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42
* * *
텅 빈 회의실.
빈틈없이 복작거리던 공간은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묘한 공기가 방 안을 매웠다. 공기마저 사라진 듯한 회의장 안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자박-.
느리고 진한 발소리.
사뿐히 바닥을 내디딘 검은 머리의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멍하군.”
검은 머리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비슈누.
그는 금방 잠이라도 들 듯 눈을 느리게 몇 번 깜박였다.
노곤한 몸에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다. 하나가 되는 과정은 적잖은 피로감을 몰고왔다.
-마아아아아.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발할라의 심장부까지 스며드는 울음소리. 그리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존재감.
울음소리를 타고 비슈누의 눈앞에 거대한 검은 염소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인지, 울음소리만으로도 대충 짐작이 되는 듯했다.
비슈누는 귀를 후볐다.
시끄럽게 머릿속에서 울려 대는 소리는 저것만이 아니었다.
“……알았다. 알았어.”
누군지 모를 상대의 말에 대꾸한 비슈누는 귀찮다는 듯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회의장 바깥으로 향하는 발걸음.
그 문을 넘어가는 순간, 비슈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 *
털썩-.
털썩, 털썩-.
산양들과 싸우던 랭커들이 하나둘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력이 부족한 자들, 혹은 긴 싸움으로 지쳐 있던 자들이었다.
“야, 야! 정신 차려!”
“갑자기 쓰러지면…….”
“젠장. 누가 여기 와서 포지션 충당 좀 해 봐!”
울음소리 한 번에 전장의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이랑진군의 합류로 겨우겨우 산양들을 몰아붙이던 랭커들이 다시금 흔들렸다.
그 자리를 매울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이랑진군이 나섰다.
콰웃-!
묵직한 언월도를 한 손으로 휘두르며 전장의 한가운데 뛰어든 이랑진군.
메에에에-.
산양들은 그런 이랑진군에게로 향했다. 이랑진군은 세 방향에서 달려 들어오는 산양들을 향해 언월도를 휘둘렀다.
콰가각-!
배가 갈라져 날아가는 산양들.
메에에-.
그러나 한 방향, 미처 보지 못한 녀석이 있었다.
‘어깨는 내줘야 하는가.’
꽈악-.
이랑진군은 피하는 대신 언월도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어중간하게 피하려고 하느니 차라리 몸에 둘러진 갑옷과 단단한 몸을 믿고, 어깨를 내준 뒤 확실한 일격을 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이랑진군이 막 어깨를 내주며 언월도를 휘두르려는 순간.
스아아악-.
이랑진군을 향해 달려들던 산양의 몸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푸화악-!
지이익-.
산양의 몸이 수십 갈래로 베어지며 이랑진군의 볼에 작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산양의 몸을 관통한 날카로운 검격이 이랑진군에게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 검격은 낯익군.’
아마 천계의 무장들 중, 이 검격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몇백 년이 넘은 일이었지만.
‘아수라.’
눈앞에 있는 귀신은 천계에 도전해, 하나씩 차례대로 천계의 무장들을 깨뜨린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투둑, 투두둑-.
베어진 산양의 살점들이 땅바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수라는 네 자루의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랑진군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
그만큼 이 전장에는 강한 적들이 즐비해 있다는 뜻이었다.
“잘못했다간 내 목까지 같이 베어졌겠군.”
“고맙다는 말은 됐다.”
“지금 이게 고맙다는 말로 들리는 거라면 조금 소름 끼치는데.”
“그러던지.”
“왜 이렇게 늦었지?”
“내가 좀 적이 많아서 말이지.”
그 말에 이랑진군은 아수라의 복장을 살펴보았다.
그의 몸에는 산양들의 것이 아닌 인간의 피가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한바탕 싸움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저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아수라에게는 적아의 구분이 없었다. 그는 강자와의 싸움에 목숨을 걸었고, 상대방에게 늘 싸움을 강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한 관계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당장 이번 화합에 참여한 길드 중에서도 아수라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길드가 여럿 있었다.
당장 그가 천계에 쳐들어왔을 때에도 이랑진군의 중재가 없었다면 아수라와 천계는 원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덕분에 한숨 돌렸…….’
-마아아아아아-.
아수라의 지원으로 겨우 쓰러진 랭커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이랑진군은 다시금 머리를 울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손에 들고 있던 언월도를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뭐냐, 저건?”
* * *
스륵, 스르-.
땅의 색이 바뀌었다.
랭커들의 피로 이루어진 땅이 검게 변했다. 그들의 피를 양분 삼은 씨앗이 자라, 작은 나무가 되고 이내 거목으로 자라났다.
거대한 숲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산양들은 눈을 반짝이며 반복적으로 울음을 흘렸다.
-마아아아아-.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
그것은 들은 헤라클레스는 순간 속으로부터 토사물이 올라오는 기분을 느꼈다.
표정을 구기는 헤라클레스.
“많이 지친 모양이군.”
그런 헤라클레스의 어깨 위를 오딘디 두드렸다.
“조금만 쉬고 있거라. 아직 그 힘에도 적응할 필요가 있을 테니.”
“그럴 순 없습니다.”
턱-.
헤라클레스가 오딘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시작이라지 않았습니까?”
“고집 센 건 아버지를 닮았군.”
“그자와 비교하지 마십시오.”
날카로운 대꾸와 함께 헤라클레스는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비틀-.
균형을 잃은 듯, 헤라클레스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발을 헛디뎠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조금 쉬라니까.”
