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61
산양들에 둘러싸여, 유원은 묘한 기분이 휩싸였다.
이들이 누구던가.
미래에서는 수많은 동료들의 목숨을 빼앗은 슈브 니구라스의 자식들이었다.
산양 하나하나의 전력이 어떠한지, 유원은 꽤 오랫동안 슈브 니구라스와 싸우면서 알고 있었다.
그런 슈브 니구라스의 새끼들이 자신을 따라 고개를 조아리다니.
쉬이 믿기지 않아, 유원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일어나.”
메에에-.
메에-.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산양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킨다.
단풍은 그런 모습을 보며 더 크게 웃었고, 유원은 계속 하려던 걸 이어 나갔다.
“앉아.”
메에에-.
“일어나.”
메에에-.
“빵야.”
메에-.
앉았다 일어났다, 그리고 총을 맞는 시늉까지 다 한다.
내심 재밌기도 했지만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빵야’에 대한 산양들의 반응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라면 알 수 없는 것으로 유원의 세계에 있던 총을 모른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양이 이런 행동을 보일 수 있는 건 아마도 하나.
‘내가 원하는 걸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시스템으로 연결되었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리는 검은 숲의 염소.
그 이름대로 유원이나 단풍이 염소가 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숲과 산양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됐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검은 숲의 산양들을 손에 넣었다.’
예정에는 없던 수확.
‘이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커져라-.”
그때였다.
평소와는 달리, 불안하기 짝이 없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
“여의.”
투콰앙-!
유원의 눈앞에서 볼링 핀처럼 산양들이 흩어졌다.
무엇 때문인지는 굳이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눈앞으로 날아온 거대한 봉.
그리고 방금 전에 들려온 아이템의 시동어까지.
“괜찮냐-!”
아니나 다를까, 손오공이 유원의 옆으로 서둘러 달려왔다.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내내 자고 있던 녀석이 발견한 건 검은 숲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세계에 슈브 니구라스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괜찮으니까 좀 비켜라. 오버하지도 말고.”
슈브 니구라스 때문일까.
손오공은 아직 몸에 맞지도 않는 요괴의 힘을 끌어올리며 여의봉을 꽉 움켜쥐었다. 그에게서 뿜어지는 마력과 요력에 숲이 흔들렸다.
구구, 구구구-.
“오버라니? 저게 누군지 잊었냐? 저 염소 놈에게 죽은 동료가 몇인데, 그딴 말이나-.”
“그 녀석은 이미 죽었다.”
“응?”
놀라 고개를 돌리는 손오공.
무슨 소리냐며 유원을 바라보는 손오공의 시야에 천천히 유원에게 다가오는 작은 산양의 모습이 보였다.
“야, 조심-.”
스윽-.
유원이 산양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여의봉에 얻어맞고도 절뚝이며 자신에게 다가온 녀석이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품에 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부터는 자신이 녀석들을 보듬어야 했다.
하나 이 상황을 처음 본 손오공의 반응은.
“헐.”
그는 입을 떡 벌린 채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게 뭐 어떻게 된 거냐?”
“이름을 빼앗았다.”
“이름을?”
“그러고 보니 넌, 계속 여기 있느라 소식을 못 들었나 보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손오공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진짜냐? 슈브 니구라스를 잡은 거?”
“키트만 열어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그것 때문에 발할라는 반쯤 망했으니까.”
“……진짠가 보네.”
이런 걸로 유원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손에 죽어 나간 동료들의 숫자가 몇인데 아무렴, 장난의 소재로 쓰일 만한 게 아니었다.
다른 무엇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라.
슈브 니구라스 대신 유원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산양들.
저들이 바로 슈브 니구라스가 쓰러졌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아, 씨…….”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아, 아. 배고프다. 아침밥이나 먹으러 가자.”
“말 돌리는 거 보니 확실한데…….”
유원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손오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유원의 눈을 슬며시 피하며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였다.
슈브 니구라스를 쓰러뜨렸다니.
쪽팔려서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어제 이기고 우쭐했던 게 괜히 쪽팔리네.’
유원이 슈브 니구라스를 쓰러뜨리는 사이, 자신은 여래의 함정에 빠져 쩔쩔매고 있었다니.
눈치를 보던 손오공의 발밑에 근두운이 나타났다.
잠시 슬쩍, 유원이 아래에 있는 산양을 내려다보는 사이.
투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검은 숲 위로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 점이 되어 사라지는 손오공의 뒷모습.
하마터면 유원은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대충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네.’
손오공은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을 손꼽아 기다렸다. 당연하게도 그 이유는 미래에서는 한 번도 슈브 니구라스를 잡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싸움에서 자신이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이곳에서는 민폐만 끼쳤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잘됐나. 저 녀석은 자만하는 게 제일 문제니.’
이번 일이 손오공에게 자극이 된다면, 그것도 나쁠 건 없었다.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손오공이라니.
그런 손오공의 존재만으로도 앞으로의 싸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든든했다.
유원의 시선이 검은 숲으로 향했다.
‘이제 시작이다.’
슈브 니구라스가 죽었다.
아마 이 사건은 바깥에서도 큰 문제로 받아들일 것이다.
