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55
* * *
누가 알았을까.
세상 끝 너머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벽은 부서지지 않았다. 아니,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경계선이며 애초에 부수고 말고 할 수 있는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끝.
그다음이 존재하지 않으니 부술 수도 없고, 넘어갈 수도 없다.
세상은 모두 그렇게 알고 있었다.
물론.
‘바깥은 존재한다.’
어느 날, 그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벽을 허문 아우터가 등장했다.
그 바깥에서 넘어온 어리석은 혼돈은 이미 오래전부터 탑 곳곳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 끝 너머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여긴 아니야.’
아직 넘어가 본 적은 없었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자신이 그리던 탑 바깥의 세계가 아니었다. 저 푸른 하늘과 모래로 가득한 황무지, 그리고 높은 언덕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여긴 그저 감춰져 있었을 뿐.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여기다.
또다시 들려온 우마왕의 목소리.
방향은 따로 알려 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우마왕이 말한 ‘여기’가 어디인지.
유원은 눈앞에 있는 높은 언덕 너머로 태양마차를 끌었다. 불꽃을 휘감은 태양마차는 빠르게 달려, 언덕을 넘어갔다.
그러자.
투확-!
무언가 하늘 위로 높게 뛰어올라 그림자가 졌다. 다음 순간, 그것은 빠르게 이동하던 태양마차의 위로 내려앉았다.
쿠웅-!
순간 태양마차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유원은 한쪽의 불꽃을 키워 서둘러 균형을 맞추어 태양마차가 추락하는 걸 막았다.
“이리 요란하게 등장하는 걸 보니, 꽤 급한 일이 있나 봅니다.”
유원은 급하게 등장한 장신의 남자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형님.”
“미안하구나. 이리 올라타서.”
유원은 가장 먼저 그의 행색을 살폈다. 옷가지가 찢겨지고, 볼에 긴 세 줄기 상처 자국이 보였다.
지금은 거의 다 아물었지만 처음에는 적잖이 큰 상처였으리라.
“뭔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있었지.”
“오공이는 어디 갔습니까?”
“그 녀석은…….”
꼬르르-.
우마왕의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루 이틀 굶은 걸로 이런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설마 싶었지만, 우마왕은 정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손오공만큼 식탐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먹는 양만큼은 그 못지않았던 우마왕이었다.
“하하-.”
어색하게 웃는 우마왕.
그는 언덕 너머 태양마차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물었다.
“먼저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떠냐?”
* * *
신기하게도 벽 너머에도 마을은 있었다.
99층의 세계처럼 높은 건물과 문화, 문명이 발달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꽤 구색이 갖춰진 마을이었다.
지이익-.
우마왕이 고기를 뜯었다.
그 흔한 소금 간 하나 없이 돼지를 통째로 구운 게 전부였건만, 우마왕은 그것을 참 맛있게 먹었다.
꿀꺽, 꿀꺽-.
탁주를 시원하게 들이켜 목을 축였다. 대체 자기 몸통만 한, 돼지 한 마리가 어떻게 배 속에 다 들어가나 신기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굶은 건지.
텅-.
데구루루르-.
“이제 좀 살 것 같구나.”
우마왕은 포만감에 만족한 듯 웃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어쩐지 그런 우마왕의 얼굴 위로 손오공이 겹쳐져 보였다.
‘왜 둘이 친해졌는지 알 것도 같네.’
먹성이라면 둘 다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두 사람은 먹다가 친해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마왕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유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계속 굶으신 겁니까?”
“먹을 시간이 없었다.”
“설마하니 정말 밥 먹을 시간도 없었겠습니까.”
“계속 싸웠거든.”
싸우다니.
누구와?
유원의 시선이 우마왕의 얼굴에 난 상처로 향했다. 자세히 보니 칼로 베였다기보다는 길고 날카로운 손톱에 쓸린 듯한 자국에 가까웠다.
“이 상처 말이냐?”
“예, 누구에게 당한 겁니까?”
“오공이에게 당했다.”
술 대신 물을 따르던 유원의 손이 멈췄다. 물이 잔에서 넘쳐흐르자 그제야 유원은 황급히 손을 기울여 물병을 치워 냈다.
우마왕의 말은 그만큼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입니까?”
“많이 놀랐나 보구나.”
“당연히요.”
“이래 보여도 죽을 뻔했다.”
우마왕이 손을 들어 볼을 쓰다듬었다.
세 갈래로 할퀴어진 자국.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이 상처를 만질 때마다, 우마왕은 계속 그 싸움이 떠올랐다.
“다른 놈도 아니고 둘밖에 없던 동생의 손에 말이야.”
* * *
높은 고산 위.
버려져 낡고 오래된 사찰이 있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다 무너진 사찰에서 멀쩡히 남아 있는 건 부처를 모시는 법당과 사찰의 일주문(一柱門)뿐.
아아아아악-!
법당 안에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산을 흔들 만큼 큰 비명 소리에 법당 주위의 땅이 쩍쩍 갈라졌다.
법당의 한가운데.
지끈, 지끈-.
손오공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에 머리를 있는 힘껏 처박기를 반복하며 두통으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끄으…… 으으으…….”
카가각-.
기다란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다. 두 눈을 황금색으로 번뜩인 손오공의 머릿속에 얼마 전의 일이 영상처럼 흘러갔다.
법당의 한가운데 자리한 법경을 손에 넣고, 비로소 긴고아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손오공은 이성을 잃고 몸을 돌려, 우마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콰웃-!
촤아아-!
우마왕의 볼에서 피가 튀었다. 놀란 우마왕이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고,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냐?
크르르르르-.
손오공이 이빨을 드러냈다.
끓어오르는 분노, 피를 보고 싶은 갈망 같은 것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성을 잃고 무언가에게 의식을 빼앗겼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갔다.
