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48
* * *
뚜둑, 뚜두둑-.
비슈누의 몸에 있던 뼈들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루가 되듯 부서졌던 뼈들이 붙고, 상처 난 피부가 재생되는 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눈앞의 슈브 니구라스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미 새까맣게 변한 시체는 더 이상 부활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속성도 아닌 어둠이었다.
어둠 속성의 마력의 가장 큰 특징은 부식.
제아무리 뛰어난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여기서 부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찌이이익-.
천천히 몸을 회복하며 불안한 눈으로 슈브 니구라스의 시체를 확인하던 비슈누의 눈에, 그녀의 배가 갈라지는 게 들어왔다.
“……망했네.”
허탈한 목소리.
비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하는 비슈누의 입을 통해 브라흐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게. 큰일이네.”
“이제 어쩌지?”
“망했군.”
“그러게.”
하나의 입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제법 몸을 회복했다지만 지금은 아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회복이라고 해 봤자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더군다나 지금, 비슈누는 셋이 아닌 둘뿐인 상황이었다.
가능한 이번 한 번에 숨통을 끊었어야 하는 건데.
지이이익-.
자박-.
거대한 염소의 배를 가르며 아름다운 보라색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밖으로 걸어 나온다.
막 양수에서 나온 것처럼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 아까 산양의 배를 가르고 나왔던 때보다 훨씬 키가 자라나 있었다.
또한 늘어난 건 키뿐만이 아니었다.
‘흉측한 뿔이군.’
그리 크지도 않은 머리에 머리카락과 함께 뿔이 솟아나 있었다. 뿔은 마치 나무라도 자란 것처럼 줄기를 쳐 총 여섯 개로 나뉘어져 땅에 닿을 듯 길게 뻗어 나갔다.
표정의 변화도 없고, 눈도 감겨져 있었지만 비슈누는 그녀가 지닌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구구, 구구구구-.
검은 숲이 흔들렸다. 곧이어 감겨 있던 눈이 열리며 비슈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순간.
“컥……!”
비슈누는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츠츠츠, 츠-.
비슈누의 목에서부터 검은 자국이 늘어났다. 순간 토악질이 치밀고, 목을 중심으로 신체가 마비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손해가 막심하군.
스윽-.
거대한 염소의 배를 가르고 나온 여인이 검게 부식된 염소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름을 하나 잃어 버렸나.
‘이름……?’
이름을 잃어 버렸다니.
뜻 모를 말이었다. 하나 지금은 그런 의문을 풀고 있을 만한 틈이 없었다.
기이이잉-.
검게 죽어 간 목을 움켜쥔 비슈누의 손안에서 녹색의 빛이 발현되었다. 슈브 니구라스는 저항을 시작한 비슈누를 돌아보며 초점 없는 보라색의 눈을 좁혔다.
-뭐, 상관없다.
저벅-.
비슈누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이제 곧 더 큰 이름을 가지게 될 테니.
그러니까 대체 뭐가 상관없다는 건지.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이이익-.
목에 핏대가 서며 서서히 몸의 감각이 희미해졌다. 서서히 몸이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이 들자, 비슈누의 속이 조급해졌다.
‘뭐라도 좀 해 봐.’
‘하고 있다.’
‘이러다 죽는다.’
‘다른 방법이 없…….’
그렇게 막, 비슈누의 머리가 위험하다며 경종을 울리던 때.
콰릉-!
콰웅, 쾅-!
각기 다른 세 가지 방향에서 날아온 전격. 그것이 비슈누와 슈브 니구라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와 동시에 비슈누의 몸에 가해지던 부식의 힘이 사라졌다.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된 비슈누가 콜록거리며 급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컥, 흐읍…… 일 날 뻔했네.”
“괜찮은가?”
스윽-.
비슈누의 뒤로 인기척이 나타났다. 고개를 돌린 비슈누는 자신의 등에 손을 대고 치유 마법을 시작하는 오딘을 보며 물었다.
“몰라서 묻는 건가?”
“안 괜찮아 보이는군.”
“죽을 뻔했다.”
조금 안도한 비슈누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원을 위해 도착한 건 오딘뿐만이 아니었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벼락을 뿌린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그리고 유원이 함께였다.
이상했다.
벼락을 다루는 게 제우스만이 아니라 세 사람이나 된다니.
더군다나.
‘하나는 색이 달랐다.’
비슈누는 의아한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보라색 벼락의 주인이었다.
‘저 시체를 보고 있는 건가.’
유원에게는 빚이 있었다. 그는 시바의 계획을 미리 알고 대처하고 있었고, 덕분에 비슈누는 그에게 남들과는 다른 비상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원은 자리에 도착한 직후부터 줄곧 검게 죽어 버린 거대한 염소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저 녀석이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하더군.”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비슈누가 물었다.
“넌 저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지?”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었다.
녀석의 진명(眞名)은 슈브 니구라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그리고 또 다른 이름‘들’은.
“광기를 낳는 염소. 그리고 검은 풍양의 여신.”
모두 총 세 가지였다.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은 세 가지다.”
그것은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에서 살아 돌아온 오딘이 가져온 정보였다.
“세 가지? 하나가 아니고?”
믿기 어렵다는 듯, 비슈누가 물었다.
동료들에게 알려져 있는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녀를 대표하는 이름은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이름이 두 개나 더 있다니.
“검은 숲의 중심부에는 가장 크고 강한 염소가 살고 있었다. ‘광기를 낳는 염소’라는 이름의.”
광기를 낳는 염소.
오딘은 그것을 검은 숲에 사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말했다. 만약에 슈브 니구라스의 영역에서 녀석을 만나게 된다면 무조건 도망치라고 말이다.
