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68
* * *
푹신한 구름에 앉아, 어리석은 혼돈이 보라색으로 물든 구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걱-!
붉은 선이 그어지며 거대한 촉수가 베어졌다.
특별한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그리 대단한 힘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벤 것이었다. 쿠사나기의 예리함을 이용해.
“흐음-.”
어리석은 혼돈이 그 장면을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 턱을 받쳤다.
마치, 재미난 볼거리라도 구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쉬지 않고 성을 뒤덮어 오는 보라색의 물결.
천장을 딛고 선 유원의 검이 그물망을 그리듯 움직였다.
그러자.
핏, 피피피핏-.
쫘아아악-!
몰려들던 파도가 천 갈래 만 갈래로 베어진다. 유원은 싸움이 시작된 이후부터 줄곧, 호흡을 가다듬는 데 집중하며 칼을 휘둘렀다.
“어딜 갔나 했더니만.”
왜 지금까지는 계속 나오지 않았던 걸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난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찾고 있던 녀석이 나타났지만 그리 반갑지는 않았다.
“저것도 네 녀석의 작품인 건가.”
대장간 속에서 불길한 느낌이 전해졌다. 맹수가 뒤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불안감이 들었다.
저것이 완성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런 확신에 움직인 것이었는데, 그곳에서 김유원이 나타났다.
-저게 그리도 신경 쓰이십니까.
어리석은 혼돈을 감싼 안개가 말을 걸어왔다.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지만, 녀석은 어리석은 혼돈과 함께 넘어와 있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닐 텐데.”
-그럼 서둘러야지 않겠습니까? 그 녀석이 또 초를 치기 전에 말입니다.
보라색의 하늘이 등장하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녀석.
아마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럼…….
“재촉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 경계를 넘어 저들을 이곳에 들이는 건,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까.”
떠났다니.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던 안개가 잠시 어리석은 혼돈의 주위를 떠다녔다.
그렇게 얼마간.
-혹시-.
설마 싶은 생각과 함께, 안개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혹시- 다음으로 이어진 말은 없었다.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이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안개를 비웃기라도 하듯.
“요 – 소토-가 움직였다.”
어리석은 혼돈은 결코 말해선 안 될 이름을 입에 올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이제 곧, 벽이 무너질 거다.”
* * *
콰우웃-!
쿠사나기에 마력이 실렸다. 그대로 잘린 아우터의 촉수가 땅바닥에 떨어지며, 지저분한 점액질을 흘렸다.
“후우-.”
참고 있던 숨을 내뱉는 순간,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고작 한 방울.
하지만 그 한 방울부터가 문제였다.
‘……많군.’
끊임없이 모여든다.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베어 내는 녀석들보다 새로 나타나는 놈들이 더 많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마력을 아끼려고 체력을 바닥낼 수는 없었으니.
[‘우라노스의 심장’이 ‘벼락’을 생성합니다.]콰르릉-!
유원의 손안에 만들어진 황금빛의 창.
벼락을 움켜쥔 유원이 그것을 있는 힘껏, 하늘을 향해 내던졌다.
그러자.
번쩍-!
콰우우웅-!
황금빛 물결이 한순간 보라색의 하늘과 구름을 집어삼켰다.
검게 타들어 가, 재가 되어 부서지는 촉수들.
[?를 처치하였습니다.] [?를 처치하였습니다.] [?를…… ] […… ] [마력이 미미하게 상승합니다.]오죽하면 그동안 잘 오르지 않았던 마력이 조금 올랐다며 시스템이 반응을 하기까지 했다.
벼락은 마력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런 광범위한 공격으로는 역시 최고의 성능을 보여 주었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벼락이 터지며 순간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은 어느새 더 짙은 보라색으로 다시 물들었다.
생각보다도 더 빠른 반응이었다.
“……벌써 소토스가 움직인 건가.”
유원의 중얼거림과 거의 동시였다.
화륵-.
뜨겁게 달아오르는 심장부.
그 화끈거림과 함께,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화’가 흔들립니다.] [‘성화’의 숙련도가 하락하였습니다.] [‘성화’의 숙련도가 하락하였습니다.] [‘성화’의…….]끊임없이 반복되는 메시지.
스킬의 숙련도가 하락하다니. 생전 겪어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뭐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잠시 멈칫하던 그 순간.
화아악-!
유원을 비롯한 대장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의 온도가 돌변했다.
후덥지근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지는 공기. 그리고 대장간의 주위를 가득 메우는 보라색의 불꽃들.
유원의 불꽃이 아니었다. 온통 불바다가 된 세상의 풍경은 흡사, 11층의 세상이 무스펠하임으로 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불바다가 된 세상.
11층에 있던 올림포스의 플레이어들이 급히 거주민들을 대피시키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그래도 피해가 상당할 것 같았다.
‘불꽃이라…….’
성화를 닮은 불꽃의 주인.
떠오르는 존재가 있었다.
‘누군지 알 것 같군.’
화륵, 화르르-!
세상을 집어삼킨 보라색의 불꽃이 위로 치솟으며, 무수히 많은 불꽃의 기둥을 만들어 낸다.
마치 위협하듯이.
아니.
[‘불꽃과 춤추는 무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습니다.]소리치듯이.
“너였느냐.”
유원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저 불꽃을 마주하니 알 것 같았다.
저 녀석이 부르짖고 있는 ‘이름’이라는 게 무엇인지.
화륵-!
[‘불꽃과 춤추는 무희’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였습니다.] [‘성-’가 당신을 거부합니다.] [‘–’의 숙련도가 리셋됩니다.]성화의 이름이 백색으로 표시된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메시지를 들으며, 유원은 눈앞에 나타난 불꽃의 기둥들 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 새로운 주인을 가립니다.]성화의 진짜 이름이 메시지를 통해 공개되었다.
