져 올 수 있을 터.
천마대전에서도 드러낸 적이 없었던 디아블로의 본체는 슈브 니구라스에게 대적하기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저 멍청한 놈.
정작 그와 함께 최전방에 서서 싸우던 스사노오는 디아블로의 이런 행동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러다 죽으면 개죽음인 걸 혼자 모르는 건가.
디아블로의 존재는 스사노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역시 제 발로 스스로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죽고 죽이는 싸움에 목을 매던 자.
하지만 디아블로는 그런 스사노오보다 한층 더 높은 가치를 갈망하고 있었다.
스사노오는 본체로 변한 디아블로에게서 그가 지금껏 참아 오던 싸움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
목숨을 건 싸움. 스사노오는 그 싸움을 이미 겪어 보았고, 그 결과 지금처럼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야마타노 오로치와의 싸움과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애초에 차원이 달랐다.
다른 무엇보다.
이번 한 수로 디아블로가 허무하게 패한다면 아군의 사기는 바닥을 넘어 땅속까지 파고들 것이고, 승기는 영영 가져올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어쩔 수 없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 불꽃이 꺼지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디아블로 혼자서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이 합류한다면.
치익-.
그렇게 막, 스사노오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었다.
콰웅-!
땅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황금빛의 벼락.
바로 코앞을 가로막는 전격의 벽에 스사노오가 고개를 돌렸다.
하마터면 전격에 휘말려 통구이가 될 뻔했다. 이 정도 위력의 황금빛 전격을 다루는 랭커는 이 탑에 한 명뿐이었다.
“쓸데없는 짓하지 마라.”
굳이 목소리의 주인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린 스사노오.
그가 번개의 주인을 확인하기 전, 주위가 먼저 술렁거렸다.
“제, 제우스다!”
“제우스가 왔다!”
이 수많은 랭커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빛이 나는 외모를 지닌 하이랭커.
오딘과 함께, 이 탑을 거느리는 왕으로 거론되는 자.
“……전장이 엉망이군.”
천신 제우스.
그가 헤라클레스와 함께 전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