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37
* * *
천신 제우스.
그리고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두 사람은 이 탑에서도 유명한 하이랭커였다. 올림포스의 왕인 제우스야 두말할 것도 없고, 헤라클레스 역시 기간토마키아의 영웅이었던 자였다.
단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등장은 전장의 공기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저벅-.
“네가 왜 여기 있지?”
스사노오에게 다가온 헤라클레스의 질문이었다.
유원은 이곳에 없는데, 왜 너만 여기 있느냐는 질문.
그리고 또 유원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주인이 보냈다.
“주인?”
설마 그게 유원을 부르는 말인가 싶어, 헤라클레스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아무리 소환수와 소환사의 관계라고 한들 스사노오의 입에서 이런 호칭이 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뭐가?
“아니, 아무것도.”
-호칭이야 아무렴 무슨 상관이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닐 텐데?
찔리기라도 한 건지 잔뜩 쏘아붙이는 말투.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걸고넘어져 보고 싶었지만 확실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지.”
“잡담이나 하고 있는 건 둘 다 마찬가지다.”
제우스의 지적에 헤라클레스와 스사노오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유원의 명령도 아니고, 굳이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지만 스사노오는 쉽게 제우스의 말에 반발할 수 없었다.
그에게서는 오딘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어떤 위엄이 느껴졌으니까.
“지금은 저 멍청한 녀석부터 어떻게 해야지.”
제우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아악-!
디아블로가 만들어 낸 불꽃의 기둥 속에서 무언가가 튕겨져 날아왔다.
하늘로 날아오른 붉은색의 점.
그것이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다.
쾅-!
구우우우-.
점이 떨어진 땅에 원형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덩이가 생긴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스사노오의 시야에 대(大)자를 그리며 쓰러져 있는 디아블로의 모습이 들어왔다.
“쯧. 어떻게 돌아오긴 했군.”
“무사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는 있으니 말이야.”
치익-.
기다란 손톱으로 바닥을 긁으며 디아블로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머리를 짚었다. 격하게 고개를 흔든 디아블로가 중얼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잔뜩 짜증이 섞인 말투.
싸움을 방해받았다. 그건 디아블로가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일이었다.
고개를 돌린 디아블로의 눈동자에 자글자글한 주름의 노인이 보였다.
“개인 행동은 금물이다.”
디아블로가 튕겨져 날아온 이유.
그건 미미르의 마법 때문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미미르를 노려보던 디아블로는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다 잠시 휘청거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잠깐 정신 좀 추스르고 있어라. 몸도, 정신도 지금 걸레짝이 됐으니까.”
-뭐?
잠시 비틀거린 디아블로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자신은 저 불꽃 속에서 슈브 니구라스와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싸움에 대한 감흥이 없었다. 싸웠던 기억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었다.
-젠장.
빠득-.
날카로운 이빨들이 갈리는 소리. 미미르는 한심하다는 듯 그런 디아블로를 바라보았다.
“진 게 그렇게도 분하면 억지 부리지 말고…….”
-재미가 없잖아, 이러면.
“뭐?”
황당하다는 말투의 미미르.
제아무리 오래 살고 많은 걸 알고 있다지만 이렇게 미친 녀석은 처음 본다는 눈치였다.
싸움에 눈이 돌아간 디아블로에 대한 미미르의 감상은 딱 하나였다.
‘지식의 저주로도 이해 안 가는 놈.’
세상에 이런 미친놈이 있다니.
그래도 대충 디아블로가 어떤 녀석인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랬기에 미미르는 다시 날뛰려는 디아블로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었다.
“내 말 좀 들어 볼 테냐?”
-말?
“최고로 화끈한 싸움을 할 수 있게 해 주마.”
디아블로의 눈이 반짝였다.
제아무리 싸움에 미쳐서 눈이 반쯤 돌아갔다지만 상대가 미미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세워진 계획이라면 분명 믿을 만했다.
화르륵-.
디아블로가 튕겨져 나온 자리.
불꽃이 걷히며 슈브 니구라스를 가리고 있던 시야가 다시 드러났다.
미미르는 슈브 니구라스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언짢은 듯한 표정의 얼굴 위로, 작게나마 긁힌 자국이 보였다.
‘아주 헛짓거릴 한 건 아니라는 건가.’
힐끗-.
으르렁거리며 그녀를 노려보는 디아블로.
여전히 마기와 불꽃을 넘실거리는 그를 보며, 미미르는 고개를 저었다.
‘디아블로가 목숨을 던져서 얻은 결과가 고작 저거란 거지.’
그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건 괴물이다.
비틀거리던 디아블로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너와 오딘은 1층에서 저 녀석의 본체를 봤다고 했지?
“그랬었지.”
-아직까지는 느낌일 뿐이지만…… 아마 그게 전부가 아닐 거다.
전부가 아니라니.
“무슨 소리냐 그게?”
분명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디아블로는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에서 적잖이 많은 걸 느낀 모양.
-저 녀석은 지금 싸울 생각이 없어.
때로는 말보다는 행동과 눈빛이 더 많은 걸 알려 주기도 했다. 디아블로는 특히 싸우면서 그런 걸 더 많이 느끼는 편이었다.
가까이서 주먹을 부딪치고,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지금 자신들만의 싸움이었다. 정작 상대인 슈브 니구라스는 이 싸움에 별반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 거다. 무언가를.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누군가.
슈브 니구라스는 그 누군가가 올 때까지,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 * *
“훼방꾼이 있었군.”