“……괜찮습니다.”
“쯧.”
오딘은 짧게 혀를 차며 눈앞에 펼쳐진 숲을 바라보았다.
검은 숲. ‘천 마리의 산양을 거느리는 검은 숲의 염소’로 알려진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과 꼭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 짧은 시간에 나라 하나를 다 뒤덮고도 남을 만한 규모의 숲이 펼쳐졌다. 숲을 뒤덮고 있는 나무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풍겼다.
“나무라…….”
-마아아아-.
이어진 울음소리와 함께.
그그그극-.
검은 숲을 헤치며, 거대한 염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감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제야 자신의 몸에 급격히 힘이 빠진 이유를 깨달았다.
생전 처음 벼락을 사용한 탓에 기력이 소모된 탓도 있었지만.
‘저 염소 때문인가.’
보라색의 눈을 가진 거대한 염소.
저 존재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벅-.
오딘이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헤라클레스는 방금 전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가는 오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콱-.
오딘의 발을 붙잡으며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지치기는 마찬가지. 지금 혼자 뭘 어떻게 해 보려는 시도를 해서 좋을 게 없었다.
“혼자 뭘 어쩔 생각입니까?”
“너도 혼자이긴 마찬가지였지.”
“저랑 당신은…….”
“난 오딘이다.”
‘다르다’는 헤라클레스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런 헤라클레스의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오딘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아스가르드의 왕. 다섯 세계를 다스리는 위대한 하늘.”
누가 뭐래도 아스가르드는 이 탑에서 가장 드넓은 세계를 다스리는 길드였다.
그리고 오딘은 그런 아스가르드를 건국한 랭커. 누군가에겐 자만일지 모를 말도 그가 내뱉는 순간 자부심이고 자신감이 됐다.
그리고 그걸 알았기에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오딘을 말릴 수 없었다.
게다가.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 누구보다 오딘과 가까운 친구.
미미르조차 헤라클레스의 옆으로 다가와 그를 말리는 형국이었다.
저벅, 저벅-.
헤라클레스는 더 이상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다가가는 오딘을 말릴 수 없었다.
‘한 시라도 빨리 회복해야 한다.’
체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만큼.
헤라클레스는 서둘러 체력을 회복해 오딘에게로 합류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헤라클레스의 속내는 얼굴 위 표정으로 훤히 드러나 보였다.
“쯧. 그리 조급할 필요 없대도.”
미미르는 그런 헤라클레스의 표정에 고개를 저었다.
헤라클레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는 슈브 니구라스였다. 더군다나 본체를 드러내 보이며 한층 더 높은 격에 달하는 존재감을 뽐내 보였다.
반면에 오딘은.
“궁니르를 던질 수 있는 건 고작해야 한 발 정도일 겁니다.”
조금 숨을 돌렸다지만 이미 두 발이나 되는 궁니르를 쏘아낸 상태.
그가 많이 지쳤다는 건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마저도 궁니르를 시동하려면 제가 시간을 벌어 주지 않으면 안 될 테지요.”
“저 녀석이 가진 게 어디 궁니르뿐이겠느냐?”
“그건 아닙니다만…….”
“저 녀석의 랭킹은 거저 거머쥔 게 아니다.”
미미르는 오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함께 탑을 오르고, 랭킹을 올리고, 이 탑에 아스가르드를 세웠다. 함께 정상에 올랐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오딘은 미미르를.
그리고 미미르를 오딘을.
“마법은 나보다 못하고, 육체적인 능력은 너만 못하지.”
그리고 미미르가 아는 오딘은, 이렇게나 대단하다 추앙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탑에 오른 지 만 년이 훌쩍 넘은 지금이라면 또 모를까.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왕(王)이라 부르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저 녀석은 위대했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알 턱이 없는 질문.
이어질 대답을 기다리는 헤라클레스의 피부로 시원한 느낌이 전해진 건 그때였다.
쏴아-.
‘나무 냄새.’
코가 뻥 뚫릴 듯한 화사한 공기 속에 스며들어 있는 냄새는 분명 살아 있는 나무의 냄새였다.
기간토마키아가 끝난 이후, 줄곧 산속에 틀어박혀 나무를 패던 그에게는 익숙한 냄새였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거라고는 온통 슈브 니구라스가 만들어 낸 검은 숲의 죽은 나무들 뿐.
이런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나무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보이질 않았다.
“뭘 모르는 많은 놈들이 그러더구나. 오딘이 진정 대단한 건, 궁니르를 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미미르는 그리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건 저 녀석을 설명하는 여러 대단한 점 중 하나일 뿐이지.”
“뭘 말하고 싶은 겁니까?”
“저걸 봐라.”
턱-.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걸어가던 오딘이 검게 죽은 나무의 기둥을 짚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슈륵, 슈르르-.
검게 변한 나무의 기둥 위로 색이 씌워졌다.
수분을 머금은 갈색의 기둥. 생기를 찾아 고개를 드는 나뭇가지와 그 위로 피어오르는 녹색의 나뭇잎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헤라클레스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죽어 버렸던 나무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었다. 검은 숲 한가운데 오딘의 선택을 받아 다시 힘을 되찾은 나무는 검은 숲 속에서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었다.
“오딘이 위대한 이유는 말이다.”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
그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의 강인한 육체 덕분도, 그리고 미미르에게서 배운 수천수만 개에 달하는 마법 덕분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츠르, 츠츠츠-.
“저 녀석의 몸속에 이그드라실이 자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