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53
다시 한번 확인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문자는 총 31통. 그중 어디에도 ‘천축’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건 적혀 있지 않았다.
“이 바보 천치 등신 원숭이가…….”
유원은 손오공이 싫어하는 말을 쭉 나열하며 문자를 두드렸다.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키트로 문자를 보내고, 몇 분 정도 지났음에도 답장이 없었다.
애초에 키트를 그리 많이 확인하는 녀석도 아니었고 내용이 다급했던 걸 보면, 당시 상황이 급했던 모양.
유원은 손오공에게 답장을 받는 걸 포기하고 다른 데로 연락을 돌렸다.
“……뭐라고 한다.”
제일 먼저 막힌 것은 호칭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유원은 곧 이것저것 따질 때인가 싶어 키트의 문자를 두드렸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숨 돌릴 틈이 없네.”
“아부-.”
유원은 단풍을 어깨에 둘러업었다. 아직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이동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넌 나중에 이야기 좀 하자.”
* * *
무림계에 비상이 걸렸다.
10층. 총 100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탑에서 최하위 층계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
그만큼 힘이 없지만 평화로운 그 세계에, 드물게도 거인이 찾아왔다.
저벅, 저벅-.
쿵, 쿵, 쿵-.
드높은 천산마저 작게 느껴질 만한 위세.
감히 천산에 허락 없이 발을 들였건만, 천마신교는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천마신교가 무림맹과 합쳐지며 전력의 절반이 천마신교 밖으로 빠져나간 탓이기도 했지만…….
“괴물이 왔군.”
권천주, 풍백림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오는 붉은 머리의 거인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강자를 보면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은 천마신교의 무인으로서 당연하다 여겼다. 실제로도 풍백림은 언젠간 반드시 천마와도 싸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런 기대조차 들지 않았다.
흡사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쿵-.
천마신교의 중심부.
천마, 천무진의 앞에 디아블로가 나타났다.
“무슨 소란이오.”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던 천무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디아블로의 등장은 조용하던 천산을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디아블로.
악마들의 정점에 서 있으며, 단신으로 천마신교 전체와 싸울 만한 힘을 가진 존재.
제아무리 천마신교의 신이라 불리는 천무진이라 해도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그냥 걸어온 게 전부다. 소란은 무슨.”
“그대의 존재 자체가 소란이오.”
“내 발소리가 그리 큰가?”
“애들이 떨고 있지 않소.”
“저리 겁이 많아서야, 원.”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디아블로.
그의 붉은색 눈동자가 이내 천무진에게로 향했다.
“혹시 너도 그런가?”
“적으로 온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소.”
“눈치는 빠르네.”
디아블로에게 투기는 없었다.
중요한 용건이 있는 듯, 눈빛에 진지함은 베여 있었지만 적어도 싸우러 온 건 아닌 듯했다.
무엇보다 이런 시기에 디아블로가 굳이 이 먼 아래층까지 내려와 인간들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부탁을 하러 왔다.”
“무슨 부탁이지?”
“너희들의 무공이라는 걸 알려 주길 바란다.”
“무공을?”
“아수라 역시 이 세계의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인드라도 마찬가지고.”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었다. 디아블로는 탑의 모두가 인정하는 강자였지만, 이번 일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다음 수를 준비했지만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처음으로 그가, ‘무공’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하지만 문제는 이곳은 천마신교였고, 상대는 그 천마신교의 신인 천마라는데 있었다.
“그런 거라면 아수라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
천마의 무공은 아무에게나 전수되는 게 아니었다. 유원이 천마령을 얻었던 것과 같이, 천마신교의 시험을 통과해야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바로 천마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디아블로는 그런 천무진의 무공을 그냥 내놓으라 하고 있으니.
“강하다고 해서 꼭 좋은 스승이라는 법은 없지.”
“그러는 자네 역시 훌륭한 제자가 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디아블로는 천무진이 자신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몰라. 안 받아 주면 여기 눌러 살 테다.”
“하아-.”
한숨을 쉬는 천무진.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나?”
* * *
발할라 성의 복도를 걷던 유원은 잠시 멈춰 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슈브 니구라스에 의해 검게 변했던 하늘은 어느새 파란색을 되찾았다.
잠시 눈을 감고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빠……!”
“좋은 데 가신 거야. 아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리 벌을 내립니까! 세상이…….”
“형님은 괜찮으십니까?”
“셋째가 죽었어. 셋째가…….”
“다행입니다.”
“다행이라고?”
“저희는 아내와 딸, 아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벌써 싸움이 끝난 지 열흘이 흘렀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울부짖고 있었다. 키트로 잠깐 검색을 해 보니, 65층에 사는 거주민 중 4할이 목숨을 잃었다는 모양이었다.
유원은 계속해서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 늦었지만 들어야 했다.
과거로 돌아오며 시간이 흘러 잊고 있던 소리들.
이 소리가 다시 나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
누군가 말을 걸어온 탓에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온 소리가 묻혔다.
눈을 뜨고 옆을 돌아보자, 브룬힐데가 지나가던 중에 유원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딘께서 기다리십니다.”
“날?”
“깨셨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그럼 직접 오라고 하지 오라 가라는.”
“주무시는 동안 몇 번 병문안을 가셨었습니다. 깨지 않았던 건 은인이십니다.”
유원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브룬힐데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말투도 그렇고 ‘은인’이라는 표현도 그렇고 전보다 취급이 상당히 공손해졌다.
표정에 그런 의문이 다 드러났던 걸까.
브룬힐데는 유원의 의문을 풀고자 말을 덧붙였다.
