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60
* * *
긴고아가 부서지고, 봉인이 풀린 지 고작 세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유원과 손오공은 다시금 치고 박고 싸우고 있었다.
콰앙-!
푸득, 푸드드드드-.
때 아닌 소란에 조용히 산속에 잠들어 있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산짐승들은 단잠을 방해받았음에도 감히 화를 내거나 이빨을 드러내지 못했다. 포식자를 넘어선 경이로운 힘을 지닌 존재들에게 저항하느니, 그들은 터전을 버리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한 발 떨어진 곳.
손오공의 근두운을 빌려 탄 우마왕은 쯧쯧 혀를 차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째 둘밖에 없는 아우가 저리 똑같을꼬…….”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우마왕의 손에는 유원에게서 얻어 낸 육포가 한가득 들려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팝콘을 준비하는 것처럼, 재밌는 구경거리에는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었으니까.
질겅-.
그렇게 몇 개 되지 않는 육포를 입안에 넣었을 때.
“아쉽구만.”
콰앙-!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선 속, 손오공의 주먹이 땅에 꽂히는 게 보였다.
겨우 그 주먹을 피한 유원의 몸이 휘청거렸다. 한 번 균형이 무너진 유원은 검을 휘두르는 것마저 어려워 보였다.
“그리 오래 볼 수는 없겠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철이 없다느니 하던 것과는 반대되는 말.
하지만 그만큼 이 싸움은 재미가 있었다.
아니, 놀라웠다.
“……생각했던 거보다 더 괴물이 됐군.”
손오공과 유원의 싸움.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 *
우지끈-!
산봉우리 하나가 손오공의 주먹에 부서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래로 떨어진 거대한 봉우리에 땅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예지안’이 활성화 중입니다.]잠시 후의 미래를 보는 능력.
그것은 지금과 같은 육탄전에서 특히 더 빛을 발했다.
당장 예지안 덕분에 여의와 싸울 때에도 많은 득을 보지 않았던가. 그의 백보신권을 비롯한 여러 초식들을 미리 막아 내고 반격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반 이상이 예지안의 능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막거나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원은 알고 있었다.
자욱이 피어난 뿌연 갈색 연기. 저것을 한 손으로 걷어 내며 손오공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화악-!
아니나 다를까, 손오공이 그것을 걷어 내며 나타난 순간 유원의 눈앞에는 수많은 미래들이 펼쳐졌다.
‘어느 쪽이지?’
수십 갈래 방향에서 뻗어 오는 주먹. 복잡하게 흔들리는 유원의 눈동자와 손오공의 눈이 마주쳤다.
화르륵-.
특별한 눈을 가진 건 유원만이 아니었다.
비록 예지안을 가진 건 아니라지만 손오공 역시 화안금정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화안금정에 대한 숙련도는 그가 유원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래서일까.
콰아앙-!
우드드드-.
유원은 간발의 차이로 손오공의 주먹을 피하는 게 고작일 뿐, 그의 공격을 미리 알고 반격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젠장.’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잠시 후의 미래를 안다는 건.
“잡았다.”
꽈아악-.
때로는 바꿀 수 없는, 유쾌하지 않은 미래를 미리 아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손오공의 한쪽 손이 유원의 목을 움켜잡았다. 악력이 워낙 강한 탓에 뿌리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예지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된다.
손아귀에 붙잡힌 이상, 손오공의 악력을 뿌리칠 만한 힘이 없고서는 미래를 아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부우우웅-.
손오공의 주먹이 유원의 머리를 향해 뻗어 왔다.
유원은 눈을 감지 않았다. 이런 거에 겁을 먹고 놀라 눈을 감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고, 무엇보다 저 주먹은 그리 겁을 먹을 만한 게 아니었다.
툭-.
볼을 가볍게 치는 주먹.
“내가 이겼지?”
스륵-.
목을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풀어졌다. 반쯤 그 손에 잡혀 들려 있던 유원은 답답한 숨통이 트이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그래.”
더 따지고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다시 해 보자는 말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이번 승부는 압도적이었다.
오싹, 오싹-.
싸움이 끝났건만 아직도 몸이 저린 느낌이 들었다.
신난다며 들떠 높게 뛰어오르는 손오공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뭘 해 보기가 어렵네.’
손오공의 전투 감각은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여의봉을 휘두르고, 분신술로 눈을 현혹하며 근두운을 이용한 기동전을 펼치는 손오공은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웠다.
‘하긴.’
유원의 시선이 손오공을 따라 움직였다.
‘여래가 못한 게 아니었다.’
몇 시간 전 이럴 거면 손오공 보고 나오라고 여래에게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가 손오공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가진 기술이나 수는 적어도, 이 녀석만큼 그걸 잘 활용하는 녀석도 없지.’
화안금정 하나만으로도 손오공의 기술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거기에 더해, 손오공의 육체 능력과 마력은 전반적으로 몇 배나 상승되어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손오공은 여의봉도, 분신술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화안금정을 사용한 채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른 게 그가 한 일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라니.
‘수정이 필요하겠어.’
기대했던 것보다도 손오공은 훨씬 더 대단한 카드가 됐다.
지금 당장은 둘 다 아직 미숙하지만, 긴고아의 봉인이 풀리고 그간 봉인되어 있던 요괴의 힘을 쓸 수 있게 된 손오공이나 벼락의 힘을 손에 넣은 헤라클레스나.
두 사람 모두 유원이 있던 세계에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제 내 차롄가.’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이 끝났고, 손오공은 천축에서 긴고아의 봉인을 풀었다.
