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65
유원의 질문에 오딘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은 모른다.”
“모르다니?”
“이건 내가 아니라 제우스가 들고 온 거였다. 이게 미래에서 온 물건임을 알게 된 건, 미미르 덕분이었지.”
“제우스가?”
그가 대체 어떤 경위로 이걸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궁금증이 먼저 앞섰지만 지금 그는, 자신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질문을 한다고 해도 제우스의 성격상 순순히 알려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템의 출처를 알아보는 건 미미르에겐 아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오딘과 함께 시계태엽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울 만큼 지혜로운 자였으니 말이다.
“미미르는 지금쯤 다시 잠에 들었겠네.”
“……그래.”
“또 만나려면 백 년을 기다려야겠군.”
“그러면 좋으련만.”
대답이 조금 이상했다.
그러면 좋겠다니.
“미미르에게 문제라도 생겼나?”
“눈을 빼앗겼다.”
“……눈을?”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자신보다 조금 더 늦은 미래에서 온 손오공. 그를 통해 미미르가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걸 현재의 오딘이 알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미미르에게 말이냐?”
“그 말로 보아하니, 미래의 녀석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나 보구나.”
“적어도 지금 이때는 아니다. 같은 이유인 줄도 확실하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던 유원이 물었다.
“그래서 뭔데? 미미르가 눈을 잃은 이유가.”
“거래를 했다더군.”
“거래를? 누구와?”
“이름 모를 로브인과.”
“로브인이면…….”
유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리석은 혼돈.
그가 미미르와 거래를 한 것이다.
‘어쩐지 일찍 왔다 싶더라니…….’
어리석은 혼돈과 유원을 거래를 했다.
공공의 목표인 슈브 니구라스를 처리하기 위해, 마지막에는 결국 힘을 합치기로.
더 절박한 쪽은 당연히 유원을 비롯한 탑의 랭커들이었다. 만약, 어리석은 혼돈이 그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슈브 니구라스에 의해 탑의 전력이 약해지는 편이 이득일 테니까.
그런데.
‘미미르의 눈과 거래를 했다면…… 계산이 맞는 건가?’
과연 어리석은 혼돈이 그때 등장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
몇 명이 더 죽고 다쳤을지 모른다. 어쩌면 발할라만이 아니라 몇 개의 세상이 더 멸망했을지도 몰랐다.
복잡했다.
어리석은 혼돈을 제때 움직이게 하기 위해 미미르가 한쪽 눈을 희생했다니.
“한쪽 눈을 잃었으면…… 그 녀석이 깨어나는 데 몇백 년이 더 들지 모르겠군.”
이제야 오딘의 걱정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는 듯, 유원이 측은한 눈으로 오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쪽이 아니다.”
오딘은 더 큰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양쪽 모두다.”
“양쪽?”
“다른 한쪽은 대체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양쪽 눈을 다 감은 채 오더군.”
양쪽 눈을 다 잃어버린 미미르라니.
손오공을 과거로 돌려보내기 위해 미미르가 한쪽 눈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조차도 잘 상상되지 않았었는데.
‘양쪽을 모두…….’
과연 어리석은 혼돈과의 거래에서 양쪽 눈을 모두 쓴 걸까.
아니면 다른 한쪽 눈은 다른 데 사용한 것일까.
‘자는 녀석을 깨워서 알아볼 수도 없고.’
지식의 저주로 인해 한 번 잠에 든 미미르는 무슨 짓을 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불구덩이 속에 몸이 내던져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태의 미미르는 말 그대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결국, 미미르가 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미치겠군.”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던지, 상황을 보아하니 오딘에게도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보다도 더 똑똑한 녀석이니 괜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결국 이게 어떻게 넘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군.”
유원은 어렵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런 유원의 얼굴 위로.
“뭐가 그리 웃긴 거냐?”
이상하게도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이었다. 매번 비웃음, 조소, 실소 같은 것들만 보다가 진심으로 즐거운 웃음을 보니 순간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냥…….”
콱-.
유원은 손에 쥔 검을 내려다보며 감상하듯 답했다.
“좀 든든해서 말이지.”
“든든해?”
“이걸 어떻게 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보낸 건지는 알 것 같거든.”
그 많은 아이템들 중, 굳이 콕 집어 자신의 검을 보낸 이유.
그리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계태엽을 이용해 과거로 돌아온 후.
유원은 줄곧 혼자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겨진 자들을 버려 둔 채,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말이다.
다행히 손오공이 함께 돌아오며 그 짐은 가벼워진 듯했지만 천근처럼 무거운 짐을 둘이 짊어진다 하여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런데.
꾸욱-.
이 검을 보니 알 것 같았다.
‘그쪽에서도 같이 싸우고 있다, 이거냐.’
녀석들은 아직 싸우고 있었다.
저 먼 미래에서. 먼저 이 싸움을 겪은 자들로서.
그들은 유원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선물은 잘 받으마.’
정말로 잘 받았다.
이 선물의 의미도. 그리고 아이템 그 자체로도.
슬슬 흑야검으로는 버겁다 싶어서 새로운 검을 알아보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물론.
‘오랜만에 보겠네.’
이 상태 그대로 검을 쓸 생각은 없었다.
‘아저씨.’
* * *
유원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검을 쥔 순간, 유원은 바로 또 움직이기 시작했다.
뭘 그리 급하게 가냐는 오딘의 말은 소용없었다. 검을 챙긴 유원은 어딘가 들떠 보였다.