“발할라뿐만이 아니라 아스가르드 전체가 멸망할 뻔한 싸움입니다. 이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던 건 은인의 공이 큽니다.”
“그래서 날 은인이라고 부르는 건가?”
“백성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원이 흠칫 놀랐다.
들킬 거라 생각은 못했다. 마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청각에 집중해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는데.
“저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죽은 자 대신 당신이 살린 자들을 보십시오.”
“관점을 바꾸라는 말인가?”
“너무 어려운 일만 해 내다 보면 때로는 쉬운 일을 못하는 법입니다. 관점 바꾸기. 쉽지만 아마 은인에게는 어려운 일이지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브룬힐데의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
유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 위로, 젊은 시절 오딘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은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부담스러울 만큼 공손한 태도. 그만큼 아스가르드에서 유원의 위치가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예정에 없던 만남이었지만 브룬힐데의 조언은 유원에게 적잖은 도움이 됐다.
“함께 가시지요. 안 그래도 저 역시 오딘께 가던 중이었으니.”
어쨌거나 브룬힐데는 유원에게 친절했다.
그것도 매우.
하지만.
우웅-.
때마침 키트에 도착한 메시지에, 유원은 더 이상 브룬힐데와 어울릴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잘됐네.”
“예?”
“나중에 키트로 연락이나 할까 했는데, 대신 전해 주면 되겠어.”
“무슨 말…….”
“난 간다.”
뒷정리 좀 잘 부탁하고.
눈앞에서 사라진 유원의 모습.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목소리.
브룬힐데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잠깐 선 채로 잠에 들었다 깨기라도 했던 건지, 유원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뒷정리?”
* * *
발할라 성의 성벽 위로 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유원은 멀리 보이는 성 아래의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브룬힐데의 말을 듣고 난 후라 그런지 방금보다는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
‘죽은 자들보다는 산 자들을 생각하라…….’
묘하게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모두를 살리려 왔음에도 그러지 못했던 데에 대한 죄책감이 제법 덜어졌다.
원래였다면 오딘과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눴을 것이다. 아니, 인사를 나누는 걸 넘어 성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며 신세를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 상황은 변화했다.
[우마왕 : 일단 99층으로 오거라.]손오공이 아닌 우마왕에게서 도착한 문자.
줄곧 연락을 받지 않는 손오공 대신, 유원은 우마왕에게 연락을 취했다. 우마왕은 유원보다 훨씬 먼저 손오공을 찾기 위해 움직였으니까.
천축의 위치를 알고 있다던 우마왕.
아마도 손오공이 천축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우마왕의 도움이 컸을 터였다.
‘천축의 도착 여부가 우마왕의 손에 달려 있었으니, 그때는 그렇게 헛수고를 했던 건가.’
손오공이 천축을 찾던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천축에 도달해 법경을 찾고자 했다. 그것은 손오공의 머리를 옭죄며 힘을 억제하는 긴고아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끝내 손오공은 법경을 찾지 못했고, 아우터와의 전쟁은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벼락의 힘을 얻었다. 아직 그 힘을 완전히 자신의 것처럼 쓰지는 못해 보였지만…….’
벼락을 사용하던 헤라클레스.
황금빛의 전류를 몸에 두른 그의 모습이 떠오르자, 유원은 문득 랭킹이 궁금해졌다.
‘제우스의 말대로라면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 헤라클레스라는 거겠지.’
달리던 중 멈춰 유원은 키트를 통해 랭킹을 검색해 보았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유원이 궁금한 건, 헤라클레스의 랭킹이었으니까.
[1위 : 비슈누] [2위 : 오딘] [3위 : 헤라클레스]역시나.
헤라클레스의 랭킹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3위면…… 원래 비슈누의 자린가.’
이렇게까지 랭킹이 급격하게 상승한 적이 있었을까.
그는 단숨에 한 자릿수의 랭킹까지 올라온 데다, 아버지인 제우스의 랭킹까지도 추월해 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 높은 랭킹을 기록한 제우스가, 기간토마키아를 일으키면서까지 평생을 다해 계획한 존재가 바로 헤라클레스였으니 말이다.
물론.
랭킹이 크게 바뀐 건 헤라클레스만이 아니었다.
“……이건 뭐야?”
[4위 : 제우스] [5위 : 김유원] [6위 : 손오공]어느새 한 자릿수, 그것도 5위까지 올라가 버린 랭킹.
이 정도로 랭킹이 가파르게 올라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유원의 활약은 직접 앞에서 한 것보다는 뒤에서 한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랭킹이 이렇게까지 오른 건, 단풍이 때문인가?’
제법 잘 싸웠다. 정도로 올라갈 만한 랭킹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스야 벼락을 이용한 힘을 제대로 보여 주었으니 그렇다 쳐도, 자신의 랭킹 상승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랭킹을 보고 유원이 처음 든 생각은.
‘손오공보다 한 단계 높군.’
손오공을 다시 만나면 골려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전생에는 한 번도 유원의 랭킹이 손오공보다 높아진 적이 없었으니, 아마 다시 만나게 되면 펄쩍 뛸 게 분명했다.
랭킹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면서 말이다.
‘99층이라…….’
유원은 자리에 멈춰 서 성 아래를 둘러보았다.
65층에서 99층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평범한 방법으로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최대한 서두르고 싶었다.
굳이 화안금정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찾는 사람이 아직 여기 있다면 필시 눈에 띌 테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아직 있었군.’
발할라의 번화한 도심 가운데.
드르륵-, 드륵-.
크고 요란한 마차를 끌며 돌아다니는 아폴론, 아르테미스 남매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