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56
눈이 마주친 건 아니었다.
당연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이건 진짜 현실이 아닌, 예지안을 통해 본 미래의 어느 한순간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대체 왜.
저릿, 저릿-.
유원은 몸을 짓누르는 존재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저것은 예지안의 힘을 넘어, 유원을 직접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이 문을 넘보지 마라.
스으으-.
예지안을 통해 보던 세상이 일그러졌다.
어떤 힘이 개입해 유원이 보고 있는 예지안을 흐트려 놓고 있는 것이다.
-또 오게 되면 그땐 이리 쉽게 돌려보내지 않을 테니.
그는 마치 이곳은 자신의 공간이라는 듯, 유원을 쫓아냈다.
저항해 볼까 하던 유원은 곧 그만두었다. 저 안을 살펴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고맙네.’
이렇게 직접 발 벗고 나서 준 게 다행이다 싶었다.
‘덕분에 그 녀석 뒤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부처가 가로막고 있는 일주문 너머.
아아아아아악-!
희미하게 손오공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 *
화아악-!
순간 세상이 변했다.
두 눈을 통해 보이는 풍경도. 몸을 감싸고 있는 공기나 기온의 흐름도.
모든 게 바뀌었다.
예지안의 효과가 사라진 것이다.
“무엇을 보았느냐?”
유원이 예지안을 사용했다는 걸 알아차린 우마왕의 질문이었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가 봐야겠습니다.”
“어디를?”
“그 녀석이 있는 산으로요.”
화륵, 화르르-!
두 사람이 식사를 하던 건물의 하늘 위, 태양마차가 다시금 불꽃을 뿜어내며 시동을 준비했다.
“……?”
우마왕은 대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유원을 따라 태양마차에 올랐다.
순식간에 시동이 걸린 태양마차는 이내 빠른 속도로 이동을 시작했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마왕이었지만 바로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안 넘어지게 조심하시고.”
“걱정은 됐으니 이제 말 좀 해 보거라. 갑자기 왜 이리 급히 움직이려 하는 건지.”
우마왕의 재촉에 유원은 태양마차의 불을 꺼뜨리지 않은 채 답했다.
“요괴 같은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라니?”
“뒤에 뭔가 있습니다. 대머리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누군가가.”
“그 눈으로 본 건가?”
“예.”
그는 예지안에 개입해 유원이 손오공을 보려는 걸 막았다.
지금 당장은 근거가 부실한 추측일 뿐이지만.
“녀석이 손오공의 몸을 차지하려 합니다.”
“몸을?”
“예.”
그가 누구인지는 유원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하건대, 지금은 랭킹이 사라진 아주 먼 옛날의 고대의 하이랭커가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밖에 추측 못한 건, 도무지 유원의 머릿속에는 손오공을 저렇게 만들 만한 하이랭커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만큼 오래 된 하이랭커라면, 그리고 지금은 죽고 없는 자라면.’
녀석이 왜 손오공을 노리는 건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
‘부활을 꿈꾸는 건가.’
유원이 힐끗,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손에 채워진 반지. 그걸 발견한 순간, 유원의 머릿속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지.’
우우우웅-.
오른손의 반지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황금색과 검은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흘러나온 빛이 유원을 감쌌다. 일순간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유원의 정신이 우라노스의 심장에 빨려 들어갔다.
달칵-.
가장 처음 유원을 반긴 건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였다.
온통 주위가 새하얀 가운데 홀로 유유히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
그는 유원이 찬 반지의 주인, 우라노스였다.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군.”
“그럼, 달리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이렇게 오래전에 마신 차 맛이나 떠올리며 있지도 않은 차를 마시는 것 말고는.”
이곳은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반지에 깃들어 있는 우라노스의 영혼이 인위적으로 만든, 가상의 세계였다.
당연히 그가 마시고 있는 차 또한 실존하지 않는 것. 우라노스는 긴 시간 동안 이리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 오고 있었다.
저벅-.
유원이 우라노스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는 알겠지?”
우라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심심하기 짝이 없는 이곳에서 그의 유일한 낙은 바로 바깥에서 활동하는 유원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석가여래에 대해서 묻고 싶은 건가?”
“그 녀석의 이름이 석가여래인가?”
“진짜 이름은 아닐 거다. 그저 그렇게 불릴 뿐이지.”
“넌 그를 어떻게 알지?”
“내 시대에서 활동하던 랭커였으니까.”
우라노스의 시대.
그는 살아 있는 고대의 하이랭커인 우마왕이나 오딘보다도 더 윗세대의 랭커였다. 당연하게도 현존하는 랭커들 중 가장 늦게 랭커가 된 유원에게는 실로 까마득한 존재였다.
그런데 석가여래라는 자가 그런 우라노스와 같은 시대의 랭커였다니.
‘그럼 대체 몇 년이나 지난 거지.’
어쩌면 우라노스가 이곳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라노스.
그는 자신의 심장을 셋으로 쪼개어 세상에 남겼다.
석가여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손오공을 통해 부활을 꿈꾸었으니 말이다.
“우마왕, 그 꼬마가 여래 놈에게 제대로 낚인 모양이군. 수보리조사가 천축의 위치를 흘린 걸 지금까지 기억해 두고 있었다니 말이야.”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우라노스.
“여래는 어떤 녀석이지?”
“정의로운 녀석이지.”
“정의?”
“그래. 인간을 아주 사랑하고, 또 존중하지. 필요치 않으면 개미나 풀 같은 미물 하나 쉽게 죽이지 않아.”