* * *
까앙-!
바깥의 소란을 모른 채, 헤파이스토스는 망치를 두드렸다.
흑야검과 이계검은 거의 완벽하게 뒤섞였다. 담금질 작업도 끝에 다다랐고, 이제 남은 건, 마무리 작업 뿐이었다.
화륵-.
불꽃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아까부터 기분 나쁘게 왜 이렇게 몸이 편하나 했더니만.
‘더 센 불이 필요하다.’
처음으로 망치질 외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헤파이스토스가 고개를 돌렸다.
“불 똑바로 안 피우-.”
화르르-.
점차 옅어지는 불꽃.
거대한 불꽃의 형상이 서서히 사라지며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였던 건지, 유원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간 게야?”
분명 이 자리에서 꼼짝 말고 불이나 피우라 했건만.
유원이 피우는 불꽃이 없이는 더 이상 작업이 어려웠다. 아폴론이 선물한 불꽃에 열심히 풀무질을 하면 되긴 할 테지만 그 정도로는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이놈이 그 새를 못 참고-!”
퍼어엉-!
구우웅-.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에 대장간이 흔들렸다.
망치질에 정신이 팔려 무뎌져 있던 감각이 돌아왔다. 바깥의 소란은 시끄러웠고 굳이 나가 보지 않아도 대략적인 상황은 알 수 있었다.
“……싸움인가.”
최근 보라색 하늘이 나타날 때마다 웬 이상한 것들이 나타난다더니, 여기서도 난리인 모양이었다.
스윽-.
헤파이스토스는 집게에 들려 있는 검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은 미완성작이긴 했지만…….
“이거라도 쓰라고 던져 줘야 하나.”
* * *
화르르르-.
보라색의 불꽃 속.
뜨거운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불꽃의 기둥이 곳곳에서 솟구치며 유원을 위협했다.
‘아저씨가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덥고, 뜨겁다.
이런 데서 헤파이스토스는 어떻게 평생을 산 건지. 새삼 신기할 지경이었다.
퍼어엉-!
불꽃 속으로 들어가던 가운데, 거대한 기둥 하나가 솟구쳤다.
다른 기둥과는 달리 그것은 유원의 걸음을 막아섰다.
-그 이름은 네 것이 아니야.
불꽃이 목소리를 전해 온다.
그것은 유원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불꽃을 탐내며 매섭게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난 직후.
화아아악-!
사방에서 타오르던 불꽃들이 순식간에 유원의 몸을 집어삼켰다.
화르륵, 화르-!
보라색의 불꽃에 삼켜진 유원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불꽃은 제법 뜨거웠지만 성화가 아니더라도 유원에겐 다른 불꽃이 있었다.
[‘불의 심장’이 ‘거인과 악마의 불꽃’을 태웁니다.] [‘거인과 악마의 불꽃’이 ‘불꽃과 춤추는 무희’에게 저항합니다.]화륵, 화르르-!
유원의 몸에서 타오르는 붉은색의 불꽃.
그 불꽃이 보라색의 불꽃을 밀어냈다.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치는 불꽃 속, 사람의 것처럼 보이는 얼굴이 나타났다.
-그 이름은 내 것이다. 내 이름을 내놔.
이름이란, 아마도 성화를 말하는 것 같았다.
성화. 10층의 시험에서 얻은, 탑 바깥에서 온 불꽃.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얼마나 놀랐던가. 유원은 언제고 그 불꽃의 주인을 만날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성화.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라는 이름을 잃어 버린 존재가 눈앞에서 분노해 하고 있었다.
물론.
“꼭 그거 같네. 다리 잃어버린 귀신.”
그러거나 말거나, 유원은 그리 관심이 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이 이름이 그렇게 탐나냐?”
유원은 불꽃 속에 나타난 얼굴을 향해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 봐라. 툴차.”
화르륵-.
진명을 들켰기 때문일까.
잠시간 유원을 둘러싼 불꽃이 흔들렸다.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느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툴차.
그것은 ‘불꽃과 춤추는 무희’와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우터의 진명이었다.
툴차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유원은 적어도 두 번, 녀석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미래. 아우터와의 전쟁이 막 시작했을 때였다.
‘저 불꽃을 막기 위해, 몇 명이 죽었었지.’
광범위한 불꽃. 당시 저것을 막을 만한 랭커가 없어, 족히 수백 명이 죽었던 걸로 기억했다.
한 번 나타난 직후 어디론가 사라져 기억에 잘 남지 않은 데다, 녀석의 불꽃과 성화는 색깔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너는 그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네겐 과분하다.
“당연하지. 이게 이 이름이었다는 걸 지금 처음 알았으니까.”
성화라는 이름의 스킬의 형태에서,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라는 ‘이름’의 형태로.
이름을 인식한 순간, 그 이름 또한 유원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래도 네가 한 가지를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화륵-.
유원의 몸에서 뿜어지던 불꽃의 색이 바뀌었다.
[‘죽음과 부패의 불꽃’이 새로운 주인을 인식합니다.]화려하게 빛나는 보라색의 불꽃. 그 색은 유원이 쓰던 것보다도 훨씬 더 진하고 아름답게 타올라, 서서히 툴차의 불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 이름은 네 것이 아니다.”
마치 그것의 주인은 자신이 마땅하다는 듯.
이름의 주인은 눈앞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무희를 향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않으냐?”
유원은 적어도 두 번, 녀석을 본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번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었고-
“나의 무희여.”
-또 다른 한 번은 아주 아주 오래 된 과거의 일이었다.