저벅-.
그렇게 저택을 나온 오딘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갔다.”
저택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과 맑은 하늘.
오딘은 배인지 하늘인지 모를 위를 향해 말했다.
“다 듣지 않았느냐? 너도.”
“…….”
대답은 없었다.
쑥스러운 건지, 아니면 별생각이 없는 건지. 아마 괜히 짜증을 냈던 것이 꽤 민망한 모양이었다.
“녀석은 바로 움직였다. 하루라도 쉬었다 갈 만한데도.”
콰릉-!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그와 함께 오딘의 뒤에 나타난 제우스가 짜증 어린 투로 물었다.
“뭘 어쩌란 말이지?”
“너도 들어서 알지 않으냐? 저 녀석이 1년 동안 놀고먹으며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
유원은 자신이 겪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제우스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있던 저택과 방은 방음이라고는 조금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유원은 시계태엽의 존재를,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변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변하지 않았으니 변한 거다. 난 그래서 기대가 되고.”
오딘의 생각은 제우스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오히려 변한 게 없어 보이는 유원을 보며 더 큰 기대를 품었다.
“저 조급한 녀석이 제자리에 멈춰서까지 얻으려던 게 무엇일지. 그리고 그걸 과연 얻어 냈을지, 얻지 못했을지 말이야.”
* * *
“예쁜 머리끈 팔아요! 비단으로 만든, 예쁜 머리끈이요!”
“명품 비단 소재로 만든 신상 보고 가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상위 층에서 멀리 물 건너 온-.”
왁자지껄한 시장.
10층, 무림계의 시장은 늘 이랬다.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복작였고, 사람들은 매번 물건은 사고팔기를 반복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시끄럽고 요란한 시장바닥일 뿐.
다른 상위 층계의 세계처럼 그리 대단하게 발달이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무림계의 시장은 제법 귀한 물건이 나오는 걸로도 유명했다.
저벅-.
그래서였다.
“흐음-.”
헤파이스토스가 1층 다음으로 이 세계에 발을 붙인 까닭이.
“뭔 놈의 장사치 놈들이, 파는 것마다 죄다 비단이라는지.”
“무림계에서 제일 인기 많은 품목이잖습니까. 천산을 통해 건너오는 비단이 말입니다.”
“유행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남들과 똑같아지기 마련이지. 미련한 것들.”
“저들에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닙니까. 헤파이스토스의 눈에야 그리 보일지 몰라도 저들도 치열하게 사는 중입니다.”
시장 한구석에 위치한 작은 대장간.
그곳에 들린 헤파이스토스는 잡다한 장비들이 담긴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곳 대장간은 무림계에 새로 자리를 잡은 헤파이스토스가 종종 재료를 구하기 위해 들리는 곳이었다.
“이번 물건들도 영 엉망이로군.”
“그리 한심하게 보지 마십시오. 불량인 물건을 가져오라던 건 헤파이스토스 님 아니십니까? 저희 가게에 좋은 물건도 많습니다.”
대장장이의 말대로 그의 대장간에는 제법 고품질의 장비도 널려 있었다.
확실히 10층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기에는 과분한 물건들. 그중에 일부는 제법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도 탐을 낼 법한 물건들이었다.
다만, 지금 헤파이스토스가 고른 것들은 그런 물건을 만들다 실패한 불량품들이라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불량이어도 그렇지, 이건 철에 대한 모독이야.”
“……거래 끊습니다?”
“포인트가 썩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어디 마음대로 해 보-.”
“아니, 아닙니다요! 제가 죄송…….”
잠깐의 실랑이.
헤파이스토스는 결국 값을 지불하고는 망가진 물건들이 들어 있는 상자를 둘러업었다.
“그런데 대체 그 망가진 물건들은 다 어디에 쓰시는 겁니까?”
“알 거 없다.”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견학 한 번만-.”
용건을 마친 이상 더는 볼품없는 대장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렇게 철로 만든 칼과 창, 갑옷 따위가 가득 든 상자를 둘러업은 채 자신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큼지막한 상자를 든 거구의 사내가 움직이자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갈라져 길을 내주었다.
그렇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착하자.
쿵-.
덜컹-.
헤파이스토스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으며 근처에 놓아 둔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뻐근한 어깨를 한 손으로 주무르는 사이.
“……뭐 하는 놈이냐?”
돌연 듯 헤파이스토스가 가늘게 좁혀진 눈으로 대장간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혹여라도 도둑이 들까, 제법 포인트를 들여 대장간 주위로 비싼 진법과 마법진들을 설치해 두었거늘.
잠깐 외출하는 사이 외부인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카악-.
헤파이스토스가 한쪽에 놓아 둔 망치를 손에 쥐었다.
당장 나오지 않거든, 대장간을 통째로 때려 부술 듯한 기세.
그 살벌한 기세에 계단 아래에서 허락받지 않은 외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접니다, 아저씨.”
손을 흔들며 유원이 계단 아래에서 위로 걸어올라왔다. 언제 보고 마지막으로 보지 않았던 건지,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생각해 보면 유원이 새로 탑에 발을 들이고서 처음 다시 만났던 동료가 바로 헤파이스토스였다.
그리고 그렇게 계단 아래에 숨어 있던 유원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네-.”
헤파이스토스의 눈 위로 한껏 노기가 치솟으며 그의 팔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부우웅-.
그렇게 헤파이스토스는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손에 든 망치를 유원의 얼굴 위로 내던졌다.
“이노옴-!”
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