똑같이 싸움을 방해받았음에도 슈브 니구라스와 디아블로의 반응은 천지차이였다.
잔뜩 분노한 디아블로와는 달리, 그녀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손을 몇 번 쥐락펴락하는 게 전부였다.
“거의 손에 넣을 뻔했는데 말이지.”
메에에-.
메에에에-.
슈브 니구라스의 아쉬움에 주위의 산양들이 함께 울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큰 울음소리를 내는 산양이 있었다.
메에에에-!
슈브 니구라스의 시선이 유난히 크게 우는 산양에게로 향했다.
거느리는 산양들의 이름들을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산양의 이름은 기억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방금 얻은 새로운 자식이었으니까.
“너도 저 녀석이 탐나느냐? 아스모데우스.”
메에에-.
대답하는 산양.
아스모데우스는 디아블로를 가장 잘 아는 산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스모데우스의 기억과 감정은 고스란히 슈브 니구라스에게 흘러 들어왔다.
디아블로.
악마들의 왕.
아스모데우스는 굴욕적이게도 살아남고자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아스모데우스는 강렬하게 원했다.
디아블로 역시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기를.
“조금만 더 기다리거라.”
스윽-.
산양이 된 아스모데우스의 털을 쓰다듬으며 슈브 니구라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은 그가 오지 않았으니…….”
콰릉-!
하늘에서 떨어진 황금빛의 벼락.
순간 세상을 황금색으로 물들인 벼락에 슈브 니구라스가 쓰다듬던 산양의 몸이 까맣게 타들었다.
치지지지-.
잘 익은 고기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양의 몸. 잠시 휘청거리던 산양이 옆으로 쓰러졌다.
“저런.”
치직, 치지지-.
손가락 끝에 남은 따끔함에 슈브 니구라스가 손을 털었다.
“아깝군.”
스윽-.
고개를 돌린 슈브 니구라스의 눈에 자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황금빛 머릿결의 남자가 들어왔다.
이 벼락의 주인.
그리고 아마도, 이 전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
그를 바라보는 슈브 니구라스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그래. 너도 왔구나.”
“제우스다.”
치지, 치지지-.
제우스가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이 와중에 통성명이라도 하자는 걸까.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 슈브 니구라스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슈- 니구—다.”
“못 알아먹을 말이군.”
“당연히 들리지 않겠지. 네게는 허락되지 않은 이름일 테니까.”
이래서 그다지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건만.
그래도 왜인지 흥미가 동했다. 눈앞에 있는 제우스에게서 느껴지는 격은 이 전장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드높았다.
“그래도 너라면, 다른 이름 정도는 들을 자격이 있겠구나.”
“다른 이름?”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제우스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가 있다.”
처음 1층에서 슈브 구라스가 거느리는 산양들 중 하나가 나타났을 때, 유원이 했던 말이었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 벽. 그 너머에 존재하던 규격 외의 괴물.
“나의 이름 중 하나다. 머릿속에 잘 새겨 두거라.”
그 괴물의 이름을 유원은 알고 있었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그래.”
“그렇단 말이지.”
스윽-.
제우스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콰릉-!
슈브 니구라스의 눈앞을 가득 메운 빛무리와 함께, 그녀의 주위에 있는 산양들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치지지지-.
“이제 몇 마리지?”
“…….”
“아무래도 이름을 바꿔야겠군.”
슈브 니구라스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일격. 손바닥을 뻗는 것만으로도 방출되는 마력의 양이 상당했다.
파직, 파지지-.
제우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격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제우스를 선두로.
부우웅-.
위협적인 주먹이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땅이 뒤집어져 하늘 위까지 솟아올랐다. 한 마리의 산양의 몸이 터져 나가며 잠시 사라졌던 슈브 니구라스가 산양들의 털 뭉치 속에서 다시 나타났다.
스르륵-.
뒤집혀 솟아난 땅.
주먹질 한 방으로 그 광경을 만들어 낸 거구의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슈브 니구라스는 처음 위협을 느꼈다.
“이건…… 조금 위험하구나.”
마력이라고는 거의 깃들어 있지 않던 주먹이었다. 그럼에도 남자의 주먹은 슈브 니구라스의 본체까지 위협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거인 학살자 헤라클레스.
제우스와 함께 온 그가, 슈브 니구라스를 상대하기 위해 정면으로 도전해 온 것이다.
거기에 더해.
기이이이잉-.
또 한 명.
슈브 니구라스를 위협할 만한 존재가 있었다.
콰우우웅-!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꿰뚫고 하늘로 솟아오른 새하얀 빛이 보라색의 하늘을 파랗게 밝혔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빛의 기둥.
그 기둥의 등장에 스사노오가 중얼거렸다.
-하긴. 그리 쉽게 죽을 녀석은 아니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말투.
보라.
슈브 니구라스의 기운에 대항하는 저 빛의 기둥을.
그리고 그 기둥을 만들어 낸,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거대한 창을.
이 탑에 이만한 위력의 창을 던질 수 있는 자는 스사노오가 알기로 단 두 명뿐이었다.
한 명은 자신의 주인인 유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오딘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이었다.
콰우우우-.
궁니르가 만들어 낸 빛의 기둥 속.
하얗게 변해 색이 사라진 그 기둥 안에서 서서히 사람이 아닌 것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래 널 잠시 잊고 있었구나.”
거대한 염소.
천 마리의 산양들을 거느리는, 풍양의 여신.
-오딘.
슈브 니구라스의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