이제 남은 건 자신뿐이었다.
‘고생해야겠어.’
손오공보다 랭킹이 높아진 게 당장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자랑하려던 마음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것 같았다.
이젠 다시 자신이 그의 뒤를 쫓아가야 할 차례였다.
* * *
손오공은 내내 잠을 자다 눈을 떴다.
밤에 달이 뜨고 공기가 서늘했다. 시간이 꽤 늦은 새벽이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손오공은 제일 먼저 달을 올려다보았다. 우마왕과 함께 천축에 왔을 때부터 느꼈던 거지만, 이곳은 참 밤이 귀했다.
“얼마나 잔 거야.”
손오공은 잠시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대체 이곳은 어떻게 만들어진 곳인지.
저벅-.
손오공은 그들 사이에 섞여 걷기 시작했다. 별다른 목적 없이 걷다 보니, 농사를 짓거나 아침부터 팔 물건들을 줄지어 널어놓기 시작한 상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도 역시 탑 안과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세상이었다.
휙-.
노점에 깔아 놓은 눈깔사탕 하나를 휙 집어든 손오공이 그것을 입안에 넣고 씹었다. 손오공의 손짓은 평범한 상인들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도독-.
그렇게 한가로이 이른 시각부터 도둑질을 해댄 손오공은 유원과 우마왕을 찾아 헤맸다.
“그나저나 둘은 어딜 간 거야.”
화륵-.
손오공의 눈에 불이 켜졌다. 시야가 확 넓어지며, 그의 눈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우마왕의 넓은 등판이 들어왔다.
씨익-.
“찾았다.”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손오공이 씩 웃었다.
스으으-.
새하얀 운무(雲霧)가 손오공의 발아래에 생겨났다. 근두운을 탄 손오공의 주위 풍경이 모두 깨어졌다.
투확-!
한순간이었다.
손오공이 우마왕에게 도달한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 발 더 빨랐다. 깜짝 놀란 손오공이 발에 힘을 주어 근두운을 멈추게 했다.
끼이이이-.
가까스로 우마왕의 등 앞에 멈춰 선 근두운.
식겁한 손오공이 우마왕의 등 뒤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부딪칠 뻔했네…….”
“이제 일어났느냐?”
등을 돌린 채 어딘가를 보고 있는 우마왕.
“하루 종일 자더구나, 또.”
유독 ‘또’라는 말에 힘을 주는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니었다.
또 자신이 얼마나 잤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던 손오공은 우마왕의 옆으로 돌아가 앉았다.
“뭘 보던 겁니까?”
“보면 알 것 아니더냐.”
“……?”
손오공은 뭔가 싶어 우마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우마왕이 걸터앉아 있는 절벽 아래.
넓게 펼쳐진 숲을 보며, 손오공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라?”
날이 어두워서일까.
어째선지, 눈앞에 펼쳐진 숲이 검게 보였다.
* * *
저벅-.
유원은 숲을 걸었다.
검게 변한 숲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늦은 새벽의 하늘보다 더 어두웠다.
‘이걸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그렇게 걸음을 멈춰 한동안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선 유원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유원에게 붙어 있는 단풍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신나서 뛰어다니거나 어깨에 매달려 잠에 들어 있을 단풍은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다.
“뭐가 보여?”
유원이 먼저 단풍에게 말을 걸었다.
한곳을 계속 보고 있던 단풍은 어딘가 멍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오-.”
느리게 열린 입.
“염- 소오-.”
발음이 조금 뭉개지긴 했지만 똑똑히 들렸다.
염소라고.
그리고 그 순간.
메에에-.
검게 변한 숲 가운데,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대하던 대로였다.
찰박-.
찰박, 찰박-.
우거진 숲 너머로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또한, 울음소리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메에-.
메에에-.
메에에에-.
신기한 노릇이었다.
얼마 전. 아니,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저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던 게 생생했는데.
찰박-.
사라락-.
숲을 헤치며 걸어온 보라색 털을 가진 산양들이 유원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유원은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적의가 없음을 확인했다.
“소오-.”
총총 걸어가는 단풍의 발걸음.
단풍은 산양들 중 가장 큰 녀석에게 다가갔다. 가장 큰 산양의 덩치는 그 체고가 유원의 머리를 훌쩍 넘길 정도였다.
한입에 잡아먹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하지만 유원은 도무지 그런 상황이 그려지지 않았다.
도리어.
메에에에-.
애절한 울음소리와 함께, 산양은 머리를 숙여 단풍이 쉽게 올라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산양의 주인이 바뀌었다.’
마냥 올라탄 게 좋은 건지, 어느새 산양의 머리에 올라타 꺄르르 웃고 있는 단풍.
‘이런 거였나.’
그런 단풍의 모습을 보며, 유원은 비로소 아우터가 가지고 있던 힘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조금씩 알 수 있었다.
‘이름의 힘이라는 게.’
메에에-.
유원의 옆으로 한 마리의 산양이 다가왔다.
산양의 덩치는 무리들 중에서 제일 작았다. 유원의 무릎 정도 되는 크기에 털도 보잘것없는, 제일 작고 순한 양이었다.
산양은 유원의 다리에 대고 머리를 비볐다. 딱히 위협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달라는 걸까.
스윽-.
그렇게 유원이 산양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준 순간.
[‘단풍’이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의 이름을 공유합니다.] [검은 숲의 산양들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정합니다.]메시지가 울리는 것과 함께, 숲의 산양들이 일제히 몸을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