적어도 유원이 알고 있는 아우터 갓들 중, 슈브 니구라스의 서열은 최소 2번째는 됐으니 말이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싸움은 조금 더 본격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어.’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성과를, 더 빠르게 이루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기 마련이었다. 많은 계획이 망가진 만큼 어리석은 혼돈 역시 유원이 기억하는 미래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어느새 유원의 주위로 하나둘씩, 손오공의 여의봉에 얻어맞고 날아갔던 산양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산양들 가운데.
‘이 녀석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어.’
뭐가 그리 좋은지 평소보다 더 밝게 꺄르르 웃고 있는 단풍을 보며, 유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싸움의 열쇠는, 아마 단풍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 * *
탑의 바깥.
보라색의 하늘 아래로 구슬픈 울음소리들이 흘렀다.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
그저 탄식뿐인 소리들.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던 어리석은 혼돈은 쓸데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염소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큰 모양이군.”
어리석은 혼돈은 손안에 작은 구슬을 굴렸다.
드륵- 소리를 내며 굴러 가는 구슬. 그것을 한동안 매만지던 차, 보라색의 하늘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게 보였다.
어리석은 혼돈은 고개를 들었다.
기분 탓일까. 저 하늘이 자신을 꾸짖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듯, 하늘이 다시 한번 어지럽게 흔들린다. 비로소 어리석은 혼돈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이름을 얻기 위해 당신의 숲에 몸을 맡긴 창부에 지나지 않았잖습니까. 화를 가라앉히십시오.”
쩌억-.
그때였다.
안개처럼 흐릿한 보라색 하늘 사이.
초승달처럼 얇게 보이던 눈이 조금 떠져, 어리석은 혼돈을 향한 것이.
“멸망을 가져오는 별아. 너도 화가 난 것이냐.”
쩌어어-.
눈이 서서히 커져 갔다.
흰자위뿐이던 눈에 검은자위가 생겨나 그것이 어리석은 혼돈을 내려다보았다. 그 역시 슈브 니구라스의 죽음에 오랫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기는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었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울부짖고 있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그 중심에 어리석은 혼돈이 있었으니, 그들이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스으으-.
어리석은 혼돈의 주위를 보라색의 안개가 감쌌다. 줄줄이 나타나는 위대한 존재들에 어리석은 혼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용히 잠들어 있던 것들이 단체로 나타나는군.”
-이번 일은 선을 조금 넘으셨습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안개는 직접 어리석은 혼돈에게 말을 걸어왔다.
달리 이유는 없었다.
그저 저 위에 뜬 하늘이나 눈동자와는 달리, 그것은 어리석은 혼돈과 친분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왕따 신세겠군.”
-그럴 겁니다.
“너도 그럴 거냐?”
-…….
스으으-.
조용히 사라지는 안개.
대답은 없었지만 답은 대충 알 수 있었다.
“수줍어하기는.”
드륵-.
어리석은 혼돈은 다시금 손안의 구슬을 굴렸다.
그렇게 ‘눈’을 손안에서 굴리던 어리석은 혼돈의 로브가 바람에 휘날렸다.
“미래에서 왔다, 이거지…….”
* * *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1년.
고작 1년이었다.
탑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오고, 열 명이 넘는 랭커들이 생겨 나고.
원래였다면 탑이 그 어떤 일도 생기지 않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 중의 일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딘에게 이 1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저벅-.
늦은 밤.
아스가르드의 왕성에 누군가 발을 들였다.
성큼성큼. 누군가의 허락도 없이.
왕좌에 앉아 있던 오딘이 눈을 떴다.
감히 겁도 없이 이런 시간에 왕성을 찾은 게 누구인가를 보기 위해서였다.
“여기 사흘째 처박혀 있다더니. 지루하지도 않은가 보군.”
“……제우스였나.”
일 년.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 벌써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번 본 적 없던 제우스를 또 보게 됐다.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여긴 어떻게 왔지?”
“그냥 들어왔다.”
“허락도 안 받고?”
“난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다. 너도 마찬가지고.”
“그새 많이 친해졌다고 모양이군. 전우라도 되나,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네 얼굴에 창을 꽂아 줄 수도 있다.”
“창이라면 나도 자신 있지. 아마 일 년 전과는 많이 다를 거다.”
살벌한 대화 속. 두 사람의 얼굴에 똑같은 웃음이 걸렸다.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하던가. 일 년 전에 있던 싸움 후, 두 사람의 관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함께 싸운 전우로서. 그리고 왕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사내로서.
만약 함부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종종 얼굴을 보고 차나 술을 나눴을지도 몰랐다.
하나 잡담도 잠시.
이내 제우스의 등장에 흥미를 느낀 오딘이 그 용무를 물었다.
“정말로 내 얼굴에 창을 꽂으러 온 건 아닐 테고. 이 늦은 밤중에 날 찾아 온 이유는?”
“전해 줄 말이 있어서다. 너희들 정보가 너무 느려 보여서 말이지.”
“전해 줄 말?”
“그 녀석이 움직였다.”
“그 녀석이면…….”
칙칙하게 죽어 있던 오딘의 눈동자에 서서히 빛이 들어왔다.
희망 비슷한 것이 떠오른 눈. 사흘 내내 옥좌에 등을 기댄 채 송장처럼 앉아 있던 오딘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어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