‘저게 그 녀석인가.’
까맣게 탄 시체.
녀석이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미 ‘광기를 낳는 염소’라는 이름은 슈브 니구라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세 개의 이름 중 하나라…….’
유원은 힐끔, 비슈누를 돌아보았다.
‘충분히 잘해 줬다.’
지금껏 유원을 비롯한 모두는 슈브 니구라스의 이름 중 하나와 싸워 왔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슈브 니구라스를 상징하며, 대표하는 그 이름을 상대로 말이다.
“그 ‘이름’이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이름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군.”
유원의 입에서 나열된 이름에 무언가 감이 잡힌 듯,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녀석의 이름은 뭐지?”
“아마…….”
유원은 제우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파짓, 파지지-.
세 사람이 뿌린 벼락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인.
“검은 풍양의 여신일 거다.”
“검은 풍양?”
풍양(豐穰).
풍년이 들어 곡식이 알맞게 여무는 걸 뜻하는 말.
하지만 이 숲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슈브 니구라스의 또 다른 이름에는 ‘풍양’이라는 이름이 번듯하게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 앞에는 또 다른 단어가 있었다.
“검은…… 이라.”
결코 깨끗할 수 없는, 풍양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유원은 그 단어를 곱씹으며 슈브 니구라스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친 게 실수였나.
유원의 등장에 비슈누를 향해 다가오던 그녀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다.
아니.
아마 정확히는 유원의 옆에 있는 단풍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를 가까이서 마주한 슈브 니구라스의 관심은 온통 유원의 발아래에 딱 달라붙어 있는 단풍에게로 향해 있었다.
-아니면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한 운명이려나.
츠츠, 츠츠츠츠-.
슈브 니구라스의 주위로 퍼지기 시작한 기운에 바람의 농도가 바뀌었다.
입술이 말라 갔다. 건조해진 입술이 쩍쩍 갈라지고, 피부가 노화하여 썩어 가려는 게 느껴졌다.
바람도, 공기도, 땅도.
살아 있는 모든 게 시들어 갔다.
-지금부터 확인해 보면 알게 되겠지.
검은 풍양이 세상에 드리웠다.
* * *
치이이이-.
디아블로의 몸에 붙어 있던 불이 서서히 꺼져 갔다. 희미해지는 불꽃 속, 디아블로는 다시 마기를 끌어올려 불꽃을 태웠다.
화륵-.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꽃.
마왕의 수장인 자신도 이러한데, 다른 이들이야 오죽할까.
디아블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하려는 건가.
그렇게 말하는 디아블로의 덩치는 처음보다 수십 배는 거대해져 있었다.
어찌나 커졌는지 이제는 거대한 나무들의 키를 넘어, 거목들을 한참이나 내려다보게 될 정도.
하지만 그런 디아블로에게도 이 풍양은 부담스러웠다.
-멸망은 무슨.
발밑에서 들려온 목소리.
디아블로가 고개를 숙여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과 합류해 움직이고 있는 스사노오와 미미르가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슨 소리냐?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냐는 듯한 스사노오의 시선.
정말 이 녀석은 덩치만 산만 해졌지 머리는 그대로구나 싶었다.
“아마, 그만큼 그 염소 녀석도 궁지에 몰렸다는 뜻일 게다.”
말을 덧붙인 건 미미르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또 다른 데에 있었다.
“다만…….”
굽은 허리의 미미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스사노오 역시 칼에 쥔 손에 힘을 더하며 그를 따라 방향을 돌렸다.
“적이 하나가 더 늘어나면 그건 또 골치 아픈 일이지.”
-적?
디아블로가 시선을 돌렸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들을 따라오고 있었던 걸까. 그들이 몸을 돌린 곳에는 로브를 머리에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로브인이 서 있었다.
“지금 그대는 적인가? 아니면 아군인가?”
-아마 적일 거다.
로브인에게 칼끝을 겨누는 스사노오.
그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며 살기가 실렸다.
-이 탑이 이리 개판이 된 건, 저 녀석의 공이 가장 크니까.
“저 녀석의?”
스사노오의 설명에 어리석은 혼돈을 바라보는 미미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래. 그대였군. 이 모든 판을 만든 게.”
눈앞에 있는 어리석은 혼돈에게서는 슈브 니구라스에게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기운이 느껴졌다.
풍기는 기운 자체는 슈브 니구라스처럼 위협적이지 않으나, 미미르는 어째서인지 어리석은 혼돈이 보다 더 위험한 종자로 느껴졌다.
그런 미미르의 감이 맞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리석은 혼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미르. 지식의 저주에 갇힌, 불쌍하고 지혜로운 자.”
“나를 아나?”
“그대는 그 녀석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이군.”
“그 녀석?”
미미르의 머릿속에 한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김유원.
시계태엽을 이용해 미래에서 왔으며, 이 탑의 미래를 그려 나가는 자.
‘그 녀석’이라는 막연한 한 마디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미미르는 어리석은 혼돈이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유원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에게는 말을 많이 해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아까 내게 물었지? 적인지, 아군인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리석은 혼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질문에 먼저 답해 주지. 원래는 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만 맞다고 해 두지.”
두루뭉술한 말에 미미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만이라니?”
“적이기도 하고, 아군이기도 하다. 혹은 둘 다 아니기도 하지.”
수수께기라도 내듯 어려운 말.
하지만 미미르는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말했다.
“내게 원하는 게 있군.”
“그래.”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
스윽-.
자신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는 스사노오와 디아블로를 무시한 채, 어리석은 혼돈이 미미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거래를 하러 왔다. 그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