우라노스의 설명에 유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금 전, 예지안으로 본 석가여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설명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긴고아를 이용해 손오공의 몸을 빼앗을 작정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석가여래가 이런 자애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니.
“아, 그리고 또.”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은 요괴를 아주 싫어해. 말만 들어도 이를 갈지.”
“요괴를?”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나 때만 하더라도 요괴는 인간을 함부로 죽고, 먹어치우는 괴물 같은 족속들이었거든. 그들은 석가여래가 유일하게 혐오하는 부류들이지.”
그 설명에 드디어 납득이 된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라면 손오공의 육신을 빼앗으려는 것도 납득은 됐다.
어차피 죽여 없앨 요괴 따위, 몸을 빼앗는다 한들 죄책감이 들 리 없을 테니까.
“싸울 때 주의할 건?”
“글쎄. 내가 해 주는 이야기가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그 녀석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 데다, 어차피 그놈은 죽었고 지금은 제천대성의 몸에 깃들어 있는데 말이지.”
“대략적인 거라도 좋다. 아무거나 말해 봐.”
“아무거나라…….”
우라노스는 오래전의 일을 떠올리듯, 잠시 말없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몇 분.
잠시 석가여래에 대해 생각하던 우라노스가 입을 열었다.
“무림계의 소림사를 아나?”
“소림사?”
모를 리가 없었다.
10층의 시험은 무림계 각 문파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 각각의 플레이어들은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될 무공을 익히려 부단히 애썼다.
그리고 소림사는 남궁세가와 더불어 무림계에서 최고로 알려진 문파 중 하나였다. 흔히 구파일방(九派一幇)이라 불리는 문파 중, 소림사는 으뜸으로 꼽혔다.
“그 소림사의 무공이 결국 석가여래에게서 파생된 거다. 아마 그 장문인이라는 녀석도 여래에 비하면 애들 손장난이겠지만, 대충 틀은 비슷할 거다.”
“소림사라…….”
유원의 머릿속에 소림사의 무공이 떠올랐다.
권(拳)과 장(掌)을 이용한 싸움을 벌이는 그들은 한 근의 힘으로 천근을 제압하는 묘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소림사에 찾아가 그들의 무공을 공부하며 대책을 세우고 싶었지만 그러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고맙군.”
“고맙기는.”
우라노스는 어서 가 보라는 듯한 손을 저으며 어느새 따뜻한 차가 다시 가득 찬 찻잔을 들었다.
이 정도면 얻을 정보는 대충 다 들어,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달각-.
한 모금 천천히 차를 음미한 우라노스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궁금하긴 하군.”
저 위로.
유원이 정신을 차려, 멀리 여래가 있는 산을 향해 가는 게 보였다.
“여래의 기술을 쓰는 제천대성이라니 말이야.”
* * *
정신을 차려 보니, 태양마차는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마왕은 태양마차의 가장 앞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꽤 심하게 불 텐데도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산을 바라보았다.
“깼느냐?”
고개도 돌리지 않은 우마왕의 물음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태양마차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졌으니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유원은 손오공이 있다는 산을 바라보았다.
첫 감상은 제법 대단했다.
‘크군.’
산은 높았다. 유원이 아는 그 어떤 산보다도 더.
구름보다도 높이 날고 있던 태양마차에 올라타고도 한참을 올려다볼 만큼, 산은 엄청난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천산이 작게 느껴질 줄이야.’
지금껏 유원이 보아 온 가장 큰 산은 천마신교가 있는 천산이었다.
해발 5킬로미터가 넘고 동서 2,500킬로가 넘는 거대한 산맥인 천산산맥은 한 눈으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산은 뭐랄까.
그런 천산조차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의 크기와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놀랐느냐?”
“조금은요.”
“나도 놀랐다. 이 탑이 아무리 크다한들, 설마하니 이 정도로 큰 산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
휘익-.
우마왕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서둘러 사찰을 찾기 위해 유원이 태양마차 아래로 뛰어내린 탓이었다.
“성격 급한 건 오공이 녀석과 꼭 닮았군.”
아니면 그만큼 한시가 급하다는 뜻일까.
우마왕은 유원을 따라 아래로 뛰어내렸다. 불꽃을 잃은 태양마차는 미미한 잔열만이 남아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하늘에 그대로 떠 있었다.
그렇게 유원과 우마왕이 산 위로 뛰어내려, 산 어느 중턱에 도착했다.
쿵-!
비로소 산에 도착한 유원과 우마왕.
길을 아는 건 우마왕이었다.
“따라오거라.”
우마왕은 그 말과 함께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걷는 것 같은데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한 걸음에 웬만한 열 걸음 스무 걸음을 휙휙 내딛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마왕의 뒤를 따라가던 중, 유원은 익숙한 장면을 발견했다.
‘길이 낯익다.’
우마왕의 뒤를 따라가는 자신의 발걸음.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곳에는.
‘……지금이었나.’
사찰의 이름이 적힌 현판과 함께, 사찰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스으으으-.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존재감.
얼굴 없는 부처가 일주문을 지키며 나타났다.
-기어이 왔구…….
그와 동시에.
스카앗-.
이렇게 될 줄 알고 있던 유원이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휘두른다.
쩌억-!
부처의 형상과 함께 사찰의 현판이 베어졌다. 일주문이 쩍, 소리를 내며 수백 갈래로 잘려 나가 아래로 쓰러졌다.
쿵, 쿠구궁-.
그렇게 쓰러지는 일주문을 보며.
“얼른 튀어나와.”
시간 없다는 듯, 유원이 칼끝으로 사찰의 안을 겨누었다.
“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