콰앗, 콰우웃-!
콰드드드드-.
손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손오공.
그런 손오공의 공격을 막아 내며 혼철곤을 꺼내 든 우마왕.
둘의 싸움은 열흘 가까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의식을 붙잡으며 공격을 멈춰 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새 의식이 사라지고,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게 바로 지금.
지끈-.
손오공은 머리를 조여 오는 긴고아와 참을 수 없는 그 통증에 다시금 바닥에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앙-!
쿠우우우웅-.
법당은 부서지지 않았다. 흔들린 건 법당이 세워져 있는 산이었다.
손오공과 우마왕의 싸움으로 사찰의 모든 게 부서졌지만 오직 이 법당만은 그렇지 않았다.
뿌득-.
이성을 찾기 위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입술을 깨물었다.
“혀…… 엉…… 님…….”
아무리 기억해 보려 해도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도 그 끝은 기억나지 않았다.
대체 왜 자신이 이 법전 안에 다시 들어와 있는 건지, 우마왕은 결국 어떻게 됐던 건지.
그 잊힌 기억을 더듬던 중.
지끈-.
또다시, 손오공의 머리에 둘러진 긴고아가 날뛰기 시작했다.
“끄…….”
아아아아아아-!
* * *
“…….”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원이 잠시 눈을 감았다.
이런 경우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천축을 찾기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그건 이대일의 싸움이었다. 나와 오공이가 긴고아를 상대로 싸운 거지.”
“긴고아와…….”
손오공의 머리에 긴고아를 두른 건 누구인가.
그에 대한 답은 손오공이 해 준 적이 없었다. 그는 긴고아에 대해서는 기억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에게 씌운 게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형님은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긴고아를 씌운 사람 말이냐?”
“예.”
“수보리조사라고 나보다 더 오래된 랭커가 있었다. 지금은 기록도 남지 않은 자이지.”
“그가 왜 녀석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운 겁니까?”
“자라면서 점차 커지던 힘 때문이었다. 녀석도 태생은 요괴였으니까. 다만, 나보다 훨씬 강한 요괴였지.”
“형님보다 더 말입니까?”
“당시에는 나보다 약했지만 아마 녀석이 백 살만 되었어도 나보다 강해졌을 게다. 요괴로서 녀석이 가진 재능은 그만큼 대단했으니.”
백 살에 우마왕을 능가한다. 듣고도 쉽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수보리조사라는 자가 나타나 오공이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웠다. 개목줄이나 다름없었지. 대요괴가 될 수 있었던 녀석이 갑자기 힘없는 원숭이가 되었다.”
‘이걸 믿어야 할지.’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였다.
유원이 기억하는 손오공은 그 누구보다 재능이 넘쳤다. 그는 유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각 층의 시험을 최상위 성적으로 통과했고 이름을 떨쳤다.
심지어는 50층에 도달했을 때, 당시 시험을 주관하던 랭커였던 키메라 제작자를 쓰러뜨릴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그런데 우마왕은 그런 손오공을 두고, ‘힘없는 원숭이’라 말했다.
“왜? 못 믿겠느냐?”
“예. 아무래도…….”
“이해한다. 녀석이 해 온 일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유원은 고개를 저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손오공을 끔찍이 아끼는 우마왕이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아무튼 문제가 크다. 지금이야 그 녀석이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지만, 나중엔 어찌 될지 모르니.”
“형님은 어쩔 셈이십니까?”
“별 수 있겠느냐. 녀석에게서 다시 법경을 빼앗아 긴고아의 봉인을 강화시키는 수밖에.”
그렇다는 건 결국 제자리걸음인 셈.
과연 그걸 위해 손오공이 법경을 찾았을까. 수보리조사라는 자는 손오공을 걱정해 그의 머리에 긴고아를 씌웠을까.
우마왕의 말에 유원은 키트를 꺼냈다.
어딘가 다급해 보였던 손오공의 문자들.
유원은 그것을 우마왕에게 건네 보였다.
“이 녀석이 이걸 보냈을 때, 형님도 같이 계셨습니까?”
“……아니. 처음 보는 문자다.”
“그렇습니까?”
과연 이게 법경을 찾아 봉인이 풀린 직후의 문자였을까.
어딘가 찝찝함이 들었다. 덩달아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겼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실례라니?”
우마왕은 유원이 뭘 하려는 건가 싶어 의아한 표정을 짓다, 그의 눈을 보고는 놀라 중얼거렸다.
“예지안?”
황금색으로 변한 두 눈동자.
그 눈을 통해 유원이 미래를 보기 시작했다.
‘……여긴가.’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유원의 눈앞에 우마왕의 등이 보였다.
자신은 어디론가 올라가고 있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고 넓은 산이었다.
저벅, 저벅-.
그 위로 올라가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좌우로 넓고 높은 일주문(一柱門)이었다.
‘저 위에 손오공이 있다.’
유원은 우마왕의 뒤를 따라 손오공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았으니 분명 자신들은 다시금 손오공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일단 오게 되는 건가.’
예지안을 사용한 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 더 일찍, 손오공을 보려 함이기도 했다.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 건지.
또, 우마왕의 말처럼 그렇게나 강한 건지까지.
미리 알아 둬야 하는 정보가 많았다.
그런데.
흐릿-.
돌연 유원의 눈앞이 흐릿해지며, 우마왕을 비롯한 시야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예지안의 숙련도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 판단은 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예지안’에 개입합니다.]그리고 그때였다.
눈앞에 가까워진 일자문 너머.
-감히.
희미한 얼굴과 이목구비, 구릿빛 피부를 가진 ‘부처’의 형상이 나타난 것이.
-어느 문을 넘어 보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